미움 받을 용기 줄거리 | [미움받을 용기] 100번 읽은 것처럼 만들어드림 상위 61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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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과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한 철학자간의 대화로 이 책은 구성된다. 청년은 처음 철학자의 말에 큰 반감을 같지만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철학자는 누구나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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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 미움받을 용기 / 독후감 / 줄거리요약 / 베스트셀러 책

첫번째 밤 –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 두번째 밤 –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 세번째 밤 – 타인의 과제를 버려라. (핵심적인 행동강령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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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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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아들러 심리학) – 건축광장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초로 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설명하고 그 사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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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를 읽고,독서감상문,줄거리,비판 1페이지 – 지식월드

<<미움받을 용기 독후감>>미움받을 용기를 읽고,독서감상문,줄거리,비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는 개념을 해결책으로 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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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너 진짜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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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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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요약

한 청년과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한 철학자간의 대화로 이 책은 구성된다. 청년은 처음 철학자의 말에 큰 반감을 같지만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철학자는 누구나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음을 역설한다. 나의 세상은 내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 자신을 바꾸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경험한 모든 사건들은 그저 점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 끔찍한 사건을 겪었더라도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서 그 사건은 나를 망가뜨릴 수도 있고 오히려 그 사건이 나를 크게 성장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인생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했을 때 의미 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생 자체로 큰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인생은 등산과 같다. 등산은 반드시 정상을 찍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정상을 찍기만 하면 성공적인 등산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헬기를 타고가서 정상만 찍고 다시 헬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최고의 등산일 것이다.

정상까지 가는 과정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이 등산의 묘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좋은 삶은 아니다. 내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철학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철학자는 인간의 삶이 의미 있어지기 위해서는 ‘타자공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에게 가치있는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을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일을 했을 때 인생의 의미와 행복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자유와 존재를 부정하면서 ‘타자공헌’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설령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싫어하더라도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 가치를 더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미움받을 용기 명언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같은 경험을 겪더라도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같은 가정 폭력을 당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폭력을 대물림하고 누구는 그 트라우마로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철저히 주관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수험생은 ‘시험에 합격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 이라고 기대하고

회사원은 ‘직업을 바꾸면 만사가 술술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하지만 막상 바라던 것이 이루어져도

상황이 뭐 하나 달라지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네.

사람들은 상황이 바뀌면 자신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실은 그 모든 상황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다. 설령 상황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인생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내 스스로가 변화해야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고독을 느끼는 것은 자네가 혼자라서가 아닐세.

자네를 둘러싼 타인,사회,공동체가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독한거지.

혼자 있어서 고독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고독한 것이다. 참신한 발상이었다. 만약 우주 공간에서 어떤 인간도 존재하지 않고 태어나서부터 혼자였다면 고독을 느낄까? 한 번쯤 생각해볼 논제인 것 같다.

정말로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나도 어릴 때 자랑이 심했다. 물론 나는 내가 자랑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면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잘 알고 있다. 심한 열등감 덩어리였기 때문이다. 보리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 정말 강한 사람은 굳이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고,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억지로 드러낼 필요가 없다.

정말 재밌는 것은 자기 자랑을 많이 한다고 해서 아무도 자랑하는 사람을 대단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강한 사람이 힘을 드러내지 않고, 똑똑한 사람이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본다는 것이다.

경쟁의 무서움이 그걸세. 설사 패자가 되지 않아도,

경쟁에서 계속 이긴다고 할지라도

경쟁 속에서 사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새가 없어.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아. 그리고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늘 이겨야 하지.

세상을 ‘경쟁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의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친구는 없고 주변에 온통 적 뿐이다. 그리고 계속 이겨도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며,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경쟁자가 아닌 ‘친구’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태어나서부터 경쟁이 시작 된다. 같은 형제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학교를 입학하면 친구들과 입시 경쟁을 해야하고 그 이후에는 취업경쟁, 승진 경쟁 무한 경쟁의 늪에 빠져든다. 이 책을 통해 비추어보았을 때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다.

운명이란 전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고르디우스라는 전차에 아주 복잡하게 얽혀 거의 풀기가 불가능한 매듭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이 매듭을 푼 자만이 아시아의 왕이 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은 그 전설을 듣자 마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검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 이 일화가 정말 인상 깊었다. 역시 이 정도 기백은 있어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구나.. 싶었다.

부자유스러운 삶을 택한 어른은,

지금 이 순간을 자유롭게 사는 젊은이를 보고 향락적이라고 비판하지.

물론 이는 자신의 부자유스러운 삶을 납득시키려고 하는 인생의 거짓말일세.

스스로 진정한 자유를 택한 어른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자유롭게 사는 것을 응원하겠지.

어른들을 보면 참 재밌다. 어렸을 때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은 아이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하게 만든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 다 해결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막상 공부를 정말 잘했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인생을 별로 열심히 살지 않은 사람들은 노력하면 뭐든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노력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유로울 용기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생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살기까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뤘는 지를 알지 못한 채 자유로운 사람들을 욕하는 것 같다.

만약 자네가 칭찬을 받고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은 수직관계에 종속되어 있으며

‘나는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네.

칭찬은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 이기 때문이지.

어느 순간 부터 나는 누군가 나를 칭찬하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 첫번째 이유는 칭찬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너 위에 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보다 그것을 더 잘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칭찬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하는 부류가 있다. 일을 더 시켜먹는다고 할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세상을 삐딱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칭찬해주면 기분 좋을줄도 알고 그래야되는데 너무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기는 하다.

신뢰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은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네.

누군가를 믿을 때는 항상 리스크가 있다. 배신을 당하게 되면 손해를 당하게 된다. 그런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얻을 수가 없다. 인간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을 못 믿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계속 믿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공헌감을 얻기 위한 수단이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라면

결국 남이 의도한 대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어.

자네는 헤매고 있네. 왜 헤매는 것일까?

그건 자네가 ‘자유’를 택하고자 하기 때문일세.

즉 타인에게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타인의 인생을 살지 않는, 자기만의 길을.

자유로운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이거라고 생각한다. 길을 자주 헤맨다. 자유로운 사람은 말 그래도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지 끊임 없이 생각해야한다. 나도 자주 인생의 길을 헤매지만 그 과정 자체를 즐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너무 힘들지만…ㅎ

미움받을 용기 후기

대한민국과 문화가 거의 흡사한 일본인이 쓴 책이라 대한민국에서도 많은 공감을 불어일으켰던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은 사실 집단 문화에 의해 자유가 억압되어 있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이 책은 전반적으로 집단 문화의 억압으로 부터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해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좋은 부분이 많아서 정리하는 데 애를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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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미움받을 용기

저자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옮긴이 : 전경아

1. 줄거리 요약

첫번째 밤 –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 목적론,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인생이란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 목적’을 따라 산다.

* ‘감정’은 내 목적의 수단(도구)

*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 생활양식(성격, 삶의태도)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 이라고 한다면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총정리 : 첫번째 밤은 ‘과거는 하등 상관없이, 지금, 여기를 살면된다.’라는 용기를 주고있는 밤이다. 마음가짐을 바꿔주는 밤.

두번째 밤 –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 우월성 추구(보편적 욕구) – 향상되길 바라는 것.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는 것. 타인과 경쟁과 상관없음

* 열등감 – 어차피.. 라는 생각은 열등감이 아니라 열등 콤플렉스임. 노력과 성장을 자극하는 감정(부정적인것이 아님). 건전한 열등감(타인비교X, ‘이상적인 나’와 비교O)

* 열등 콤플렉스 –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

* 우월 콤플렉스 – 자기자랑하는사람. ‘나’를 인정 해주길 바라는 사람임. 열등 콤플렉스가 심한사람

★총정리 : 열등감과 열등 콤플렉스를 구분할 것. 인간관계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생각하라.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주는 밤.

세번째 밤 – 타인의 과제를 버려라. (핵심적인 행동강령part)

* 인정욕구를 부정하라 – 타인의 기대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

* ‘과제를 분리’하라 –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음, 타인의 과제에 침범X, 구분방법 :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구인가?

*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다.

* 진정한 자유란? – 타인에게 미움받는것이 자유(미움받을 것을 두려워 말라는 뜻). 남의 평가, 시기, 질투, 인정을 두려워 말라.

★총정리 : 세번째 밤은 아들러심리학의 최종 목적지가아니라 입구이다. 사람다운 따뜻함이 없어지는게 아님. 행동강령part

네번째 밤 –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해가 잘 안되는 part)

*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향하는 것 –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다. ‘공동체’란 과거, 미래, 우주전체 ‘만물’이다. 아들러 또한 도달하지 못할 이상이라고 지칭했다. 현실적으로는 ‘나는 다른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 ‘나’이외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 –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이외에는 관심이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임. 즉 남의 시선 의식이 ‘나’를 되돌아보는 것 보다 더 자기중심적이니 멀리 하라는 뜻.

* 칭찬X, 야단X – 인간관계에서 수직관계 결사반대, 수평관계 적극찬성. 여기서 수평관계 적극찬성은 의식상에서 대등할 것, 그리고 주장할 것은 당당히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

* 존재자체로 가치가 있다 – 존재의 가치가 익숙해져 무뎌갈 뿐. 즉.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살펴야한다.

★총정리 : 네번째 밤은 아들러 심리학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지점이다.

다섯번째 밤 – 지금, 여기

* 지금, 여기를 춤추듯이 살라

★총정리 :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현재를 살라는 뜻임. 중요한 부분은 춤추듯이 살라는 것. 행복을 통념과 다르게 정의하는 아들러의 마지막 밤이다.

2. 나의 생각

이 책을 군대에서 2번읽고 2년뒤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엄청난 충격이였고, 어느정도 내 삶에 녹아들어있는 가치관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의미로 다르다. 역시 책은 여러번 읽어보아야한다고 한번더 느꼈다.

우선, 이 책은 원인론을 너무 싫어한다. 그래서 원인론의 단점만 나열해 놓고 원인론의 단점을 극복하는 목적론은 대단하다! 라는 느낌으로 서술 되어있다. 분명 원인론의 장점도 있을텐데 말이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는 속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이, 청소년이였을 때는 당연히 트라우마가 존재했다. 사회적으로 원인론이 퍼져있으니 트라우마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 녹아있었고, 인생선배들(선생님,어른 등)과 이야기를 나눌때 또한 트라우마를 당연히 존재하는 전제하여 대화를 하였다. 이 책이 아쉬운 부분은 트라우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인지하고 극복하는법으로 서술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를 부정하라는 첫번째 밤을 보고 반감을 가지고 목적론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목적론을 접하기 전에는 모든이들에게 트라우마는 존재해왔으니까. 아마 목적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면 원인론의 트라우마는 쳐다도 안보았겠지. 그리고 이 책은 프로이트와 대비되는 해석을 내놓음으로써 아마 우리의 통념을 깨부수고 싶어서 저렇게 강렬히 서술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담으로 이 책이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는 철학자와 청년이 극과 극을 달리면서 서로 교화되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도록 서술해 놓았다. 청년의 열정적인 태도와 말투들은 내가 진리를 찾던 어렸을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감정이입이 부드럽게 잘되었다.

가장 와닿는, 인상적인 구절은 이것이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이 구절이 아들러 심리학의 정리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라고 하였으니 정말 와닿지 않는가. 저 구절의 속뜻은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것이 가장먼저 할일이며, ‘나’는 ‘나’인채로 그저 생활양식(성격, 삶의태도)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목적론은 개성까지 존중해준다는 그런 속뜻이 담겨있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다른구절이 생각났다. ‘생각을 조심하라 그것은 너의 말이된다. 말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인격이 된다. 인격을 조심하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 된다.’ 삶을 꿰뚫는 구절인데, 이 구절을 아들러가 들었더라면 그저 공감의 미소를 살짝 지었지 않았을까. 여기까지가 첫번째밤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번째 밤.

세번째 밤은 정확히 행동강령이다. 바뀌기로 결심한 마음가짐(첫번째 밤)을 토대로 어떻게 마음가짐을 이끌어 가야하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밤이 세번째 밤이다.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건 ‘과제의 분리’이다. 과제를 자신과 타인 각각으로 구분하라는게 나의 삶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년전 처음읽었을때부터 지금까지 과제를 분리하며 살고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한번 읽음으로써 내가 목적론과 원인론의 중간지점에서 살고있었음을 깨달았다. 미움받을용기 책처럼 비슷하게 살아오면서, 타인들은 나보고 이기적인 사람, 정이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난 그러한 취급에 따로 반박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그들이 생각하기에 맞긴 맞으니까. 하지만 정말, 진정으로 이기적이고 정이없는사람은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타인을 생각한다는게 배려한다는 뜻이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려는 생각을 일컫는다. 즉 타인을 간섭하는 사람이다. 정말 이기적인사람은 따로있다. 이는 간섭하는 사람보다 ‘나’를 되돌아보는 사람이 더 이기적이지 않고 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better의 의미이다. 이러한 내 마음가짐을 내 주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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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아들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 는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초로 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설명하고 그 사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속에서 청년이 품은 의문들에 대해 하나하나 해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아들러 심리학이 논리실증주의자 였던 “칼 포퍼”에 의해 신랄하게 비과학적인 사이비과학이라고 비평받고 있지만, 모든 학문이 과학적이여야 할 필요가 없기에 심리학, 윤리학, 문학, 예술등이 반드시 과학적인 형식(반증가능성)을 갖출 필요는 없다 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서 고찰해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중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 사랑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즉, 내가 아무리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로 노력해도 인정하기 실지만 현실적으로 그 중에 반드시 나를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와반대로 내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경우도 마찮지입니다. 즉, 내가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극소수가 되고 아무도 나의 일에 관심이 없거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내가 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생각은 어쩌면 하나의 강박일지도 모릅니다. 노력하면 된다고 어떤이는 말할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노력을 아무리 한다하더라도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고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관계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해 줄수 있는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좋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면 그것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친한 친구나 형제나 부모자식간에도 갈등은 있고 부부사이에도 이혼과 같은 극단적인 갈등이 발생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이중적인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즉, 나의 영역에 누가 접근하면 싫어하고 거리를 유지하려는 독립과 자유에 대한 욕구가 있고, 동시에 누군가와 너무나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친밀의 욕구가 있기때문에 이 상호 배타적인 욕구가 서로 충돌한다고 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로 “프로이트”나 “융”에 비해서는 다소 덜 알려졌지만 프로이트의 이론에 반기를 들고 “개인심리학” 이론을 정립한 심리학자로 인간은 변할 수 있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고 했습니다.

프로이트가 인과론 에 근거했다면, 아들러는 결과론 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고 봤다면, 아들러는 지금의 문제 행동은 지금 자체로 존재하고 과거의 원인과는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즉, 과거의 행동은 단지 변명에 불과하며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주장입니다. 지금의 문제 행동은 지금의 문제이지 결코 과거에서 원인을 찾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과거 어린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않아 지금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인과론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이런식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현재 가난하게 된것이 과거에 의해서 현재 가난하게 되었다는 인과론이기때문에 현재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있는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때문에 많이 괴로워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성공하지 못한 것은 현재의 문제이지 과거와는 상관없다는 아들러식 사고를 하게 되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프로이트식 사고보다 아들러식 사고가 점 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요소로 우리에게 다가오게됩니다.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고민들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흔히 주변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계에서조차 고민거리가 되거나 괴로워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싫은 사람들과 싫은 일 까지 해야 하는 게 슬프지만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를 극복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든 말든 나는 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과제의 분리” 라고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게 됩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해도 그건 그 사람 생각이고, 그 사람의 사정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하려고 눈치 보거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건 그 사람의 과제이지 나의 과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타인의 과제에 침범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과제를 분리하는 것이 인생을 보다 단순하게 만드는 첫걸음이고 내 인생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내 과제를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결코 두려워 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할 듯합니다. 이렇듯 자신의 뜻대로 살아야 단순하게 살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말 힘든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주변에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행동일 뿐 이라고 합니다. 결국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결코 아니며 자신의 앞만 보고 나아가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미움받을 용기” 라는 책 속에는 많은 예를 들어가며 타인에게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며 이부분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미움받지 않고 인정받고자 하는 것을 “인정 욕구”라고 하는데 이 인정 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러는 이것을 공동체 중심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단순히 우리라는 개념이 아닌 자연 만물을 포두 포섭한 큰 개념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들러가 설명하는 공동체에 공헌하는 감각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남들과는 상관없이 나 스스로 공헌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동체 감각을 기르기 위해 ” 자기 수용”, “타자 공헌” 및 “타자 신뢰” 등이 필요한데 100% 완벽하게 과제를 수행하겠다는 집착보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를 스스로 인정하고 인간관계에 의심을 품지 말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을 자신으로부터 발견하고 스스로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들러는 결국 공동체에 공헌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러의 심리학에 기초하고 있는 이런 생각은 이해보다 공감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고 현재와 과거를 연관 짖지 말고 지금 현재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건 부자유스러운 동시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누구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을 겁니다. 모두가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착각일 뿐입니다. 또한 남이 좋아한다고 나도 그것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이야기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려야할 시점 혹은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다면, 이 책 “미움받을 용기”는 추천 도서 1순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라 생각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년 오스트리아 빈 태생으로 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895년 의사가 된다. 1902년 프로이트 중심의 모임이었던 “빈 정신분석학 외”에서 활동하다 의견을 달리 한 회원과 탈퇴해서 “개인 심리학회”를 결성하고 사회 감정에 중점을 둔 열등감의 연구와 치료를 중점으로 “신경증 기질(The Neurotic Constitution)을 발표한다.

“신경질 성격에 대해서”를 발표한후 자신의 학설을 “개인심리학(Individualpsychologie)라고 명명한 뒤 “국제 개인심리학 잡지”를 창간했고 이후 아동상담소의 개설 및 각국에서 강연 등의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기도 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가 신경증의 원인으로 성적 충동을 중시한 것에 대해 성적인 요소가 아닌 자아의 욕구나 성격경향이 신경증을 낳는 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또한 프로이트가 과거에서 원인을 찾은 것에 반해 인간 행동의 목적성을 중시하고 인간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에 신경증이 된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신경증의 원인으로 문화적 요인에 대해서 언급했고, 여성의 열등감이 사회적 불평등한 지위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1차 대전 이후 1927년부터 미국의 콜롬비아 대학교의 교수로 유럽과 미국에서 대중 강연 을 여러 차례 하였고, 인간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협력”과 “사랑”으로 인류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들러는 심리학계의 석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37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강연 후 사망한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주요 저서로는 “인간 본성이 이해(Understanding Human Nature), 신경증 기실(The Neurotic Constitution), 개인심리학의 이론과 실제(The Practice and Theory of Individual Psychology), 삶과 과학(The Science of Linving)등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독후감

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인플루엔셀

책 읽은 기간 16.07.03~07.11

한참 군대에서 책읽는 것에 재미를 들렸을때 휴가를 나와서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 끌려서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평소에 심리학에 대한 장르의 책들에 관심이 있었고 제목이 몹시 끌렸다 미움을 받을 용기라니 미움 받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쓰는 사람을 위해 쓰여진 책인가 싶어서 읽게 되었다.

늦게나마 군대에서 읽었던 책들을 쭈욱 독서평을 하려고 합니다!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자 소개 (알프레드 아들러)

이 책은 아들러의 이론들을 읽어보고 감명을 받은 일본인 작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도록 옮겨논 책이다. 나도 읽고나서 아들러에 대해 궁금해서 원본을 옮겨놓은 이론식 책을 읽어봤는데 무게감이 있어서 중도에 접어버렸는데 사실 그 내용을 그대로 읽기쉽게 옮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프로이트 그리고 융에 맞먹는 심리학자로 그들과는 다른 개인심리학을 내세워서 유명해졌다. 원인론 대신에 목적론을 내세우며 우리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모든 변화에는 자신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에 그의 심리학을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칭한다.

책의 차례

총 4개의 큰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첫 번째 밤’ 과 같이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한 청년이 철학자를 찾아가 논쟁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한 밤 한 밤이 지나갈 수록 청년은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로 한 장 한 장 읽어갈 때마다 새로운 심리적 지혜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밤 : 트라우마란 없다?

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첫 번째 밤에서 철학자는 트라우마란 없다고 주장하고있다. 모두가 알고 있드시 트라우마란 옛것의 충격적인 기억 때문에 현재의 삶에서 그로 인한 원인적인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건 사실 그 사람이 그 기억에 대한 의미 부여를 그렇게 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 . 어떤 아이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삐뚤어져서 안좋은 길을 들게된다고 하자 이것은 원인론인 ‘부모님 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 자신이 애초에 삐뚤어 질 ‘목적’ 을 위해 그 원인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얼마든지 아이는 용기를 가지고 바른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한가지 예를 가지고서는 책에 나오는 청년처럼 반박의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도모르게 이 철학자가 주장하는 바를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목적으로 정했기 때문인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밤 : 모든 스트레스는 인간관계가 원인이다

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두 번째 밤은 모슨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한다. 만약 자신이 우주공간에 혼자 존재한다면 고민이 생길까? 한번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주변 사람 자체가 없고 나 혼자만 산다는 것인데 고독 스럽지 않을까? 근데 철학자는 고독 조차도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혼자 있게된다면? 고독의 개념도 없고 말도필요없게 될까. 아니다 우리는 또 누군가를 떠올리며 고독해지고 고민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로 부터 또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열등감 타인에 비해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감정 이 열등감이란 말도 아들러가 처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타인이 존재하게 된다 이런 감정은 역시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주관적 해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인간 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고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령 아이에게 공부를 시킨다고 해보자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책을 사줄 수는 있지만 직접 공부하는 것을 아이의 몫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 이나 공부를 하지 않아 꿈을 못 이루는 것은 결국 아이가 결정해야하는 과제라는 것이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 과제를 좀 더 잘 해결 할 수록 도움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그 사람의 과제와 내 과제를 확실히 알면 더 좋은 인간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호숫가에 몰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먹는 것은 말의 과제!

세 번째 밤 : 타인의 과제를 버려라

미움받을 용기 줄거리

정말 책에서 버릴 내용이 하나도 없어서 다 쓰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읽지 않은 분들이 너무 재미없기 때문에 ㅎ 내가 감명깊게 본 포인트랑 독서 수첩에 스크랩 했던 내용들을 쓰도록 하겠다. 위에서 모르고 세 번째 장과 중첩되게 쓴 것같은데 사실 모든 장이 중첩되는 메세지를 주고있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계속 쓰겠습니다.

인정 욕구를 부정하라니 말이되는가? 아들러는 인정욕구를 부정하라고 주장한다 많은 심리학 책에서는 이 인정욕구를 이용해 사람을 사귀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많다. 그렇기에 이 말을 보고서 좀 의하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들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고한다. 괜히 책 제목이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다!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말고 자신을 위해 살라는 말은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평소에 사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실천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사실 내가 변해도 달라지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이 장은 우리에게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안고있었던 무거웠던 짐을 한 시름 놓아준다.

네 번째 밤 : 그렇다면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내가 있을 곳이 여기다 하고 느낄 수 있는것.

여기서 타인은 물론이고 국가, 시간, 무생물 까지 통틀어서 공동체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들러의 이론이다. 만물이라고 보면되는 것인데 아들러 자신도 도달 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한다. 상대를 수직적으로 보지말고 평면적으로 봄으로써 모두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어쩌면 우리는 인생의 지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르겠다.

다섯 번째 밤 : 지금을 살아라

이제 거의 다 왔다. 우리는 변할 수 있는것에 집중하고 또 바로 지금! 그래 이 글을 읽고있는 이 순간을 살라는 것이다. 직선의 삶이 아닌 여러개의 점이 모이는 삶 이것이 바로 아들러가 추구하는 삶이다 동시에 타인에게 공헌이 되는 일을 하며 살라는 이 너무나도 착한 이론이 나는 정말 마음에 든다. 남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타인에게 어떻게 하면 공헌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삶이 나에게도 곧 찾아오기를 바라며. .

독후감을 마치며

미움받을 용기 독후감

지금 나와 여러분은 과연 이 순간을 살고있는 것일까요 미래를 걱정하며 살고있진 않으며 타인의 눈치를 보며 나의 행복을 망치고 있지 않나요?

어쩌면 아직까지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꾸준히 팔리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 책이 우리에게 큰 깨달음이 되거나 행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실천에 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말입니다 저도 읽은지 이제 반년이 넘었는데 책을 다시 읽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며. . 아들러 까진 아니더라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안읽으신 분들께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고 아는 모든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기도한 이 책, 아마 평생 가지고 다니며 읽어야할 책이 아닌가 싶다.

미움받을 용기 2권 줄거리와 중요 구절

아들러 심리학, 인생을 사는 태도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추구하려고 하지 않네. 나는 언제까지나 자아를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할 걸세.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원히 ‘모른다’고 해야겠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인생의 온갖 과제에 대해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하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서 생각한다.

나의 말과 행동에, 또 나라는 사람에게 상사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는 상사의 과제이며 내가 컨트롤할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사는 나를 쭉 싫어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인 또한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 겁먹지 말고,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라. 그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해라.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도 말고, 자신의 과제에 타인을 개입시키지도 마라.

그것이 누구의 과제인가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혜’란 학문뿐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지성’도 포함되네. 즉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을 수 있는가. ‘나’를 알고 ‘너’를 아는 것. 인간의 본성을 알고 이해하는 것, 아들러는 그것을 ‘인간 이해’라고 했네.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보는 ‘존경’

‘자네’가 먼저 아이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나.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된다네.

존경이 없는 곳에서 좋은 인간관계는 생길 수 없고, 좋은 인간관계 없이는 자네의 뜻을 전할 수도 없네.

“존경이란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다.”

“존경이란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눈앞의 타인을 바꾸려고도 조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뭔가 조건을 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인정한다. 이를 넘어서는 존경은 없네.

그리고 만약 누군가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는다면, 그 사람은 큰 용기를 얻게 되겠지. 존경이란, 이른바 ‘용기 부여’의 출발점이기도 하네.

타인을 조종하려는 태도, 교정하려는 태도에는 절대 존경이 없지.

가령 회사 조직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강한 권력을 가진 독선적 인물이었다고 하세. 분명 직원들은 무슨 지시를 내리든 따르겠지. 고분고분한 기색을 보일 거야. 하지만 그것은 공포가 깔린 복종이지, 거기에 ‘존경’은 추호도 없어. “나를 존경하라”하고 외쳐봤자 아무도 따르지 않네. 점점 마음이 떠날 뿐이지.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무엇 하나 부정하지 않고, 아무런 강요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사는 것을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즉 상대의 존엄을 지켜주면서 관심을 기울인다.

이것은 극히 논리적인 귀결일세. ‘타인의 관심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걸세.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한 존경의 구체적인 첫걸음일세.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연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혹은 국제적인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는 ‘타인의 관심사’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네.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 이라고.

만약 우리가 같은 마음과 같은 인생이라면

‘만약 내가 이 사람과 같은 마음이고 같은 인생을 산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라고.

용기도 존경도 전염이 된다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동참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일단은 자네가 횃불에 불을 붙이고 용기를, 존경을 보여야 하네.

당신이 변하지 않는 진짜 이유

즉,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아무런 관계도 없다.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나라고.

그러면 ‘지금의 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려고 할 떄, 그 사람이 과거는 어떤 톤으로 물들게 될까?

답은 하나. 즉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결론 내리게 되지.

‘지금’을 긍정하기 위해 불행했던 ‘과거’를 긍정한다.

‘이걸로 잘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과거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한다.

알겠나, 우리의 세계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 따위는 존재하지 않네. 열 명이 있으면, 그 열명 각기 다른 ‘지금’에 의해 채색된 각각의 해석이 있을 뿐이지.

그래. 과거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네.

당신이 ‘지금’이 과거를 결정한다

인간의 누구나 ‘나’라는 이야기의 편찬자이고, 그 과거는 ‘지금의 나’의 정통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유자재로 다시 쓸 수 있네.

인간은 과거에 일어난 방대한 사건 중에 지금의 ‘목적’에 합치되는 사건만을 골라서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으로 삼는다.

과거가 ‘지금’을 정하는 것이 아닐세. 자네의 ‘지금’이 과거를 정하는 것이지.

나쁜 그사람, 불쌍한 나

자네가 아무리 ‘나쁜 그 사람’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불쌍한 나’를 알아달라고 해도, 그리고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일이적인 위로는 될지언정 본질을 해결하지는 못하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라

우리가 의논해야 할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뿐일세. ‘나쁜 그 사람’ 같은 건 필요 없어. ‘불쌍한 나’도 필요 없고. 자네가 아무리 큰 소리로 떠들어봤자 나는 흘려듣겠지.

설령 내가 ‘나쁜 그 사람’이나 ‘불쌍한 자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거 참, 힘들었겠군” 혹은 “자넨 아무 잘못도 없어”라고 동조하면 잠깐 마음은 편안해지겠지. 카운슬링 받기를 잘했다, 이 사람에게 털어놓기를 잘했다, 하고 만족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래서 내일부터 매일이 어떻게 달라질까? 다시 상처받으면 위안받고 싶어지지 않을까? 결국 그것은 ‘의존’이 아닐까? … 그렇기에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걸세.

‘눈앞에 있는 자네’를 알면 그걸로 충분하고, 원론적으로 나는 ‘과거의 자네’가 어땠는지 알 필요가 없네.

건석적이고 과학적인, 인간에 대한 존경을 토대로 하는 인간 이해의 심리학. 그것이 아들러 심리학이라네.

칭찬하지도 야단치지도 말라

그래 아이들은 종종 이렇게 곤충을 죽이는 잔인함을 보이지. 그런데 정말로 아이는 잔인한 존재일까? 가령 프로이트가 말하는 ‘공격 욕동’같은 것이 숨어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아이들은 잔인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모르는’ 걸세. 생명의 가치도, 타인의 고통도.

철길 위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런 행위가 위험하다는 걸 모를 수도 있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는 아이는 그런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고. 그 외에 어떤 일이든 우리는 누구나 ‘모른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하네. ‘모른다’는 사실로 심하게 꾸짖다니, 이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나?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질책이 아니라 가르쳐 주는 것이라네. 감정적이 되어서도, 큰 소리를 내어서도 안 되고 이성의 말로서

‘벌’을 받으면 ‘죄’가 없어질까

그 모든 행위는 ‘소속감’, 즉 ‘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목적에서 비롯된다네.

그런데 왜 ‘늘’ 야단치는 걸까? 왜 ‘늘’ 화난 표정을 짓고, 늘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나?

아니지. 그거야말로 ‘야단친다’라는 방법이 교육상 전혀 효과가 없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네.

야단을 맞음으로써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려는 걸세.

폭력이란 이름의 커뮤니케이션

‘전달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입구에 불과해. 최종적인 목표는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네. 전하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어. 전달한 내용을 사람들이 이해하고 일정한 합의를 이룰 때 커뮤니케이션은 비로소 의미를 갖네.

화내는 것과 야단치는 것은 같은 의미다

누군가의 논의를 주고받는 중에 차츰 형세가 불리해 진다. 열세에 몰린다. 혹은 논의를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주장에 합리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할고 있었다. 그럴 때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성을 높이거나 책상을 치거나 눈물을 쥐어짜는 등 상대를 억누르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사람이 있네. 이러한 행동 또한 값싼 ‘폭력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네.

분노와 폭력이 수반된 커뮤니케이션에는 존경이란 없어. 오히려 경멸을 초래할 뿐이지. 질책이 본질적인 개선책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걸세. 이를 근거로 아들러는 “분노란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는 감정이다”라고 말했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바꿀 수 있는 것’을 직시하게나.

“신이여, 바라옵건데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내 인생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나

“인간이 미성년 상태에 있는 이유는 이성이 결여되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지시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결단도 용기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자기 책임하에 미성년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성을 발휘할 용기를 가져라.”

그러니까 교육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 사람, 그리고 조직의 운영을 맡고 있는 리더는 늘 ‘자립’을 목표로 내세워야 하네.

“그런 건 스스로 결정해도 돼”라고 가르쳐줄 것. 본인의 인생은, 매일의 행동은 전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줄 것. 그리고 결정하는데 필요한 자료 -예를 들면 지식과 경험-가 있으면 제공해줄 것. 그것이 바람직한 교육자의 자세라네.

아이들이 실패했을 때, 분명 자네에게도 책임을 묻겠지. 하지만 거기에 자네 인생을 거는 건 아니잖나. 진정한 의미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은 본인뿐이야. 그래서 ‘과제의 분리’라는 발상이 탄생한 것이고. 즉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하는. 결국 자네가 책임질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과제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되지.

칭찬이 경쟁을 낳는다

법을 어기면 엄한 벌을 받고, 법을 지키면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인정을 받는다. 즉 사람들은 리더의 인격과 사상, 신념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칭찬 받는 것’과 ‘야단맞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리더를 따르는 걸세.

먼저 공동체를 치료하라

시간을 다투는 마라톤과 달리 독재적 리더가 이끄는 공동체에서는 무엇을 ‘승리’로 판단할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네. 교실이라면 학업 이외의 부분도 판단의 근거가 되지만. 그리고 평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친구의 발목을 잡아끌고, 다른 사람의 공을 가로채고, 본인만 인정받으려고 리더에게 알랑거리는 사람들이 날뒤게 되지.

조직은 상벌도 경쟁도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네. 상벌을 이용해 사람을 조종하려는 교육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주게나.

교육자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행동을 일으킨 ‘개인’이 아니라 문제행동이 일어난 ‘공동체’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점이네. 그리고 개인보다는 공동체 자체를 치료해야 한다네.

인생은 ‘불완전’하게 시작된다

인간에게 고립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네. 고립된 인간은 몸의 안전뿐 아니라 마음의 안전까지도 위협받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니까. 때문에 우리는 항상 타인과 강고한 ‘유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거라네.

모든 인간에게는 공동체 감각이 내재되어 있고,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지.

인간은 그 신체적 나약함 때문에 공동체를 만들고 협력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인간은 늘 다른 사람과 ‘관계’맺기를 간절히 원한다. 모든 인간의 마음에는 공동체 감각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는 용기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 욕구를 ‘소속감’이라고 생각하네. 즉 고립되고 싶지 않다. ‘여기에 있어도 좋다’고 실감하기를 바라지.

칭찬받는 것을 통해서만 행복을 실감하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더 칭찬받기’를 바라네 그 사람은 ‘의존’의 위치에 놓인 채로 영원히 갈구하는 삶을,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되겠지.

‘나’의 가치를 남들이 정하는 것. 그것은 의존일세. 반면 ‘나’의 가치를 내가 결정하는 것. 이것은 ‘자립’이지.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는지 답은 명확해지겠지. 자네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네.

그대로 있으면 되네.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도, 특별히 뛰어나지 않아도 자네가 있을 곳은 거기에 있어. 평범한 자신을, ‘그 외 다수’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그리고 ‘평범한 것’은 전혀 부끄러울게 없는 하나의 개성이라네.

‘남과 다른 것’에 가치를 두지 말고 ‘나는 나’라는 것에 가치를 두게나. 그것이 진정한 개성이라네. ‘나는 나’ 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그 ‘차이’에만 주목하려는 것은, 타인을 속이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삶의 방식이나 다름없네.

자네의 개성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니까.

그 문제행동은 ‘당신’을 향하고 있다

그 학생이 ‘자네에게 보이는 얼굴’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네’를 향해서 그 문제행동을 계속하는 거라네. 부모의 문제가 아닐세. 오로지 자네와 학생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지.

왜 인간은 ‘구원자’가 되려고 하는가

‘행복해질 용기’가 없지. 그리고 자네가 교사의 길을 택한 것은 아이들을 구하고 싶어서가 아닐세. 아이들은 구함으로써 자네 스스로를 구하고 싶었던 거지.

타인을 구함으로써 자신을 구하고자 하네. 스스로를 일종의 구원자로 포장해서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려고 하지. 이는 열등감을 떨쳐내지 못한 사람이 종종 빠지는 열등 콤플렉스의 한 형태일세. 일반적으로 ‘메시아 콤플렉스’라고 하네. 메시아, 즉 타인의 구원자가 되려고 하는 심적 도착이라네.

불행한 사람이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면, 그것은 자기만족에 그치고 누구 한 사람 행복해지질 않아.

모든 기쁨도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교우의 관계를 통해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을 배운다”

왜 인생의 과제에 ‘일’이 포함되는가

우리 인간은 심심해서 무리를 지어 산 것이 아니야. 인간은 무리 지어 살면서 ‘분업’이라는 획기적인 작업 방식을 손에 넣었네.

우리가 일하고 협력하고 공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과 ‘분업’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믿어야만 하네.

그래. 인간에게 ‘믿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어. 협력하지 않는다, 분업하지 않는다, 그런건 있을 수 없지. 그 사람이 좋아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좋든 싫든 협력해야 하는 관계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 한 사람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점일세. 즉 순수한 이기심의 조합이 분업을 성립시키지. 이기심을 추구한 결과로 일정한 경제 질서가 생겨. 이것이 아담 스미스가 생각한 분업일세.

“인간의 가치는 공동체에서 할당된 분업의 역할을 어떻게 완수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가치는 ‘어떤 일에 종사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닐세. 그 일에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지.

하지만 분업이 시작되고 나서 인물을 평가하거나 어떤 관계가 바람직한지를 따질 때에는 능력만으로 판단하지 않네. 오히려 ‘이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은가’가 중요해지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 돕기가 힘들어지니까.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은가’, ‘이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와주고 싶은가’를 경정하는 최대 요인은 그 사람의 성실함이자 일에 임하는 태도라네.

정의로움에 취한 사람은 자기 이외의 가치관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끝내는 ‘정의란 이름으로 개입’에 나서네. 그러한 개입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유를 빼앗긴 회색 빛깔의 획일적인 사회겠지. 자네가 어떤 일을 하든, 다름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마음에 둘 필요가 없는 거라네.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즉 존경이란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보는 것’ 이며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라고.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타인을 존경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있다네.

예를 들어 주변 모든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의 이런 면이 싫어”. “저 사람의 이런 점을 참을 수 없어”라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네. 그러고 나서 한탄하지. “아아,나는 운도 없지. 참 인목도 없어.” 그 사람이 정말 인복이 없는 것일까? 아닐세. 절대 아니지. 친구 복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친구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거라네. 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거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라고

그러면 어떤 상대라도 “존경”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다네. 그것은 환경이나 대상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네의 결심에 달려 있기 때문이지.

그래. 모든 것은 믿을 수 있는 용기로 환원된다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가면을 벗으면 관계가 깨지니까요! 선생님은 ‘미움 받을 용기’인지 뭔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요, 일부러 미움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쓸데없이 부딪치지 않으려고, 관계를 깨트리지 않으려고 우리는 가면을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는 돌아가지 않아요.

먼저 ‘믿는다’는 것

믿는다는 것은 뭐든지 무작정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네. 그 사람의 사상이나 신조에 대해, 혹은 그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해 한번쯤 의심해보는 것. 일단 믿는 것을 보류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것. 여기까지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중요한 작업일세. 그런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설령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까지 포함해서 그 사람을 그 자체로 믿는 거라네.

진정한 신뢰란 어디까지나 능동적인 작용이라네.

사람과 사람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자신을 좋아해서’ 자기만 바라보는 게 아닐세. 실상은 그와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는 통에 자기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거라네.

예를 들어 싸우고 헤어진 연인을 생각할 때, 한동안은 전 연인의 미운 점만 떠오를 걸세. 그건 자네가 ‘헤어지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즉 본인의 결정에 미련이 남았다는 증거지. 스스로에게 “헤어지길 잘했다”라고 타이르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으니까. 그런 단계라고 생각하게. 그런데 만약 전 연인의 좋은 면이 떠올랐다면, 그건 더 이상 일부러 싫어할 필요가 없어진, 그 사람에 대한 마음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하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일을 통해 인정받는 것은 자네의 ‘기능’이지 ‘자네’가 아니야. 더 뛰어난 ‘기능’을 가진 자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 쪽으로 몰리겠지. 그것이 시장원리, 경쟁원리라는 걸세. 그 결과, 자네는 언제까지나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소속감도 얻지 못하겠지.

타인을 ‘신뢰’히고 교우의 관계를 맺는 것. 그것밖에는 없네. 우리는 일에 헌신하는 것만으로는 행복을 얻지 못하네.

당연히 상대방의 생각 전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타인을 믿는 것. 그것이 신뢰라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인생의 시련이다

먼저 곁에 있는 사람을 신뢰하게. 그 사람과 친구가 되게.

전쟁을 없애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전쟁에서 벗어나야 하네.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 그것뿐일세. 인간에게 시련이나 결단의 순간은 입시나 취직, 결혼 같은 삶의 상징적인 이벤트가 있을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가 시련이고, ‘지금,여기’라는 일상에 큰 결단이 필요하다네. 그 시련을 피해가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어.

천하를 논하기 전에 내 이웃에게 마음을 쓴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의 인간관계에 신경을 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라네.

주어야 받을 수 있다

타인을 무조건 신뢰하고 존경하는 것. 이것은 ‘주는’ 행위라네.

지금 자네는 아무것도 주려 하지 않고 ‘받는’것만 바라고 있어. 마치 구걸하는 사람처럼. 그건 금전적으로 가난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해서 그런거라네.

우리는 마음을 넉넉히 가지고 그 모와놓은 것을 타인에게 줘야 한다네. 타인이 존경해주기를 기다리지말고, 내가 먼저 존경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되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네.

주어야 받을 수 있다. ‘받는’ 것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마음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 .. 이것은 ‘일’과 ‘교우’에 이어, 인간관계를 생각하는 데 아주 중요한 또하나의 관점이라네.

사랑은 ‘빠지는’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사랑을 앞에 두고 피도 안 통하는 일반론을 시종 떠들고 있어. 그 결과,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의 대부분은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지.

이를테면, 너무 숭고하게 여긴 나머지 상대를 신격화하는 사랑. 아니면 반대로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동물적인 사랑. 심지어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남기려고 하는 생물학적 사랑. 대략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은 이 중 하나를 중심으로 한 것이지.

관념적인 ‘신의 사랑’이나 본능적인 ‘동물의 사랑’에 대해서만 떠들고 누구 하나 ‘인간의 사랑’을 말하려 하지 않으니까.

다시말해, 인간에게 사랑이란 운명에 의해 정해지는 것도 자연 발생적인 것도 아니네.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것이 아니란 말이지.

쌓아올리는 것일세. ‘빠지기’만 하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네. 그런 건 인생의 과제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없어. ‘의지력’을 발판 삼아 아무것도 없는 곳에 쌓아올려야 하기 때문에 사랑의 과제가 어렵고 힘든 것이라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원칙을 모른채 사랑을 말하려 한다네. 그러다 보니 인간이 실제로 관계를 맺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운명’이니 동물적인 ‘본능’이니 하는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걸세.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임에도 의지나 노력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이라 여기고 직시하지 않네. 쉽게말해 ‘사랑하는 것’을 하려고 않지.

우리는 신도 동물도 아닌 ‘인간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네.

‘사랑받는 기술’에서 ‘사랑하는 기술’로

아들러가 일관되게 설파한 것은 능동적인 사랑의 기술, 즉 ‘타인을 사랑하는 기술’이었네.

확실히 타인한테 사랑받기는 어렵지. 하지만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 몇배나 어려운 과제라네.

사랑이란 ‘두 사람이 달성하는 과제’다

즉 사랑이란 ‘두 사람이 달성하는 과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은 배우지 않는다.

인생의 ‘주어’를 바꾸라

비록 눈앞에서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진심’인지는 원칙적으로 알 수는 없어. 그래서 나온 것이 공헌감이라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라는 주관적인 느낌이 든다면, 즉 공헌감이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더 이상 근거를 찾을 필요가 없다. 공헌감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자. 공헌감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자. 우리는 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네. 우리는 교우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지. 그렇다면 행복은 거기에 있는 거라네.

오로지 믿고 오로지 주는 이타적 태도를 통해서만 교우의 관계가 생긴다네.

즉 우리는 ‘나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분업의 관계를 맺고, ‘너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교우의 관계를 맺는다네.

나눌 수 없는 ‘우리의 행복’을 쌓아올리는 것. 그것이 사랑이네.

‘나’와 ‘너’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우리’라네. 인생의 모든 선택에 있어서 이 순서는 꼭 지켜진다네. ‘나’의 행복을 우선하지 않고, ‘너’의 행복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두 사람이 달성하는 과제’란 그런 걸세

우리는 태어나서 줄곧 ‘나’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나’의 귀로 소리를 듣고, ‘나’의 행복을 바라며 인생을 걸어가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 ‘나’였던 인생의 주어는 ‘우리’로 변하네. 이기심도 아니고 이타심도 아닌 전혀 새로운 지침 아래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

자립이란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

‘나약함’이란 인간관계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무기가 되네.

자립이란 ‘자기중심성으로부터의 탈피’라네

우리는 완미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서 ‘세계의 중심’으로 살아온 것을 그만두어야 하네. ‘나’로부터 탈피해야 하네. 응석부리던 어린 시절의 생활양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단 말일세.

사랑은 ‘나’였던 인생의 주어를 ‘우리’로 바꿔주지. 우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나’로부터 해방되어 자립을 이루고,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네.

사랑을 알고 나서 인생의 주어가 ‘우리’로 변하는 것. 이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일세. 단 두 사람으로 시작된 ‘우리’는 머지않아 공동체 전체로 그리고 인류 전체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가겠지.

그 사랑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자립이란 경제상의 문제도, 취업상의 문제도 아닐세. 인생에 대한 태도, 생활양식의 문제라네. .. 자네도 누군가를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때가 바로 어린 시절의 생활양식과 결별하고 진정한 자립을 이룰 때라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어른이 되니까.

그래 사랑은 진정한 자립이네.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서 사랑이 힘든 거라네.

왜 사랑받기만을 원하는가

먼저 나서서 사랑하는 수밖에 없어. 사랑하는 것. 사랑받기를 기다리지 말고, 운명을 기다리지 말고, 나의 의사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네.

인간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행동에 나서도, 이쪽이 사랑을 하면 사랑을 받는 상대의 마음에도 사랑이 싹트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이다”라고. 예를 들면 상대의 호의를 무심코 눈치챈 순간, 그 사람이 신경 쓰이고 차츰 좋아지게 되네. 흔한 일 아닌가?

이는 비록 이쪽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사랑받는다는 보증’이 확보된 상태라네.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 “내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을거야”라는 보장 같은 걸 느끼네. 이 보장을 바탕으로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지.

한편 프론이 말하는 ‘사랑한다는 것’에는 이러한 보장이 전혀 없네. 상대가 이쪽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그냥 사랑하는 것이라네. 사랑에 몸을 던지는 거지.

자네는 아직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존경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지. 그래서 사랑의 관계에서 ‘성처받을게 빤해’, ‘틀림없이 비참한 기분을 느낄 거야’라고 단정하는 거라네. 그런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면서.

과제를 분리하게. 사랑하는 것은 자네의 과제야. 상대가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는 타인의 과제라네. 자네가 제어할 수 없지. 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제를 분리하고, 자신이 먼저 사랑하는 것. 그것뿐일세.

결국 자네는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해줄까?’ 하는 것만 보고 있네. 상대를 보는 듯하지만 나만 보고 있는 거지. 그런 태도로 기다리는 자네를 누가 사랑해주겠나?… 만약 그런 자기중심적 욕구에 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부모뿐이겠지. 부모의 사랑, 특히 어머니에 사랑에는 조건이 없으니까.

운명의 상대란 없다

‘사랑할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운명적인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요! 연애에 있어 최대의 난국은 ‘만남’이니까요!

왜 많은 사람이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일까? 왜 결혼 상대에게 낭만적인 환상을 품는 거지? 그 이유에 대해 아들러는 “모든 후보자를 배제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네.

그 의미 없는 ‘만남’을 특별한 ‘관계’로 발전시키려면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네. 말을 걸든 편지를 보내든.

그런데 ‘관계’를 맺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운명의 사람’이라는 환상에 매달린다네… 지금 자네가 그러는 것처럼. 눈 앞에 사랑할 누군가가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 사람은 안돼”라고 거부하고 “더 이상적이고 더 완벽하고 더 운명적인 상대가 있을 거야”라고 시선을 떨구지. 그 이상의 관계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고 모든 후보자를 나의 손으로 제외하는 거라네.

그렇게 지나치다 싶을, 있지도 않은 이상형을 들먹이면서 살아 있는 인간과 관계 맺는 걸 회피하네. 그것이 “만날 사람이 없다”라고 한탄하는 사람의 정체라고 생각하게.

사랑이란 ‘결단’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결심이고 결단이고 약속이다.” 만남의 형태는 아무래도 좋네. 진정한 사랑을 맺기로 결심하고, ‘두 사람이 달성하는 과제’와 마주 할 수 있다면 어떤 상대와도 사랑할 수 있어.

운명이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우리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네. 운명의 주인이어야 하지.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네.

자네는 지금 인생이라는 무도회장의 벽 앞에 서서, 그저 춤추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네. “이런 나와 춤을 출 사람이 있을 리 없어”라고 단정 짓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운명의 상대’가 손을 내밀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더 이상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보호하면서. …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겠지.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온 힘을 다해 춤을 추게 운명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네.

생활양식을 다시 선택하라

연애의 과실만을 탐하고, 꽃에 물 주는 것도 잊고 씨도 뿌리지 않았지. 그것이야말로 찰나적인, 향락적인 사랑이라네.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네. ‘사랑한다’는 것을 몰랐던 걸세. 만약 알았더라면 자네는 그 여성과 운명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겠지.

에리히 프롬은 말했네. “사랑이란 신념의 행위이며, 신념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도 없다”라고… 아들러라면 이 ‘신념’을 ‘용기’라고 바꿔 말했겠지.

자네는 용기가 없었네. 그래서 사랑에 주저한 것이고. 사랑할 용기가 없어서 어린 시절에 형성한 사랑받는 생활양식에 머물러 있던 거야. 그뿐일세.

사랑밖에 없네. ‘편하고 싶다’, ‘편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잠깐의 쾌락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은 얻을 수 없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때만 자기중심성에서 해방될 수 있지. 오직 타인을 사랑할 때만 자립할 수 있다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할 때만 공동체 감각에 도달하네.

“사랑하고 자립하고 인생을 선택하라”

단순하게 산다는 것

세계는 단순하고 인생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계속 단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가 시련이기 때문이지.

시간은 흐르네.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새로운 관계가 탄생하고, 새로운 고민이 탄생하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친구들에게

기억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유한한 이상 모든 인간관계는 ‘이별’을 전제로 성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허무주의에 입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서 만나는 거라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겠지. 모든 만남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오직 ‘최선의 이별’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뿐이네.

언젠가 헤어지는 날이 왔을 때 “이 사람과 만나서 함께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라고 납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걸세.

사랑을 시작하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최선의 이별’을 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게. 기한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답은 남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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