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코베인 명언 |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175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커트 코베인 명언 –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you.experience-porthcawl.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you.experience-porthcawl.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It is GOOD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71,681회 및 좋아요 721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한 몫 했네요. 커트 코베인이 남긴 명언(어록) 입니다!! If it’s illegal to rock and roll, throw my ass in jail!

커트 코베인 명언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 커트 코베인 명언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모두들 고맙다. 너무 불안정하고 침울한 나 자신에게 열정이란건 더이상 없는지도 모르겠다.
기억해주기 바란다. 천천히 사라져 버리기 보다는 한번에 타버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록음악 #저항정신 #락스타

커트 코베인 명언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명언음악] 굵고 짧게 커트 코베인 어록 Smells Like Teen Spirit

[명언음악] 굵고 짧게 커트 코베인 어록 Smells Like Teen Spirit. 굵고 짧게 살다 가는게 좋을까? 가늘고 길게 살다가는게 좋을까?

+ 더 읽기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12/2021

View: 9367

커트 코베인의 짧은 명언 23가지

커트 코베인의 짧은 명언 23가지 · 1.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번에 불타는 것이 낫다 · 2. 나는 살면서 이렇다 할 재미있는 경험을 한 적이 …

+ 여기에 보기

Source: lifeij.tistory.com

Date Published: 4/25/2022

View: 8911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는 명언 및 유서를 남기고 …

특히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 적힌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구절은 유명하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 시애틀 공원에서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anisnack.tistory.com

Date Published: 2/13/2021

View: 7461

커트 코베인

Kurt Cobain 커트 코베인. 국적 – 미국 , 직업 – 가수. Best Saying 인기명언. We have no right to express an opinion until we know all of the ans.

+ 여기에 더 보기

Source: www.monfac.com

Date Published: 7/13/2021

View: 3105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커트 코베인 명언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커트 코베인 명언

  • Author: It is GOOD
  • Views: 조회수 71,681회
  • Likes: 좋아요 721개
  • Date Published: 2019. 1.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P1RQv53rgU

커트 코베인 명언 읽어요!

2015년 마지막 명언은 어떤걸 골라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요 ㅎㅎㅎ

그리고 그 고민중에 하나는 너무 많은 명언들을 소개해 드려서 이제 명언을 찾기 힘든것도

한 몫 했네요.

이번 마지막 명언은 미국의 대표적인 록 뮤지션인

커트 코베인이 남긴 명언(어록) 입니다!!

그럼 읽어봐요~

커트코베인 (Kurt Cobain)

직업: 가수

출생 – 사망 : 미국 – 1967년 2월 20일 ~ 1994년 4월 5일

데뷔 1989년 너바나 1집 앨범 (Bleach)

A friend is nothing but a known enemy

친구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원수에 불과하다

(친구명언)

If you ever need anything, please don;t hesitate to ask someone else first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먼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인내명언)

If it’s illegal to rock and roll, throw my ass in jail!

만약 로큰롤이 불법이라면, 날 감방에 쳐 넣어요

(음악명언)

The worst crime is faking it

가장 큰 죄악은 허세 부리는 것이다

(겸손명언)

The duty of youth is to challenge corruption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이다

(인생명언)

Wanting to be someone else is a waste of the person you are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인내명언)

I’m so happy because today I found my friends – they’re in my head

나는 오늘 친구들을 찾아서 너무 행복하다. 그들은 내 머리속에 있다

(친구명언)

I want to do something different, really different, and if it alienates people that’s too bad

무언가 다른, 정말로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그래서 사람들로부터멀어져도 할 수 없다

(일명언)

It i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서서히 사라지기보다 한 번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

(죽음명언)

I had a really good childhood up until i was nine, then a classic case of divorce really affected me

나는 아홉 살 때까지 정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 후 이혼이라는 전형적인 역경에 큰 영향을 받았다

(가족명언)

I’ve always had a problem with the average macho men – they’ve always been a threat to me

나는 늘 병범한 사나이들한테서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들은 늘 나에게 위협적이었다

(남녀명언)

I’m too busy acting like I’m not naive. I’ve seen it all, i was here first

순진하지 않은척 하느라 바빳다. 다 보고 경험했다. 그것도 너보다 먼저

(지혜명언)

We have no right to express an opinion until we know all of the answers

우리가 모든 해답을 알기 전까지 어떤 의견도 표현할 권리가 없다

(지식명언)

Though the sun is gone, i have a light

비록 태양이 사라져도, 나는 한 줄기 빛을 얻으리라

(희망명언)

Drugs are a waste of time. They destroy your memory and your self-respect and everything that goes

along with with your self esteem

마약은 시간 낭비다. 마약은 우리의 기억과 자존감, 그리고 자존감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괴한다

(실패명언)

We’re so trendy we can’t even escape ourselves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유행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탈피할 수 없다

(도전명언)

I was looking for something a lot heavier, yet melodic at the same time. Something different from heavy metal, a different attitude

나는 훨씬 더 무겁지만 동신에 선율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헤비메탈과는 다른, 다른태도를

(음악명언)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be loved for who I’m not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받는 것이 낫다

(자신감명언)

If you die you’re completely happy and your soul somewhere lives on. I’m not afraid of dying.

To tal peace after death, becoming someone else is the best hope I’ve got

만약 죽는다면, 완저한 행복을 찾고 영혼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되겠지.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죽음 이후의 완전한 평화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내가 항상 꿈꾸던 것이니까

(죽음명언)

Punk is musical freedom. It’s saying, doing and playing what you want. In Webster’s terms, ‘nirvana’ means freedom

from pain, suffering and the external world, and that’s pretty close to my definition of Punk Rock

펑크는 음악적인 자유다. 내가 원하는걸 말하고, 행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Nirvana(열반)’는

고통, 괴로움, 외부 세계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펑크록의 듯과 아주 가깝다

(음악명언)

Rather be dead than cool

열정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다

(도전명언)

[명언음악] 굵고 짧게 커트 코베인 어록 Smells Like Teen Spirit

[명언음악] 굵고 짧게 커트 코베인 어록 Smells Like Teen Spirit

굵고 짧게 살다 가는게 좋을까? 가늘고 길게 살다가는게 좋을까? 아니면 남들만큼 정도 사는게 좋을까?

이건 우리가 택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굵고 짧은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고 사는 게 정답 아닐까?

‘강해서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게 아니라 ‘살아 남아서 강한 사람’으로 불리웠다는 어떤 구절이 생각난다.

그런의미에서 나 연우의 결론은 ‘진인사대천명'(자기 도리를 다하며 하늘이 정해진 바에 따른다)이다.

다만 구차하게 억지로 연명하는 태도는 지양할 일이다.

자신이 하고픈 것을 다하고 더이상 남은 정열이 없을 때 불꽃처럼 사라지는 것도 멋진 일이다.

————–

[음악동영상 Nirvana(Kurt Cobain) – Smells Like Teen Spirit]

—————-

01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사랑받을 바에는 본연의 내 모습 때문에 미움받는 게 낫다

02

그 누구도 처녀성을 가진 채 죽지 않는다. 인생이 언제나 우릴 엿먹이니까

03

서서히 사라질 바에는 한꺼번에 불타버리는게 낫다

—그의 유서에 써 있는 문장으로 유명하지만, 본래는 닐 영의 My My, Hey Hey라는 곡의 가사 구절 중 하나이다. 닐 영은 상심한 나머지 코베인의 죽음 이후 한동안 이 곡을 공연에서 부르지 않았다.

04

너와 다른 누군가가 되고싶어한다는 건 자신의 본모습 허비하는 것이다

05

친구란 누구나 이미 알고있는 원수에 불과하다

06

최악의 범죄는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07

만약 나의 눈이 나의 영혼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나의 미소를 본 사람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08

나에게 비극을 줘서 고맙군. 내가 예술을 할 때 필요한 거거든

09

사람들은 내가 남들과 다르고 튄다는 이유로 비웃는다. 나는 그들 모두가 개성없이 똑같은 놈들이라는 이유로 비웃는다.

10

11

나의 병은 러시안 룰렛과도 같다. 그 발작이 언제 들이닥칠지 전혀 알 수 없다. 나는 집에서 자연용천수를 마시면서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이, 어떠한 괴로움도 없이, 매우 편안한 분위기에서 쉬고 있으면서도 쾅! 별안간 장총에 맞은 것처럼 극심한 위통이 엄습했다.” – 커트 코베인, 일기장에서

————-

[커트 코베인 Kurt Cobain]

-본명 커트 도날드 코베인(Kurt Donald Cobain), 미국 출생 1967년 2월 20일 워싱턴 주 애버딘

사망 1994년 4월 5일 (향년 27세) 워싱턴 주 시애틀 소속 너바나 포지션 보컬, 기타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열풍을 주도한 인물. 1990년대 대중음악을 상징하는 락스타로 대중 음악계 통틀어서 커트 코베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이콘도 드물다. 롤링 스톤지 등 권위 있는 평론가들이 꼽는 세기의 명곡에서 상위권에 항상 과거 1950년대 ~1970년대 명곡들이 주류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는 80년대 이후 곡들이 20위 권안에 전멸할 때 조차 항상 10위 권 안에 있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Nevermind’ 앨범 역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을 뽑는 각종 명반 리스트에서 매번 10위권 내지 20위권 안에 든다.

-많은 음악 칼럼니스트, 언론들은 커트 코베인을 마지막 록 아이콘이라고 말한다. 너바나 이후로 미국이나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록 장르의 뮤지션이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경우는 없다.

-아내는 록 가수이자 배우인 코트니 러브로 커트 코베인과 결혼하기 전부터 막장 중의 막장이었는데 그가 죽은 지금도 마약과 각종 사고로 뉴스에 오른다. 코트니 러브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펑크 록 그룹 홀의 리더였고 가슴을 드러낸 채 라이브를 하기도 하는 등 성욕을 도발하는 이미지의 악동이다. 딸은 프란시스 코베인으로, 시각 예술가 겸 모델이다.

-생애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스스로도 ‘중산층인 척 하는 화이트 트래시’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코베인의 전기를 집필한 작가는 전기의 후기에서 그의 워싱턴 주 애버딘 생가를 취재한 뒤 ‘비교적 가난하다고 알려진 엘비스 프레슬리의 집도 커트 코베인의 집에 비하니 대궐같다’는 표현을 했을 정도였다.[4] 커트가 태어났을 때 그의 어머니 웬디는 19살, 아버지는 21살에 불과했고 부모님은 커트가 9살 되던 해에 잦은 마찰과 다툼으로 이혼하게 된다. 부모님의 이혼 후 코베인은 아버지를 증오하였고 이로 인해 평생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그의 우울증은 선천적인 영향과 후천적인 영향 둘 다에 기인한다고 보는 게 맞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적인 건강 문제는 그의 양가에 두루 존재하였으며 그의 친척들 중 몇 명은 자살을 기도했거나 혹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 자살하였다. 그의 외증조부는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자해를 하다가 병원에서 죽었으며 다른 두 명의 삼촌은 권총으로 자살했다. 또한 그와 함께 밴드를 꾸려온 멤버들과 올림피아 그리고 시애틀의 록 씬 대부분의 펑크 로커들은 커트처럼 가난했고 이혼으로 얼룩진 인생을 헤쳐나왔다. 크리스 노보셀릭 역시도 부모의 이혼으로 얼룩진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데이브 그롤은 노숙자 출신이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은 사실 그 바닥에서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인터뷰 중 기자가 커트 코베인에게 ‘스스로의 인생이 슬프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커트는 “자신은 그저 미국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산물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던 적도 있다.

-그의 사진집 겸 기록물인 ‘Cobain unseen’에서는 어렸을 때 동네친구의 형이 산속에서 목을 매 자살한 시체를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들이 현장에 올 때까지 몇 십분 동안이나 그 기괴한 현장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그의 성격, 불우한 가정환경, 이러한 충격적 장면을 본 기억의 잔재 등이 그의 곡이나 특히 가사에 많이 투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커트 코베인에게 자살과 우울증은 그리 먼 대상이 아니였던 것이다. 생전 그는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였는지 혹은 특별히 의도했는지 몰라도 인터뷰에서 본인의 성장 이야기를 말할 때 사실과 허구를 섞어서 모호하게 표현하곤 했으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 중에는 사실이 아닌 것들도 일부 있다고 한다.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아서 가출하기도 했으며 가출한 동안에는 친척과 친구 집을 돌아다니며 살기도 하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 시절부터 그는 마리화나, 술, 담배 등에 빠져서 심각한 중독 수준에 이르렀고, 동시에 예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가 차차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처음 배운 악기는 드럼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1987년, 커트 코베인은 자신을 기타리스트 겸 보컬로해서 베이시스트 크리스 노보셀릭과 함께 미국 워싱턴 주 애버딘에서 너바나를 결성했고 1989년 데뷔 앨범 Bleach를 발매한다. 인디 시절, 커트 코베인은 동료 뮤지션들 사이에서 최소 하루 9시간 이상은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는 정열적인 음악인으로 유명했다. 또한 당시 커트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성대를 보호하기 위해서 공연 중에는 금주, 금연을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금연을 요구했다고 한다.

Bleach는 예상과는 다르게 차트상에도 오르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너바나는 많은 라이브 공연들과 미국 투어에 힘입어 언더 씬에서 확고한 팬층을 형성하게 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이미 시애틀을 넘어선 언더그라운드 록의 기대주가 되었고, 그 잠재력을 밴드 멤버나 외부의 많은 레이블들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던 중 게펜 레코드의 산하 레코드인 DGC(David Geffen Company)와 1991년 초에 계약을 맺고 소닉 유스의 멤버 킴 고든의 추천을 받아 LA에 있는 사운드 시티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부치 빅과 메이저 데뷔 앨범을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Nirvana의 정체성을 어디까지나 펑크 록 밴드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커트 코베인은 밴드의 첫 메이저 앨범인 Nevermind 레코딩 내내 음반이 너무 상업적으로 프로듀싱 되고 있다며 불만을 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에 지쳐 사회적 성공을 원했던 커트는 앨범이 발매되자 매니저 앞에서 왜 MTV에 앨범의 첫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의 뮤직비디오가 자주 나오지 않냐고 불평했을 정도로 밴드의 유명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조지프 히스의 ‘혁명을 위하여’는 이러한 코베인의 자기모순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의 히트 후 대중들과 평론가들은 Nevermind에 대해서 마치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창시한 앨범이라는 식으로 설레발을 떨기 시작했고 커트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운드로 밴드가 성공한 것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밴드가 만이 히트한 원 히트 넘버 밴드로만 기억될 것이란 생각에 우울해 하며 점점 음악에 흥미를 잃어갔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동성애 인권 옹호주의자이지만 이성애자인 커트를 그의 중학교 시절 친한 친구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양성애자로 몰아가는가 하면, 커트가 낙태를 찬성한다는 발언을 하자 부부가 심각한 마약 중독자라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굉장히 높은데도 낙태를 하지 않고 프렌시스 빈 코베인을 낳았다는 이유 등으로 까댔다. 커트 코베인의 지인들도 커트가 밴드의 성공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자 “무명 시절에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예술적인 재능이 없는 장사꾼이다”라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까던 사람이 성공하니 엘비스처럼 행동한다며 그를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불우한 주변 환경은 그로 하여금 약물에 대한 탐닉을 일으켰다. 그러나 커트 코베인은 록씬에서 유명한 헤로인 중독자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굉장히 꺼렸고 그를 약물중독자라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몹시 싫어하였다. 때문에 인터뷰에서 매번 자신이 마약 중독자가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약문제는 그를 죽음까지 몰아갔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의 자살은 헤로인 중독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한 커트는 죽기 직전 아내인 코트니가 자신과 결혼한 후에도 전남친인 빌리 코건과 밀회를 즐기는 등 여러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빌리 코건은 본래 코트니 러브와 약혼했으나 코건이 스매싱 펌킨스 투어를 도는 사이 러브가 코베인과 바람을 피웠고 코베인의 아이를 갖게 되자 코건과의 약혼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뒤 코베인과 결혼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코건은 우울증에 걸리고 스매싱 펌킨스 활동을 중지했으며 심지어는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한다. 코건을 저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코베인과 결혼하더니 다시 코베인을 배신하고 코건과 바람을 피운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선천적이라 할 수 있는 조울증과 더불어 복통과 척추측만증을 비롯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다. 죽기 직전의 인터뷰에서 커트가 위장 수술을 받았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수술을 받은 뒤, 커트는 주위 사람들이 그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해했다고 한다. 코트니가 위장병으로 괴로워하는 커트에게 진통제로 헤로인을 사용해보라고 권유했다는 것은 코트니 타살설의 증거 중 하나로 거론된다.

-새로 나온 음반 In Utero가 생각보다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밴드 해체의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1994년 4월 5일, 커트 코베인은 약물중독 요양소에서 탈출한 후, 헤로인을 치사량으로 맞은 뒤 Auto-5 산탄총으로 머리를 쏴서 자살하는 충격적 최후를 맞았다. 그가 자살한 방에는 Automatic for the People라는 앨범이 틀어져 있었다고 한다. 인기와 명예의 정점에서 27살의 젊은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은 미국 락씬을 넘어 전 세계 음악계에 엄청난 충격과 비통함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에서는 그의 죽음을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해서 조심스럽게 방송했으나 몇명의 청소년들이 자살했고, 프랑스에서도 자살한 팬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락카페에서 그의 죽음을 전해들은 팬들이 울면서 너바나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의 자살은 음모론자들이 물어뜯기 좋아하는 사건이지만 자살로 판명되었다.

-기념지(Memorial)

커트 코베인을 기리던 자원자들이 관리하던 기념공원(Memorial Park)이 그가 태어난 도시 Aberdeen시에 의해 2015년 정식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첫번째 공식 기념공원이 탄생했다. 이 기념지의 이름은 Kurt Cobain Memorial Park라 불린다. 이 공원은 작다. 멈추지 않고 걷는다면 가로지르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말그대로 작은 공원이므로 실망을 할 수도 있다. 너무 초라하고 잘 관리된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 실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커트의 수난많던 어린 시절 집에서 나온 그가 노숙을 하며 밤을 지새기도 했던 장소에 직접 앉아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있다고 할수있을것 같다. 사실, 이 Bridge 밑에서 커트가 노숙을 했는가는 의문이 남긴한다. 커트의 일생에 대한 책인 Charles Ross의 책 Heavier than Heaven에서는 커트가 가출을 했을시 함께했던 친구를 인터뷰했는데 그가 말하길 사실 다리밑에서 노숙을 한건 사실이 아니고 24시 열려있는 병원의 대기실같은 곳에서 밤을 지새웠다라고 한다.

돌판에 적혀있는 가장 첫 문장 :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be loved for who I am not(내 본모습으로 미움받을 지언정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지는 않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말은 커트 코베인이 최초로 만든 말은 아니다. 이 말은 프랑스의 소설가 André Gide(앙드레 지드)의 Autumn Leaves에 적혀있는 같은 의미의 말을 약간 다르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돌아봤을때, 그의 죽음과 자기모순과 그로 인해 괴로워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아닌 그가 이 말을 했다는 것에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기타는 왼손잡이용을 쓰지만 일상생활은 오른손으로 했다.

-무대에서 보이는 분노와 폭발적 매너와는 달리, 실제 성격은 말이 없으며 극심한 우울증이 있는 것을 빼고는 주위사람에게 친절한 성품이었다고 한다.

-많은 뮤지션들이 그렇지만, 명확한 가사를 기피했다. 그럼에도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에 관한 자전적인 곡 “Sliver”는 꽤나 정확한 가사를 전달하고 있다. 이 곡에서 알 수 없는 유일한 것은 제목인데, 커트는 자신이 제목을 ‘Sliver’라고 부르면 다른 사람들도 역시 ‘Sliver’라고 부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타이틀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공연 중에 드럼셋 등에 몸을 던지거나 기타를 박살내는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가 쓴 기타 대부분은 온전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라이브 중 박살내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니… 이 퍼포먼스는 BLEACH 시절 드러머와의 불화 때문에 시작되었다. 당시 드러머였던 Chad Channing은 자신이 너무 작곡에 기여를 못한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데 커트와 크리스는 그의 드러밍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라이브 공연중에 실수를 왕창 하거나 아예 곡을 연주를 못하는 상황이 나오면 둘이서 빡쳐서 무대를 개박살냈던 것이다. 드러머가 데이브로 바뀐 이후에도 이 관행은 계속되는데 이는 지병인 만성 위염과 장염의 고통 때문이었다고 한다.

-“Smells Like Teen Spirit” 곡이 최대 히트곡인 반면, 본인은 이 노래를 무척 부르기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커트는 1994년 자살하기 직전 인터뷰에서 “나는 혼자 곡을 만드는 것에 지쳤고 밴드는 해체 직전의 상황이다. 멤버들과 합주를 해서 곡을 만들려고 해도 소음만 나오고 음악은 안 나온다.”라는 말을 했다.

-딸인 프렌시스 코베인과는 애증의 존재인데 프렌시스는 인터뷰에서 ‘자살한 아버지가 정말 밉다. ‘내 나이 5살 때 아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치열했던 사춘기 시절 스스로 내 곁을 떠난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시질 않는다’고 하지만 전 남편과 아버지인 커트 코베인의 기타를 두고 소송을 벌이거나 아빠의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거나 커트 코베인의 50번째 생일날 sns에 ‘오늘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아빠의 50번째 생일이 되었을텐데, 아빠 생일 축하해요. 아빠의 사랑하는 딸 프렌시스 코베인 드림’한 걸로 보아 그리움과 원망의 감정이 있는 듯하다.

—-발췌출처: 나무위키 ‘커트 코베인’

-그가 너바나에서 작곡가로서 활동한 이래 밴드는 2,500만 장의 음반을 미국 내에서 팔았고, 전 세계에서 7,500만 장을 팔았다. 사후 너바나의 일원인 크리스 노보셀릭, 데이브 그롤과 함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커트가 너바나라고 팀 이름을 확정짓기 전까지 보통 스키드 로우라는 이름을 썼다. 열반 내지 해탈이라는 의뜻의 너바나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커트는 동양의 신비주의에도 끌렸지만 사실 그는 이 단어가 주는 세련된 어감 때문에 그 이름을 선택했다.

-너바나의 노래 대부분은 가사보다 기타 코드 중심으로 짜여졌으며, 〈Negative Creep〉은 세 번씩 반복되는 열 줄의 가사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와 달리 “Daddy’s little girl ain’t a girl no more”의 코러스는 스물 일곱 번 반복되며 대부분의 가사는 해독이 불가능하였다. 커트는 노래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녹음 스튜디오로 들어갔고 일단 테이프가 돌아가면 소리치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몇 번의 짧은 구절을 부르며 녹음을 끝냈다. 보컬의 이런 창법은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특징적인 사운드로 자리 잡았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커트 코베인의 짧은 명언 23가지

[커트 코베인의 짧은 명언 23가지]

1.

서서히 사라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번에 불타는 것이 낫다

2.

나는 살면서 이렇다 할 재미있는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

우두커니 앉아 지겨운 삶에 대해 푸념하는 대신에

하고 싶었던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기도 하지만

차라리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겠다

3.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먼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4.

만약 로큰롤이 불법이라면, 날 감방에 쳐 넣어라

5.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6.

나는 오늘 친구들을 찾아서 너무 행복하다

그들은 내 머릿속에 있다

7.

무언가 다른, 정말로 다른 일을 하고 싶은데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도 할 수 없다

8.

순진하지 않은 척 하느라 바빴다

다 보고 경험했다

그것도 너보다 먼저

9.

우리가 모든 해답을 알기 전까지

어떤 의견도 표현할 권리가 없다

10.

마약은 시간 낭비다

마약은 우리의 기억과 자존감

그리고 자존감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괴한다

11.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유행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탈피할 수 없다

12.

나는 훨씬 더 무겁지만

동시에 선율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헤비메탈과는 다른, 다른 태도를

13.

다른 누군가가 되어서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 받는 것이 낫다

14.

만약 죽는다면 완전한 행복을 찾고

영혼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게 되겠지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죽음 이후의 완전한 평화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 내가 항상 꿈꾸던 것이니까

15.

펑크는 음악적인 자유다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행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Nirvana는 고통, 괴로움, 외부 세계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펑크록의 뜻과 아주 가깝다

16.

친구란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원수에 불과하다

17.

가장 큰 죄악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18.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이다

19.

비록 태양이 사라져도

나는 한 줄기 빛을 얻으리라

20.

행복이란 건 돈으로 살수 없는 거야

돈으로 아주 잠시나마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21.

만약 나의 눈이 나의 영혼을 보여줄 수 있다면

모두들 내가 웃는 걸 볼 때 눈물을 흘리겠지

22.

사람들은 내가 남들과 다르고 튄다는 이유로 비웃는다

나는 그들 모두가 개성 없이 똑같은 놈들이라는 이유로 비웃는다

23.

비극에 감사한다

나의 예술에 필요한 것이다

접기

접기

공유하기는 아래에 ↓↓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는 명언 및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커트 코베인은 누구?

반응형

최근에 가장 핫한 가수,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듣다가 이런 댓글을 발견했다.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들으면 커트 코베인이 생각난다.’

사실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처음 듣고는 상당히 낯선 느낌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약간 속삭이는 듯 노래하는 게, 뭐라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가사나 뮤비가 살짝 소름 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새로운 것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커트 코베인을 생각나게 하는 빌리 아일리시라…

커트 코베인이 누굴까?

커트 코베인은 롤링 스톤지 등 권위 있는 평론가들이 손꼽는 대중 음악계에 큰 인상을 남긴 락스타다.

1967년생이며, 1982년부터 1994년까지 활동했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와 같은 수많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커트 코베인의 명언:

If you ever need anything, please don;t hesitate to ask someone else first

필요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Wanting to be someone else is a waste of the person you are

다른 누군가가 되고자 하는 건 너라는 사람을 버리는 것이다

The duty of youth is to challenge corruption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이다

It i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

Though the sun is gone, i have a light

비록 태양이 사라져도, 나는 한 줄기 빛을 얻으리라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be loved for who I’m not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랑받기보다는 나 자체로 미움받는 게 낫다

Rather be dead than cool

열정 없이 사느니 죽는 게 낫다

어린 시절:

코베인의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의 집안에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 커트 코베인도 자연스럽게 노래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가정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부모님은 경제적인 문제와 가정 불화로 이혼한다.

커트 코베인은 어린 시절부터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주변 환경뿐 아니라 유전적 영향이 있는 걸로 보인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친구는 자살했으며, 직접 지인의 자살을 목격하기도 하는 등 주변 환경도 별로 안 좋았다.

게다가 집안 자체에 정신 질환을 겪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친척 중 2명이 자살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살게 됐는데 아버지는 곧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해 아이를 낳았다.

이로 인해 커트 코베인은 방황했으며, 가족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대마초, 술 등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너바나 결성:

고등학교 졸업을 2주 남기고 학점이 부족하자 학교를 자퇴한다.

집에서도 쫓겨나 노숙 생활을 하며 음악을 했다.

이후 청소부 일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너바나를 결성한다.

결성 이후:

초기에 돈이 없어 여자 친구의 집에서 얹혀살았는데, 곧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차였다.

커트 코베인은 20달러를 들여 데모 테이프를 녹음했고, 이 데모 테이프가 나름 주목을 끄는 데 성공한다.

그러던 중 당시 유망한 밴드를 영입하던 음반사 ‘서브 팝’에 눈에 띄었고, 계약 과정을 거쳐 1989년 첫 음반을 발매한다.

첫 음반은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낸다.

커트 코베인은 ‘서브 팝’으로부터 합당한, 괜찮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 ‘DGC’와 계약한다.

이후 1991년 2집 Nevermind를 발표하고 리드 싱글 Smells like teen spirit로 초대박을 친다.

이 앨범은 1년 이상 차트에 머물렀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3000만 장이 팔렸다.

하지만 엄청난 성공 이후 커트 코베인은 마약에 중독됐다.

사실 커트 코베인은 Nevermind 앨범이 너무 상업적이고 소리가 깔끔해 너바나와 색깔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앨범이 크게 성공한 것이 불만이었던 데다가,

원히트 원더 밴드로 노래 하나만 남기고 밴드가 사라질까 봐 불안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2년 커트 코베인은 코트니 러브와 결혼하고 딸 프랜시스 코베인을 낳는다.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했었다.

두 사람은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는 일이 잦았고 둘 다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혼 후 코트니 러브는 임신한 상태에서 헤로인을 한 게 발각이 됐다.

이로 인해 부부는 법정까지 불려 나갔다.

1994년 커트 코베인의 헤로인 중독은 심각한 상태였고 유럽 투어 중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다량의 수면제를 샴페인과 섞어 마신 걸로 진단 결과가 드러났다.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커트 코베인은 자기 방문을 잠근 뒤 자살을 시도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해 그가 든 총을 압류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주변인들의 설득으로 커트 코베인은 재활원에 들어가지만 재활원에 들어간 다음날 재활원에서 도망간다.

4월 8일, 코베인의 자택에 경보장치를 설치하러 온 전기공이 커트 코베인의 시신을 발견해 신고했다.

유서가 발견됐으며, 부검 결과 커트 코베인은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한 걸로 결론지었다.

대략적인 유서의 내용: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으로 100% 즐기는 듯 행동하며 모두에게 돈을 뜯는 것이다.

..

나는 아마 잃어버린 순간 고마움을 깨닫는 나르시시스트 타입의 사람인가 보다. 내 신경은 너무 예민하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프랜시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키스를 한다. 그녀에게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건 나에게 손 쓸 수 없는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프랜시스가 나처럼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만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진다.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 감사하고 있다.

일곱 살 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전부에 증오를 가지게 됐다.

단지 그들이 너무 쉽게 타협하고 공감하고 느끼기 때문이다.

과거 몇 년간 편지를 보내주고 걱정해준 모든 이들에게 타서 짓무른, 토할 것 같은 뱃속 깊이에서부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아기다.

이미 나에겐 정열이 없다.

기억해 주길 바란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타버리는 게 낫다는 걸.”

특히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 적힌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구절은 유명하다.

서서히 사라지느니 불타는 게 낫다.

시애틀 공원에서 커트 코베인의 장례식이 공개 진행됐는데 7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지금까지도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 관해 각종 음모론이 제기된다.

불우했던 가정환경과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평생 괴로워했던 위대한 뮤지션.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위대한 뮤지선.

이런 느낌인데, 커트 코베인의 딸 인터뷰를 보면 참 그렇다.

커트 코베인의 딸 프랜시스 코베인은 현재 모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프랜시스 코베인은 이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자살한 아버지가 미워요. 5살 때 나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걸 알았죠.

스스로 내 곁을 떠난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시질 않아요.”

“밴드 너바나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는 걸 15살에 깨달았어요.”

“대중은 죽은 뮤지션에 집착해요.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어 하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가정을 버린 사람일지라도요.

팬들 눈엔 그런 사람이 아니었죠. 아빤 음악계에 획을 그은 신성한 존재니까”

엄마도 온전치 못한, 참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에 혼자 남겨두고 간 원망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커트 코베인을 찾아본 후 가장 히트한 곡이라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들어봤다.

와, 91년 곡이면 30년 된 곡이고 10년 전에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인데,

지금까지도 거의 실시간으로 댓글이 올라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대단했던 그룹이자 사람이었구나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경받아도,

개인 스스로 갖고 있는 공허함이 해결되지 않으면 항상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반응형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남긴 말들 ( Nirvana )

반응형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사랑받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미움받는게 낫다.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loved for who i am not.

열정 없이 사느니 죽는게 낫다.

( Rather be dead than cool. )

비록 태양이 사라져도, 나는 한줄기 빛을 얻으리라.

( Though the sun is gone, i have a light. )

서서히 사라지기 보다는 한번에 확 불타버리는게 낫다.

( It is better to burn out than fade away. )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는것은 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이다.

( Wanting to be someone else is a waste of the person you are. )

젊은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이다.

( The duty of youth is to challenge corruption. )

가장 큰 죄악은 허세부리는 것이다.

( The worst crime is faking it. )

반응형

커트 코베인의 자신감 명언

x

“명언 디자인” 서비스는 크롬 브라우저와 INTERNET EXPLORER 9 이상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INTERNET EXPLORER 10, 11로 업데이트 또는 CHROME 브라우저 설치를 해주세요.

윈도우 XP와 VISTA 사용자는 익스플로러 10으로 업데이트가 불가능하므로 구글 크롬을 사용하시길 권장합니다.

[명언] 커트 코베인, Kurt Cobain, 음악가, 록 밴드, 자살, 록,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영어, 한글, 번역

소개

커트 코베인. 미국의 음악가. 미국의 전설적인 그런지 록 밴드 너바나의 프론트맨이었지만 27세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열풍을 주도한 인물이자 록의 판도를 바꾼 천재 음악가로 일컬어집니다. 오아시스나 라디오헤드와 같은 여느 1990년대 록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커트 코베인 역시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을 좋아했고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기회에 커트의 음악을 들어봐야겟네요.

from. google

명언

1. I definitely feel closer to the feminine side of the human being than I do the male – or the American idea of what a male is supposed to be. Just watch a beer commercial and you’ll see what I mean.

나는 확실히 내가 남성보다, 혹은 남성이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보다는 여성의 면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맥주 광고만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거야.

2. When I heard the Pixies for the first time, I connected with that band so heavily I should have been in that band – or at least in a Pixies cover band.

내가 픽스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밴드와 너무 많이 연결해서 그 밴드에 있었어야 했다. 적어도 픽스 커버 밴드에 있었어야 했다.

3. I’ve never considered musical equipment very sacred.

나는 음악 장비를 매우 신성시하는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4. Every time I see documentaries or infomercials about little kids with cancer, I just freak out. It affects me on the highest emotional level… Anytime I think about it, it makes me sadder than anything I can think of.

나는 암에 걸린 어린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인포머셜을 볼 때마다 기겁을 한다. 감정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데… 생각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보다 더 슬프다.

5. I sing and play the guitar, and I’m a walking, talking bacterial infection.

노래도 부르고 기타도 연주하고, 걸어다니면서 말하는 세균 감염증이지.

6. Sometimes I wish I had taken the Bob Dylan route and sang songs where my voice would not go out on me every night, so I could have a career if I wanted.

밥 딜런 루트를 타고 밤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노래를 불렀으면 좋았을 때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

7. I bought a gun and chose drugs instead.

나는 총을 사서 대신 마약을 선택했다.

8. We have no right to express an opinion until we know all of the answers.

우리는 모든 답을 알기 전까지는 의견을 말할 권리가 없다.

9. The sun is gone, but I have a light.

태양은 사라졌지만, 나는 빛이 있다.

10. I like to complain and do nothing to make things better.

나는 불평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from. google

11. I was looking for something a lot heavier, yet melodic at the same time. Something different from heavy metal, a different attitude.

나는 훨씬 더 무겁지만 동시에 선율적인 것을 찾고 있었다. 헤비메탈과는 다른, 다른 태도.

12. I never listen to ‘Nevermind.’ I haven’t listened to it since we put it out. That says something.

나는 절대 ‘신경 쓰지 마’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우리가 내놓은 이후로 나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뭔가 말이 되는군.

13. I’ve never been a very prolific person, so when creativity flows, it flows. I find myself scribbling on little notepads and pieces of loose paper, which results in a very small portion of my writings to ever show up in true form.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다작한 적이 없어서 창의력이 흐르면 흘러간다. 나는 작은 메모지와 느슨한 종이 조각에 낙서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내 글의 아주 작은 부분을 진정한 형태로 나타나게 한다.

14. A friend is nothing but a known enemy.

친구는 알려진 적일 뿐이다.

15. My mother encouraged me to be artistic. It was written in a contract at an early age that I would be an artist.

어머니는 나에게 예술적이 되라고 격려하셨다. 어릴 적 계약서에 내가 화가가 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16. If you ever need anything please don’t hesitate to ask someone else first.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물어보십시오.

17. I get a thrill meeting kids who are into alternative music.

얼터너티브 음악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만나서 스릴을 느낀다.

18. I wanted to be in a punk band before I had even heard any punk music.

나는 펑크 음악을 듣기도 전에 펑크 밴드에 들어가고 싶었다.

19.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loved for who I am not.

나는 나 자신으로 미움을 받는 것보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는 편이 낫다.

20. I’ve always had a problem with the average macho man – they’ve always been a threat to me.

나는 항상 평범한 마초남자와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나에게 위협적이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커트 코베인 명언

다음은 Bing에서 커트 코베인 명언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 록 음악
  • 록스타
  • 저항
  • 대중음악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YouTube에서 커트 코베인 명언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죽기엔 너무 젊고, 살기엔 너무 타락했다. | 커트 코베인 명언,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