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에 대하여 해석 | 대학살극을 벌인 싸이코패스 소년이 엄마만 살려둔 이유 [ 케빈에 대하여ㅣ해석 ] 13003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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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편집] 영화 속 에바, 프랭클린, 케빈에 대한 논쟁과 해석이 많은 편이다. 크게 잡으면 케빈이 타고난 사이코패스였는지와 에바의 학대와 어설픈 육아의 영향으로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것인지 정도. 에바가 케빈에게 사랑을 주지않았고 의무감만 갖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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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뭅필로그입니다!
[케빈에 대하여],
이 작품은 해석할 거리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케빈의 마음, 엄마 ‘에바’를 향한 감정에 초점을 맞춘 해석입니다.
케빈은 왜 엄마만 살려두었을까요?
케빈은 엄마를 사랑했던 걸까요?
그리고 에바의 케빈을 향한 진심은 무엇이였을까요?
영상 속에 답이 있습니다. 즐겁게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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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해석 그만! 완벽 해석! ‘케빈에대하여’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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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케빈 에 대하여 해석

  • Author: 뭅필로그 : movie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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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8. 1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8pZNfpyv7s

엉터리 해석 그만! 완벽 해석! ‘케빈에대하여’

네티즌 평점 8.42

원래는 제임수 추천 영화에 포스팅하려 했는데, 이번에도

너무나도 엉성한 네이버 베스트 리뷰 보고 안되겠다싶어서 직접 포스팅합니다.

꿈보다 해몽식의 해석이나 주관적이고 근거 없는 해석이 너무 많습니다.

‘케빈에 대하여’ 결말 제대로 해석해드리겠습니다.

영화 해석을 위한 포스팅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만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 싸움의 시작.

그림1-산모들 사이에서 자신의 배를 찝집하게 쳐다보는 장면.

그림2-케빈을 낳기 싫어서 힘주며 버티는 장면. (영어대사로 의사가 “stop resisting” 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엄마는 케빈이 뱃속에 있을 때 태교는 커녕 짐으로 여겼습니다. 케빈이 태어나는 순간까지

낳기 싫어합니다. 이러한 엄마의 감정은 뱃속에 있는 케빈에게 무의식적으로 전달되었다고 해석하는게 맞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증오를 받고자란 케빈은

태어나 갓난아기가 되서도 본능적으로 엄마를 싫어하는겁니다.

그런 케빈을 성가시게 여기는 엄마.

공사장 소음을 통해 케빈의 울음소리에서 벗어난 엄마의 편안한 표정이 보이시나요.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엄마를 싫어하는건 케빈의 정당한 본능인 점을 강조해줍니다.

아빠가 안아도 울지 않는 케빈의 모습을 통해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가 사람을 구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케빈이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자신에 대한 엄마의 부정적 감정’을 느꼈다고 해석하는게 맞습니다.

# 유아기로 번진 싸움

케빈은 태아와 영아기적 얻은 무의식적 악감정으로 인해 유아기가 되서도 엄마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그런 케빈에게 엄마는 또 막말을 합니다.

이는 마치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했어”처럼 들립니다.

당연히 케빈은 이 말은 기억못하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엄마에 대한 증오는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되고 이 둘의 서로에 대한 증오는 악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 어린이 시절

그리고 당연히 그 악감정은 케빈이 어린이가 되면서도 이어집니다.

케빈이 듣는 곳에서 아빠와 엄마는 말싸움을 하는데, 아빠가 아이를 위해 이사를 가자고

설득하고 케빈을 위한 우선순위를 고려해보라고 합니다. 케빈이 듣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는 절대 못간다며 케빈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버리는 엄마. 그런 엄마를 증오하는 어린이 케빈이

장난을 치자 엄마는 그만하라며 케빈의 손등을 때려버립니다.

#케빈의 본격적인 반격

엄마방에 물감 뿌리기, 엄마 굴욕주기, 일부러 똥 싸기 등

유아기까지 일방적으로 당하기만하던 케빈은 노골적인 증오를 드러내며

본격적으로 엄마에게 반.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이상하다 싶을정도로 케빈이 갑작스럽게

착한 아이로 변한 순간들이 있었죠?

#갑작스레 착해진 케빈의 계기

케빈의 집요한 괴롭힘에 화를 참지 못한 엄마는 케빈을 거칠게 넘어뜨리고 결국 케빈은 팔이 부러지는데

케빈은 혼자 진찰실에 들거가겠다며, 엄마를 더욱 불안에 떨게합니다.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케빈이

의사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모르니까요.

근데 의사는 케빈이 용감하게 잘 치료받았다는 말만하고 가버립니다.

뒤이어 케빈의 팔을 보고 놀란 아빠에게도 단순 사고로 팔이 부러졌다고 말하며 엄마의 잘못을 감싸줍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던 날 저녁. ‘쪼르르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케빈이 스스로 오줌 누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매우 놀라는 엄마아빠. 늦은 나이까지 기저귀 차던 케빈이 드디어 스스로 용변을 가리기 시작했다며

아빠가 매우 좋아합니다. 하필 기저귀를 떼는 타이밍이 너무 적절하죠? 이는 늦은 나이까지 기저귀를 차던

케빈은 대소변을 가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그동안 못가리는 척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후 엄마의 품에 안겨 동화책을 읽어달라는 케빈.

엄마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케빈이 갑작스럽게 착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케빈이 착해졌던 이유

자신을 집어던진 행동이, 엄마가 자신에게 한 짓 중 제일 솔직한 것이였다고 말하는 케빈.

케빈의 이 말은 사실입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 케빈은 엄마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장면

같이 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니? 라고 물으며 케빈에게 동생을 임신했다고 알리는 엄마.

익숙해지라는 엄마의 말에, 케빈은 익숙한것과 좋아하는 것은 달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엄만 나에게 익숙해졌잖아. 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대한 속뜻은

“엄만 나에게 익숙하지만 나를 좋아하진않잖아?” 입니다.

동작을 멈추고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는 케빈..

근데…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었으면서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돌리는 엄마…엄마 맞음?

케빈이 기대한 대답은 아마 “무슨소리니 난 케빈을 사랑해” 이였을겁니다.

엄마가 여기서 케빈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만 했어도 케빈은 정상적인 아이로 자라났을겁니다.

이를 통해 케빈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젠 의.식.적.으로 확.신을 하게됩니다.

이는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영화는 케빈이 크레파스를 강하게 던지는 장면을

클로즈샷으로 땡겨 잡으며 케빈의 실망과 분노를 보여줍니다.

#케빈이 착해졌던 이유

다시 이 장면으로 되돌아오겠습니다.

이제 케빈이 말한 이 솔직함이 케빈의 입장에서 공감이 가시나요?

그동안 엄마가 말한 ‘사랑한다 케빈’이란 말은 솔직하지 못한 표현이고 전부 거짓입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솔직했던 순간인 폭력에 대해 순간적으로 엄마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막장 갈등의 청소년기

엄마와 케빈의 서로에 대한 증오는 청소년기로 오며 막장으로 치닫습니다.

엄마는 실리아의 애완동물 기니피그를 케빈이 죽였다고 의심하고

엄마는 사고로 딸의 눈을 실명하게 한 주범이 케빈이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아들 케빈이 열대과일 리치를 까먹는 장면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아들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합니다. (실제로 케빈이 한건지 안한건지는 영화해석에

크게 중요치 않습니다. 아들을 의심하는 엄마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막장이 중요)

케빈이 실리아에게 놀자는 것을 듣고 본능적으로 No! 라고 크게 소리칩니다.

이 정도면 자신의 아들 케빈이 범인이라 확신한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더이상 막장이 없을 것 같은 막장에서 다음 장면은 막장의 끝을 달립니다.

#갈등의 절정, 아빠와 여동생 살해 & 묻지마 살인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듭니다.

케빈은 왜 묻지마 살인을 저질렀을까?

가족까지 살해한 케빈이 왜 엄마는 살려두었을까?

여기에 대해 케빈이 직접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 케빈이 말하는 사람들을 살해한 이유

살해를 하면 수많은 사람들부터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대답하는 케빈.

이 장면은 케빈이 살해 후 TV인터뷰를 통해 나온 장면이고, 그 장면을 엄마가 보고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묻지마 살인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상상을하는 케빈

여기서 네이버 베스트 리뷰는 다음과 잘못된 해석을 합니다.

(사람들을 죽인 이유):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한 케빈은 애정결핍에 걸렸고, 사람들을 죽임으로서 미디어의 관심을 받길 원한 것이다’

(엄마를 살린 이유): ‘엄마를 생존자로 남겨서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자의 엄마로서 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받게 하는 것이

엄마를 더 괴롭게 하는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해석은 틀렸습니다.

이 장면들은 관심받고 싶어하는 케빈을 표현하는 장면이 아니라

관심 받고 싶어한줄 착.각.한 케빈을 표현한 장면입니다.

즉, 사람들을 죽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볼까요?

#케빈이 사람들을 죽인 진짜 이유

케빈은 사람을 죽인 직후, TV인터뷰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주목받기 위해 살인을 했다고하는데요.

엄마가 케빈에게 직접 듣고 싶다며, 왜 죽였는지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케빈의 대답이 바뀐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내가 아는 줄 알았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즉,

(TV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처음엔 내가 아는 줄 알았었는데 =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 살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 “막상 주목을 받고보니 이 욕구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였어”

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말의 속뜻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게 아니라 엄마, 당신의 관심을 받고 싶은거였어요”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케빈도 이제서야 깨달은거구요.

이 장면을 보고 글자 그대로 ‘응. 케빈도 잘 모르는구나’ 라고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특히 수백명에게 당당히 잘못된 해석을 전달하시는 블로거분들!

# 드디어 화해하는 케빈과 엄마

케빈의 그 속뜻을 알아 들은 엄마가 일어나, 케빈과 포옹하는 거구요.

엄마가 케빈의 그 속뜻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속 대사에도 나오지만

엄마도 현실속에서도 과거를 오가며 2년 동안 생각을 해온 끝에 케빈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겁니다.

이러한 이해없이 이 포옹의 엔딩장면을 접했다면, ‘잉?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여?’ 하는 반응이 나올겁니다.

영화해석에 대한 제 개인적인 Tip을 소개하자면

영화해석에 대한 근거는 철저하게 작품 안에서 찾아야하며,

영화해석에 대한 힌트는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편이며

종종 OST의 가사를 활용하는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케빈에 대하여가 특히 그렇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OST 가사를 볼까요?

# 엄마가 케빈 면회 전날, 케빈의 방을 치우면서 나오는 노래

(가사) “어느날 고아의 집 옆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네~

소년 하나가 혼자 서있었네~

내가 왜 그러냐고있냐고 물었을 때

소년은 울며 대답했네~

나는 그 누구의 아이도 아니에요~

나는 엄마의 키스를 받지 못했어요~

오~아무도 날 원치 않아요~”

노래 가사를 들으면 정말 노골적으로 영화의 결말에 대해 해석해줍니다.

저 노래가사는 케빈의 마음을 알려주는 노래 가사나 마찬가지이고, 이 장면을 통해서

엄마가 깨닫게 되고 케빈의 옷에 얼굴을 파묻고 그리워하다가 울음을 터트리고

케빈방을 정리하는겁니다. 케빈방을 정리하는거에 대해서 이상한 해석이 많은데

케빈 방을 정리하는건 케빈을 용서했으며, 케빈이 출소를 했을 때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면회장서 만나자마자 모범수로 2년 후 가석방으로 나올 수 있다는 대화를 나눕니다.

다음은 엔딩에 나오는 노래를 들어볼까요?

# 엄마가 케빈과 부둥껴안은 후 나오는 노래

(가사) 이제 엄마를 떠올리때면~

얼마나 자주 그녀가 그랬는지~

그녀의 cheer를 느꼈었네

내 이상한 마음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있었네~

여담이지만 최근 한국영화 ‘사도’를 보았는데요. 자식의 잘못을 말하기에 앞서

양육자의 잘못을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케빈에대하여가 떠오르더군요.

영화 ‘사도’는 ‘한국판 케빈에 대하여’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ㅎㅎ

암튼 영화 파일을 안지우고 가지고 계신분은 빠르게 돌려보시거나

마지막부분 OST가사라도 음미하시는거 추천드립니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 해석 마치겠습니다.

P.S

‘싸이코패스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란 논쟁이 많은데 이는 ‘케빈에대하여’영화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전혀 무관한 논쟁입니다. 싸이코패스가 실제로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케빈은 엄마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인격’ 이라는 감독의 의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엄마만의 잘못이 아니고 그녀를 방치한 사회시스템과 가사일에 소홀한 아빠의 잘못이다’라는

의견도 보이는데, 이 부분은 영화에서 조금도 다루지 않습니다. 영화 해석과는 전혀 관련없는

의견입니다. 영화 해석은 감독의 의도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감독의 의도를 반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줄거리 / 결말 / 해석 (스포 O)

​영화 케빈에 대하여 해석

감독과 원작자 모두 여성으로서 임신한다는 것과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반영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나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품어줄 수 없는 사람이 자식을 낳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짙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이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고

무엇보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최악의 빌런은 아마 케빈이 아니라 케빈의 아빠인 프랭클린이라 느낄 수 있다.

프랭클린은 집안일이나 에바와 케빈의 사이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 피곤하다는 핑계로 케빈의 좋은 점만 보고 에바의 의견을 덮어두고 무시한다.

그런데 이게 대부분의 바깥일을 하는 남자들이 이럴 것 같다.

신창원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따뜻한 말 한마디만 해줬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거라고

5학년 때 선생님이 돈 안 가져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왔냐며 꺼지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고 고백을 했다고 한다.

아니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핑계야?라고 생각을 했지만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 시즌 1을 보면 사이코패스 이정문이 등장하는데

(약 스포?) 그는 성향이 사이코패스이긴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냥 사이코패스라는 성향 자체 때문에 누명을 쓰고 이용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환경과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삐뚤어지는 것이었다.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케빈이 자체적으로 타고난 정신질환도 물론 있긴 하지만

아마 다른 주변 환경, 다른 부모님의 밑에 자랐다면 이 케빈처럼은 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본다.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이 영화의 원제목은 우리는 케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다라고 볼 수 있는데

케빈의 문제는 정말 케빈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얘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는것 같다.

<케빈에 대하여>-표현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개봉일 : 2012.07.26. (한국 기준)

감독 : 린 램지

출연 :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C.라일리, 시옵한 폴론, 애슐리 게라시모비치, 안소니 델 네그로

표현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관계

벗어날 수도 선택할 수도 없었던 가족이라는 운명과 엇나간 애착.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워야 했던 미숙한 엄마는 끝을 알 수 없는 괴로움을 떠안았고 무지한 아빠는 비극을 재촉했다. 틸다 스윈튼의 깊고 진한 동공이 허공에 머무를 때면 공허함과 슬픔의 냄새가 밴 붉은빛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케빈에 대하여는 선정성이나 폭력성이 짙은 건 아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은유적인 표현들이 잔혹한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듯하다.

주인공 에바(틸다 스윈튼)의 아들인 케빈(에즈라 밀러, 아역 : 제스퍼 뉴웰)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름과 동시에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타고난 아이다. 대놓고 잔인한 괴롭힘은 아니지만 케빈은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에바의 심리를 손에 쥐고 뒤흔드는데.. 이게 보는 사람마저 숨이 턱 막힐 만큼 정확하고 계획적이다.

소시오패스는 전 인류의 4%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꽤나 흔하게 갖고 있는 성향이다. 하지만 우리가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흔치않다고 느끼는 건 그들이 자신의 성향을 숨기고 계획적으로 이용하는데 능통하기 때문이다.

케빈은 그런 아이다. 폭발적인 분노와 광기로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가 아니었으며 아빠 프랭클린 앞에선 오히려 천사 같은 아들이었다. 무조건 자신의 손을 들어주고 끝없는 사랑을 퍼담아주는 아빠에겐 착한 아들. 유년기 자신에게 상처를 줬던 엄마 에바 앞에선 눈을 번뜩이며 발톱을 세우는 아들이다.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준비되지 않은 미숙한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들의 모습, 남들과 다른 아들에 지쳐가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싸한 배경 설정과는 다르게 유쾌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 블루스 리듬이 이질감과 괴이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케빈에 대하여 시놉시스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여행가 에바에게 아들 케빈이 생기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의 삶은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져만 간다.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에게 고통을 준다.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에바가 평생 혼자 짊어져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살인마다!, 죽어라

빨간 빛깔이 온 세상을 뒤덮었다. 토마토가 사방에서 터지고 있다. 에바는 토마토를 흠뻑 뒤집어쓴 채 무방비하게 누워있다. 비난이 가득한 상상에서 깨어난 에바는 여전히 빨간 빛깔의 페인트가 뒤덮여있는 집 한가운데 누워있다. 흐트러진 집안과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약통, 무기력하게 빠져버리는 문 손잡이. 그 집에 누워있는 에바 또한 멀쩡하지 않은 모습이다. 앙상한 발을 땅에 내디디며 집 밖으로 나간 에바에겐 따가운 시선들이 쏟아진다. 화려한 이력을 가졌지만 ‘간단한 서류 정리만 해도 OK’인 여행사 직원으로 취직한 그녀에겐 삶의 의욕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에바는 프랭클린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다른 부부들처럼 아이를 가졌다. 그녀는 멍한 눈동자로 서류를 스캔하며 과거를 떠올린다. 동그랗고 아름다운 배를 뽐내는 산모들 사이에 앉아있는 에바, 달음박질치는 귀여운 꼬마 발레리나들 사이 걸어가는 에바. 하지만 현재 에바의 앞엔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온 듯, 교도소 면회실에 앉아있는 아들 케빈이 있다.

에바의 아들 케빈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아니, 남달랐다기보단 이상했다고 표현해도 적절치 않은 언행이라 지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난히 말이 느리고 엄마의 행동에 대한 반응도 하지 않았던 케빈이 걱정된 에바는 병원을 찾지만 이렇다 할 답을 얻을 순 없었다. 끝도 없이 울어대던 갓난쟁이 시절부터 엄마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는 유소년기까지. 준비 없이 케빈의 존재를 품에 안았던 에바는 남들과 다른 케빈의 모습에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한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이 더 행복했어.

에바는 어린 아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는다. 케빈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어린아이였고 계속해서 엄마를 바라봤지만, 에바는 사랑하지 않는 아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에바는 ‘위대한 모험가’라고 지칭될 만큼 많은 모험을 하며 여행기를 집필했다. 직접 모험하며 밟은 땅의 면적만큼 높이 쌓여있었던 에바의 캐리어는 아들 케빈이 생기는 순간 멈춰버리다 못해 무너져내린다. 모든 걸 포기하고 케빈을 키워온 에바의 마음은 준비 없이 다가온 충격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렸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아들에 대한 못마땅한 마음만 끝없이 자라고 있었다.

프랭클린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바는 반대했지만 결국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에바는 꿈과 기억을 담은 세계지도와 모험의 흔적들을 자신의 방 벽면에 빙 둘러 붙인다. 케빈은 그런 에바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나도 안 예뻐’라고 말하던 케빈은 결국 에바의 지도에 물감을 덕지덕지 칠해버린다.

케빈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에바를 증오한다. 익숙한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며 나는 엄마가 익숙하지만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덤덤하게 내뱉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케빈은 에바의 감정을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아이였다. 숫자 공부를 하자는 에바의 앞에서 몇 마디 웅얼거림을 내뱉다가 순식간에 자기가 알고 있는 숫자를 전부 쏘아내기도 하고, 화가 난 에바의 실수로 팔이 부러지자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의사 선생님을 혼자 보겠다며 에바의 피를 말리고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불리하다 싶으면 팔에 남은 흉터를 긁으며 에바의 죄책감을 이용한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듯 두려움과 증오감이 가득했던 에바와 케빈의 관계. 왠지 적막하고 딱딱했던 집안의 분위기는 둘째 딸 실리아의 탄생과 함께 조금 풀어지는 듯 보인다. 케빈 또한 동생의 탄생과 함께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딱 한 번인 게 문제지만… 아무튼 케빈은 에바에게 기대어 에바가 읽어주는 로빈후드 동화책의 내용을 조용히 듣고 있다. 처음 보는 케빈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던 프랭클린은 케빈에게 작은 과녁과 함께 활을 선물한다. 케빈은 과녁을 향해 활을 쏘다가 갑자기 뒤돌아 에바가 앉아있는 창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마치 너도 쏴버리겠다는 경고처럼 말이다.

케빈은 분명 자신이 에바를 증오한다고 생각한다. 케빈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지친 에바는 대체 왜 이러냐고 케빈에게 묻는다. 케빈은 에바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한다. ‘아무 의미 없어.’ ‘그게 중요해’ 라고 말이다. 케빈은 자신이 에바를 싫어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향한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아들임을 이용해 더욱 가깝고 자극적이면서도 타인의 눈엔 띄지 않는, 지독한 괴롭힘을.

에바는 실리아를 사랑한다. 프랭클린 또한 실리아를 사랑한다. 케빈과 다르게 평범하고 순수하며 애교도 넘치는 둘째 딸 실리아는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케빈을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엄마 에바도 실리아에겐 달랐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에바도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케빈도 엄마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나와 다르게 저 존재를 완전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케빈은 에바가 사랑하는 실리아를 망가트려버린다. 실리아의 기니피그를 음식물 분쇄기에 넣어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고, 그 타이밍에 맞춰 에바가 높은 선반에 올려놨던 배수구 뚫는 액체를 싱크대에 내려놓는다. 실리아는 케빈의 계획대로 배수구 뚫는 액체로 인해 한쪽 눈을 잃게 된다.

실리아의 사고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식사시간. 가정의 주인 또는 큰 어른이 앉는 식탁의 가운데 자리에 앉아 평소엔 먹지 않던 리치의 껍질을 한꺼풀씩 벗기며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어대는 케빈의 모습이 마치 눈알을 씹어대는 것처럼 역하게 느껴진다.

에바는 케빈이 실리아를 위협하고 있음을 느끼고 케빈을 더욱 경계하게 된다. 프랭클린은 천사 같은 아들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경계하는 에바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프랭클린 앞에서의 케빈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순수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케빈은 그렇게 프랭클린을 자신의 편이자 하수인 같은 존재로 만든다. 완벽하게 케빈을 믿고 있던 프랭클린은 에바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 생각하고 이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양육권은 당연하게도 프랭클린과 케빈, 에바와 실리아로 나뉘게 될 분위기였다.

잠시 잠에서 깼던 케빈은 부모의 이혼에 대한 대화를 듣게 된다. 부모의 이혼과 프랭클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케빈은 억눌려있던 광기를 분출하기 시작한다. 16살 생일이 오기 전, 그는 자전거 자물쇠로 강당을 봉쇄하고 아이들을 활로 쏴 살해한다. 마치 가축을 도살하듯이, 그리고 사냥 실력을 뽐내는 그 옛날의 귀족처럼 말이다.

에바는 케빈의 학교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숨을 헐떡이며 달려갔지만 자신의 아들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살인자로 경찰의 손에 붙잡히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게 된다. 케빈은 학교에 있는 학생들과 프랭클린, 실리아를 활로 쏴 살해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에바는 죄책감과 충격에 짓눌려 환각과 망상에 시달린다.

가족을 모두 잃은 에바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피해자들의 가족에게 욕설과 페인트 테러를 맞는다. 하지만 에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기에 그 존재를 키운 것은 자신이기에. 묵묵히 집에 묻어있는 페인트를 지우며 아들의 죗값을 함께 받고 있는 에바. 그녀는 살인자의 엄마였다.

에바는 케빈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준비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케빈의 존재가 벅차고 무거웠지만 에바는 어떻게든 아들이란 존재를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에바는 살인자가 된 아들의 물건을 불태우거나 버리지 않고 온전히 챙겨와 작은 집 한편에 케빈의 방을 만들고 매일같이 이불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그녀는 케빈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에바는 케빈이 성인 교도소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제는 말해줘, 왜 그랬어?’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차갑고 날카로웠던 케빈의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케빈은 본인이 에바를 증오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부터 여러 명의 사람들을 활로 쏴 살해했던 그날까지, 나는 엄마를 증오하고 어쩌면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모두 본인의 생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케빈의 착오였을지도 모른다.

케빈은 16살 청소년이 됐지만 여전히 어릴 때 입었던 작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어릴 때와 다르게 말도 잘하고 활도 잘 쏘며 다른 친구들에 비해 부족할 것 없는 청소년이 되었지만 케빈은 아직 유아기의 상처와 기억에 머물러있다.

케빈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더욱 엄마의 관심을 원했고 사랑받지 못한 케빈의 소시오패스 성향은 자랄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만일 에바가 자신의 모든 걸 포기하고 케빈에게 실리아만큼 사랑을 주었다면, 케빈이 타고난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에바와 케빈은 서로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케빈은 에바가 읽어준 로빈후드 동화책의 영향을 받아 활쏘기를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엄마가 읽어준 그 동화책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케빈이라는 아들은 에바에게 벅찬 존재였지만 에바에게 엄마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워주었고 에바가 케빈에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관계의 끝은 비극이었고 에바에게 남은 건 살인자 아들뿐이었다.

살인자의 엄마로 산다는 것,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 밑에서 자란다는 것. 나는 둘 중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영화를 보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소시오패스 살인자인 케빈의 존재에 대한 찝찝함과 방향성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에바의 서툰 사랑,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에바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은 프랭클린의 무지함, 죄 없이 죽어간 순수한 실리아에 대한 애잔함.. 정도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은유적인 표현과 컷 배열, 과거와 현재를 여러 번 뛰어넘지만 어색함이 전혀 없는 진행, 상황과 정 반대되는 음악과 음향의 이질적인 사용으로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극대화한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케빈 역할을 맡은 아역 제스퍼 뉴웰과 에즈라밀러의 묵직하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당연히 믿어온 증오의 감정에 대한 의문이 드는 순간,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케빈의 눈빛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는다. 케빈은 자신이 에바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 모성애와 사이코패스의 관계 (결말 해석, 줄거리 스포O)

내 안에서 나를 닮은 타인이 태어난다는 것은 두렵고도 신기한 일이다. 나를 닮는다면 어떤 부분을 닮게될까? 내 테두리를 벗어난 전혀 낯선 아이가 태어나면 어떡해야 할까? 생명이 태어난다는건 축복할 일이지만 아직까지의 나는 경외감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누군지 모르는 미지의 존재를 내가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지, 정말 나에게도 다른 위대한 엄마들처럼 모성애라는게 있긴 한건지 궁금하고도 의문스럽다. 이 모든 두려움을 담은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봤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

넷플릭스에서 예전부터 찜해두었지만 왠지 보기가 두려웠다. 나의 통제를 벗어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 아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그런 아이에 대해서도 끝없는 모성애를 지녀야하는 것이 엄마라는 사실이 무섭고 두려웠다. 줄곧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사랑이라는게 어쩌면 당연한게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 행동에 문제가 있는 아이는 오롯이 엄마의 책임일까? 아닐까? 여러 불편한 질문과 의문들이 뒤엉킨 불편하고도 무서운 영화였다.

케빈에 대하여 줄거리

케빈에 대하여 스틸컷

케빈에 대하여는 주인공 에바(틸다 스윈튼)의 비참해보이는 생활로 시작한다. 낡은 집에서 혼자 일어난 에바가 집밖으로 나오자 바깥 벽이 온통 빨간 페인트로 엉망진창이고, 자동차에도 피로 보이는 붉은 액체가 잔뜩이다. 하지만 그녀는 묵묵히 자동차의 피를 닦아내고 동네의 초라한 여행사에 사무직 면접을 보러간다. 그녀는 아주 큰 죄를 지은듯 움츠려있고, 길가다 동네여자가 이유없이 뺨을 날리는 상황에서도 괜찮다며 급하게 자리를 피할 뿐이다.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그녀의 삶은 이렇게 되었는가? 영화는 그녀의 현재 삶과 과거의 삶을 크로스하며 보여준다.

그녀는 사실 잘나가는 여행작가였다. 자유를 추구하며 프리하게 살던 그녀가 어느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의도치않게 아이를 가지게 된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임신과 출산, 누군가에게는 축복이고 행복일 순간이 그녀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케빈이다. 케빈은 태어났을때부터 무척 예민하여 밤낮없이 울었고, 그런 아기를 정성껏 돌보려 해보지만 하는 수 없이 에바는 점점 지쳐간다. 에바는 아이에게 ‘니가 태어나기 전이 훨씬 행복했다’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너무나 심하게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싫어 유모차를 끌고 공사장의 시끄러운 소음 옆에 일부러 서있기도 한다. 아이는 커가면서 무엇 때문인지 유독 에바에게만 못되게 군다. 아빠에게는 세상 다정한 모습으로 대하면서 엄마인 에바에게만 자신의 진짜 표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자면 아이가 못되게 구는건 엄마의 모성애가 부족해서인 것 처럼 보인다. ‘아이에게 좀 더 다정했어야지’, ‘엄마가 그런 소릴 하면 안되지’, 모든걸 엄마탓으로 돌리는건 참 쉬운 일이다. 아빠에겐 그토록 다정한 아이가 아무도 모르게 엄마에게만 자신의 악의를 드러낸다. 에바는 남편에게 케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지만 아이탓을 하는거냐고 화만 돌아온다.

지금부터 스포있습니다.. !!

부부는 아이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엔 이혼을 결정한다. 아빠가 케빈을, 엄마가 여동생을 맡기로 결정한 날 케빈은 모든 것을 끝내버리기로 결정한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모든 가면을 이제 그만 벗어버리기로…

그는 아마도 사이코패스였던 듯 하다.

그렇게 에바의 모든 세계는 산산이 부서져내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사람들은 자식을 잘못키운 어미의 탓이라며 모두들 에바를 손가락질 했다. 에바 또한 케빈에게 가족을 잃은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케빈의 엄마라는 이유로 피의자였다. 그래서 에바는 속죄하는 의미로 마을에 남아 케빈이 출소할 때까지 사람들의 원망과 비난의 눈초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 같다.

에바도 케빈이 분명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가족인 아버지(남편)와 여동생(딸)을 죽인 것도 모자라 수많은 학생과 선생님을 하룻밤 사이에 학살해버린 아들을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을까. 케빈을 낳은 자신이 저주스러웠을 것도 같다. 하지만 에바는 포기하지 않고 2년동안 끈질기게 케빈을 면회한다. 서로 할말을 잃은 채 매번 마주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답답하고 위태로워보였다. 그리고 2년째 되던 날, 드디어 에바가 묻는다.

“도대체 왜 그랬어?”

“몰라, 그땐 알 것 같았는데, 지금은 모르겠네. ”

아이에게 무척 화가 났을거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에바는 케빈을 꼭 끌어안아준다. 언젠가 감옥에서 나오게 될 아이의 새출발을 위해 케빈의 방을 파란 페인트로 칠하고 깔끔하게 준비해둔다. 케빈을 다시 이해해보리라 노력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한번쯤 영화의 제목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케빈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개봉했고, 원제는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이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 라는 뜻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한번도 케빈이 왜그럴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케빈의 이상한 행동과 엄마와의 느슨하고 미적지근한 애정관계를 보여줄 뿐이다. 아빠와는 살갑게 잘 지내면서 엄마에게만 악의를 드러내는 아이, 그 이유를 모르는 엄마. 그 불편한 줄다리기를 관객도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뿐이다.

케빈은 어쩌면 엄마에게만 솔직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자신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악의와 폭력적 성향을 유일하게 엄마에게만 마음놓고 보여줄 수 있었던건 아닐까. 어쩌면 자신의 이상함에 대해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냈던 것일수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던 세상의 단 한사람 엄마와 더이상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 엄마 외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닐지.

영화는 모성애가 문제인지 아닌지를 따지는듯 보이다가 결국엔 무엇이 문제인지 똑바로 봐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이의 상태를 똑바로 보려고 노력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빠는 아이와 잘 놀아주긴 했지만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엄마는 아이의 이상한 점을 발견하긴 했지만 결국은 이혼함으로서 포기하려 했다. 그게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가장 중요한 문제를 덮어두고 보려하지 않을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비극. 영화 제목에서부터 너무나 노골적으로 케빈에 대해서 얘기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엄마가 뭘 잘못했는지를 자꾸만 찾고 있었다.

너무 어렵고도 암울한 영화였다. 정해진 답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는 영화인듯 하다. 이런 영화는 여럿이서 보고 토론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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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줄거리 및 결말 (스포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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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보통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싸이코 패스를 가족으로 둔 가족의 입장에서 영화가 나온 적은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싸이코 패스 아들 ‘케빈’을 키우고 있던 엄마 에바의 시선으로 영화의 내용이 전개된다.

줄거리

이 영화를 감상했던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3가지 의문점

어린 케빈.

줄거리

1) 원치 않은 아이의 탄생

에바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던 여행가였다. 여행하던 도중 여행지에서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때 원치 않던 아이 바로 케빈이 생겨버렸다. 그 후, 그녀는 그 남자와 결혼을 했고 주부로의 삶을 살게 된다. 자유인으로 자유롭게 살길 바란 그녀이기에 어쩌면 처음부터 결혼하고는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주부로 사는 하루하루가 그저 지겹기만 하다.

게다가 자신의 자유가 박탈당한 것도 힘든데 그 당시 갓난 아이인 케빈을 케어하는 것 자체가 고역 자체였다. 신기하게도 아들 케빈은 갓난아기 시절부터 엄마와 있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에바는 아이를 달래는 대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공사장으로 데려간다. 아이 울음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공사장의 소음을 듣는 것이 에바에게는 더 나은 일이었던 셈이다.

그날부터 갓난아기인 케빈은 울지 않았고, 이날의 사건은 훗날 케빈이 싸이코패스가 되는 것에 어느 정도 일조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갓난아이 때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달래지 않고 방관하고 있으면 훗날 아이의 인격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 울음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공사장 소음이 낫다고 생각한 에바.

2) 엄마와 아이의 갈등

갓난아기 시절을 지나 5살이 되었을때도 케빈은 항상 엄마에게 버거운 존재였다. 아이는 엄마에게만 마치 반항하기라도 하듯 엄마를 곤란하게 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기저귀를 새로 갈아주면 계속 변을 보기 일쑤였던 어느 날 그날 에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아이를 바닥에 던져버려서 다치게 만든다. 아이에게는 엄마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만 것이다.

그 후로 아이는 혼자 대소변을 가렸지만 이미 둘의 사이는 회복되지 못할 만큼 멀어졌다.

에바는 그날부터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며 다정히 대해주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버린 셈이었다.

3) 싸이코 패스가 된 케빈

그리고 시간이 지나 청소년이 된 케빈은 이미 에바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에바는 케빈이 항상 불안했기에 아이 아빠인 프랭클린에게 고민을 토로했지만 프랭클린은 별로 대수롭지 않아 한다. 아빠는 크게 아이에게 관심이 없고 항상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던 와중 케빈은 이제 자신의 동생인 딸까지 아무 죄책감 없이 다치게 만들고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선물 받은 화살로 케빈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고 만다.

학교로 가서 강당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활을 쏘아 아이들을 죽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절망하며 집으로 돌아와 상담할 남편을 찾지만 남편과 딸도 이미 케빈에게 활을 맞고 죽어 있었다.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후, 케빈은 감옥에 갇히고 케빈의 엄마 역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가게 된다.

아들의 범죄로 인해 동네에서 피해자들의 유가족을 만날 때마다 괜스레 얻어맞고 멸시받으며 고단한 삶을 겨우겨우 살아가게 된다.

이 영화를 감상했던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3가지 의문점

이쯤에서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가장 크게 궁금해하던 의문점 세 가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① 케빈은 왜 싸이코패스가 되었나?

② 케빈이 제일 미워했던 사람은 엄마인데 왜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만 죽인 것일까?

③ 감독은 영화 속 에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① 케빈이 싸이코 패스가 된 이유는?

엄마 아빠의 잘못된 양육 태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일까?

케빈이 성장하는 내내 아빠는 시종일관 아이를 방관하고 있는 방관자의 태도를 취했으며, 엄마는 케빈에게는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는지 갓난아기 시절 우는 케빈을 달래지 않고 공사장으로 데려가는 등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이에게 대놓고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자신을 제일 사랑해줘야 하는 부모에게서 저런 멸시를 받는다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치명타를 입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의 양육태도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케빈은 이상하리만큼 엇나갔으며 그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양육태도 +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성이 케빈을 살인자로 만든 것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② 케빈은 왜 엄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죽인 것일까?

아마 케빈이 젤 미워했던 사람은 엄마였기 때문에 엄마를 본인의 ‘살인 쇼’의 관객으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살인을 하면 봐줄 관객이 필요했을 텐데 그 관객으로 엄마를 낙점했기 때문에 살려준 것이라고 해석해보고 싶다. 케빈의 범죄 덕분에 엄마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날들을 살아가게 되었다. 결국 케빈이 젤 미워했던 것은 엄마이고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아빠와 딸)을 죽임으로써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들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③ 감독은 영화 속 에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영화는 엄마인 에바의 시선으로만 전개된다. 자유로운 여행가로 살던 엄마의 원하지 않던 임신과 그 임신으로 모든 게 바뀌어버린 현실 앞에 좌절했던 엄마. 그리고 그에 대한 분노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향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모성애를 갖지 못하는 에바를 비난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꼭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없던 모성애가 갑자기 생기기를 바라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시종일관 아이를 방관하는 아빠 때문에 원치 않던 아이의 탄생으로 인한 짐은 고스란히 엄마인 에바의 몫이었다. 아무리 다른 엄마들처럼 모성애가 없다 한들 아이를 싸이코 패스로 만들고 싶은 엄마는 세상에 없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기에 난감하고 서툰 것은 당연한 것인데 아이가 잘못되자 그것이 꼭 부족한 모성애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은 갑자기 엄마가 된 에바를 통해 엄마가 되었다고 자동으로 모성애를 가지게 되는 것만은 아니며, 모성애를 지니지 못했다고 해서 여성에게만 더 가혹하게 가해지는 사회적 비난과 그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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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알못이 쓰는 <케빈에 대하여> 영화 해석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되는 글+추가수정

이걸 리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알못이 쓰는 똥글이라고 명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사자후나 여기저기서 떠들어댔던 것처럼 케빈은 내가 본격적으로 에즈라밀러를 파기 전부터 정말 좋아했던 영화였다. 그래서 뭐 하나 보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으면 자연스럽게 케빈에 대하여를 봤을 정도로 여러 번 돌려봤었는데 그렇게 보다보니 볼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게 생기고 처음이랑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고.. 영화 속 사건의 인과관계가 그렇게 무 자르듯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최대한 깊고 자세하게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또 다른 관점을 제시 해주기도 한다는 원작소설도 읽어보고, 사람들 반응도 많이 찾아봤다. 원제가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인 만큼 누구의 문제인가, 케빈은 왜 그랬을까, 하는 논쟁거리를 안겨다주는 영화라서 언젠가 한 번은 내 생각은 어떤지 정리해서 남겨두고 싶었음.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영알못인데다가 에즈라 밀러 덕후이므로 케빈의 입장으로 치우쳐서 영화를 보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자꾸 케빈한테 눈길이 가고 합리화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막을 수가 없다 흑흑.

아무튼 결론은 이 글의 전문성은 눈곱만치도 없으며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며 가볍게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난 그저 ‘케빈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을 뿐이어요

당연히 스포 주의

용두사미 주의

RED

–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붉은 색.

– 페인트 색, 조명, 잼, 마트 진열대, 에바의 옷, 각종 소품 하나하나에 거의 집착적이라고 할 정도로 붉은 색이 많이 쓰인다.

– 그러나 정작 그 어느때보다 붉은 색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 색을 과감히 생략한다.

– 케빈이 두 팔을 벌리고 바라보고 있는 저 강당은 사실 온통 피로 뒤덮여 붉게 도배가 되어야 했을 것.

– 대신 영화는 영화 시작부분, 토마토 축제로 영화 후반부의 모습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 빨간 액체를 온 몸에 두른 채, 빨간 웅덩이 위로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축제의 즐거움보다는 어딘가 기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 심지어 케빈이 강당문을 열고 사람들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이 그를 향해 내지르는 소리는 저 축제의 환호성처럼 똑같은 것처럼 들림

Eva & Kevin

– 영화에서 몇 번 에바와 케빈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경우가 있음.

– 아무리 뒤틀린 관계여도 결국은 어머니와 아들이며, 닮은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 에바와 케빈이 주고 받는 대사 중 이를 잘 보여주는 부분.

“엄마도 가끔 막말 하네.(You can be kind of harsh sometimes.)”

“너도 만만치 않아.(You’re one to talk.)

“응, 맞아. 누굴 닮은 걸까? (Yeah, I am. I wonder where I got it.)”

MUSIC

(블랙이글 님 자막 인용함)

– 영화 예고편에 쓰인 음악

매일 더 가까워지고 있어.

롤러코스터보다 더 빨라.

당신은 결국 날 사랑하게 될 거야.

매일 더 빨라지고 있어.

모두 당장 물어보라 하네.

당신은 결국 날 사랑하게 될 거야.

하루가 점점 길어지고 사랑은 점점 강해져.

당신이 간절히 바라는 건 내 진실된 사랑인가요?

내 비밀 털어놓을 수 있는 세상이 있어, 내 방에서, 내 방에서.

내 모든 걱정과 두려움 쫓아낼 수 있어, 내 방에서, 내 방에서.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며 뜬눈으로 기도해.

흐느껴 울고 한숨지으며 지난 일을 웃어 넘기지.

어느 날 고아원 앞을 천천히 지나다. 잠시 멈춰서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봤어. 홀로 서 있는 소년에게 왜 혼자 있냐고 물었지. 그러자 몸을 돌려 먼눈으로 울기 시작했어. 전 버림 받았어요. 버림 받은 아이예요. 야생에 핀 꽃 같은 신세죠. 엄마의 입맞춤도 아빠의 미소도 없었어요. 날 원하는 이 아무도 없어요.

사랑하는 엄마가 이런 말씀을 하신 그 날을 잊을 수 없어라.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넌 항상 이 엄마의 기쁨이었단다. 집을 떠나 바깥을 떠돌다 보면 집에 못 돌아올 수도 있단다. 하지만 명심하렴. 하느님이 하늘에서 전능한 눈으로 널 지켜보고 있다는 걸. 죄와 불행으로 가득한 세상이라 슬픔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단다. 하지만 명심하렴. 네 무거운 짐 가벼이 해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거야’ 이제 와 엄마를 생각해보면 참 무던히도 날 응원해주셨지. 내 알 수 없는 마음이 빗나갔을 때 내게 말씀하셨지. ‘아들아, 받아들이렴.’

A MOTHERLESS CHILD WHO SEES HIS MOTHER EVERY DAY

– 케빈이 저지른 짓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다.

– 하지만 감독도, 케빈을 연기한 에즈라 밀러도 케빈을 싸이코패스라던가 악의 씨앗으로 본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 또한 에즈라 밀러는 케빈을 ‘어머니를 매일 볼 수 있지만 어머니가 없는 아이’라고 표현한다.

– 이 영화에서 가장 의견이 분분한 논쟁거리는 케빈이 그렇게 자란 것에 에바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냐, 하는 것이다.

– 자유로운 여행가였던 에바에게 케빈은 원치 않았던 임신, 원치 않았던 아이. – 에바는 임신과 출산의 기뿜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며, 케빈은 그녀가 자신에게 애정이 없다는 걸 알기라도 하듯 미친듯이 울어댐. – 에바에게는 케빈의 울음소리보다 공사장의 소음이 오히려 더 낫게 느껴질 정도.

– “엄마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행복했어. 알고 있니? 이제 엄마는 매일 아침 소원을 빌어. ‘여기가 프랑스였으면 좋겠다.'”

– 에바와의 신경전으로 숫자를 거침없이 외워대는 케빈. 그걸 본 에바는 케빈에게 칭찬 대신 케빈이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내밈. – 에바는 케빈을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의 경쟁상대로 대하고 있음. – 비뚤어진 아이가 엄마를 경쟁상대로 대하는 것과 한 아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을 경쟁상대로 보는 것을 같다고 볼 수 있을까.

–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는 달라. 엄마도 나한테 익숙하잖아.” “그래.” – 에바는 거짓말으로라도 ‘아니야, 엄마는 케빈을 좋아해’라고는 절대 하지 않음

– “코트는 왜 안 가져왔어? 더 불편해지고 싶은가 봐.” “불편해? 자기 엄마랑 있는데?” – 왜 가져오지 않았냐고 하기 전에 미리 케빈에게 날이 추우니 외투를 챙기라고 말해줄 순 없었나? – 거기다 케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에바는 그 이유가 ‘불편함’이라고 먼저 단정짓는다. – 하지만 사실 그 불편함은 케빈이 아니라 에바 본인이 느끼고 있던 감정이 아니었을까. 에바의 말에 반문하는 케빈은 이미 에바의 마음 속을 읽은 듯 함.

– 미니골프가 케빈의 승리로 끝이 난 후, 케빈은 무언가를 바라는 듯이 에바를 쳐다본다. 돌아온 에바의 대답은 “그래, 네가 이겼네.” 뿐. – 에바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케빈에게 등을 돌리고, 케빈은 그런 에바를 쳐다보며 잠시 그 자리에 멈춰있다가 에바를 따라감. – 숫자세기와 마찬가지로 에바는 ‘이 게임 잘하는 구나’ 같은 칭찬은 물론이고 ‘한 번 더 할까? 재밌었니?’ 이런 같은 소리도 절대 안 함. – 아들과의 오붓한 시간이 아니라 부모의 ‘의무를 수행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 셀리아의 눈에 리퀴드 플러머가 들어간 사고의 원인을 에바는 케빈의 짓이라고 단정지음. – 하지만 영화 어디에도 케빈이 그 플러머에 가까이 간 장면은 나오지 않으며, 플러머를 만지고 안전장치를 만진 유일한 사람은 에바다. – 그리고 마찬가지로 에바가 플러머를 찬장에 넣고 다시 안전장치를 채우는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 영화는 에바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그에 따라 관객들도 케빈을 의심하기 쉽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음. – 그러나 원작 소설에는 이 모든 의심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구절이 실려있다. [ “그래, 그 애가 지켜봐야했지. 하지만 그때 셀리아는 욕실에 있었고 케빈은 문이 닫혀 있었다고 했어.” – (프랭클린) ] [ “중요한 건 케빈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거야. 셀리아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을 때 케빈은 뛰쳐나갔다고 했어. 현장을 목격한 순간, 그 앤 동생 얼굴에 물을 뿌리고 최선을 다해 눈을 씻었어. 내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기도 전에, 119에 전화를 해서 앰뷸런스를 불렀다고. 그거야말로 적절한 조치였어, 완벽한 순서였다고, 최고야, 최고!” – (프랭클린) ] [ 딱 한 번 셀리아에게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물었지. “언제 다쳤어? 어쩌다 그렇게 된거야?” ··· “내가 눈에 뭘 넣어서 케빈 오빠가 닦아줬어요.” / 그게 그 애가 말한 전부였어. ] –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에바가 플러머를 정리하는 것을 잊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실리아가 혼자 플러머를 눈에 넣었으며 케빈은 최선을 다해 피해를 줄이려고 했을 수도 있고, 케빈이 실리아에게 거짓말을 시켰을 수도 있다.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사고가 케빈의 짓이라는 에바의 주장을 백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에바와 마찬가지로 면회를 온 듯한 또 다른 여성은 에바의 옆에서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에바는 무표정 그 자체. – 똑같이 자식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어머니들이지만 두 사람의 태도는 매우 상반됨.

– 이 모든 게 에바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여자라면 당연히 모성애가 있어야 한다, 같은 소리는 이제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할 구시대적 사고이고, 케빈 또한 도저히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도록 굴었으니 정상적인 애착 관계가 형성될 수가 없었을 것.

– 그러니까, 모두 에바 잘못이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님. 마찬가지로 케빈만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도 별로.

– 그냥 단순하게 “케빈이 싸이코패스 내지는 소시오패스라서.”라는 이유말고 좀 더 자세하고 정당한 원인을 찾고 싶었음….

So, Why?

– 그래서. 대체 왜 그랬는데. 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케빈은 에바를 너무 사랑했다.’일 것이다.

–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에바의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랑이 집착과 광기로 변한 것.

– 에바는 본래 여행가였고,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게 된 것에 늘 우울해했다.

– 그리고 그걸 케빈에게 직접 표현하기도 함. (“엄마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행복했어.”)

– 그래서일까 케빈은 에바가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을 보일 때마다 아주 격렬히 반응함.

– 방을 ‘지도’로 가득히 메우자 그곳에 물감을 뿌렸고, 이국적인 노래를 틀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끄라고 종용한다.

– 그리고 케빈이 ‘그 날’을 준비하게 된 기폭제. 부모님의 이혼.

– 이혼을 얘기하는 에바와 프랭클린의 대화를 들은 케빈의 눈빛은 영화에서 거의 처음으로 불안해하며 어딘가 상처 입은 표정을 짓는다.

– 학살을 저지른 범죄자 치고는 너무도 순순히 걸어나와 포박 당할 자세를 취하면서, 케빈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살펴봄.

– 그리고 케빈의 시선과 같은 앵글이 사람들을 비추다 에바에게 고정되는 순간, 케빈은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보란듯이 미소를 지음.

– 경찰차 보넷에 고개를 처박혀 체포되는 와중에도 그는 마치 안도감을 느끼는 듯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기까지 함.

– 그리고 수송차량에 올라타고 나서도 끝까지 에바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음.

– 결국 이 모든 것은 에바가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한 편의 자극적인 쇼라고 할 수 있음.

– 검거 된 후 찍은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보는 게 뭘까? ··· 나같은 사람들이야.”

– 이 말은 결국 에바를 위해 케빈이 준비한 쇼의 목적과도 일맥상통함

– ‘이렇게 자극적인 쇼를 보여주는데, 이래도 날 떠날래?’

– ‘왜 그랬니’라는 에바의 질문에 영화 속 케빈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고 말함.

–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 에바는 케빈에게 왜 자신은 죽이지 않았냐고 묻고, 케빈은 명확한 답을 내려준다.

[ “진짜 공연에선 자신의 관객에게 활을 쏘진 않으니까.” ]

-영화에선 이 대사가 생략되어서 아쉽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엔 그 대사가 빠진 덕분에 케빈이 조금 덜 미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던 거 같아서 오히려 잘 뺐다는 생각도 듦. 에바와 케빈의 잘잘못에 조금 균형이 맞아졌다고 할까 음…

– 대신 강당에 서서 무대를 마친 공연가의 모습으로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케빈으로 이 대사를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이다….

– 마지막 장면에서 에바는 케빈에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고, 케빈은 자기가 그런 적이 있었냐고 대답함.

– 한 번도 행복하지 못했던 아이가 어떻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 케빈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원작 구절 한 가지 더. 에바가 케빈과의 면회시간에 그가 손에 쥐고 만지작 거리는 구슬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게 실리아의 의안이었음.

[ “다신 꺼내지 마.” 내가 목쉰 소리로 말했어. “그럼 다신 여기 오지 않을 거야. 절대로. 내 말 듣고 있어?”

내가 진심으로 말하는 걸 그 애도 알았던 것 같아. 내 말은 그 애한테 표면상 지독하게 성가신 ‘아줌마’의 방문을 떼어낼 수 있는 부적을 제공한 샘이었는데, 그날 이후 셀리아의 유리 눈이 내 눈 앞에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게 된 건 내 생각에, 모든 것을 감안할 때, 내가 오는 걸 그 애가 좋아한다는 의미로밖에 해석할 수 없어. ]

ETC

– 어디 넣어야 할지 모르겠는 것들…☆

– 포스터 문구가 비춰지는 차이 [is for lovers] ▶ [or lovers]

– 에바가 불안해 할 때마다 스프링쿨러 소리가 깔림

– 케빈이 입은 작은 옷들은 모두 어렸을 때 케빈이 입던 옷을 그대로 입은 것.

– 실리아에게 음료수를 가져다달라고 말한 케빈은 에바를 슬쩍 보고 실리아를 저능아라고 부름. (케빈은 관심이 고파요..)

– 벽에 걸린 광대 액자들. 그리고 광대는 언제나 인위적으로 그려낸 표정만 하고 있는 캐릭터.

– 케빈이 입 속에 넣고 씹어대는 리치는 마치 사람의 눈알을 떠올리게 함.

– 에바의 잘못으로 케빈의 팔이 부러졌을 때, 에바는 케빈이 자신의 잘못을 프랭클린에게 일러 바칠 것을 두려워하지만 예상외로 케빈은 에바의 잘못을 덮어줌.

– 하지만 이건 결국 케빈이 에바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순간이 됨.

– 케빈에게 약점을 잡힌 에바는 케빈의 눈치를 보고, 케빈도 그 이후 흉터를 만지작 거리며 에바를 압박함.

항상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이상 영알못의 제멋대로 해석이었읍니다…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또 새로운 게 자꾸 보이는 영화… 몇 가지 빼먹었던 것들 더 추가 (16.09.25)

-초반부 에바가 집에 돌아왔을 때 얼굴에 묻은 페인트. 마치 어딘가에 베인 상처의 흉터처럼 인위적으로 묻어있다

-그리고 중반부 페인트가 묻어있던 바로 그 위치에 겹쳐지는 케빈의 얼굴

-에바에게 절대 없어지지 않는 흉터처럼 남은 케빈이라는 걸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함

-정말 짧게 지나가는 장면들이라 지나치기 쉬운 부분..!!!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지도 않는 사이처럼 보이는데 케빈은 슬쩍 에바를 쳐다본다.

-아직도 여전히 에바의 관심을 갈구하는 케빈…ㅠㅠㅠㅠ아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앤데 이 장면은 알고나니까 에바 눈치 보는 거 같아서 좀 맘이 아팠다..

그 외에

-첫번째 캡쳐 묶음에 나온 잼으로 뒤덮인 식빵. 단순히 빨간 색감을 강조하려는 용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케빈이 에바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잼을 더는 순간에 에바가 말을 걸어서, 오랜만에 엄마가 저에게 말을 걸어줬으니까, 얘기를 들어보려고 그렇게 홍수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아서…

-나는 케빈이 타고난 건 싸이코패스적인 성격이 아니라 사람의 진심을 구분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게 아니고 자라면서 습득한 거든 뭐든 그 능력은 확실히 있는 거 같다. 에바가 저를 진심으로 대할 때와 ‘가족의 흉내를 내려 할 때’의 반응이 확연하게 다르다.

-저 잼 담을 때도 에바가 그날 케빈이 자기 포스터를 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조금 마음을 연 상태에서 같이 시간 보내자고 제안 했고 그래서 그 제안에는 응한다. 하지만 그 이후 시간 보내면서 위에서 설명한 대로 지금 너무너무 불편한데 엄마라는 이름 아래 의무적으로 하는 거란 게 눈에 보이는 순간 다시 비뚤어지는 모습들 보이는 것도 다 그런 맥락에서라고 생각함.

-또 나중에 발견한 건데 케빈 어렸을 때 에바가 케빈 달래주는 자세랑 프랭클린이 케빈 안는 자세랑 달라도 너무 다르더라…숨이 넘어가라 우는 자기를 단 한 번도 품에 안아주지 않고 어색하게 몸만 잡고 둥둥 들어올기만 하는 에바였으니 그때부터 누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지 실감하며 자랐을 거 같음

-그래서 왜 그랬니? 하는 질문의 답변은 ‘에바는 케빈의 관객이기 때문에’라는 것 외에 에즈라가 해석한 내용을 덧붙이면 딱일 거 같다. 캐릭터 해석 정말 잘하는 배우여서 그런지 얘기 들어보니까 정말 머리가 번쩍 하면서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옴.

-에즈라가 인터뷰 하면서 케빈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 하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잘못된 정당화. 이 말을 듣고 나니까 아귀가 착착 맞는 거다. 케빈은 자기가 겪은 일들에 계속해서 분노하면서 이게 맞는 일이야, 엄마는 이런 일을 겪어도 마땅해, 하는 생각으로 일을 저지렀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예전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이 마지막 대사를 놓고 에즈라 밀러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케빈은 모르겠다고 대답했지만, 나는 걔가 잘 알고 있었다고 확신해요.’

-그러니까 전에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면서 이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보니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음을 케빈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어디 케빈이 나의 잘못이었다고 말할 놈인가? 절대 아니지. 그러니 에바에겐 그저 잘 모르겠다고만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선 확실히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올바른 판단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걸 인정하지도 못하는 지독하게 어리석은 어린 애 같은 모습.

-아버지는 왜 죽였는가,에 대한 대답도 에즈라의 답변에서 힌트를 얻었다. 케빈은 처음엔 프랭클린에게 동지애를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너무 쉽게 조종되는 아버지한테 분노하게 된다. 아버지가 얼마나 쉽게 속아넘어가는지를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증명하면서 아버지가 사실은 가족들에게 정말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아니란 걸 확인하고 경멸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위에 빼먹은 노래가 딱 하나 있는데, 다른 노래 가사들은 다 이유를 알겠는데 그 곡만 이유를 몰랐었기 때문이다ㅎ… 에바가 케빈 면회하러 가는 길에 나오는 노래 중에 “우리 캡틴의 눈이 먼 걸 알았다면 ~~했을텐데” 하는 가사가 나옴. 아버지가 사실은 가족을 제대로 살펴보는 게 아니라는 지점에서 생각해보면 저 가사가 그냥 나온 건 아닌 걱 확실하다. 워낙 오에스티도 딱 들어맞게 쓰는 연출이니까 저 가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겠지.. 하 영화 정말 최고야

유정의 네버랜드 ::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리뷰 : 부모와 자식의 ‘당연스러운’ 관계에 낯선 질문을 던지는 한 가족의 비극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감독 : 린 램지

배우 : 틸다 스윈튼(에바), 이즈라 밀러(케빈), 존 C. 레일리(프랭클린)

장르 : 드라마, 스릴러, 서스펜스

상영시간 : 112분

별점 : ★★★★☆ (3.75)

한줄 평가 : 모성애란 무엇인가? 부모와 자식의 ‘당연스러운’ 관계에 낯선 질문을 던지는 한 가족의 비극사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리이며, 특히 아이를 10달동안 뱃속에 품었던 엄마의 모성애는 더 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일까? 모성애는 어느 순간에도 발휘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일까? 그 어떤 자식이라고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엄마는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가?

악인은 만들어지는 것일까 타고나는 것일까?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자식을 사랑하지 못했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증오한 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답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케빈에 대하여

영화의 주인공은 엄마 Eva와 아들 Kevin 두 사람이다. 이 영화는 시작부부터 스페인 토마토 축제의 강렬한 붉은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영화 내내 두 주인공의 불편한 어긋남과 스트레스는 기묘한 배경음악과 붉은색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Eva는 자유와 여행을 즐기는 여행가였지만 스페인 토마토 축제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의도치 않게 임신을 하게 된다. 애 아빠이자 남편이 된 프랭클린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이것저것 물건을 사오는 등 Eva의 임신에 행복해하지만, Eva는 자신의 임신이 낯설고 떨떠름하다.

Eva는 아들 Kevin을 낳았지만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아들 Kevin. 엄마를 악의어린 표정으로 노려보며, 케빈의 마음을 열어보려는 엄마의 그 어떤 시도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케빈을 사랑하지 못한다.

1.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모성애

최근 산후우울증으로 자녀를 학대하는 엄마들의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듣는데, 아이가 개인적인 고통이나 스트레스의 기억과 연결되면 아이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아이들을 사랑하지 못하거나 학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케빈을 낳은 에바의 표정을 보며 그 기사가 떠올랐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치 않았던 임신, 그리고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출산.

나는 여기서부터 이 두 母子의 비극이 잉태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Eva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엄마라는 존재로서 가져야 하는 모성애가 상충되는 순간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먼저 한 인간으로서의 Eva를 보자. Eva는 여행을 사랑했지만, 아이를 가진 후로 엄마와 아내로서의 의무 때문에 이제는 자유로이 여행을 다니지 못하게 된다. 또 아이를 위해 좋다는 남편의 주장에 못 이겨 사랑하는 뉴욕을 뒤로 하고 한적한 교외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Eva로서는 아이가 자신의 커리어와 사랑하는 터전을 빼앗은 셈이다.

또 그렇게 힘들게 낳은 아이는 자신과 전혀 맞는 것 같지 않다. 아무리 안고 달래도 내내 울면서 아빠가 오자마자 울음을 뚝 그친다. 때문에 남편 프랭클린은 케빈이 얼마나 까다롭고 힘든 아이인지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함께 놀이를 하려고 해도 전혀 엄마인 자신에게는 반응을 해주지 않는다. 자라면서는 항상 뾰로통한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이의 적의에, Eva는 화를 참기 힘들 때도 있다.

갓난아기 시절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었던 에바는 땅에 드릴을 뚫고 있는 공사판 옆에 유모차를 대고 서있기까지 했다.

아이가 울어댈 때마다 자신이 ‘엄마’로서 비난받는 것 같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그저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에 너무나도 지치고 질려 차라리 공사소음이 낫겠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스트레스였을까?

또 기저귀를 갈자마자 보란듯이 자신을 쳐다보며 또 다시 새 기저귀에 똥을 싸는 아이를, 기저귀 테이블 위에서 집어던져 케빈의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그런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도 놀란 Eva는 집으로 오는 차 안 케빈에게 사과를 하지만, 케빈은 듣는둥 마는둥한다. 하지만 정작 아빠가 왜 팔이 부러졌냐고 묻자 자신이 놀다가 실수로 부러졌다고 대답한다. Eva는 그런 케빈의 대답에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러한 장면에서, 자신이 ‘엄마’로서 부족한 사람이며 남들이 바라보는 일반적인 엄마와 자식 관계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싫은 Eva의 두려움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나중에 함께 얘기를 할 때 친구들이 답답했던 것이, 남편이 믿어주지 않으면 CCTV 등으로 녹화를 해서라도 케빈의 행동을 남편에게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면 남편과 상의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Eva는 남편에게 자신이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라는 것을 인정하고 드러내기 싫었던 것이고, 또 그런 자신에 대해 다정한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Eva가 남편에게 케빈에 대해 어렵게 말을 꺼낼 때마다, 남편 프랭클린은 ‘사내애들은 다 그래.’ ‘애들은 그러면서 크는 거야. 그게 애들이지.’ 라며 Eva의 말에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프랭클린의 시선은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애들이 영악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날 때부터 사악한 아이는 없다, 사고치는 짓궂은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가 한둘인가 하는 생각. 또 설사 아이가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는 자식을 사랑해야한다는 당연스러운 모성애에 대한 관념이 그것이다.

Eva 자신조차도 그러한 ‘모성애’에 대한 관념이 익숙했기 때문에, 케빈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중에 낳은 딸 실리아도 의도치 않은 임신으로 가진 아이였지만, Eva는 케빈과는 달리 실리아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대해서 실리아가 케빈과는 (엄마에 대한) 행동 자체가 다르기도 했지만, ‘정상적인’ 부모 자식 관계에서 실리아를 통해 자신이 제대로된 엄마임을 확인받고 보상받았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케빈에게 Eva는 스스로가 늘 부족한 엄마였지만(자식을 사랑하지 못하는), 실리아에게만큼은 부족하지 않은 엄마였던 것이다.

한편 늘 자신에게만 적의를 보내오는 아이에 대해, 엄마는 그럼에도 모성애를 가져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을 한결같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지 못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기방어기제가, 부모 자식 관계의 특수성 안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가?

이에 대해 나 자신도 인간으로서 케빈의 행동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엄마로서는 케빈을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 인간으로서의 Eva와 엄마로서의 Eva가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케빈을 맡은 아이들이 어찌나 비슷하게 생겼는지 사진을 보고 빵 터졌다. 엄마 EVA를 노려보는 그 기분나쁜 눈빛, 뾰로통한 표정이 한결같다. 그런데 지금보니 Eva의 표정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차가운 눈빛, 불쾌하게 다물린 입술. 두 사람의 비극은 쌍방과실이었다고 생각한다.

2. 싸이코패스 케빈- 타고난 악인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악인인가?

케빈이 싸이코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케빈은 아빠와 여동생 실리아를 집에서 살해한 후, 학교에 자전거용 자물쇠를 걸어잠그고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화살을 쏘아 죽였다. 범행 후 케빈은 마치 올림픽 선수가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답례하듯 우아하게 활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경찰이 자물쇠를 부쉈을 때도 여유만만하게 미소를 띄고 걸어나온다. 자신의 범행이나 행동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고통을 보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모든 싸이코패스가 악인은 아니듯, 나는 싸이코패스인 케빈을 범죄자이자 악인으로 만든 데에는 Eva와 케빈의 관계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Eva의 임신이 원하지 않은 것이었고 임신을 반기지 않았다는 것은 영화에서 여러 장면을 통해 나타난다. 산부들이 다니는 요가 클래스의 탈의실에서, 다른 엄마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즐겁게 배를 쓰다듬으며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Eva는 머뭇거리다 결국 짐을 싸서 나가버린다.

아이가 자라면서도 Eva는 아이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엄마에게만 비협조적이고 악의적인 눈빛을 보내는 케빈을 결국 사랑하지는 못한다.

중간에 이런 장면이 나오는데, 기저귀를 차고 앉아있는 케빈을 향해 스트레스가 가득 차 있던 Eva는 ‘네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더 행복했다. 엄마는 너만 아니었다면 지금 프랑스에 있었을 거고,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한다. 때마침 퇴근해서 들어왔던 남편이 그 장면을 보고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방을 나가버린다.

영화를 보며 처음에는 Eva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Eva는 그저 부모로서 해야하는 의무적인 보살핌을 줬을 뿐, 아기가 자라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Eva는 케빈이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케빈에게 지속적인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 영화를 보면 갓난아이인 케빈이 울어댈 때도 팔을 쭉 뻗어 아이를 흔들 뿐, 아기를 안아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아이를 앞에 앉혀두고 너만 없었다면 엄마는 더 행복했을 거라는 말도 한다.

유아교육학을 전공한 친구가 했던 말이 있다. 아이에게 있어 가장 큰 불행은 자신은 부모가 원하지 않는 존재라는 말을 직접 듣는 거라고.

케빈은 Eva가 그 말을 하기 전부터, 자신이 잉태된 그 순간부터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부정당하고 외면당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누가 자신을 사랑하고 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지를 아는 존재이다. 뱃속에서부터 자신을 반기지 않고 사랑하지도 못했던 엄마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아기를 사랑하지 않은 엄마, 엄마에게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은 아이. 둘의 어긋나고 비틀린 관계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누구의 잘못이 먼저인지를 따지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에게 익숙한거야. ” -케빈

케빈은 엄마 Eva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에게 익숙해져있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동생 실리아가 태어났을 때 케빈의 반응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사랑스럽다는 듯 아기를 안고 어르는 엄마를 지켜보던 케빈은 어항에 손을 담가 일부러 물을 아기에게 뿌린다. 엄마 Eva는 그런 케빈을 야단친다. 맛있는 과자를 먹자며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를 달래주는 것은 아빠 프랭클린이다.

케빈은 엄마가 대하는 것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차라리 비교대상이 없었다면 엄마가 ‘나에게만’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동생 실리아에게 Eva는 모성애를 보이며, 그로부터 케빈이 어떠한 정서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부분이다. 평범하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 아래에서도, 동생이 태어나면 첫째가 일부러 더 아기짓을 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고를 치는 행동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동생으로 인해 자신이 받던 사랑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물며 케빈은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데에 반해 실리아는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의 사랑을 자연스레 받는다.

실리아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케빈은 앓아 눕게 되는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아파서 늘어져있는 케빈을 안고 침대로 데려간 엄마에게 기대 누워, 엄마가 읽어주는 로빈훗 동화책을 행복하게 듣고, 아빠가 퇴근해서 찾아오자 아빠에게 적의를 보이며 나가라고 한다. 엄마는 놀라지만 한편으로는 케빈이 드디어 마음을 여는가 싶어 행복하다.

그러나 다음날 케빈이 낫자마자 케빈의 태도는 도로 돌아오고 엄마 Eva는 허탈함과 실망을 느껴버린다.

이 장면에 대해, 내 친구들은 케빈이 엄마를 더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엄마를 좋아한 척하다 다시 원래 태도로 돌아간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은 몸이 아플 때 날을 세웠던 방어기제를 내리고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게 된다. 아픈 케빈은 ‘나는 엄마와 행복하지 않다’는 날선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사실은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본연의 솔직한 욕구에 충실했던 것이다.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보살피는 엄마에게 기대 엄마의 사랑을 즐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실리아가 태어났다고 해서 자신이 버림받지 않는다는 확신도 필요했던 것 같다.

세번째로, Eva가 이사온 집 자신의 방을 세계지도로 꾸몄을 때 케빈이 지도를 싫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 장면 역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었던 케빈의 내면이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va가 동경의 눈빛으로 자신의 방을 채운 지도를 바라볼 때, 케빈이 구불구불한 선 따위가 뭐가 좋냐며, 바보 같다고 한다. Eva가 잠시 전화를 받으려고 자리를 비웠다 다시 돌아오자, 방은 케빈이 물감을 채운 물총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Eva는 화를 못 이겨 케빈의 앞에서 물총을 발로 밟아 부숴버린다.

이 장면도 케빈이 엄마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씬의 하나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케빈에게 있어 ‘구불구불한 재미없는 선’은 엄마의 애정을 빼앗아 가버린 어떤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늘 자유와 여행을 동경한 엄마, 그리고 너만 아니었으면 엄마는 지금쯤 프랑스에 가서 행복했을 거라던 말에서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았고 나보다 여행을 더 사랑한다고 느껴 엄마가 여해을 그리워하는 것 자체를 싫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마지막으로 금요일 데이트 장면도 마찬가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Eva는 16살 케빈과 함께 외출을 하는데, 미니골프를 치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케빈은 한겨울에 반팔 차림으로 나오는 삐딱한 행동으로 처음부터 Eva의 심기를 거스른다. 골프장 프론트에서 등록을 하는 도중, Eva는 뒤쪽의 벤치에 앉아 정크푸드를 먹는 사람들에 대해 차갑게 험담을 한다.

“살 찐 사람들이 물만 마셔도 살찐다는 말은 다 핑계야. 저것봐. 저렇게 좋지 않은 음식을 계속해서 먹어대면서 살이 찐다고 투덜대지. 그냥 저 사람들은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게으른 것 뿐이야.”

그 말에 대해 케빈은 ‘가끔 엄마, 남에 대해서 굉장히 막말하는 거 아느냐’고 묻고 Eva는 너도 나에게 막말을 하지 않느냐고 차갑게 대꾸한다. 그 후 둘은 서먹한 분위기에서 골프 한 게임을 치고 케빈이 공을 홀에 넣자마자 네가 이겼다며 깃발을 꽂아버리고는 먼저 차로 돌아가버린다.

이 장면에서 나는 Eva가 케빈의 적대적인 배척에 의한 피해자만은 아니라는 것과, 케빈에게는 늘 엄마가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막말을 하는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Eva는 너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훨씬 더 행복했단 말을 어린 케빈에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도 비록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지언정,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케빈이 엄마에게 자신은 편한 존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케빈이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의무적인 사랑이 아닌, 가슴에서부터 끌어오르는 ‘모성애’를 받지 못했다는 부분, 케빈이 엄마에게 애정의 부산물이 아닌 짐처럼 느껴졌다는 부분, 또 실리아와 케빈을 대하는 엄마의 사랑이 달랐고 그것을 케빈이 목도하며 자랐다는 점 등 엄마 Eva의 정서적 학대와 외면이 케빈을 악인 범죄자로 만드는 데 어느정도 일조를 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케빈의 범죄와 체포를 보고 돌아오는 Eva를 비춰주며, 이 노래가 나오는데 가사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I’m nobody’s child, I’m nobody’s child

I’m like a flower just growing wild

No mommy’s kisses and no daddy’s smile

Nobody wants me, I’m nobody’s child

나는 이 노래야말로 케빈의 주제곡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에요. 나는 야생에서 자라나는 꽃과 같죠. 엄마의 키스도, 아빠의 미소도 없어요.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고, 나는 누구의 아이도 아니에요.

(가사 전체 : http://lyrics.wikia.com/wiki/Lonnie_Donegan:Nobody’s_Child 참고)

영화를 보다보면 케빈이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나온다. 실리아가 한쪽 눈을 실명한 사건으로 결국 소원해진 프랭클린과 Eva가 ‘일단 학기가 끝난 후 (이혼을) 해치워버리자’는 이야기를 케빈이 오해한 것이다.

두 부부가 케빈에게 제대로 해명을 했더라면 며칠 후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케빈은 부모가 자신을 ‘해치울’ 거라고 오해하고, 버림받기 전에 버리겠다는 결심으로 범행을 계획했던 것 같다.

케빈이 아빠 프랭클린을 사랑했을까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이 없다. 아빠와 잘 어울리고 아빠 앞에서는 얌전하고 착한 아들 노릇을 했지만, 그것이 엄마를 약올리기 위한 쇼였을까, 아니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빠에게 일말의 애정 정도는 존재했을까?

아빠를 사랑했다면,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크지는 않았을까?

싸이코패스라고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에 공감을 못하는 것일 뿐, 자신의 아픔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케빈이 싸이코패스라면 얼추 들어맞는 해석이 아닐까? 사랑했던 아들에게 배신당해 죽는 아빠의 고통보다, 자신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고통에 집중해서 버림받기 전에 버린다는 결심으로 행한 끔찍한 범행.

나는 저 장면에서도 케빈이 여전히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배신당했다고 생각해 모든 것을 끝장내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3. 모성애는 당연한 순리이며 의무인가?

하지만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늘 비협조적이고 보란듯 자신만을 싫어하는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모성애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일까?

케빈은 엄마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증오하는 엄마를 뺀 모든 대상을 죽였다. 엄마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 것이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이, 그리고 무고한 학생들을 죽임으로써 엄마 Eva는 홀로 마을 사람들의 적의를 감당해내야 했다. 길을 가다 뺨을 맞기도 하고, 집과 차에는 새빨간 페인트가 뿌려져있기도 하다. 죄인처럼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다가도 사람을 피해 도망다니고, 일부러 깨놓은 계란을 사가서 달걀껍질이 씹혀 나오는 스크램블 에그를 의무처럼 씹어 삼킨다. 그녀가 사랑한 모든 것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할만큼, Eva가 잘못한 것일까? 엄마로서 자녀에게 애정을 주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큰 죄였을까?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지만, 과연 사랑이 이성으로 조절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만약 부모가 자식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부모의 원죄가 되는 것인가?

극한상황에서 모성애와 자기보호본능이 충돌할 때 과연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한 끔찍하면서도 유명한 실험이 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가 유태인 수용소의 엄마와 아들에 대해 한 실험과 일본 731부대의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첫번째 나치의 실험에서 나치는 바닥에 철판을 깔고 사방에 유리를 두른 통 안에 자신의 아기를 안은 유태인 여성을 맨발로 들여보냈다. 그리곤 철판바닥 아래에 서서히 열을 가하면 철판이 달아올라 발바닥이 짓무르다 못해 타들어간다. 견딜 수 없이 방이 뜨거워지자 결국 엄마가 아이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섰다고 한다.

두번째 일본의 731부대 실험에서도 아이와 엄마를 한 방에 넣고 계속해서 물을 채워넣었을 때, 결국 엄마가 아이를 밟고 올라서 숨을 쉬었다.

끔찍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모성애가 자기보호본능을 이기지 못했다는 결과이다.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Eva에게, 갑작스러운 임신은 자신의 세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큰 사건이었고 그러한 상실의 아픔으로 모성애를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Eva

가 케빈을 사랑할 수 없었다고 해서 케빈을 방치하거나 신체적으로 학대하지도 않았다. Eva는 나름대로 케빈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에바의 노력이 자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모성애가 아닌 것일까? 모성애의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가족의 비극사를 지켜보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부모 자식 관계와, 모성애라는 것에 대해 낯선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의문을 던져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케빈이 싸이코패스가 아니었다면 더 신선하고 좋았을 것 같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와 물음표가 극대화되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케빈은 “그곳에서는 행복하냐”는 엄마의 질문에, “내가 언제는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하고 대답했었다. 엄마와의 어긋난 관계속에서 케빈 역시 순수히 가해자로서 남을 수만은 없었다는 뜻이다. 케빈도, Eva도 모두가 불행했다.

“왜 그랬냐”는 마지막 질문에, 이제 곧 성인 교도소로 이감되는 케빈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금까지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라고 대답한다. 이 결말에 대해 나도 아직은 명확히 해석이 되지는 않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두 모자의 관계가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품었다. 엄마 Eva는 케빈의 옷을 정성스레 빨고 다려 옷장에 넣어놓고, 케빈이 다시 돌아올 것처럼 침구를 깔끔하게 정돈한다. 케빈 역시 그동안 몇 번의 면회 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눈을 들어 엄마와 드디어 마주 본다. 그것은 Eva도 마찬가지다. 케빈이 열 손가락 손톱을 모두 물어뜯을 때까지 어색하게 비껴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서는 어색하게 양 팔을 들어 케빈을 꽉 끌어안는다. 두 모자 사이에서 처음으로 감정이 통한 부분이라고, 개인적으로 해석했다.

케빈이 출소한 후에는 케빈도, 엄마 Eva도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드디어 마음을 연 케빈이 Nobody’s child가 아닌 Eva’s child로서, Eva는 Kevin’s mother로서, 드디어 서로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Good day, Kevin. Be happy, Eva.

+) 영화에 대한 해석과 분석이 잘 되어있는 글을 발견해서 링크합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1.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best&no=949996

2. http://blog.naver.com/willbefree/140164998971

케빈 에 대하여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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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당신의 아들로 살아남는 것, 케빈에 대하여 [영화]

당신의 아들로 살아남는 것

‘케빈에 대하여’는 모성애를 갖고 있지 않은 엄마가 사이코패스 성향을 타고난 아이를 기르는 과정을 어머니의 시각에서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의 평론은 대부분 ‘모성애란 과연 타고 나는 감정인가’에 주목한다. 그러나 나는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부여되는 모든 감정을 떠나서 온전히 케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오로지 어머니인 에바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원 제목인, ‘We need to talk about Kevin’처럼 우리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타고난 아들이 모성애를 갖고 있지 않은 엄마로부터 살아남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빈을 사랑하고자 한 에바의 노력은 모성애인가

에바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행가였다. 즉, 아이를 가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케빈과 에바의 관계에 관심을 가질 만큼 섬세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바는 케빈을 임신한 내내 우울한 감정을 느끼며 출산의 순간까지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유난히 잦았던 케빈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공사장의 소음에 유모차를 맡기며 진정한 편안함을 느끼던 에바의 얼굴에는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스스로 고통을 가하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케빈은 나이가 들수록 더 이상한 짓을 일삼았다.

에바가 방에 건 세계지도를 엉망으로 망가뜨리고, 배변 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척하고, 더 나아가서는 에바가 잠시도 편안히 있지 못하게 주위를 맴돌며 괴롭힌다. 에바는 그런 케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진심을 담아 안아주지는 못했다.

케빈이 사고를 칠 때마다 뒷수습을 하고, 아들을 마주하기 전 화내지 말자며 심호흡을 하는 에바의 노력은 또 다른 형태의 모성애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대로 모성애는 타고난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에바는 그 감정을 최대한으로 흉내 내려고 애썼다.

물론 케빈은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케빈은 선천적인 사이코패스가 맞는가

분명 케빈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나는 케빈이 선천적 사이코패스가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으로 인해 내면의 가학성이 극대화된 것이라고 보았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케빈의 모든 일탈과 범죄는 어머니를 향해 있었다. 에바가 사랑하지 않는 것에는 케빈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만약 케빈이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면, 일반적인 아이들은 우울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가족과 단절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다만 케빈은 남들과 다르게 죄책감과 인간성이 결여된 아이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본연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는 어떤 잔혹한 짓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을 바라봐달라는 엇나간 절규였다.

케빈은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을 사랑했는가

케빈은 에바를 사랑했다. 그러나 에바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케빈이 바라보는 것은 항상 에바였다.

케빈의 친절함은 당신이 나의 관심 범위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에바의 삶을 망가뜨리고자 더욱 최선을 다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케빈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사랑이 역설적으로 증오의 기반이 된 것이다.

케빈은 여동생과 아버지조차 사랑하지 않았다. 여동생은 에바의 관심을 끌기 위한 괴롭힘의 도구였고, 아버지는 에바에게 당신도 사랑받지 못하는 기분을 느껴보라는 비교의 대상이었다.

이 진실은 마지막 장면에서 케빈이 에바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을 모두 살해한 것에서 드러난다. 케빈의 대량 학살극은 에바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을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터져 나온 자기혐오의 분출이었다.

케빈과 어머니의 포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홀로 남겨진 에바는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 동네 주민들에게 살인자의 어머니라는 욕설을 듣고도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정상적인 관계에서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듯 지속적으로 수감된 케빈을 찾아간다.

과연 케빈이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가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길 바랐을까, 혹은 조금이라도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맞았다고 확인하고 싶었을까.

“나는 너에게 묻고 싶단다. 왜, 대체 왜 그랬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겠어요.”

분명한 것은 에바는 비로소 케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책임감이었는지 두 사람 모두 알 수 없었지만, 에바는 처음으로 케빈에게 물었다. 그때서야 케빈은 에바에게 두려움에 가까운 표정 변화를 보인다. 에바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또 간절히 애원해도 볼 수 없었던 감정의 움직임이었다.

두 사람은 그리고 말없이 포옹한다. 에바는 케빈에게 다가갔고 케빈은 반항하지 않았다. 면회실을 나오는 에바의 얼굴은 처음 케빈을 마주했을 때와 같았다.

‘나는 이 장면을 케빈은 결국 자신의 모든 행동이 세상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에바를 겨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이자, 에바는 스스로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만들어진 모성애라는 책임감으로 케빈을 받아들일 것을 결심한 순간이라고 해석했다.’

케빈이 출소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절대 정상적인 모자 관계를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어머니와 아들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둘의 결말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모성애라는 의무감과 가족이라는 족쇄 안에서 보편성을 따라가고자 노력했던 시간의 비극이었을 뿐이다.

결국 남겨진 것은 둘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여운이 남으면서도 뒷이야기를 절대 알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케빈을 사랑했던 모든 것은 사라지고 케빈이 사랑했던 것만 남았다. 에바가 사랑했던 모든 것은 죽었고 에바를 사랑했던 것만 생존했다.

나는 이 영화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무책임하다고 평가받는 아버지조차도, 그 누구의 탓은 없다. 단지 영화가 에바의 시각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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