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와 종 의 차이 |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조와 종의 차이점 [사료읽기] 36화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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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란 왕이 죽은 후에 후손들이 붙이는 이름이며 창업한 왕은 조(祖), 왕조를 유지한 왕은 종(宗)이 기본 관례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태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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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읽기] 36화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조와 종의 차이점
세종? 정조?
왜 어떤 왕은 -종으로 끝나고, 어떤 왕은 -조로 끝나는가?
조와 종은 어떤 경우에 붙인 것일까?
실제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참고
임민혁(2001), 조선시대 종법제하의 조, 종과 묘호 논의, 동서사학 8집
00:00 시작
1:18 태조
2:23 세조
7:58 선조
10:13 인조
12:23 영조
13:36 정조
14:41 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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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왕, 조와 종의 차이?! / 조선왕이름을 알아보자!

나라를 개국한 왕이나, 커다란 국난(임진왜란과 같은)을 극복하고 나라의 위기 넘어 정통을 다시 세운 왕에게 붙이는 묘호가 바로 조입니다. 이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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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조와 종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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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묘호, 종과 조의 차이는? 세종과 세조의 차이 뭘까

신하들은 아버지의 묘호가 세종인데 어찌 아들에게 ‘조’를 붙이냐며 반대했으나 예종은 이를 무시한 채 수양대군의 묘호를 세조로 확정시켰다. 김나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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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조와 종의 차이점 [사료읽기] 36화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조와 종의 차이점 [사료읽기] 36화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조와 종 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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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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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픽] 조선 왕 ‘조(祖)’와 ‘종(宗)’,차이는?

[뉴스픽] 조선 왕 ‘조(祖)’와 ‘종(宗)’,차이는? 뉴스픽 입력 2017.07.04 (10:34) 수정 2017.07.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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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왕의 이름을 보면 뒤에 ‘조’가 오기도 ‘종’이 오기도 하는데요. 태조? 영조? 태종? 대체 언제 ‘조’가 오고, 언제 ‘종’이 붙는 걸까요.

‘묘호’란 왕이 죽은 후에 후손들이 붙이는 이름이며 창업한 왕은 조(祖), 왕조를 유지한 왕은 종(宗)이 기본 관례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태조’입니다.

고려 왕 계보 중 ‘조’를 쓰는 건 건국왕 태조가 유일합니다. 고려 왕 계보를 보면 충렬왕 전까지 이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왕 계보는 조금 어렵습니다. 처음 관례를 어긴 묘호는 세조입니다. 훗날 세조의 묘호를 논할 때 아들인 예종이 ‘조’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왕인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그 뒤에 등극한 새로운 왕이니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세종의 정신을 이었다는 의미로 세종의 세(世)가 더해져 ‘세조’라고 결정됩니다.

선조는 원래 선종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잘 극복한 공을 인정해 광해군이 나중에 ‘선조’로 높입니다. 인조는 선왕이 광해군으로 강등되고 새로운 왕이 되었으니 새로운 왕조를 시작했다는 논리입니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는 왕권을 강화하거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대 왕이 선대 왕의 묘호를 종에서 조로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영조, 정조, 순조도 원래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지만 철종이 순종을 순조로 높이고 고종이 직계 혈통인 영종과 정종을 영조와 정조로 높입니다.

이제 조선 27대 왕의 묘호 속 ‘조’와 ‘종’, 헷갈리지 않으시겠죠?

[뉴스픽] 조선 왕 ‘조(祖)’와 ‘종(宗)’,차이는?

입력 2017-07-04 10:34:25 수정 2017-07-04 11:03:40 뉴스픽

역사 속 왕의 이름을 보면 뒤에 ‘조’가 오기도 ‘종’이 오기도 하는데요. 태조? 영조? 태종? 대체 언제 ‘조’가 오고, 언제 ‘종’이 붙는 걸까요.

‘묘호’란 왕이 죽은 후에 후손들이 붙이는 이름이며 창업한 왕은 조(祖), 왕조를 유지한 왕은 종(宗)이 기본 관례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태조’입니다.

고려 왕 계보 중 ‘조’를 쓰는 건 건국왕 태조가 유일합니다. 고려 왕 계보를 보면 충렬왕 전까지 이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왕 계보는 조금 어렵습니다. 처음 관례를 어긴 묘호는 세조입니다. 훗날 세조의 묘호를 논할 때 아들인 예종이 ‘조’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왕인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그 뒤에 등극한 새로운 왕이니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세종의 정신을 이었다는 의미로 세종의 세(世)가 더해져 ‘세조’라고 결정됩니다.

선조는 원래 선종이었지만, 임진왜란을 잘 극복한 공을 인정해 광해군이 나중에 ‘선조’로 높입니다. 인조는 선왕이 광해군으로 강등되고 새로운 왕이 되었으니 새로운 왕조를 시작했다는 논리입니다.

이렇듯 조선 시대에는 왕권을 강화하거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후대 왕이 선대 왕의 묘호를 종에서 조로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영조, 정조, 순조도 원래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지만 철종이 순종을 순조로 높이고 고종이 직계 혈통인 영종과 정종을 영조와 정조로 높입니다.

이제 조선 27대 왕의 묘호 속 ‘조’와 ‘종’, 헷갈리지 않으시겠죠?

기자 정보 디지털뉴스부 디지털뉴스부의 기사 모음

[한국사] 조선왕, 조와 종의 차이?! / 조선왕이름을 알아보자!

그렇다면 거의 종으로 끝나는 임금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텐데요. 실제로 27명의 조선왕 명칭을 살펴보면, 20명이 종의 묘호를 사용했구요 나머지 7명이 조의 묘호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당연히 태조라는 묘호로 이해가 되는데, 나머지 6분은 어떻게 조의 묘호를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사실 이 부분은 정치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했습니다. 종보다는 조라는 묘호가 더 좋아보였나봅니다. 취약한 자신의 왕권을 바로세우거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선대왕의 묘호를 종보다는 조라고 높이는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조 이후 조의 묘호를 사용한 세조! 세조는 여러분들이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가 분한 바로 그 수양대군입니다. 세조는 수양대군으로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래서 세조는 그 다음 왕인 예종이 단종 시대의 국정을 바로 잡고 나라를 다시 바로 잡았다고 하여 조라는 묘호를 붙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왕조 조와 종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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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이름을 보면 ‘조(祖)’나 ‘종(宗)’이 뒤에 붙죠,

태조, 세종, 영조, 고종 등 어느 왕에게는 ‘조’가 어느 왕에게는 ‘종’이 붙습니다.

이 ‘조’와 ‘종’이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이 ‘조’나 ‘종’이 붙는 왕들의 이름을 ‘묘호(廟號)’라고 부릅니다.

경복궁 경희루(출처 pixabay)

왕이 생전에 불리던 이름이 아닌 사후에 신하들에 의해 지정되는 이름이죠.

그러니 이 묘호는 왕의 생애나, 업적 등에 의해결정이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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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적으로는 ‘조(祖)’는 나라를 건국 했을 때 쓰이고,

그 외에는 나라를 잘 유지했다는 의미로 ‘종(宗)’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고려의 왕에서 ‘조(祖)’를 쓰는 왕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뿐이라 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왕 중에는 총 7명의 왕이 ‘조(祖)’를 사용하는데요,

조선이 7번 건국 된 것도 아닌데 왜 7명이나 ‘조(祖)’ 사용했을까요.

이성계 (출처 wikipedia)

조선 왕조에는 나라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이외에도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가 ‘조’를 묘호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 ‘조(祖)’는 사실 나라의 건국을 했을 때뿐만 아니라

큰 국난을 극복하거나, 국가의 정통을 다시 세운 왕에게도 쓰인다 합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겪은 왕인 ‘선조’, 병자호란을 겪은 ‘인조’가 ‘조(祖)’의 묘호를 가졌고,

단종의 왕의를 뺏은 ‘세조’는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조’를 사용했습니다.

이 외에 ‘순조, 영조, 정조’는 위 사례와는 다른 경우인데요,

모두 처음에는 종의 묘호를 가지고 있어 ‘순종, 영종, 정종’ 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다 왕권 강화와 정통성 확립을 위해 순조는 철종 때에

영조와 정조는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때에 ‘조’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뒤주에 갇혀 죽은 것으로 잘 알려진

뒤주

‘사도세자’ 또한 ‘조(祖)’의 묘호를 가지고 있는데요.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장헌세자라 추존하였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 고종이 ‘장조’로 추존하였다고 합니다.

고종은 또한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를 ‘문조’로 추존하기도 했습니다.

효명세자는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고종의 계승상의 문제로 익종의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의 정통성을 위해 ‘문조’로 추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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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祖)’의 묘호를 가진 것은 9명이지만

조선왕조에서 직접 왕위를 계승한 왕에서는 7명이라 볼 수 있죠.

종묘 제례악

그러니 27명의 조선 왕 중에서 이 7명과

군의 묘호를 사용하는 연산군, 광해군 2명을 제외하면

18명은 ‘종(宗)’의 묘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종(宗)’의 묘호를 가지고 있는 추존 왕도 3명이 더 있는데요.

인조의 아버지 ‘원종(元宗)’, 성종의 아버지 ‘덕종(德宗)’, 영조의 맏아들 ‘진종(眞宗)’

모두 정통성을 위해 ‘종(宗)’으로 추존된 왕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기엔 ‘조’나 ‘종’이나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이렇게 바꾸고, 추존왕을 만들고 그랬나 싶지만

당시에는 혈통이나 정통성 확보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철종’이 왕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묘호는 그저 이름 외우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뒷 이야기가 있는게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에 오류가 있거나 오타가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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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묘호, 종과 조의 차이는? 세종과 세조의 차이 뭘까

조선 왕 묘호, 종과 조의 차이는? 세종과 세조의 차이 뭘까

조선 왕의 묘호에 네티즌들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묘호란 임금이 죽은 뒤에 생전의 공덕을 기리어 붙인 이름이다. 왕이 죽고 3년상이 끝나면서 종묘에 들어갈 때, 새로 등극한 왕과 2품 이상의 대신들이 모여서 왕의 묘호를 의논해 결정했다. 흔히 아는 ‘태종’, ‘태조’, ‘세종’, ‘세조’ 등이 묘호다.

이 때 대체로 나라를 세운 업적이 있거나 국난을 극복하거나 반정을 통해 나라의 정통을 다시 세운 왕에게는 ‘조’의 묘호를, 왕위를 정통으로 계승하거나, 나라를 다스린 덕이 있거나, 선왕의 뜻을 잘 계승한 왕에게는 ‘종’의 묘효를 붙였다.

‘종’보다 ‘조’가 더 높은 것으로 인식되어, 조선 왕조 중 ‘조’의 묘호를 가진 왕은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뿐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폐위가 되어 종묘에 들어가지 못해 종과 조의 묘호를 가지지 못한 채 군으로 남았다.

한편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의 묘호 세조는 아들 예종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하들은 아버지의 묘호가 세종인데 어찌 아들에게 ‘조’를 붙이냐며 반대했으나 예종은 이를 무시한 채 수양대군의 묘호를 세조로 확정시켰다.

김나래 기자 [email protected]

조선 왕 묘호, 종과 조의 차이는? 세종과 세조의 차이 뭘까

조(祖)와 종(宗) 차이, 조선왕 묘호, 왕자와 공주 호칭

조선왕 조 종_조와 종 차이, 조선왕 묘호, 왕자와 공주 호칭

멀고도 가까운 나라 “조선” 드라마나 영화에서 조선을 배경으로 하면 가장 힘든 게 호칭이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렇게 간단하게 불리는 게 아니고 왕도 조와 종으로 때로는 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선의 왕은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어도 일반 백성이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 없어 임금의 이름은 일반적이지 않고 쉽게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지었다.

일반 백성이 임금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역모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기 때문에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해서 임금이 사용하는 이름을 공유해서 태어나는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참고로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처음부터 임금은 어려운 한자를 사용하고 외자로 이름을 지었다.

조선왕 묘호, 조(祖)와 종(宗) 차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왕의 호칭은 죽은 뒤 만들어진 묘호이다. 묘호는 왕의 무덤 이름이라는 뜻인데 보통 살아 있을 때는 드라마에서 보듯 주상전하, 상감마마 등으로 호칭을 하였다.

죽어서는 그 임금이 살아생전에 행했던 일에 따라서 묘호를 정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이지만 이 또한 정확하지 않다. 즉, 묘호는 한 가지 원칙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종대왕은 살아생전에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도 불린 적이 없다. 세종은 사후에 새로이 왕위에 오른 왕과 신하가 이전 임금의 묘호를 정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조선왕 중에서 군으로 끝나는 묘호를 가진 왕은 2명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두 명 모두 반정에 의해서 왕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조선시대에서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왕자의 호칭인 군으로 묘호가 정해졌다.

조로 끝나는 왕은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정조, 순조로 모두 7명이다. 조는 창업을 한 왕 그리고 공이 있는 왕에게는 조를 붙이고 수성을 한 왕이나 덕이 있는 왕에게는 종을 붙인다.

결국 27명의 조선 왕 중에서 군(2명), 조(7명)을 제외하고 18명은 모두 종으로 끝나는 왕이다 . 가장 많이 사용한 묘호이고 조로 끝나는 묘호를 받는 것은 그만큼 까다로웠다.

조선시대 왕 중에서 묘호가 가장 늦게 결정된 왕은 2대 정종이다. 정종은 왕위에 오르는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고 왕위에 올라서도 동생 이방원에게 언제 죽을 줄 몰라 항상 불안해했다.

이러한 정종에 대해서 묘호를 정하는 일을 세종대에 했는데 세종은 큰아버지인 정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묘호 없이 공정 왕이라는 시호로 불렸다.

원래대로 라면 묘호는 태종이라고 불려야 하지만 세종은 그런 묘호를 받게 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태종이라는 묘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보통 태종은 나라를 세운 왕인 태조 뒤를 이어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왕이라는 뜻인데 당연히 세종은 정종이 이러한 묘호를 받기 원하지 않아 정종은 오랫동안 묘호가 없었던 것이다.

위에서 말한 조와 종의 기준을 그대로 적응시키기에는 예외적인 왕들도 많아서 그대로 적용시키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조와 종을 나누는 기준으로 한다.

조는 창업을 한 왕 이외에 반정으로 왕위를 오른 사람을 조라고 묘호를 붙이거나 아버지로부터 바로 왕위를 받지 못하는 왕에게 붙인다는 학설도 있다.

어느 한 가지로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게 조와 종의 호칭이다. 그리고 또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왕의 자식들에 대한 호칭이다.

조선초기에는 조와 종에 대한 어느 정도 원칙이 지켜 졌지만 중기 이후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조금더 좋게 평가 하고자 조와 종에 대한 경계가 무너 졌다. 고종은 대한 제국을 선포했기에 황제가 되기도 했다.

고종이 황제가 된 이후에 몇몇 조상들은 황제로 추존했다. 태조 이성계는 “고황제”, 장조(의황제), 정조(선황제), 순조(숙황제), 문조(익황제), 진종(소황제), 현종(성황제), 철종(장황제) 모두 8명이 황제로 추존되었다.

왕자와 공주 호칭

왕의 아들인 왕자에 대한 호칭도 다르게 하고 있고 딸인 공주에 대한 호칭도 다르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엄마가 왕비인가 아닌가의 차이다.

엄마가 정실 왕비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는 대군, 여자는 공주이다. 하지만 후궁에서 태어난 남자는 군, 그리고 여자는 옹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호칭이 정해져 있다.

왕의 아버지 중에서 왕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왕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게 정석이지만 그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왕의 아버지에게 붙이는 호칭은 대원군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다.

최초의 대원군은 선조 아버지 덕흥대원군이다. 선조는 조선 최초 방계 출신으로 왕이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미화 작업이 필요했고 그래서 만든 호칭이 대원군이다.

선조는 아버지를 대원군으로 만들고 왕으로 추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인조는 아버지를 대원군으로 호칭하고 나중에 왕(원종)으로 추존했다.

왕의 장인 즉, 왕비의 아버지는 부원군으로 불린다. 부원군들은 대부분 자신의 본관에 따라 호칭을 했다. 만일 본관이 연안이면 연안 부원군으로 부른다.

후궁과 궁녀의 호칭(품계)

정실 왕비를 제외하고 왕의 후궁들은 모두 7개의 품계가 있었다(일반적으로) 품계에 따라서 불리는 이름이 달랐는데 빈(정1품), 귀인(종 1품), 소의(정 2품), 숙의(종 2품), 소용(정 3품), 숙용( 종 3품), 소원(정 4품), 숙원(종 4품) 순으로 불린다.

빈의 신분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장희빈이다. 역사와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장희빈은 숙종의 빈이었다.

세자도 후궁을 두었다. 세자의 부인은 세자빈이다. 세자빈의 경우 품계가 별도로 있지 않는다. 세자 후궁의 품계는 양제(종 2품), 양원(종 3품), 승휘(종 4품), 소훈(종 5품)이다.

궁녀는 내명부 소속이다. 내명부 품계는 모두 10개로 구분되었다. 정 5품(상궁, 상의), 종 5품(상복, 상식), 정 6품(상정, 상기), 정 7품(전빈, 전의, 전선), 종 7품(전설, 전제, 전언), 정 8품(전찬, 전식, 전약), 종 8품(전등, 전채, 전정), 정 9품(주궁, 주상, 주각), 종 0품(주 변치, 주치, 주우, 주변 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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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호칭-조(祖), 종(宗), 군(君)에 담긴 뜻은?

[신병주 교수의 역사와의 대화] 조선 영종, 정종이 영조, 정조로… 묘호가 바뀐 사례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조선시대 역사를 주제로 한 강의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의 하나는 왕의 호칭에 관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조’, ‘종’, ‘군’을 쓰느냐는 것이다. ‘군’에 대해서는 그래도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반정으로 폐위된 왕들은 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왕자 시절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조’와 ‘종’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의 왕 중 ‘조’의 칭호를 쓰는 왕 대부분은 후대에 추숭되는 과정에서 ‘조’를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왕의 호칭은 사후에 종묘를 신주에 모시는 과정에서 왕의 업적을 한 글자로 표현하고, ‘조’와 ‘종’을 붙이고 묘호(廟號)라 하였다. 예를 들어 학문에 뛰어났다는 뜻의 문종(文宗), 어질었다는 뜻의 인종(仁宗), 효성이 지극했다는 뜻의 효종(孝宗)을 꼽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 ‘조’는 창업한 왕에 대해서만 쓰는 호칭이었다. “왕업(王業)을 창시한 임금을 ‘조’라 일컫고 계통(系統)을 이은 왕을 ‘종’이라 일컬었음은 고금(古今)의 떳떳한 법식이었다”는 실록의 기록은 이러한 원칙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려의 경우 첫 왕인 태조 왕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종의 호칭이 부여되었다. 몽골 간섭 시기에는 왕의 호칭이 강등되어 ‘충'(忠)을 앞에 붙이고, ‘종’ 대신에 ‘왕’의 호칭을 사용했다. 태조 이후 ‘조’를 붙인 왕은 없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창업 군주 이성계에게도 ‘태조’의 호칭이 부여되었다. 그런데 조선의 왕은 이후에도 ‘조’를 붙인 사례가 많다.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났을까? ‘종’보다는 창업한 왕에 부여하는 ‘조’의 호칭을 쓰는 것이 왕을 보다 높이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태조 이후 ‘조’의 호칭을 처음 받은 왕은 세조다. 왕의 호칭은 사후에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물론 세조는 자신의 호칭을 알지 못한 채 승하했다. 세조의 다음 왕인 예종과 신하들은 세조의 묘호를 정하는 과정에서 ‘조’를 쓰기로 정했다.

세조가 창업한 왕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한 까닭에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었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역시 반정 주체 세력들이 인조의 위상을 높여야 자신들의 입지도 커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선조의 처음 묘호는 ‘선종'(宣宗)이었다. 그러다가 광해군은 1616년 선조가 임진왜란을 극복하여 나라를 재건한 공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묘호를 선조로 바꾸었다. 영조, 정조, 순조 또한 승하 직후의 묘호는 영종, 정종, 순종이었으나 후대의 왕들이 추숭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묘호가 바뀐 사례다.

세 명의 왕 중에서는 순조가 가장 먼저 ‘조’의 호칭을 받았다. 철종 때인 1857년 순종에서 순조로 묘호가 바뀌게 되는데, 순종이 순조로 될 수 있었던 데는 철종을 왕으로 만들어 준 순조의 부인 순원왕후의 영향력이 컸다. 대비로 있으면서 철종을 움직여 남편의 위상을 높인 것이다.

고종 대에 들어와서는 1890년 영종(英宗)이 영조로, 1899년 정종(正宗)이 정조로 묘호가 바뀌었다. 순조도 ‘조’가 된 마당에 영종, 정종처럼 훌륭한 군주에게 ‘조’의 호칭을 부여하는 것이 왕의 도리라고 고종은 판단한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조’의 호칭은 정변에 대한 합리화 작업이나 후대의 추숭 작업 과정에서 부여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조’의 호칭을 받은 선조나 인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왕으로 전혀 높은 평가를 할 수 없는 왕들이다. 역사 속에서도 세종과 정조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이 되는 왕들이 있다. 현재의 정치 지도자들도 훗날 그 이름을 떠올릴 때 늘 닮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조선왕조 왕의 호칭, 묘호의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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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왕의 호칭, 묘호의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왕조의 27명의 왕을 가리킨다. 모두 앞글자만 딴 것으로 뒤에는 조와 종 그리고 군이 붙게 된다.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선왕들은 어떻게 그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조선 태조 이성계

|묘호의 뜻을 알아야 한다

조선왕조 호칭인 조와 종을 알기전에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묘호이다. 우리가 사극에서도 많이 봤겠지만 왕이 살아 있을 때, 왕의 호칭은 있지도 않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에게 신하가 ‘세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바로 역적으로 몰려 삼족이 멸해질 것이다.

다시말해 임금의 이름이나 호칭을 누구도 부를 수 없었기에 호칭이 따로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의 왕이 죽으면 그 위패를 종묘에 모셔야 했다. 이때 선왕들과 구분할 수 있는 호칭이 필요했고 그래서 ‘종’또는 ‘조’라는 호칭을 짓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묘에 붙이는 호’, 묘호라고 한다.

조선왕조의 위패를 모신 종묘

|’조’와 ‘종’의 차이는 무엇일까?

조와 종의 차이는 <태조실록>에 <유공왈조(有功曰祖) 유덕왈종(有德曰宗)이며 조공종덕(祖功宗德)이다> 라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공이 있으면 조로 하고, 덕이 있으면 종으로 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를 종법질서라고 한다.

근데 나름의 종법질서가 있는 것은 알겠지만 사실 공과 덕을 딱 잘라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기준으로는 애매하다. 그러면 조선 왕조 이전의 고려로 한 번 가보자. 본래 나라를 창업한 왕에게만 조가 붙었다. 해서 고려 왕조에서는 태조왕건 딱 1명 뿐이다.

조선 역시 이성계는 창업군주여서 태조라고 불렸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이후 조선의 왕 6명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가 ‘조’를 쓰게 된다. 이들이 다른 왕들보다 공이 있어서 조가 된것인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항간에는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를 다시 세운 왕에게 ‘조’라고 붙였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선조, 병자호란의 인조인데 그렇다면 다른 4명의 왕은 또 설명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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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강화와 정통성확보, ‘공’을 중시하는 후대의 판단에 의해서 정해지게 된다

우리는 왕들의 묘호가 사후 후대에 의해 올라가는 것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후대에서 정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왕권강화와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 선왕의 묘호를 지을때도 고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후대로 갈수록 덕이 많은 왕에게 붙는 ‘종’보다 공이 많은 왕에게 붙는 ‘조’를 더 높고 중요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해서 실제로 23대왕 순종은 본래 종이었다가 철종 대에이르러 순조(안동김씨에 의해)로 바뀌었고, 우리가 잘알고 있는 영종은 고종대에 이르러 영조가 되고 정조 역시 정종이라 불리다가 정조로 묘호가 바뀌게 된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왕권강화와 자신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묘호를 바꾼 사례로 나름의 종법질서가 있었다고 하나 결국 후대의 이해관계에 의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숨겨진 묘호 이야기

1) 조선 2대왕 정종의 묘호는 없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 2대왕 정종은 사실 묘호가 없었다. 물론 정종이 동생 이방원에 의해 왕위에 오르기도 했고 바로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존재감이 없었긴 했지만, 묘호가 없던 것도 특이하다.

이는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자리에 있던 태종이 정종이 죽은 후에 묘호를 올리지 않아서인데, 이때 세종 역시 아버지 태종의 뜻을 받아서인지 묘호를 올리지 않았다. 해서 정종은 이후 260년 동안 쭉 묘호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렸으며 숙종대에 이르러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된다.

2) 이방원은 태종이라는 묘호를 쓸 수 없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3대왕 이방원은 본래 ‘태’라는 묘호를 쓸 수 없었다. 원래 종법제도에서 고려처럼 태(太)는 창업군주와 2대 왕에게까지만 붙을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종이 묘호가 없이 260년이나 있었고 세종이 조선 창업의 대업을 이룬 할아버지 이성계에 버금가는 공을 아버지 이방원에게 붙이고자 태종이라는 묘호를 올리게 되면서 이방원은 태종의 묘호를 갖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조선왕조 묘호인 조와 종의 차이는 조선 종법제도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나 뒤로 갈수록 후임 왕의 왕권강화와 정통성 확보 그리고 이해관계로 인해 혼용되어 종묘에 기록되었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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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조와 종의 차이

“조(祖)와 종(宗)의 칭호에 원래 우열이 없었습니다. 창업군주만이 홀로 ‘조’로 호칭됐습니다.”

1619년, 효종이 대행대왕(승하한 지 얼마 안돼 묘호가 없는 왕)의 묘호를 ‘인조’로 결정하자 홍문관 응교 심대부가 사납게 반발한다. “창업주만이 조가 되고, 계통을 이은 임금은 모두 종이 된다”는 ‘종법’의 원리를 지적한 <예기> ‘대전’을 떠올린 것이다. 심대부는 한술 더 떠 “세조와 선조가 ‘조’를 칭한 것도 잘못됐다”고 싸잡아 비난하면서, “‘중종’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효종은 조상의 묘호까지 들먹거린 심대부의 상소를 “망령한 의논”이라고 일축했다. 효종은 “공이 있으면 조가 되고, 덕이 있으면 종이 된다”는 <사물기원> 등의 언급, 즉 ‘조공종덕(祖功宗德)’의 원리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종법’이냐, ‘조공종덕’이냐를 두고 그때그때 다른 해석을 내린 것이다. 세조의 경우 어린 조카(단종)를 폐하고 왕위에 오른 만큼 종법질서를 무너뜨렸다. 예종은 부왕이 죽자 “대행대왕께서 단종을 몰아내고 이징옥·이시애의 난을 평정함으로써 재조(再造), 즉 나라를 다시 세운 공이 있다”며 ‘세조’의 묘호를 끝까지 고집했다. 선조의 묘호는 원래 ‘선종(宣宗)’이었다. 판서 윤근수 등 대신들이 “대행대왕이 임진왜란을 극복한 공덕은 있지만 계통(명종)을 이어받았기에 ‘종’이어야 한다”고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은 8년이 지난 1616년, 슬그머니 부왕의 묘호를 선조로 바꿔버린다. 반면 중종은 반정의 공로에도 ‘성종의 계통을 이었다’는 이유로 ‘조’가 아닌, ‘중종’이 됐다. 아들인 인종이 장탄식했지만, 신하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조공종덕’의 원리보다 아버지(성종)를 계승했다는 ‘종법’의 원리가 이긴 것이다. 아무리 ‘조종’의 차이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어도, 임금들은 조(祖)를 더 높이 쳤다(사진은 고종 묘호를 결정하기 위한 삼망단자). 영조·정조는 물론 순조까지도 줄줄이 ‘조’의 대열에 합류했으니 말이다. 영종(영조)과 정종(정조)은 고종 시절, ‘조’의 칭호를 얻었다. 순종이 순조로 바뀐 이유는 ‘서학의 유포와 홍경래의 난을 평정했다’는 것이었다(1857년).

장탄식이 나온다. 선조면 어떻고 선종이면 어떠며, 인종이면 어떻고 인조면 어떠리. 순종이면 어떻고 순조면 어떠리. 그 임금들 때에 백성은 어육이 되었고, 그들의 해골이 길바닥에 나뒹굴었는데….

조(祖)와 종(宗)의 구별법은?

왕의 복장을 재현한 인형

우리는 조선의 왕을 호칭할 때 태조, 세종과 같이 묘호를 사용한다. 그런데 어떤 왕에게는 조를 붙이고 어떤 왕에게는 종을 붙이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종보다는 조가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둘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세종은 영토를 넓히고 많은 업적을 세웠음에도 종을 붙이고, 19세기 세도정치 기간에 큰 업적을 세우지 못한 순조는 조를 붙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와 종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조선은 27명의 왕이 있었다. 이중 조(祖)를 사용한 왕은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7명이다. 이들은 어떻게 조를 얻게 되었을까? 보통 조는 나라를 세웠거나 반정에 성공한 왕에게 붙인다. 또한 국난을 극복한 왕에게도 사용된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했고, 세조는 반정을 통해 왕위를 지켰기에 조를 붙인다. 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란을 이겨냈다는 업적으로 조를 붙였다. 인조는 광해군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으며, 병자호란을 이겨낸 공로를 조를 받았다.

왕의 신위가 모셔진 종묘

하지만 연산군을 내쫓고 왕이 된 중종은 왜 조를 사용하지 못했을까? 중종의 경우 중조로 묘호를 붙이려했으나 성종의 직계라는 사실이 왕권에 더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에 원칙을 따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영조와 정조 그리고 순조는 무슨 기준으로 조를 사용했을까? 사실 영조와 정조 그리고 순조는 조선 후기에 종보다 조가 좋다는 인식으로 종을 사용하다가 조로 바뀌었다. 철종이 순종을 순조로, 고종이 영종과 정종을 영조와 정조로 바꾸었다.

조가 종보다 좋다는 인식이 생긴 것은 광해군이 통치하던 시절이다. 광해군의 아버지인 선조는 조선 시대 최초로 서자로 왕이 된 인물이다. 종(宗)이 선왕의 적자로서 왕위를 계승했을 때 사용한다는 기준에 부합되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임진왜란 당시 왕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에 국난 극복이라는 명분도 약했다. 광해군 자신도 서자로서 왕권에 대한 도전을 경계하며 두려워했다. 자신이 왕위 계승자라는 정통성을 갖기 위해 아버지인 선조의 묘호를 높여야만 했다. 그래서 선종이라 붙여질 묘호는 선조로 불리게 되었다.

신위에 붙여지는 이름이 묘호

이후 조선 후기 힘이 약했던 왕들은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조를 사용했다. 또한 적자로서 왕위를 계승한 인물이 적었던 것도 조를 붙일 수 있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특히 19세기 왕권이 매우 미약했고 적자가 아니었던 철종과 고종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다. 그에 대한 해답으로 영조와 정조 그리고 순조의 격을 높임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18명의 왕은 적자로서 덕을 가지고 백성을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종으로 불린다. 하지만 연산군과 광해군은 단종으로 복위된 노산군과는 다르게 조와 종 모두를 얻지 못했다. 이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조선을 통치하기는 했으나 실정과 악행으로 쫓겨나, 이후의 왕과 신하들에게 왕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까닭이다. 단, 왕의 후궁에게서 얻은 왕자라는 사실만은 인정받았다. 조선은 중전에게서 얻은 자식을 대군(大君), 후궁에게서 얻은 자식은 군(君)이라 불렀다.

지금도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다. 사실 이름이 운명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름이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부르기 편하고 예쁜 이름은 심리적 안정을 주지만, 발음이 어렵고 놀림 받기 쉬운 이름은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의 성품과 행동이 이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까? 철종과 고종이 선왕의 묘호를 바꾸며 왕권을 강화시키려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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