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의 심판 | 하나님의 심판을 정말로 믿으면 나타나는 변화들 | 조정민목사 | 말씀노트 Live (시편 75편) 205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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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노트 Live] 시편 75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Audio Source: 제발 뿔을 들지 말라 (시편 75_1-10)_아침예배_베이직교회_조정민 목사_20180216
https://youtu.be/j4mBAdUDBkE
(오디오 소스는 교회 측의 허가를 받고 사용되었고, 본 영상의 광고는 해당 교회와 무관합니다)

#말씀노트, #조정민목사,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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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해야 할 말씀,
기억해야 할 말씀,
기도해야 할 말씀,
차곡 차곡 모아서 나눕니다!
@2020 말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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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사랑의 하나님이 왜 심판을 하시는가? – 진리횃불

심판의 세 번째 의미는 ‘건져낸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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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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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2:1-20) 하나님 심판의 본질과 신속성

우선 하나님의 심판은 악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나 징벌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뜻을 보이시고 그것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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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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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으로 가장 먼저 오는 것 – 침례신문

4)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데, 가장 먼저 찾아오는 심판은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서 걷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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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aptistnews.co.kr

Date Published: 10/30/2022

View: 3999

성경/사전/주석 – 두란노닷컴

구약에서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심판으로는 창세기의 홍수(창 6-8장)와 출애굽기의 재앙들(출 6:6; 7:4; 12:12)을 들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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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2/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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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의 심판

  • Author: 말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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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1.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QPL5Vc15WY

(하박국 2:1-20) 하나님 심판의 본질과 신속성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상세보기

심판과 악은 요철(凹凸)관계다. 심판은 악에 맞추어 심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당연히 하나님이 악으로 여기시는 것에 대한 심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심판은 속히 이르고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 합 2:3)

그런데 세상의 악인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실존도 인정하지 않는데도 잘 살아가고 있는데 도대체 어떤 심판을 하시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언제나 심판은 늦지 않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고 하셨지만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세상은 악해지고만 있는데 이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의 기대와 다르고,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의 신뢰도마저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악으로 보시는 것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신속하다.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한 진정한 의문은 사실 ‘왜 빨리 심판하지 않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이 성경에 여러 군데 있다는 것이다. 더 심한 것은 하나님은 심판을 아들에게 맡겼는데, 그 아들 예수님은 또 심판하지 않는다고까지 하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요 5:22)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 요 12:47)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마주하게 될 문제라는 점도 중요하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히 9:27)

늘 신속하게 시행하신다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져가는 문제를 가진 심판,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지 않는다는 상충되는 말씀까지 있는 심판이라는 명제가 오늘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늘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하박국에게 하나님은 이 묵시(심판)에 대하여 명확하게 기록하여 사람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 합 2:2)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우리에게 강력하게 전달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당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하나님의 심판은 악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나 징벌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뜻을 보이시고 그것에 순종하고 거하며 속한 자들을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이끄시므로 그렇지 못한 자들이 상대적으로 심판에 속하게 되는 구조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는다.’라고 하신 것과,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이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므로 그 오신 뜻에 순종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구분되게 되었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사람과 동일한 육신으로 보이신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 예수님과 같은 생명 본성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눠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심판의 본질이자 신속성이다.

예수님을 보고 그 십자가를 보며 자신의 존재 정체성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라는 것을 순종하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실 때 그 말씀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자기 삶의 목적이자 행동의 본성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 심판의 본질이란 말이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누어졌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과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임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상에 하나님과 다른 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마치 오른 나사(볼트)를 왼나사(너트)에 끼우는 것 같이 모든 것이 힘들고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므로 그 삶 자체가 곤고함뿐인 삶이 되니 그것이 바로 심판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신 사람에 대한 생각과 뜻, 그리고 사람에 대한 정체성에 순종하지 않는 그 순간 즉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비유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죄를 지은 자를 추위에 내좇는 것이 아니라 추운데 있는 이들을 따뜻한 곳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더욱이 그 따뜻하고 안락한 곳은 잠기지도 않았고, 예수님이 오시므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밝히셨을 뿐 아니라, 그 짐은 사람들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에 비해 가볍다고까지 하셨는데 사람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므로 스스로 들어오지 않으므로 심판을 자처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어 따뜻한 곳에 들어오는 쉬운 길을 보이셨음에도 인생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고집하므로 그 은혜에 순종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는 그 순간에서부터 바로 심판이고, 또 순종할 때까지 죄와 사망, 곧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순종하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은 존재로서 육신의 수고를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내어주는 십자가 지는 삶을 살지 않는 모든 순간이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적인 표현들 속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인생을 곤고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 그것이고, 죽어서라도 육신이 겪은 괴로움을 벗고자 하는 소망을 버리지 못함이 그것이다. 즉 살고 있는 그 자체를 고통과 고난 즉 심판 가운데 있다고 스스로 늘 고백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은 그렇게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심판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이 온전하게 경영하시는 세상을 악하다고 생각한다.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되라고 아들을 보내셨는데 사람은 스스로 자신은 예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며 예수님과 같지 않으므로 인생이 곤고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처럼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며 살 수 없기에, 물 위를 걸을 수 없기에 인생은 힘들다고 여긴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심판 가운데 있는 것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세상에는 육신의 삶이 평안한 사람도 많다. 사람들이 세상이 악하다고 여기는 큰 이유 중의 하나가 그 불평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분명한 말씀을 하신다. 더 악한 이들을 일으켜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 하박국의 말씀이다.(이것은 다음 편에 더 상세히 이야기 하도록 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가장 먼저 오는 것

나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다음 세대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 작정하고 역사하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부분을 나누기 전에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 상태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해서 호세아 4:6을 중심으로 우리의 현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보고 있다.

1) 우리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다.

2)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우리가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3)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의 본질에서 떠나면, 그들의 삶은 반드시 하나님의 법을 버리게 되어 있다.

4)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데, 가장 먼저 찾아오는 심판은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서 걷히는 것이다.

5)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6)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들이 넘친다.

지난 원고까지는 3번째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위의 4번째를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면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구절 중 하나가 우리가 지금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호세아 4:6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자기들 가운데 와 있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그러면 우리는 나라가 망하는 것 뭐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것들도 당연히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이전에 가장 먼저 찾아오는 심판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실제적인 역사(나는 이것을 성경이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믿는다)가 그들의 삶에서 걷힌다는 것이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도 그의 책 하나님과의 신선한 만남(요 단)에서 정확하게 동일한 이해를 피력하고 있다.

엘리 시대에서 우리는 그 좋은 예를 볼 수 있다. 엘리 시대는 하나님을 버린 시대였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 2:12).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에게 선지자를 보내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이 두 구절을 보아도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엘리와 그 아들들의 삶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의 삶, 즉 행동은 하나님의 법을 버렸다.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하여 4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 패배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들이 왜 졌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삼상 4:3상). 이 말은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종교적인 의식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하나님을 버렸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우리가 과거에 이미 살펴본대로 이런 일이 하나님을 버린 시대마다 일어난다.

영적인 눈이 가려져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우리는 그 당시 전쟁과 관련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면상 여기에 실을 수 없는데, 신명기 20:1~4을 읽어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놀랍게 도우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그런데 그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과는 정반대로 철저하게 패배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면(떠나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데 가장 먼저 찾아오는 심판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실질적인 역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서 걷힌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시대가 처한 상황을 보라. 더 심각한 사실은 그들은 자기들이 왜 전쟁에서 졌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해결책이 뭔지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답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종교적인 의식을 의지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삼상 4:3하). 우리 시대는 어떤가?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거침없이 나아가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가져다준 생명의 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허황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이 영원히 혐오하는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도에 순종해야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의 공급을 거부한 채 복받을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말세에 그리스도가 온 이유는 그를 진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이 사역은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로 들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사역이며, 새 시대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네가 인정하지 않고 정죄하거나 모독하거나 핍박을 가한다면, 반드시 영원히 불태워질 것이며,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이 그리스도는 성령의 발현이자 하나님의 발현이며, 땅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이다. 그러므로 말세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다. 성령을 모독한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 것이다. 명심해라. 네가 말세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저버린다면 아무도 너 대신 그 대가를 치러 주지 못할 것이다. 그때부터 너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더는 없을 것이고, 나아가 만회하고자 해도 다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네가 대적하고 저버린 이는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느냐? 너는 작은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권하노니, 진리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말고, 사실을 외면한 채 함부로 말하지도 말라. 너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를 소생시켜 하나님의 얼굴을 다시 보게 할 수 없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을 언짢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이 흔히 사람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고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말해 둔다. 사람은 땅에 있는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고, 사람의 머리는 썩은 물웅덩이 같아서 구더기만 만들어 낼 뿐이나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하는데, 그러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일지는 내가 말해 주지 않아도 뻔한 사실이다. 각자 자신을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말기를 권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느냐? 너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대단하냐? 다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대세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너의 ‘공로’ 때문에 심판 사역을 두 번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너는 크게 후회할 것이다. 만약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하늘의 크고 흰 보좌가 너를 ‘심판’하기를 기다려 보아라! 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저버리고 부인했지만 예수가 인류를 속량한 일이 우주 땅끝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이 아니더냐? 네가 아직도 예수가 너를 맞이해 하늘나라로 데려가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너를 고집불통에다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말하겠다. 예수는 진리에 충성하지 않으면서 복만 받으려고 하는 너 같은 거짓 신자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가차 없이 너를 불 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태울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 중에서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분명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 지옥의 자손, 천사장의 후손,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르는, 이른바 성도라고 하는 모든 이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될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을 믿고,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도를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교만하며 자신을 과신하는데, 그런 인간 말종들이 어찌 예수에게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이 징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고 그의 발걸음을 따라 그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한사코 고집을 부리며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트집을 잡고 막무가내로 우기고 흠을 찾거나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면 결국에 손해를 보는 것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은 쓰레기처럼 아무렇게나 누군가에게 떠넘겨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목표, 선택 과정이 있다.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징벌뿐일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의로 대한다. 네 나이가 얼마나 많고 경험이 얼마나 풍부하든, 나아가 지난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절대 그것들로 인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과대평가하지 않으며, 또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그 사람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리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네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과 그가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이대접만 받으려 하고 연장자 티를 내며 하나님께 조건을 들이민다면 하나님의 구원은 너를 떠나가게 된다. 그럼 너는 유대인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메시야만 을 기다리다가 결국 하나님의 저주와 분노를 산 바 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

… 바리새인들의 지식과 외적인 행위는 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망쳤다. 그들은 지식과 관념, 그리고 마음속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예수를 정죄했으며, 상상과 생각 때문에 잘못된 길로 인도되고 영안(靈眼)이 가려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세상에 온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한 채 갖은 노력을 다해 증거와 빌미를 찾아 예수를 정죄했다. 이것이 바로 기존의 하나님 사역을 지킨다는 것을 핑계로 오늘날 전개되는 하나님의 현실적 사역을 정죄하는 그들의 추악한 면모이다. 물론, 이는 또한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그들은 낡은 도리와 규례로 자신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참도를 수호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절을 지켰다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어떠하냐? 하나님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역을 펼치고, 그의 경영을 행한다. 언제나 새롭다는 말이다. 반면, 사람은 어떠하냐? 언제나 얼마 안 되는 낡고 케케묵은 것들을 지키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선포라고 착각하며 득의양양해하고 우쭐거린다. 또한, 하나님이 영원히 자신을 버릴 리 없고, 푸대접할 리 없다는 태도로 상을 베풀기만을 기다린다. 그 결과는 어떠하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다. 새 시대의 사람들이 더 많이 그를 따르고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일 때, 상을 받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도태될 것이며,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징벌 가운데 떨어질 것이다. 그들이 징벌을 받는 그 순간, 하나님을 믿는 그들의 삶은 그렇게 끝나고, 그들의 결말과 종착지는 그렇게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우리 눈앞에서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너무 무정한 것이겠느냐, 아니면 사람이 제대로 추구하지 못한 것이겠느냐? 이것은 사람이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문제 아니겠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징벌받은 대표적인 사례ㆍ후기> 중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라 (마태복음 25:1-13)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라.

마태복음 25:1-13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 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해 강론하십니다. 특히 예수님은 천국이 자신과 함께 이 땅에 임하며 또한 성령에 의해 이 땅에 확장될 것이고 다시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이 땅에서 완성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부터 시작하여 인류 역사의 종말까지의 일들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인 주님의 재림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25장은 예수님과 언약을 맺은 이 땅의 교회의 모습을 열 처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비유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는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아무튼 등장하는 인물로는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당시 유대인의 문화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결혼식장은 일반적으로 신랑 집이었고, 신랑은 밤에 신부의 집으로 가서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신부는 일종의 들러리인 자기 친구들과 함께 신랑 집으로 가게 됩니다. 이때 신부의 친구들은 신랑의 집까지 들고 갈 등불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 등불은 기다란 막대 끝에 매다는 등불로서 신부의 친구들은 신랑이 오면 등에 불에 붙인 후 치켜들어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가는 행로를 밝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랑의 집으로 인도되는 신부의 행렬은 결혼 예식에서 가장 화려한 장면이 되고, 신부는 가마를 타고 신랑 집을 향하였습니다. 따라서 신부의 들러리들은 한 동안 등불을 지필 수 있는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고 있다가 신랑이 온다고 하면 등을 켜야 합니다. 그리고 신부가 가마에 탈 수 있도록 켜진 등불로 빛을 내어야 하고 그리고 신부가 신랑의 집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불이 꺼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가 신부 집에서 신랑 집까지 이르는 동안 꺼지지 않도록 충분히 계산된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 일을 제대로 못하면 그 들러리 때문에 결혼식은 망치게 될 것이고, 그 들러리는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자, 어떤 여자와 남자가 결혼을 하기로 했고,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이제 그 날 저녁에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와서 준비된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들러리가 열 처녀였습니다. 숫자 열(10)은 완전수입니다. 즉, 그들은 천국의 시대에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열 처녀 중 다섯은 미련하였습니다. 반면 다섯은 슬기 있는 처녀들이었습니다. 열 처녀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이 함께 있습니다. 가장 슬픈 것은 슬기로운 처녀들은 구원을 받지만 미련한 처녀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교회에 함께 속하여 있을지라도 어리석은 처녀에 해당하여 구원을 못 받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잠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를 연상시킵니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거기 있는 것과 그의 객들이 스올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잠 9:18).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잠 15:24).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참으로 이 땅의 교회에 속하여 있지만 미련함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다섯 처녀를 보면, 정말 어리석어도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3절을 보니, 신랑을 맞으러 나간 들러리라면 등과 함께 기름 통에 충분한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있지만 충분한 기름이 없습니다. 이때 이들에게 충분한 기름이 없다는 것은 그들은 그 등 자체가 가진 기름이면 아마도 충분할 것이라고 착각했음을 말해줍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게으르고 어리석습니까? 그런데도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등만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불을 붙이면 심지만 잠깐 타다가 곧 바로 꺼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불을 붙여도 불은 타오르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 결혼 예식을 해야 하는데 신랑이 올 것을 알고도 등불을 위해 그릇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들러리가 어디 있습니까? 아마 그런 처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여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지독하게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이 땅의 교회에 있다고 비유로 알려주십니다.

한편,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충분히 담아 신랑이 오면 혼인 예식까지 환하게 밝힐 준비를 했습니다. 이는 사실 신부의 들러리라면 마땅히 해야 할 준비입니다. 아무튼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그릇과 기름을 준비했고 따라서 혼인 예식까지 불빛을 밝히는데 전혀 차질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잡니다. 슬기 있는 처녀들도 잠들고, 어리석은 처녀들도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큰 소리가 났습니다.

“신랑이 온다. 맞으러 나오라.”

이에 처녀들이 깜짝 놀라 다 일어나서 등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불을 붙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자들의 등은 불을 붙이자 기름이 없어서 곧바로 불이 꺼집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부탁합니다.

“너희 기름을 좀 나눠줄 수 없겠니?”

그러나 슬기 있는 처녀들이 대답합니다.

“이것을 둘로 나누면 혼인 예식까지 불을 켜는데 너나 나나 다 부족하게 된단다. 그렇게 되면 혼인 예식이 망치기 때문에 안 돼. 차라리 너희들은 빨리 기름 파는 자들에게 가서 필요한 만큼의 기름을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기름을 사러 갔고, 그 사이에 신랑이 와서 준비하였던 자들과 함께 신부를 데리고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문은 닫혔습니다.

후에 어리석은 처녀들이 혼인 잔치에 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때 신랑이 말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지금 예수님의 비유를 그림으로 보면, 신랑이 와서 땅에 있는 신부인 교회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 공중 혼인 잔치를 갖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교회 내에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한 부류는 어리석은 처녀들로서 공중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류이고, 다른 부류는 슬기로운 처녀들로서 등불을 켜고 공중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부류입니다. 이때 땅에 남겨졌다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는 이 처녀들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말씀에서 깨어 있으라는 것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은 그릇에 기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주께서 오실 때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불못의 멸망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깨어 있다는 것은 그릇에 기름을 준비해 두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준비해 두어야 신랑이 언제든 오더라도 불을 켜서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유의 중간에 “다 졸며 잘새”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슬기로운 처녀들마저도 신랑이 오는 것을 깨어 기다리지 못하는 수가 있음을 뜻합니다. 물론 신랑이 오신다고 알려주는 큰 소리에 의해 슬기로운 처녀들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러나 만일 졸지 않고 신랑을 기다리다가 신랑 오시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면 대단히 영광스러운 들러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비유는 교회 공동체 내에 두 부류의 처녀가 있을 것을 알려줍니다. 즉, 가짜 신자와 진짜 신자가 섞여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비유는 결론적으로 13절에 드러난 예수님의 의도를 알려주기 위한 비유입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13절의 결론에 따르면 가짜는 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로서 주님 오실 때, 깨어 있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진짜는 간혹 조는 때는 있을 지라도 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 오실 때 정상적으로 주를 맞이하여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비유를 통해 참으로 나는 주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참된 신자인지 아니면 등에 기름이 없는 가짜 신자인지 살펴보고 만일 후자에 속한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참 믿음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즉, 참된 마음으로 주와 연합되는 구원 받은 신자가 되어 진심으로 주의 재림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의 교회에서 누가 어리석은 처녀이고 누가 슬기로운 처녀입니까? 이를 알아야 내가 구원을 받아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참 신자인지 아니면 당장 회개하고 주를 믿어야 하는 거짓 신자인자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3절을 보면, 어리석은 처녀는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합니다. 반면에 슬기 있는 자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두고 그 그릇을 가지고 다닙니다. 이로 보건대 어리석은 처녀는 기름을 담는 그릇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름은 신랑이 올 때 불을 밝힌 후에 신랑과 함께 혼인 예식 장소까지 가는데 환한 불빛을 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그 기간 동안 환한 불을 비추려면 등의 심지로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그릇에 기름이 있어서 계속 등에 기름을 공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처녀는 등의 심지로 잠깐 빛을 낼 수는 있으나 혼인 장소까지 갈 수 있는 기름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혼인 장소에 갈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처녀입니다. 신랑이 올 때까지 아직 충분한 기간이 있어서 신속하게 그릇과 기름을 구하고자 하면 구할 수 있으련만 내일 준비하면 되겠지 하고 계속 미룬 것입니다. 혹은 등의 심지로 충분할 것이라는 큰 망상에 빠져 있다가 기름과 그릇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릇에 기름을 늘 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즉,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는 우리 주 예수님과의 공중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그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릇에 늘 기름을 준비한 상태에 있습니까? 오늘 2019년의 이 마지막 밤이 가기 전에 확인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그릇에 담긴 기름으로 무엇을 뜻하려 하시는 것일까요? 도대체 그릇에 담긴 기름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없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어리석은 처녀는 왜 기름을 담은 그릇이 없는 것일까요? 그러한 가짜 신자는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어떤 사람들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남긴 강설이 마태복음 23장부터 25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 강설에서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거짓 신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구약의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주님과의 혼인 예식을 준비하지 못함으로 그 예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비유에 따르면 바로 이러한 바리새인과 같은 신자들이 어리석은 처녀들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그들에 대한 우리 주님의 평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가짜 신자에 해당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은 사실 독사의 새끼들이며 뱀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들의 특징을 죽 알려주십니다.

첫째, 그들은 위선을 행합니다.

[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5-27)

즉, 그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종교 형태는 단지 마음 깊은 곳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면 외식하는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어떤 신앙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신앙 행위로 구제, 기도, 금식을 언급하셨습니다. 이러한 종교 행위가 얼마든지 인간의 탐욕, 즉 자기를 드러내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 위선자들입니다.

둘째, 그들은 실제적인 죄에 대해서는 그냥 무시하면서 죄가 되지도 않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 자기들의 자존심을 걸고 주장합니다. 행음하는 음란한 사람이 예배 순서에 대해 혈기 부리며 주장하고, 남의 돈을 자주 떼 먹는 사람이 아디아스포라에 해당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들입니다. 동성 성행위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일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찬양대가 맞냐 성가대가 맞냐 복장이 어떠해야 하냐 그것이 틀리냐 맞냐 하며 다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그러한 모습이 지옥에 떨어질 자들의 특징이라고 알려주십니다.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 23:24).

셋째, 그들은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으며 심지어 맹세로 한 약속마저 지키지 않고 함부로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말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전혀 없음을 알려줍니다.

[

21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마 23:21-22)

넷째, 그들은 복음의 본질을 체험하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결국 피상적인 것을 가르칩니다. 즉,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과는 무관한 쓸모 없는 교훈을 가르칩니다. 어떤 신비 체험이랄지, 그들만이 아는 어떤 깨달음이 있다는 둥, 거룩함과는 무관한 홀리는 허망한 것들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교훈으로는 결단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 15).

다섯째, 그들은 영원한 보상보다는 이 땅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늘 교회와 사회에서 자기 영광을 추구합니다.

[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5-7)

여섯째, 그들은 남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헌신을 가르치지만 자신들은 조금도 희생하지 않을뿐더러 매사 자신들이 말하는 대로 행하지 않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느니라”(마 23:3-4).

이러한 여섯 가지 특징 중 하나라도 보이는 자들이 다름 아닌 어리석은 처녀요, 그들은 주님 만날 날을 준비하지 않는 게으른 처녀이며 마침내 주님이 오실 때에 주를 영접하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처녀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등은 있고 기름 그릇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들에게는 외적인 신앙 생활의 형태는 있었지만 참된 믿음과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19).

실로 형식적인 교회 출석, 봉사, 선교, 성경 읽기, 기도, 구제, 금식 등 외형적인 종교 행위를 하지만 거룩함의 변화가 보이지 않고 주께 순종하는 의로운 성품과 행위와 삶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마 23:23).

그러나 슬기 있는 처녀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근본적으로 그들 마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주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께서 그들 안에 계십니다. 이에 그들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 예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생수의 강, 즉 무한한 기름이 담긴 그릇으로부터 얼마든지 불을 환하게 켤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 자신에게서 나오는 유한한 능력과 더러운 의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 나오는 은혜의 기름과 정결한 옷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6 여호와의 천사가 여호수아에게 증언하여 이르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가운데에 왕래하게 하리라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슥 3:3-10)

따라서 그들은 현실 속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성령을 통해 누리며 그 삶이 환한 빛을 드러내기 때문에 더더욱 그리스도를 만날 날을 준비하며 살게 됩니다. 이는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대로 그리스도와 늘 연합하여 깨어 있기를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첫 번째 심판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낙원과 음부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심판은 주의 재림 때에 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주의 보좌 앞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영광 및 영원한 수치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낙원에 있던 신자들은 그들의 행한 대로 평가를 받고 영원한 영광이 결정난 후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음부에 있던 악인들은 그들의 악행 대로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15)

분명히 어느 날 온 세상은 불로 휩쓸릴 것입니다.

[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0-14)

사랑하는 여러분!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전부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등은 복음의 진리와 관련한 외적인 형식들입니다. 기도, 예배, 성경 묵상, 헌신, 봉사 교육 친교 선교 등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 역시 이러한 일이 반드시 중요합니다. 등이 없으면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 역시 동일한 종교 행위를 합니다.

단지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의 차이는 등불을 켜는 기름 그릇 및 충분한 기름이 그 그릇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는 기름 그릇도 없고 충분한 기름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만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등의 심지로 신랑을 맞이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착각과 망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는 계속 기름 그릇과 기름을 확인합니다. 즉, 결코 등의 심지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세상 불신자들은 자기 의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의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그 불신자를 전혀 보호할 수 없으며 주의 오심을 위한 불빛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의 의는 기름 그릇에 있는 기름으로써 신랑을 맞이하여 혼인식장까지 가는데 충분한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교만은 자기 의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보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할 때 기름 그릇과 함께 무한한 기름을 받아 빛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의로 인해 임하시는 성령의 기름으로 계속 환하게 빛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빛을 선행이라고 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에 참된 예배와 함께 거룩한 성품과 선한 행실들이 있습니까? 삶과 성품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서로 볼 때 미움과 위선과 교만과 독선과 수군거림이 있습니까?

더 늦기 전에 주를 회개하고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을지 모릅니다. ‘아 2019년 12월 31일 송구 영신의 예배를 듣고 회개할걸’하며 지옥에서 영원히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지적으로 진리에 동의했다고 내 믿음의 구원하는 믿음이라고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약 2:19-20).

아, 그러면 우리의 노력으로 바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 3:1-9)

그러므로 진실한 믿음으로 주를 따르는 것만이 우리가 등과 함께 기름이 담긴 등불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직 진심으로 주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고 충만하게 거하실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충만함이 등잔의 그릇에 기름이 넘치는 상태입니다.

이 시간 주를 향하여, 주께서 주신 의를 향하여 갈급하기 바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볼 것이라”(사 66:2).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윤문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즉 지금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참으로 주와 연합하여 참된 신자가 되거라. 그리고 나를 만날 날을 준비하며 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선한 일에 힘쓰도록 하라.”

오늘 2019년 12월 31일을 과거로 보내고 2020년의 대망의 새해를 맞는 여러분 모두에게 참된 믿음과 함께 참된 믿음의 성장이 뚜렷하게 나타나기를,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에 영화롭게 참여하는 모든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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