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 진 호 | [현대미술이야기] 어떻게 일주일을 못 가니… 논란의 공공미술 69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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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주일을 못 가니… 각종 논란의 연속…ㅠㅠ
이거 대체 왜 하는거야? 공공미술!
오아에서 들려주는 쉽고 재밌는 현대미술이야기!
즐거움이 오! 새로움의 아

#공공미술 #공공미술논란 #공공미술성공사례 #현대미술 #에펠탑 #러버덕 #publicart
※ 본 영상은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공공미술 워크숍]의 일환으로 연구 및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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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특정 공공미술…그곳에 있을 때 의미 있다 – 중기이코노미

‘기울어진 호’는 연방청사 광장을 위해 만든 맞춤형 작품이었다. 리처드 세라는 이 작품을 몇 가지 의도를 가지고 제작했는데,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말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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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unggi.co.kr

Date Published: 3/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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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이야기 # 26 – 오픈갤러리

<기울어진 호>는 결국 철거되었지만, 이후 공공미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담론이 형성되었기에 중요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술 및 평론계에서는 호의적인 반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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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pengallery.co.kr

Date Published: 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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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공공미술인가···법정까지 간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9년~)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라는 작품은 공공미술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유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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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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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보는 논술] 공공의 美인가, 공공의 敵인가 – 조선일보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울어진 호’가 연방정부의 권위적인 성격을 약화시켜준다”고 주장했다. 또 “특별한 장소와 조건들에 맞게 창작돼 장소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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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osun.com

Date Published: 1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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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창고] 공공미술 어떻게 볼 것인가 – 김달진 미술연구소

리처드 세라에게 1979년 주문, 의뢰하여 2년여 걸려 완성한 〈기울어진 호(Tilted Arc)〉는 정부출연기금으로 제작된 이른바 ‘공공미술품’에 대해 이제까지 무관심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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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ljin.com

Date Published: 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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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에서 장소 특정성, 그리고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의 의미

바로 리처드 세라 Richard Sera의 <기울어진 호 Tiled Arc>의 철거 논쟁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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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pacemagarine.com

Date Published: 5/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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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호

기울어진 호. Tilted Arc 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맨해튼 의 Foley Federal Plaza 에전시된 Richard Serra 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공공 예술 설치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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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mn.wiki

Date Published: 8/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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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공공미술의 공론화: 세라의 <기울어진 호> 논쟁(2)

미국의 <기울어진 호> 논쟁을 보면서 부러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세계적 반열에 오른 작가의 작품마저도 치열한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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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tterms.net

Date Published: 1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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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도서] – 아트인사이트

역으로, <기울어진 호>처럼 작가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여기더라도 감상자들이 비미적이라 느끼는 사례도 있다. 따라서, 미는 다양한 가치판단과 유기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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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rtinsight.co.kr

Date Published: 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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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야기] 어떻게 일주일을 못 가니... 논란의 공공미술
[현대미술이야기] 어떻게 일주일을 못 가니… 논란의 공공미술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기울어 진 호

  • Author: 오아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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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2.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DTRDCXmFK2E

장소특정 공공미술…그곳에 있을 때 의미 있다

안진국 미술비평가(‘비평의 조건’ 저자)

그것은 그 강철벽을 그곳에 세운 작가의 의도가 바로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예술 관계자는 그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기울어진 호’는 연방청사 광장을 위해 만든 맞춤형 작품이었다. 리처드 세라는 이 작품을 몇 가지 의도를 가지고 제작했는데,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첫째로, 연방청사 광장을 가로지르는 강철벽이 통행과 시야의 불편함을 가져오게 해서 광장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자신의 움직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공간에 장애물이 생기면 장애물을 중심으로 그 장소와 자신의 움직임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작가는 그것을 원했던 것이다.

둘째로, 광장을 두 개의 다른 지역으로 구분해 완전히 새로운 두 공간의 느낌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작품은 분수가 있는 넓은 공간과 건물과 가까운 좁은 공간으로 광장을 두 부분으로 나눴다. 작가는 이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하길 원했다.

셋째로, 우리를 억압하는 권력을 경험하길 원했다. 이 세 번째 의도가 이 맞춤형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이 연방청사 광장은 거대한 연방청사 건물 앞에 있다. 세라는 ‘기울어진 호’라는 강철장벽을 그곳에 세워 놓음으로써 시야를 방해하고 움직임을 막는 경험과 바로 앞에 있는 연방청사(정부)가 지닌 ‘권력의 힘’을 연결하려고 했다. 시야와 움직임을 막고 있는 묵직한 강철벽 위로 권력을 상징하는 정부의 건물을 보았을 때 받는 억압적인 느낌, 마치 정부라는 권력의 힘이 개인을 억누르는 느낌을 느끼길 원했던 것이다.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 1981, 강철, 3.65×36.5m, 미국 뉴욕 연방청사 광장.

이러한 작품의 의도가 있으므로 세라는 이 작품이 반드시 연방청사 광장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예술 관련자도 이러한 세라의 의도에 동의했기 때문에 ‘기울어진 호’를 그 광장에 그대로 둬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그곳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공공미술 작품이었다. 이렇게 어떤 특정한 장소에 특별한 의도로 설치한 작품을 ‘장소특정적’(Site-specific) 미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세라가 작품을 옮길 수 없다고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어떻게 됐을까? 재판에서 세라는 이 작품이 그곳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판사는 작품이 공공의 장소인 광장에 있어야 한다면, 광장이 가진 공공적인 역할도 고려돼야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장소특정적 미술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옮겨도 무방하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 후에도 세라는 포기하지 않고 작품 이전 요구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대중에게 ‘기울어진 호’는 불편한 장애물일 뿐이었다. 작품은 설치 8년 만인 1989년에 결국 연방청사 광장에서 철거됐다. 세라는 이 작품의 이전을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에, 작품은 어디로도 옮겨지지 못했고, 결국 삼등분으로 절단돼 어두운 창고로 들어갔다.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공공미술 작품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공공성과 작가의 의도가 충돌한 사건으로 공공미술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된다. 공공미술에서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과연 공공미술에서 작가의 의도와 공공성 중 어디에 더 무게 중심을 둬야 할까? 아마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숙제로 남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술 이야기 # 26

이미지 출처: https://www.washingtonpost.com

지난 2017년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작은 소녀상이 등장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조각가 크리스틴 비스발(Kristen Visbal)이 뉴욕 맨해튼 시의 도움을 받아 설치하게 된 이 <두려움 없는 소녀상 Fearless Girl Statue>은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돌진하는 황소상 Charging Bull>을 마주보고 위풍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뉴욕 시내에서도 특히 남성 중심적인 증권사가 즐비한 월스트리트에 설치된 이 소녀상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한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시민과 관광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얻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한 달 후 철수 예정이었던 소녀상은 1년 간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녀상이 보행에 방해가 된다’라는 의견부터 ‘소녀상은 함께 기획한 기업들의 페미니즘을 이용한 마케팅 수단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진하는 황소상>의 작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Arturo Di Modica)의 거센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는 “황소상의 의미는 경제 불황 속 미국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허락 없이 황소상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여 작품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은 권리 침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디 모디카의 주장에도 뉴욕 시는 소녀상의 전시를 연장하기로 결정했고, 한 달만 전시될 예정이었던 소녀상은 전시기간이 1년으로 대폭 연장되어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washingtonpost.com

<두려움 없는 소녀상>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공론의 장을 형성한 성공적인 공공미술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증권사의 임원직에 여성 비율이 현저히 적다는 현실을 일깨워주며 구조적인 성차별에 대한 의미 있는 담론을 이끌어내었고, 많은 여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처럼 ‘공공미술(Public art)’은 기획자나 작가의 의도로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로서 미술관이나 갤러리 안에 전시되는 미술 작품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1) 공공미술은 기본적으로 공익을 표방하고 있지만 특정한 장소에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된다는 점 때문에 기획자의 정치적인 의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모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공공미술을 향한 비판의 여지를 주지만 동시에 그만큼 다양한 감상과 의견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점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술이야기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공공미술이 가진 특성과 의미에 대해 되짚어보고, 공공미술이 진정 모두를 위한 미술이 되기 위해 지향해야 할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고자 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s://publicdelivery.org

1.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1981년 설치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호 Tilted Arc>2)는 뉴욕 맨해튼 연방광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철 덩어리 벽의 형태를 한 설치 작품입니다. 세라는 <기울어진 호>를 통해 광장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인위적으로 바꾸고 시야를 차단함으로써 감상자들을 그의 미니멀리즘 조각의 맥락에 끌어들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설치된 이후 대중의 반응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1,300여명의 연방광장 주변 시민들이 작품의 철거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배포하며 <기울어진 호>가 연방광장을 상징하는 기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시민들이 <기울어진 호>의 철거를 주장하는 데엔 다양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에는 광장을 사용하는 대중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관람객의 동선마저 미니멀리즘의 맥락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세라의 의도가 딱 맞아떨어진 것이었으나, 시민들은 이를 ‘작품 감상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시야와 보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리처드 세라의 작품이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치된 작품이라는 점 또한 철거 탄원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세금을 낸 장본인인 시민들은 자신들의 허락도 없이 설치된, 생활에 도움을 주지도, 그렇다고 미적으로 아름답지도 않은 이 작품의 철거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기울어진 호>는 결국 철거되었지만, 이후 공공미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담론이 형성되었기에 중요한 작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술 및 평론계에서는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연방광장이라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며 시민들의 반발을 얻었던 것입니다. 작품의 철거가 결정되자 세라는 “그 장소에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작품이 철거되는 것은 결국 작품을 훼손하는 것과도 같다”라고 반발하였습니다. 물론 작품이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영역에 설치되었다면 작가가 의도한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울어진 호>의 관객은 연방광장을 사용하는 시민(대중)들이었고, 관객을 배재한 예술 작품은 싸늘한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공공미술은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공공장소에 설치되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설치해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www.artnews.com

2. 아니쉬 카푸어 <클라우드 게이트>

뛰어난 건축과 예술을 자랑하는 도시 시카고는 아름다운 고층건물들로 이루어진 스카이라인이 특징입니다. 영국의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는 이곳에 168개의 철판으로 이루어져 있는 <클라우드 게이트 Cloud Gate>라는 작품을 설치했습니다. 이 작품은 볼록거울처럼 둥근 표면에 주변 인물들과 하늘, 건물 등을 담아내어 해당 장소를 신비롭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연출해주고 있습니다. 시카고를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들은 이 클라우드 게이트를 보기 위해 찾아오고는 합니다.

이미지 출처: www.artnews.com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작품 역시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처럼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보행 및 시야를 방해할 만한 크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드 게이트>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도시의 특성을 고려한 설계 덕분이었습니다. 시야를 가로막음과 동시에 주변을 비추는 철판의 표면은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 서있는 관람객 자신 뿐 아니라 시카고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까지 담아내어 오히려 주변이 더욱 넓게 확장되는 듯한 효과를 냈습니다. 작품 앞에 서며 자신과 시카고라는 도시가 하나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던 관광객들은 작품을 통해 시카고라는 도시에 대한 특별한 인상을 지니게 되었고, 결국 <클라우드 게이트>를 시카고의 랜드마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클라우드 게이트>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대중에게 노출되었지만, <기울어진 호>와는 다르게 공간의 개성과 특성을 더욱 살려줌으로써 모두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러버덕 프로젝트 facebook 한국 페이지

3. 러버덕 프로젝트

2014년, 어느 날 갑자기 석촌호수에 나타났던 거대한 고무오리 ‘러버덕’은 전국의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러버덕 프로젝트 Rubber Duck project>의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Florentijn Hofman)은 전세계 곳곳의 호수와 강을 거대한 욕조로 삼아 확장된 크기의 러버덕을 띄우는 활동을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공공미술이 기획자의 이데올로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러버덕 프로젝트에는 어떠한 정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욕조 안에서 흔히 보던 작은 고무오리가 갑작스럽게 커다란 모습으로 변해 우리 앞에 나타나는 일종의 깜짝 이벤트를 엶으로써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발길을 모아 대화와 화합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러버덕 프로젝트의 목적이었습니다.3)

러버덕 프로젝트와 클라우드 게이트의 공통점은 대중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들어오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클라우드 게이트는 시카고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며 관광객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랜드마크가 되었고, 러버덕은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공공미술이 아닌 전세계의 물 위를 떠 다니는 공공미술로서 사람들에게 하나의 거대한 선물처럼 다가가 순수한 즐거움을 선사하였습니다. 이는 앞서 소개했던 <기울어진 호>나,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 청계천 고층건물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의 <스프링 Spring>처럼 공공미술임에도 정작 공공성이 부재했던 작품들이 가지지 못했던 강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세계의 다양한 공공미술 사례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결국 공공미술이 표방해야 하는 진정한 공공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 자체가 수많은 의견이 오갈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해주었고, 예술가들은 공론장의 형성이 곧 공공미술 자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부나 기업 등 소수의 상부 기관에서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적인 공공미술에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반영하고 나아가 대중이 작품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공미술로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4. 새 장르 공공미술

공공미술은 예술가가 특정한 기관의 의뢰를 받아 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자연스럽게 해당 기관의 취향과 이념을 반영하며 대중에게 이를 강요하게 되었고, 대체로 고정된 형태의 조각이나 설치물로 표현되고는 했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와 매체적 한계는 결국 공공성이 부재한 공공미술을 양산하게 되었고, 이에 의문을 품은 예술가들은 대중으로부터 얻어낸 공공성을 통해 작품을 만드는 공공미술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공공미술로는 ‘새 장르 공공미술 New genre Public art’이 대표적으로 회자됩니다.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Facebook

새 장르 공공미술은 199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화된 공공미술로 수잔 레이시(Suzanne Lacy)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입니다. 그는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로 인해 공공미술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자 단지 야외에 설치되었을 뿐 진정 공공과 소통하지 못하는 공공미술에 의문을 가지며 기존의 공공미술과는 차이를 두고자 ‘새 장르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새 장르 공공미술은 기존 설치 작품에 국한되었던 공공미술의 매체적인 특성에 차별화를 두고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work)4)에서 벗어나 퍼포먼스나 복합 예술 등 다양한 매체 및 활동을 통해 보다 폭넓은 대중의 소통과 참여를 이끄는 작업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성과 노인, 다양한 인종 등 소외되어 온 계층을 작품의 주체로 하고, 물리적 장소가 아닌 개념적인 공공성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수잔 레이시의 <속삭임 프로젝트 Whisper Project>는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난 작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전시와 세미나,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진행했습니다. <속삭임 프로젝트>는 총 두 개의 프로젝트로 나뉘었는데, 1983년부터 2년 동안 진행된 <속삭임, 물결, 바람 Whisper, the Waves and the wind>와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진행된 <속삭임 프로젝트 : 미네소타의 속삭임, 크리스탈 퀼트 Whisper project : Whisper Minnesota, the Crystal Quilt>가 그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suzannelacy.com

<속삭임, 물결, 바람 >에서는 65세 이상의 여성들이 해변에 모여 삶과 죽음, 관계, 두려움과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었고, 1,000여명의 관람자들이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크리스탈 퀼트>에서는 이전 작품의 맥락을 따르며 그 주제를 더욱 이슈화하였습니다. 작가는 1985년부터 다양한 강의와 세미나 등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노인들을 작품의 주체로 끌어들이며 나이 든 여성이 가진 리더십과 능력을 조명하고, 1987년 어머니의 날에 맞추어 430명의 여성 노인들을 모아 <크리스탈 퀼트> 퍼포먼스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4인용 탁자에 둘러앉아 <속삭임, 물결, 바람>에서 그랬던 것처럼 삶과 죽음, 노인으로서의 삶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의상과 식탁보의 색을 활용하여 마치 퀼트의 문양처럼 보이도록 시각적으로 연출한 이 퍼포먼스는 KTCA 방송을 통해 생방송으로 송출되었고, 이를 통해 ‘공공’이라는 개념에서 항상 소외되고는 했던 여성 노인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2] 수잔 레이시의 작품들은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소외계층의 대화를 공공미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세상에 알림으로써 그들의 대화를 발언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새 장르 공공미술은 그 동안 공공미술이 획득하지 못했던 공공성을 미술 그 자체로부터가 아닌 공공으로부터 찾으며 공공미술의 가능성과 지향성을 제시했습니다.

건축 비용의 1%를 미술작품 구입에 쓰게 하는 일명 1%법과 너도 나도 실행하고 있는 문화 정책들은 모두 도시라는 복잡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좀 더 나은 생활 공간을 만들고자, 혹은 대중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공공미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기획자의 의도와 다르게 흉물이라는 차가운 평을 받으며 쓸쓸하게 퇴장하는 작품들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며 랜드마크가 되는 작품도 있습니다. 이처럼 공공미술은 결국 작품을 향유하는 공공의 평가를 받기 마련입니다. 공공미술이 기획자나 소수의 주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건강한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공론장이 되기 위해선 진정한 공공성을 획득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용어해설

1)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전시되는 작품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지정된 장소의 설치미술이나 장소 자체를 위한 디자인 등을 포함한다. (출처: 두산백과)

2) 1981년, 연방정부의 ‘건축 속의 미술 프로그램’ 정책의 수혜를 받아 작가 리처드 세라가 맨해튼 연방광장에 설치하게 된 공공미술 작품으로, 높이 3.65m 길이 36m 가량의 설치물이다. 1989년 철거되었다. (출처: www.tate.org.uk)

3) 플로렌타인 호프만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uEFxQxajDPs)

4) 장소 특정적 미술은 어떠한 위치에 맞게 특별히 고안되고, 해당 위치와 상호 관련이 있는 예술 작품을 의미한다. 장소 특정적 미술은 특정 장소에 맞게 예술 작품이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 제거되면 작품이 가진 의미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출처: https://www.tate.org.uk/art/art-terms/s/site-specific )

참고문헌

1) 민지혜, 『공론장(public sphere) 개념으로 본 1980년대 미국 공공미술 : <기울어진 호>와 <베트남참전용사기념비>를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석사논문, 2010

2) 김소은, 『공공미술의 공론장 기능과 역할』,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14

무엇이 공공미술인가···법정까지 간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와 ‘슈즈트리’

리처드 세라

세라의 작품은 철거됐지만, 논란 덕분에 공공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습니다. 1990년 회화와 조각 등 시각예술품에 대한 ‘저작인격권’을 보호하는 ‘시각예술가 권리법’(Visual Artists Rights Act·VARA)이 제정됩니다.

공적 기금을 사용하는 공공미술은 기본적으로 납세자들의 세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공공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울어진 호>를 둘러싼 논쟁은 공공 미술의 형식이나 기능과 관련된 문제들을 제기했습니다. 공공미술은 사람들에게 어떤 효과를 주어야 할까? 공공미술은 관람객을 즐겁게만 해줘야 하는가? 작가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대중의 목소리에 얼마나 힘을 실어줘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명쾌한 해답은 없습니다.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철거되긴 했지만,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덕분에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일상 속에서 주변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했던 미술가의 당초 목적은 이뤄진 셈이 됐는데요. 슈즈트리를 둘러싼 논쟁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각자 질문을 던져보면서 검토해보시면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김달진 미술연구소

공공미술 어떻게 볼 것인가 송미숙

– 월간미술 2002년 11월

공공미술 어떻게 볼 것인가

송미숙(성신여대 교수)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 측면에서부터 미학적인 측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공공’과 ‘미술’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

다. 필자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공공미술에 대한 주요 쟁점과 해외사례 등을 정리

하면서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미국의 정부산하기관인 GSA(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가 맨해튼 하부 페더럴

플라자에 세워질 영구적인 ‘특정장소를 요하는 작품(Site Specific Work)’을 조각가

리처드 세라에게 1979년 주문, 의뢰하여 2년여 걸려 완성한 〈기울어진 호(Tilted

Arc)〉는 정부출연기금으로 제작된 이른바 ‘공공미술품’에 대해 이제까지 무관심하거

나 혹은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일반대중의 태도와 생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문제는 시민들의 예산으로 집행 되었고 신중한 선정심사를 거쳤던 이 공공미

술품이 엄청나게 거대하고 쓰러질 듯 기우뚱한데다가 작품이 공공 플라자 한가운데 설

치되어 여기를 가로질러 다니거나 점심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동선과 시각을

방해한 것이 발단이었다. 특히 세라의 작품이 놓여 있는 광장을 항상 왕래하거나 쉼터

로 이용해 왔던 공무원들과 노동자들은 광장을 반으로 동강내며 가로막고 서 있는 높

이 3.66m, 길이 36m가 넘는 이 작품의 스케일에다 공장에서 갓 뽑아낸 것같이 표면이

거칠고 녹슨 듯한 코르텐 강철곡면은 보기 싫을 뿐 아니라 위협적이고 상스럽다고까지

느꼈다.

그들은 세라의 〈기울어진 호〉를 ‘철의 장막’ 혹은 ‘강철벽’이라 노골적으로 비아

냥거렸다. 몇몇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던 비평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미술계 전

문가들은 세라의 가히 도발적이고 스펙터클한 작품을 열광적인 찬사와 더불어 적극 옹

호했고 이들은 역사를 앞서가는 걸작들은 일반인들이 그 예술적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

고 친숙해지기에는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한다고 주장하며 대치하던 이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일반대중과 이들 편에서 철거를 주장하는 그룹들의 거센 반발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1)

세라 편에서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나선 미국미술계와 일반대중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문화보수주의자들 간의 팽팽한 공방전은 연일 문화면 기사의 톱을 장식했고

적절한 대안이나 조정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미술계와 일반대중 간의 사고차이나 문

화적 정서의 갭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키려는 의지보다는 대중의 가열된 분노의 목표물

이 될 것이 더 두려웠던 GSA는 작품을 재배치할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GSA가 주최한 수차례에 걸친 공청회의 결과는 〈기울어진 호〉가 GSA가 의도한 대로 본

래자리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던가, 아니면 아예 철거하는 것이었다. 작가인 세라는 그

의 작품이 영구한 특정한 장소를 요하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주문, 의뢰되었기 때문

에 장소를 옮긴다는 것은 곧 작품의 파괴와 다를 바 없으며 이 특정한 장소를 위해 특

별히 고안된 작품이 원래 의도된 문맥에서 이탈된다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존립성

을 상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2)

〈기울어진 호〉는 설치된 지 4년 후인 1985년 3월 1일 철거되었다. 이 사건은 미술에

대한 정부의 센서십이라는 위험한 선례가 되었고 아울러 미술계 전문성의 위상이 합법

성에 도전받은 것은 물론이고, 표현의 자유라는 제1 민권 보장법 조항이 실제로는 얼마

나 유약한지를 보여 준 좋은 예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세라의 선례는 공동체를 위한 미술이라는 비교적 단선적인 개념을 지닌 공공

미술의 목표 및 수용의 문제와 더불어 우리에게 더 큰 질문을 하게 한다. 가령 현대미

술의 사회적 기능과 수용의 문제는 잠시 접어 두고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자

금을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한 예술작품에 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불확

정다수인 일반대중의 예술적·문화적 정서함양을 위한 것이라면 누가 이른바 ‘대중

(audience)’을 위해 어떤 작품이 가장 최선인가를 결정하는가. 작가 혹은 미술전문

가, 아니면 정부기관과 관련된 공무원이나 행정관리? 그것이 사기업 또는 개인 소유의

대지나 빌딩이라면 기업주, 소유주, 아니면 대중인 일반시민의 대표이며 공복이라는 지

역구시의원, 혹은 NGO 시민단체, 문화연대가? 그렇다면 심의의 평가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공공성, 예술성? 미술과 그것이 설치되는 건축, 나아가 도시계획과의 문화적·

지리적·환경적 문맥의 고려, 또 이에 대한 비평적 담론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등이다.

1982년 구미로부터 도입되어 실시되어 온 문화예술진흥법 제11조에 의해 신축 건축물

에 설치 의무화된 ‘미술장식품’관련 법규 – 건축비용의 1% 내지 0.1%에 해당하는, 일

명 1%법 – 는 우리 나라에서는 공공미술의 출발점이자 오늘날 대다수의 공공미술 프로

젝트가 재정적 근간으로 삼고 있는 미술을 위한 퍼센트 법으로 공공미술의 확산을 법적

으로 보장한 제도다.

이 퍼센트 법은 미술가들에게 닫힌 미술관 혹은 화랑공간이 아닌 공공의 개방된 일상생

활 공간 안의 미술의 개입이라는 새로운 형태(장르?)의 미술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

한국 현대미술사의 발전에 꽤 긍정적인 기폭제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미술기획자

나 미술단체·기업·지역주민·지방자치단 등이 자발적으로 조성한 ‘공공미술전시’들

이 심심찮게 거리나 공원에서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1%법은 작품의 선정과 심의과정 및 방법은 물론 보존과 사후관리문제, 유사작품

의 중복 설치 등 제도정착의 어려움 등 부작용과 잡음에 따른 문제점들이 노정되고 있

으며 작품의 수준도 건물의 장식차원에 머물고 있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퍼센트 법이 시행된지 20년이 경과했는데도 미술과 지역사회의

간극은 여전히 좁아지지 않고 있을뿐더러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위기 이후 건설경기의 붐을 타고 ‘미술장식품’들이 난립하는 형편이어

서 이제 초창기의 ‘문패조각’ 차원을 넘어 또 하나의 시각공해라고 싸잡아 혹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요즈음, 공공미술프로젝트의 문제는 우리 미술계가 함께 심각하게 고

찰해야 할 의제가 아닌가 한다.3)

이 글에서는 앞으로 좀더 심도 있는 연구를 전제로 문제제기 차원에서 주로 구미에서

진행되어 온 실례와 비평을 중심으로 공공미술과 관련된 주요 쟁점을 짚어 보고자 한

다.

현대미술사에서 공공미술의 개념

‘공공미술’, ‘퍼블릭 아트(public art)’, 혹은 ‘아트 인 퍼블릭 스페이스(플레이

스)(art in public space(places))’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단순히 공동체를 위해 제작

되고 소유되는 미술품을 의미하며 그 역사는 미술사만큼 오래다. 선사시대의 동굴벽

화,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의 건축조각, 중세성당과 르네상스팔라

조의 프레스코벽화, 19세기 프랑스의 공공조각과 벽화에서부터 근대산업화의 산물인 미

술관의 공공의 미술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회자되기 시작한 더 좁은 의미의 ‘퍼블릭 아트’는 대지미술

가인 로버트 스미슨(Robert Smithson)의 말을 빌리자면 “특정한 장소를 요하는 작품

(site specific work)으로 특정한,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개방적이나 자칫 삭막

해지기 쉬운 도시 내의 공공장소를 예술적 디자인으로 변형시켜 그 장소를 이용하거나

방문하는 시민들의 정서함양과 사색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는 예술작품을 일

컫는다. 나아가 작가의 창작의욕을 고취하는 동기부여와 현대미술의 저변확대는 물론

실직하거나 미술 외의 일에 생계를 의존해야 하는 전업작가들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도

주요목표의 하나다.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는 대부분이 도시이고 그 형식은 조각·벽화

·디자인 등 다양한 범주를 포괄한다.”4)

공공미술 프로그램의 첫 예를 들자면 1930년대 미국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이는 몇 년 후에 폐쇄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1951년에 도입되었다. 본격적인 예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도시중산

층과 상류계급 시민들이 교외로 속속 빠져나가면서 빠른 속도로 쇠락해 가는 도시에 새

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미국일 것이다.5) 공공건물

의 건축비용중 1%를 영구 설치되는 미술작품에 할애하는 1%법은 1959년 필라델피아가

최초로 채택하고 이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에 이르러서는 상당수의 지방자치

행정부가 조령을 채택했다. 여기에 연방정부도 합세하여 1967년 국립예술진흥기금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 공공미술 프로그램(Art in Public Places

Program)을 창설하게 된다. 그 첫 번째 작품으로 선정, 의뢰된 것이 미시간주 그랜래피

즈시에 현대조각의 거장 알랙산더 콜더의 〈거대한 속도(La Grande Vitesse)〉(1969)였

다.6) 이 초기시절에 ‘공공미술’은 실직작가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시행된

WPA 프로젝트와는 달리 콜더·피카소·무어 등과 같이 이른바 모더니즘 미술의 발전에

족적을 남긴 국제적인 작가들에 한정되었고 이는 새로운 도시의 정체성에 상징성을 부

여하고 문화도시로서의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한 의도의 결과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이 시카고의 저명한 건축가그룹인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이 신축한 시카고 시민광장에 설치된 피카소, 일명

〈시카고 피카소〉(1967)다. 수만 명이 참석했던 제막식을 다루면서 《시카고 트리뷴》

은 피카소의 공공미술품을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에 비유했고 건축가들은 미술과 건축

을 적절히 통합한 유럽의 거대한 광장들, 가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 앞 광장이나 로

마의 베드로광장을 환기케 한다고 믿었다. 또 이 프로젝트를 추진, 진행했던 시카고시

관료들은 피카소의 대형 작품 하나가 일순간에 ‘문화도시’로서의 비전과 이미지 업

에 기여한 것처럼 낙관적이었으나 정작 수용자인 시카고 일반대중의 반응은 유보적이었

다고 전한다.7)

여하간 공동화·슬럼화되어 가는 도시중심공간에 명성 있는 작가들의 ‘공공미술’로

도시의 정체성을 회복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을 유인하고자 했던 도시행정가·도

시계획자 들의 노력은 한동안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이 시기를 돌이켜볼 때 흥미 있는 사실은 거의 같은 시기에 평범한 도시일상과 예술을

접목, 관객을 그들의 행위예술의 작업과정에 참여토록 적극 시도했던 우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와 비토 아콘치 같은 액티비스트/퍼포먼스작가 들의 새로운 사회참여

적 공공미술형식이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들의 퍼포먼스는 때로는 반영구적인 공공미술

품 – 아콘치의 벤치나 우켈리스의 쓰레기 트럭 – 을 포함하며 이 작품들은 일반대중이

나 노동자계층과의 소통과 대화를 위한 사회적·물리적 공간을 창출하려는 전위적인 행

위의 일환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작품의 미학적 대상으로서의 가치보다는 ‘공공성’

과 개방된 접근성에 있었기 때문에 콜더나 피카소의 자족적이고 다분히 권위적 모더니

즘미술과 같은 ‘공공미술’의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시에는 합당치 않아 보였

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아콘치나 우켈리스, 한스 하케 들 외에 이들과 유사

한 이데올로기를 표방한 개념/과정 미술가들이 주도한 새로운 공공미술의 형식을 모색

하려는 선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이들의 시도는 그것이 공동체를 개입시킨 경

우든,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표방한 경우든 공공미술의 영역을 확장

시켰음에 틀림없다.

엘리트 모더니스트들의 권위적이고 자족적인 미학이념에 새로운 도전을 제시한 이들은

미술기획과 제작과정에 도시일상의 활동은 물론 일반서민대중을 적극 참여케 해 공동체

의식과 협업, 소통의 요소를 강조하여 사회계층간의 갈등구조를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의 새로운 공공미술형태는 이제까지 미술사의 제도권 바깥에 혹은 가장자리에 머물

던 젊은 작가들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켜 특히 1980년대 대두된 공동체미술, ‘새로운

장르의 미술’에 영향을 주어 주요 공공미술의 지평에 새로운 국면을 장식했다. 때로

는 소통의 대화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바로 그 일반대중에 의해 항상 작품의 미학적 가

치와 질적 평가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지만 이들의 관심은 예술성보다는 공공성에 있

었다.

공공미술의 공공성과 예술성

개념상 공공미술에서 ‘공공’이라는 말과 ‘미술’이란 말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모

순된 결합으로 그 정의 또한 시대에 따라 다르고 용어를 사용하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

르다. ‘공공(public)’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사회공동체, 질서, 불확정다수를 뜻하는

공중을 가리키는데 비해 ‘미술(art)’은 모더니스트 미술가에게는 공중(public)으로부

터 자유로운 개인적이고 자율적·자족적인 사고와 행위의 산물을 의미하며 특성상 ‘공

공성’에 도전하며 자신을 소외시킨다. 순수 미학적 요소와 형식을 중시하는 미술가의

관심과 일반대중의 이해가 상충하는 모더니즘의 본질적인 성격상 모더니스트 미술가의

공공미술이 공공성을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공공미술은 ‘공공성’, 즉 공공의 장소, 장소를 점유하고 그 공간에서 활동하는 공동

체의 관심과 영역, 문화적·심리적 가치와 공공적 의미표현을 함축하며 그러기 위해서

공공미술품은 그것이 한낱 장소를 미화하는 ‘장식품’이라 이름해도 공공성에 대한 책

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세라의 공공조각에서 지적했듯이 과거와 같이 공공정책과 제도의 목적을 구현하여 국가

와 시민의식의 정체성 획득에 기여한다는 상징적 기능을 부여받지 못한 현대 공공미술

은 작가가 대중문화의 코드를 해석하고 충분히 전달할 능력이 있더라도 현대미술의 문

맥에 대해 문외한인 일반대중과 의견의 합치를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들

이 미술계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몰지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공공미술에 관한 한 때

로는 거의 전문가를 능가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일반인이 공공미술을 접할 때 미술뿐

아니라 도시공간의 상태, 사회패턴 등을 함께 읽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모더니스트 미

술가, 가령 콜더·피카소 혹은 이사무 노구치가 그랬듯이 이들의 ‘공공미술’은 아틀

리에에서 마케트로 스케치한 것을 장소의 규모에 맞도록 대형으로 제작되어 공공장소

에 옮겨 놓은 사물에 불과했고 이러한 관습은 아직도 상당수 공공미술에 그대로 전승되

고 있다.

특히 공공미술과 일반 대중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은 그것이 정부의 기금이건 기업주의

기금이건 적지 않은 공자금이 공공미술에 할애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고조된

다. 또한 공공미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술가와 일반대중을 대표하는 사회단체나 문

화연대의 논쟁은 시민들로 하여금 수동적인 향수자에서 벗어나 비판의식을 갖게 한다

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적과의 동침관계에 놓여 있는 공공성과 예

술성 둘 다를 만족시킨 공공미술의 전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지금은 가장 인기 있으

며 아마도 성공적인 공공기념조형물 사례로 꼽히는 마야 린(Maya Lin)의 〈월남전 재향

군인 기념비〉(1980∼82년)도 처음에는 참전용사들의 영웅성이 배제되고 개념이 추상적

이라 하여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8)

마야 린은 여성건축도로 그의 작품은 대지예술과 세라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한쪽 끝

은 워싱턴 기념비에, 다른 한 쪽 끝은 링컨 기념관을 향하고 있는 쐐기 형태로 땅을 갈

라 광택이 나는 검은 화강석 벽으로 버티도록 하고 이들 벽에는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

을 새겨 넣었다. 이 기념비는 묘비의 기능과 공공공간에서 극히 개인적인 애도를 가능

하게 하는 ‘통곡의 벽’ 기능을 동시에 포용하는 가장 강력한 공공조형물 중 하나다.

마야 린의 경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지금은 가장 사랑을 받는 공공조형물이 설

치 당시에는 상당한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명한 사실은 공공미

술 프로젝트에 임하는 현대미술가들은 일반대중의 공간 경험과 활동에 적극 개입하여

야 하며 수용자인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막시모비츠(Virginia

Maksymowicz)가 지적하는 이상적인 현대공공미술/조각의 정의는 설득력을 지닌다. “과

거와 같은 기념비적 성격이 없는 것, 조작 자체를 일상생활에 통합시킬 수 있는 것, 본

질적으로 미술가의 개인적인 진술을 피한 것, 비미술인들이 다양한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대중 및 소통의 개념을 신중하게 고려한 것”이 바람직한 공공미술의 지향

점이며 이러한 요소들이 배제되면 공공미술은 ‘공공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지적

한다.9)

수용의 문제와 장소의 특수성

작가가 익숙한 환경이며 지역정서를 충분히 고려한 경우라도 때로는 그 결과가 빗나가

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클레스 올덴버그가, 모교인 예일대학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또 당시 미국의 월남전 참전에 대한 현실비평의 일환으

로 교정에 여성의 상징적인 페티시 오브제 – 아울러 남성 음경의 상징이기도 한 – 인

립스틱을 기념비적인 스케일로 확대한 대형조각을 고안 했다. 그런데 이 기념비적 조형

물은 올덴버그가 즐겨 그랬듯이 대중 소비문화의 상징과 새로운 사회질서와 이상세계

의 이미지 – 구체적으로 올덴버그는 러시아 공산주의혁명의 이상적인 상징조형물이었

던 타틀린(Vladimir Tatlin)의 1920년작 〈제3 국제박람회를 위한 기념비〉와 대중잡지

의 립스틱광고 – 를 결합한 것으로 이 작품은 올덴버그가 제안한 상당수의 공공미술 프

로젝트 중에서 가장 최초로 실현된 것이었다, 그러나 작품이 설치되었을 당시 학교당국

의 따가운 시선 – 이 조각은 군사권력의 명백한 상징인 탱크 위에 놓여 학생 시위 때

에 기단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제공했기 때문에 학교당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

은 물론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의 냉소적인 반응을 초래해 결과물은 수정되어 – 원래 의

도는 세 단계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작을 반복하도록 되었으나 고정된 상태로 – 설치

되었다.10)

이 글 서두에 소개한 세라의 작품에서 작가 자신은 ‘공간을 재정의한다’는 명목으로

장소의 특수성을 고려했지만 작품이 질적으로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공적

공간의 문맥을 무시한 ‘미술의 폭력’이자 청문회의 판사가 결론지었듯이 ‘공공장소

를 사유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장소의 특수성’은 조각이 놓이는 특정한 장소인 광장을 이용하는 근

로자들의 통행을 고의적으로 차단, 방해하는 방식을 택했고 근로자 개개인을 그 나름대

로 작품에 대해 미학적·법적으로 그리고 여타 다른 주장을 지닌 인격체가 아닌 단순

히 ‘통행량’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그가 장소의 공공적 기능을 살리는 것이

1994년 장 미셀 빌모트와 다이엘 뷔렌의 공동작업으로 프랑스 리용 셀레스틴 공원에 설

치된 잠맘경

아니라 오히려 전복시키는 방식을 택했고 ‘공공장소’의 개념을 사람과 관련된 공간

으로 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11)

예술이란 이름으로 공동체를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자세 – 세라 자신은 〈기울어진 호〉

가 철거되었을 때 자신의 예술성이 도리어 권력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는 작가의 독선이자 권력의 횡포이며 세라와 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대중은 공공미술품을 반드시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는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에도 상륙한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은 정

도에 차이는 있어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고, 복수로 제작되어 어떤 도시에서는 은행 앞

좁은 보도에, 어떤 곳에는 기업이 소유한 광장 옆에 놓여 있다.

오히려 공공미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술가가 참여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좋은 반응

과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조경가와 건축가 팀이 설계한 뉴욕의 페일리(Paley) 공원이나 그린 에이커

공원은 성공적인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구태여 이유를 꼽자면 미술가보다는 건축가나

조경사들이 훨씬 현실적이라는 것, 공간을 보는 미학적·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공공적 차원의 문맥도 중시한다는 점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

공 미술프로젝트에 미술가 개인이 참여하는 것보다는 건축가와 협업을 하거나 적어도

제작 시초부터 그 작품이 설치될 특정한 장소에 대한 공동체의 의견수렴과정을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때 건축가는 단순히 작가의 작품설치와 관련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자나 자문역이 아닌 적극적인 동업자 관계 설정을 전제로 해야 할 것

이다.12)

이러한 예로서 1995년 리용시가 주최, 후원한 주차장 프로젝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용시는 도시 지하를 그물망처럼 이어주는 공용주차장을 설치하면서 설계과정에 미술

계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정표가 되는 주요 주차장에 건축가 1명과 미술가 1명의 팀 –

이 프로젝트에는 다니엘 뷔렌과 빌모트가 한 팀을, 그 외에도 프랑수아 모렐레, 매트

멀리칸, 미쉘 베리쥐 등이 참여했다 – 을 구성, 어둡고 음산해 자칫 우범지역이 되기

쉬운 지하주차장을 생기 있는 공간으로 변형시켜 리용 시민의 호응을 얻었을 뿐 아니

라 이제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1994년 장 미셀 빌모트와 다이엘 뷔렌의 공동작업으로 프랑스 리용 셀레스틴 공원에 설

치된 잠맘경

공공미술이 선호하는 특정장소로는 세계 각 도시마다 체증과 포화상태에 이른 지상의

교통량 해소를 위해 건설된 지하철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미술의 사회참여라는 측면에

서 볼 때 이보다 좋은 공공장소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가장 처음 지하철 프로젝트에 임

한 나라는 영국으로 당시만 하더라도 벽화가 고작이었다. 이러한 선례를 따라 미국의

키스 해링 같은 작가는 특유의 양식화된 인물을 광고판 위나 그 옆에 낙서하듯 그리는

작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화랑의 전시 대신에 이러한 방식을 택한 것은 굳이 화랑의

지배구조나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 목표였다기보다는 화랑들의 문턱이 높았기 때문이

다. 특히 뉴욕의 작가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공적인 대안공간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지하주차장과 마찬가지로 지하철은 고달픈 서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공간이어서 사회참여의식을 지닌 작가가 한번쯤 도전하고 싶은 공

간이기도 하다. 최근 반달리즘으로 곤역을 치르고 있는 강영민, 이동기의 〈아토마우

스〉 벽화는

〈제1회 미디어_시티 서울 2000〉페스티벌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되

었던 지하철 프로젝트에 참여, 영구 설치된 작품이다.

최근에 접한 지하철 프로젝트 중에 인상에 남는 것은, 프랑스의 지하철본부(RATP)가

2000년에 지하철역사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파리의 상징이라 할 9개의

역사 – 생 제르맹 데 프레, 파스퇴르, 유럽, 룩셈부르, 라 본느 누벨 등 – 를 밀레니엄

을 맞아 새로운 개념과 모습을 담은 장소로 리모델링하는 기획이었다. 9개의 역사는 각

각 영화·유럽·건강·창조·음악 등의 특징적인 테마를 나타내도록 했고 이 공모에 뽑

힌 팀 – 역사마다 기획자, 건축가와 미술가로 조성된 협업팀 – 들은 주기적으로 만나

의견조율과 토론을 거쳐 제작에 임했다. 파리 지하철본부는 상당한 예산을 투입했고

이 팀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했다. 우리 나라 지하철본부나 서울시와는 달리 역사의

전체공간, 입구계단에서부터 광고 게시판·통로 바닥·조명은 물론 천장까지 새로운 디

자인으로 바뀐 이 9개의 파리의 지하철역사는 지하철운영의 만성적자를 메우기 위해 상

당한 수입원이 되는 광고판들이 주요한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의 그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개념과 영역의 확장

이러한 경향은 관료나 미술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제작자인 미술가와 의뢰자인 자치

단체나 건축주 같은 공급자/물주가 중심이되며 거기에는 공공미술이 설치되는 지역주민

이나 관람객을 위한 관심이나 반응애 해한 배려는 전무한 실정이다. 퍼센트 법을 시행

하는 과정에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심의위원회를 구성, 객관적인 평가를 유도하지만 문

제는 사전심의가 아니라 이미 건축주가 작가선정작업을 마치고 제작을 의뢰하고 난 후

에 심의에 한정한다는 점, 현역작가들이 안배된 심의위원들의 구성, 그리고 평가기준에

는 공공미술이 실제로 기능하는 장소에 지역주민의 문화적 요구나 의견청취에 대한 항

목은 들어 있지 않다는 점 등이다. 주민들의 문화의식 성숙도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

이지만 상당수 ‘공공미술품’이 왜 외면당하는지 규명해 볼 필요는 있다. 모르긴 몰라

도 주민들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공공미술품이 그렇지 않아도 협소한 아파트 앞 광장을

‘장식’하기보다는 환경친화적인 조경이나 분수를 선호할지도 모르겠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몇 가지 제언을 시도하기 전에 1991년 영국예술원(Arts Council)

이 공공미술의 가이드라인으로 관료들에게 제시한 내용을 참고로 소개하면 “장소를 더

욱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것과 일반대중이 현대미술에 대한 접근성의 강화,

건물과 공동체의 상이한 요소나 특성을 통합, 정체성의 강화, 건축·조경·디자인과 기

술공학자 등 환경을 조성하는 전문가와 미술가 들의 유대강화”등을 들고 있다.13) 현

시점에서 공공미술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외국의 사례를 참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제안

을 해 볼 수 있겠다. 그 첫째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미술’의 개념정립과

비평작업을 전제로 당분간은 적어도 체계 있는 충분한 자료조사와 현장검증을 토대로

한 기획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1%법의 시행에서도 각 지방자치단체는 건축주가

건축설계단계부터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개념을 포함시켜 진행, 건축가와 미술가가 협

동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며 사전에 작가선정도 공개모집방식을 채택하여 정보를 가

능 한 한 많은 미술가들이 공유하도록 해 몇몇 작가나 조형연구소만 독식한다는 비판

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연해 있는 지역주의·배타성도

경계해야 할 우리 나라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다.

사실 퍼센트 법의 중요한 목표 중에 실직작가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위와 같은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미술과 관련해서는 현대

식 경제이념의 도입도 참조해 볼 만하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공공미술기획은 미

술전문가가 해 봄직한 벤처 사업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의 사례로 일본의 미술기획전

문가인 후미오 난조의 우츠노미야시 컨소시엄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둘째로는 공공미술의 담론형성과 교육의 저변확대다. 여기에는 미술가는 물론 지방자치

단체·관료·도시행정가·도시계획가·조경사와 건축가·엔지니어 등 다양한 전문가그

룹이 참여해야하며 시민단체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근자에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

서 가속되는 도시재개발사업,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문화센터에 대비해 도시문화행정

가·기획가들이 턱없이 부족함은 물론 이들의 실제경험을 통한 교육과 참여는 현안으

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기획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은 자명하

다.

1. 공공미술에 은연중 내재한 권력 담론에 대해 비판적이고 페미니즘 시각을 지닌 일

부 일부 비평가들 – 예를 들면 수지 개블릭이나 바바라 로즈와 같은 – 은 세라의 작품

은 공간 위에 군림하려는 남성적 제스처이며 ‘타인과의 관계를 하찮게 여기는 영웅주

의적이고 호전적인 자아의 표현’으로 또 하나의 남근주의적인 모더니스트 작품이었

다. Suzi Gablik, 《The Reenchantment of Art》1991, London: Thames & Hudson; 《미

술, 공간, 도시, 공공미술과 도시의 미래(Art, Space and the City by Malcolm

Miles)》, 1997, 박삼철 옮김, p.92에서 재인용

2. Lisa Phillips, 《The American Century, Art & Culture》, 1950-2000, NewYork: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exhibition catalogue (September 26, 1999 ∼

February 13, 2000), p.329∼330

3. 서울시 미술장식품 심의위원회는 매달 열리며 매회 건수는 어림잡아 40건, 50점 정

도를 상회한다.

4. 공공미술의 범위와 개요에 대해서는 《미술, 공간, 도시, 공공미술과 도시의 미래

Art, (Space and the City by Malcolm Miles)》, 1997, 박삼철 옮김, p.20∼31 참조.

5. 미국은 1934년 세계공황으로 실직한 미술가들을 위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미술가

들에 공공건물을 장식할 벽화나 조각을 의뢰하기 위해 처음 마련되었고 프랑스에서는

1951년에 도입되었다.

6. 이외에 바로 세라의 작품을 의뢰했던 GSA는 1963년 뉴딜 정책으로 실시된 WPA 프로

젝트와 유사한 공공미술 개념에 기초한 연방건물 건축비의 0.5%를 공공미술에 할당하

는 제도를 채택하였고 이‘건축 속의 미술(Art in Architecture)’프로그램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양현미 외, 《공공근로사업과 공공미술프로그램연구》, 한국문화정책개

발원, 1999, p.24

7. Lisa Phillips, 《The American Century, Art & Culture》, 1950-2000, p.200-201

8. 월남전 재향군인회의 일부 회원들은 적극적인 로비활동을 벌여 프레데릭 하트의 사

실적인 부조작품을 린의 작품 옆에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Lisa Phillips, 《The

American Century》, p.330

9. Virginia Maksymowicz, 《Through the Backdoor: Alternative Approaches to

Public Art》, Art and the Public Sphere, ed. WJ.T. Mitchell, 1992, p.155; 전혜

숙, 〈리처드 세라 의 공공조각과 장소-특수성〉 《현대미술사연구 제10집》, 2000,

p.79에서 재인용

10. Kirk Varnedoe and Adam Gopnik, 《High & Low, Modern Art and Popular

Culture》, NewYork : MoMA exhibition catalogue, 1991, p.363-366

11. 전혜숙, 앞의 논문, p.88-89

12. 미술가와 건축가의 협업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둘 다가 새로움, 탁월함과 같

은 용어로 표현되는 질적 가치중심의 모더니스트 취향에 몰두하고 있어 이 둘의 공동작

업의 결과는 번번히 공간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며 사회는 ‘타자’일 뿐이고 전문성이

란 곧 개인주의, 혁신, 스튜디오 내부의 행위라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할”뿐이라고한

다. 또 다른 비평은 전혀 다른 문맥에서 협업의 모순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미술이란

기본적으로 비평활동인 데 비해, 건축은 대중문화의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

서 후자는 공공미술 자체의 모순, 다시말해 미술은 특성상 공공미술이 될 수 없다는 극

단론이다. Andrew Brighton 〈Is Architecture or Art the Enemy〉, 《Space

Invaders》, ed by Nicholas de Ville Stephen Foster, 1993, p.43-59

13. 맬컴 마일스 (박삼철 역), 《미술, 공간, 도시》 ,p181에서 재인용



공공미술과 거의 짝이 되어 붙어 다니는 개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장소 특정성이다. ‘site-specific’(장소 특정적)이라는 말을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는 이 장소 특정성은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그리고 공공미술 논의를 뜨겁게 달군 역사적 사건이 있다. 바로 리처드 세라 Richard Sera의 <기울어진 호 Tiled Arc>의 철거 논쟁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미국 연방 조달청의 의뢰를 받아 설치된 이 작품은 뉴욕 연방 청사 광장을 3.6m의 높이의 녹슨 철(코르텐스틸) 36m가 가로지르며 세워졌으나, 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자유로운 보행에 방해가 되며 마약 거래 등 범죄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철거를 호소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이 시야를 방해하고 움직임을 제지함으로써 연방정부 등의 ‘권력’을 경험케 하려는 것이 바로 작품의 의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 장소에서 바로 제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에 “작품의 이전은 곧 작품의 파괴”라며 장소 특정성의 이유로 철거 및 이전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꽤 오랜 논쟁 끝에 이전이 결정되었다.

Richard Serra, , Federal Plaza, 1981-1989 365.7 x 3657.6 x 30.45 cm Photo : Anne Chauvet © Richard Serra

삼척동자도 알만한 이 사건을 왜 언급하는 것일까? 이 작품의 철거 논의는 공공미술에서 여러 논의를 발생시켰다. 장소 특정성의 의미로서 함께 제기된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장소에 놓이는 작품의 ‘공공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에서는 자율성과 공공성이 상반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장소 특정적이라는 개념에서 ‘장소’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특정적’이라는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보다 주요하게 제기하고 싶은 것인데, 이러한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작품은 누구의 것인가?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논제를 제기하는 이 작품의 철거 논쟁은 여전히 공공미술 논의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상호 연관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점이다.

먼저 장소 특정성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이 장소 특정성은 ‘모더니스트 패러다임’ 1) 논의와도 연관된다. 즉 그린버그가 ‘매체 그 자체’를 선언하고 예술이 예술 외적인 것에서부터 독립하여 예술 그 자체로서의 ‘자율성’, ‘순수성’을 주장하며, 나아가 추상예술의 그 난해함이 도가 넘었을 때에 일각에서는 ‘순수예술 지상주의’라는 비판을 넘어 비난까지 쏟아져 나왔다. 순수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반발의 한 양상으로 예술 스스로가 제 발로 화이트 큐브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바로 공공미술이다. 여기서 구분하여야 할 것은 미술관 안에서 전시하였던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와 아무 상관없이 미술관 밖으로 똑떨어져 나왔다는 의미에서 ‘플롭 아트 Plop Art’와는 다른 공공미술이며, 바로 이러한 점에서 ‘장소 특정성’ 개념이 표명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버트 배리 Robert Barry라는 예술가는 자신의 전선 설치 작업들이 “모두 설치 장소에 맞도록 만들어졌으며, 그것들을 부수지 않고는 옮길 수 없다”고 1960년대 후반에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20여 년이 지나 리처드 세라도 자신의 작품 철거 논쟁에 대하여 동일하게 주장한다. “작품이 그 장소를 위해 고안되고, 그 장소에 설치되며, 그러므로 그 장소에 통합된 한 부분으로 존재하면서 그 장소의 성격을 변경시킨다. 그것을 떼어내는 것은 작품이 존재하기를 멈추게 하는 것과 같다.” 20여 년의 시간의 흐름 때문일까? 로버트 배리의 주장은 옳고 리처드 세라의 주장은 틀린 것이 된 것은? 그의 작품이 수용 불가능하게 된 것은 20여 년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대착오적 발상 때문이었을까? 물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초기 실험적 의미가 퇴색되고 한물간 것이 될 수도 있다. 로버트 배리의 작품은 대지 미술, 과정 미술,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미학적 실험들의 초기 단계로서 전위적인 조각에서의 급진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다고 그 급진성이 쇠락하여 작품의 철거하자는 논의가 성립될 수는 없다. 여기에 바로 ‘장소’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 세라는 뉴욕 연방정부 ‘앞’에 설치될 작품을 통해 공간을 재정의하고 재구성하고자 하였다. 즉 작품 <기울어진 호>를 통해 “대중을 억압하고 위협하며 시야를 방해함으로써, 움직임을 제지하고 차단의 감정을 촉발”시킴으로써 연방 정부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경험시키고 억압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작가는 장소에 대한 숙고에서 작품의 설치 공간이 연방 청사 ‘앞’이라는 것만 고려하였지 이곳이 ‘광장’이라는 것을 망각하였다.

Photo: left- James Ackerman, right – Susan Swider ©Richard Serra

앞서 언급하였듯이 작품의 철거 논쟁에서 작품의 소유권도 함께 쟁점이 되었다. 바로 작품의 설치와 철거, 그리고 이전 등의 권한에 대한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한이 작품을 제작한 작가에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품 제작을 의뢰하고 제작비와 설치비를 제공한 연방정부에게 있는 것인지, 이것도 아니면 설치된 그 공공장소를 이용하고 있는 공중(시민)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는 간단하게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작품은 공공시설청의 ‘건축 속의 미술’(Art in Architecture) 2) 프로그램에 의해 설치되었고 연방정부가 의뢰하였기 당연히 작품의 설치 등에 관한 세부적인 책임과 권한은 설치 계약에 명시하였을 것이고 또한 관련한 법률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을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작가는 ‘광장’이라는 장소를 망각하였고, 더더욱 광장의 주체를 전혀 숙고하지 못하였다. 바로 장소에서의 ‘주체’의 문제를 상정하고자 한다. 여기서 몇 가지를 더하여 논의를 전개하겠다. 바로 예술의 자율성의 문제인데, 글의 앞부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공공미술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은 상충되는가라는 문제이다. 그리고 두 사상가를 불러오고자 한다. 바로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과 자끄 랑시에르 Jacques Rancière.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테제를 설명하였다. 바로 매체에 따라 지각방식 또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각방식의 변화로서 대중은 단순히 관람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비평가의 지위를 지닐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바로 사진, 영화라는 매체가 집단적 관람의 방식과 다양한 매체의 속성을 통해 대중의 지위를 올려놓았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통해 작품은 이전의 ‘제의적 가치’가 아닌 ‘전시 가치’가 주요하게 대두되었다고 설명한다. 즉 관람자는 더 이상 예술작품에 대하여 ‘숭배적’ 태도가 아닌 ‘비판적 거리두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논의와 연결하여 공공미술 역시 이해할 수 있다. 작품 역시 작품이 놓여지는 ‘장소’를 바꿈으로 해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관람자 역시 과거의 수동적 태도가 아닌 ‘비판적’ 태도를 득하였고, 나아가 장소의 주체로서 그 장소의 ‘작품’에 대하여 ‘주체’의 지위를 스스로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리처드 세라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공공미술 작품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내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층 더 나아가 작품의 놓이는 위치는 예술이자 예술이 아닌 것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즉 예술 작품이 놓이는 장소가 미술관이 아닌 일상 공간이기에 작품은 작품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이러한 논의는 랑시에르의 매체론이자 예술론과 연결 지어 설명할 수 있는데, 그는 도구와 수단으로서의 매체의 개념 3) 과 ‘매체 그 자체’ 4) 라는 개념을 넘어 제3의 ‘환경으로서의 매체’ 개념으로 예술의 의미를 내어놓고 나아가 “예술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예술이 아닐 때 예술이다”라고 언급한다. 5) 흥미로운 것은 ‘장소 특정성’ 개념이 제기된 초기 논의에서 비슷한 의미가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장소 특정적 미술은 훼방을 놓든 동화되는 주변 환경의 맥락에 의해 형식적으로 규정되거나 방향성이 유도되는 식으로 그 환경의 일부가 된다는 것. 6) 훼방을 놓거나 동화되는 방식은 그 환경의 일부이면서 일부가 아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예술이면서 예술이 아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정한 공공미술, 나아가 예술이라면 그것이 예술이면서 예술이 아닐 때, 하나의 도구와 수단이면서 매체 그 자체로서 예술일 때에, 즉 그 ‘환경으로서 매체’로서 기능할 때 가능할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공공미술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공공성이 상반된 것이 아니다. 리처드 세라의 작품이 예술의 자율성으로서 철거 반대를 주장하였지만, 그것은 장소 특정성 자체도 이해하지 못한 것, 바로 더글라스 크림프가 비판한 바와 같이 예술의 자율성과 순수성에 대한 모더니즘 신화 그 내부에서 스스로 무덤을 판 행위가 되어 버렸다.

공공미술 작품은 공공연히 도마 위에 오른다. 그럴 때마다 예술의 자율성이 희생된 것인 양 작가와 일부 비평가들이 변을 늘어놓는다. 공공미술 논쟁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기울어진 호>가 철거된 지도 거의 30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것보다 보다 더 명료히 환경에 놓이는 작품으로서의 장소 특수성에 대한 논의가 반세기 전에 있었다. 그리고 보다 오래 전 1936년에 이미 벤야민은 전통적 가치가 청산되고 예술의 가상이 사라졌음을 이야기하였다. 예술의 자율성 논의를 쉽게 압축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논란은 우스운 일이 아닐까?

공공미술작품에서만 예술의 자율성이 터부 되고 공공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반성하시라. 장소에 대한 오독이 예술성으로 가장될 수는 없다. 그 장소의 ‘공공’이 누구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예술성의 상반된 개념으로 대중성을 제기하며 대중에게 외면받은 예술로 자위하기도 한다. 대중을 얕보는 태도이다. 오랜 기간 ‘좋은’ 작품으로 사랑받는 작품의 평가자가 바로 대중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기울어진 호>는 정부의 권력을 가시화하고자 하며 대중을 그 권력의 힘을 경험하게 하려 했으나 이러한 작품의 의도는 주객이 전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의 주체를 상기하지를 못한 것이다. 그 권력을 ‘권력’으로 보여주고자 하였으니 대중은 그 ‘권력’에 맞선 것이다. 장소에 특정한 작품은 그 장소의 역사적, 지리적 의미를 이해하여야 하고 또한 현재의 그 장소의 주체를 사유해야 한다. 공공을 이해하지 못한 공공미술은 작품으로서 예술성도 갖추지 못한 것임을 알아야 할 일이다. 최근에 벌어진 국내 이화동 벽화 사건이나 ‘7017 서울로’ 개장을 기념으로 설치된 공공조형물 <슈즈 트리>도 유사한 맥락에 있다. 그 장소와 함께 그 장소의 주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그 어떤 예술의 자율성도 설득될 수 없다.

1)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보다 광범위해졌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은 유행처럼 다소 사라졌다. 철학과 미학 내에서도 모더니즘을 새로이 논의하고 있다. 여하튼 그린버그식의 모더니즘 논의는 그의 텍스트 ‘모더니스트 페인팅 Modernist Painting’에 의거하여 모더니스트 회화, 모더니스트 조각, 모더니스트 패러다임 등으로 언급한다. 2) 우리나라의 건축물미술작품 설치제도와 유사한 것으로 건축비의 0.5%를 작품을 설치하도록 하는 공공미술제도이다. 3) 이것은 매체가 단순히 도구와 수단이기도 한 것이기도 하며, 따라서 테크네 techne 인 기술이 예술이 되지 못하고 그저 기술로만 존재하는 것을 내포한다. 4) ‘매체 그 자체’는 앞서서도 설명하였듯이 그린버그의 매체론이자, 예술론이다. 즉 예술이 매체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어야 예술 고유의 특성을 획득한다고 설명한다. 5) Jacques Rancière, “What mediaum can mean”, Parrhesia No.11, 2011. pp.35~36. 6) 권미원, 『장소 특정적 미술』, 현실문화, 2013.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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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06. 2021

Richard Serrs’s “Tilted Arc”, in the Foley Federal Plaza, New York.

얼마 전,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다양한 유형의 미술활동으로 문화를 통한 지역공간의 품격을 제고하기 위해 1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시행된 ‘우리 동네 미술’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사실상 종료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표절시비와 같은 공모심사과정, 미비한 지원제도, 예술인의 허술한 계획 등 해묵은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문제의 원인이 비교적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논쟁이 뒤따라야 한다. 사업에 대한 분석은 우선 사업의 투명한 공개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평가나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7년 나는 서울시의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은미술관》의 성공이 한국 공공미술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나름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좀 더 구체적인 자료의 공개를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몇 차례 서신교환 끝에 거절당했다. 당시 나는 사업주체들의 이 같은 폐쇄적 마인드가 미술의 공공성과 대중의 향유권 및 제작권에 걸림돌이 되어 한국 공공미술의 발전을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공공미술은 무엇보다 개방적이어야 한다. 전시장소 뿐 아니라 수행에서 평가와 같은 사후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누구에게나 명징하게 열려있어야 한다. 해당 담당자나 전문가들끼리 속닥거리고 결정하는 사업 구조는 애당초 공공미술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한국의 공공미술이 아직까지 오브제 중심의, 심지어 철거해야 마땅한 수준에 머무르고 프로젝트의 지속성이 부실한 이유 중 하나는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이에 따른 평가의 부재, 논쟁의 기피, 전문가들의 권위의식을 기반으로 한 폐쇄성에 있지 않을까. 미국의 <기울어진 호> 논쟁을 보면서 부러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세계적 반열에 오른 작가의 작품마저도 치열한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심지어 철거 대상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일반인에서부터 미술, 정치, 사회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으로 신랄하게 비평한다. 이러한 열린 논쟁이야말로 공공미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동력이다. ‘새 장르 공공미술’과 같은 현대 미술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개념이 미국 공공미술에서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1981년 설치한 <기울어진 호>는 긴 논쟁 끝에 1989년 3월 15일 밤 철거되었다. 뉴욕 연방광장에 세워지자 광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고 철거를 요구했다. 이렇게 시작한 철거논쟁은 작품이 설치된 내내 진행되었다. <기울어진 호> 논쟁이 공공미술의 지원제도와 미술계 내부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동시대 공공미술의 진보를 가져다 준 <기울어진 호> 논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I. 미술제도

1. 제도 공간의 탈피

크림프(Douglas Crimp)에 따르면 세라는 미술의 생산과 수용방식, 미술품의 유통에 대한 제도적 지원들, 이러한 제도들로 대표되는 권력관계들, 요컨대 전통적인 미적 담론이 은폐해온 모든 것을 폭로하고자 했다.

“미니멀리즘이 미술의 제도화된 상품 유통의 “공간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제도 권력의 비판에 실패한 점을 세라는 갤러리, 미술과 같은 제도공간의 형식적 조건에 반대하였다. 세라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별하는 화석화된 사유를 거부하면서, 거리에서 배운 교훈들을 다시 갤러리로 가져올 것을 주장했다. (…) 세라는 갤러리를 역습함으로써, 즉 갤러리를 조각을 볼모로 삼아서 갤러리의 권위를 거부하고 갤러리를 투쟁의 장소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투쟁이 미술가의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켈리(Michael Kelly)는 <기울어진 호>는 특정한 공공장소에 맞는 공공미술 작품이라기보다는 공공장소에 세워진 개인의 조각 작품이라고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세라는 공공장소 안에 놓일 공공조각을 제작하는 대신 공공장소를 사유화한 것이다.

2. 미술의 대체소비 거부

세라는 <기울어진 호>를 통해 미술에 관한 다른 모든 소비 형식을 물리치고 미술의 소비를 미술의 물리적 현실(material reality) 속에서 이루어지를 추구했다(크림프). 물리적 현실은 특히 사진이라는 기록물로 소비되는 미술의 복제, 즉 미술의 대체 소비(surrogate consumption)를 거부하는 현실이다.

“만약 당신이 조각을 사진이라는 평면으로 환원시킨다면, 당신은 조각의 찌꺼기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작품의 순간적 경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조각의 소비방식일 수 있다. 그것은 회화를 소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통해 소비하는 방식이다.”

이는 당시 대지미술, 개념미술 등이 미술의 물질화를 피하는 대신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작품화하는 흐름에 대한 세라의 저항이었다. 미술 작품(특히 조각)은 구체적인 물질(사물)로 남아야하고, 관객은 그 사물과 만남으로써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세라의 생각이었다. 이는 세라가 미니멀리즘과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미니멀리즘이 사물 자체로부터 전시공간으로 미학의 전선을 확장하였다면, 세라는 사물 그 자체에 더 집중하였다.

3. 미술의 탈상업화

<기울어진 호> 논쟁은 미국에서 공공미술 기금의 존속여부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작업하는 공공미술 작가들은 때때로 후원금보다 비싼 제작비를 들여야 할 때가 많다는 작가의 증언이 청문회에서 나왔고 세라 또한 이에 동조했다. 즉 작가가 정부의 지원을 받고 공공미술을 하는 것은 꼭 돈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계산으로 정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돈을 떠난 작가의 창작의욕이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향후 얻게 되는 이득, 즉 명예와 이와 직결하는 작품 가치와 가격의 상승 등이 작가의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이후 세라를 포함한 미술가들이 여전히 정부 프로젝트 공모에 참여하고 작업하는 현실은 작가들이 자신의 비용을 들여서 작업에 참여하는 복잡한 이유를 설명한다.

더구나 세라는 자신의 작품을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미술의 상업화를 피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미술의 상업화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니멀리즘이 비슷한 생각으로 상업화에 저항했지만, 크라우스가 지적하였듯 그들 또한 상업화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미술이 사회구조의 기본축인 자본의 지배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미술의 근본적인 한계 속에서 결과적으로 세라가 시도한 미술의 탈상업화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미술평론가 심현섭

출전: 김달진 미술연구소 (Seoul Art Guide)

[Opinion]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도서]

마거릿 P.배틴 <예술이 궁금하다>

미술을 전공하며 동기들과 나눈 말들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 ‘배울수록 점점 더 미술이 뭔지는 점점 모르겠지 않아?’라는 말. ‘미술(美術)’이라는 한 분야의 전공에 대해 공부를 더해가고 있음에도, ‘미(美)’를 알기 어렵다는 말은 배울수록 미의 범주가 넓어져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였다. 미술이란 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무언가를 표현하는 예술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내 안에 자리잡은 이후로 또 다른 차원의 고찰이 시작된 것이다.

미의 기준이란 참으로 모호하다. 시간과 공간, 개인의 애호 등 다양한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마거릿 P.배틴이 저술한 <예술이 궁금하다>는 미학과 관련된 실생활 속 예시들을 퍼즐을 조립하듯 풀어가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사례들 중 세 가지의 예시를 들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살펴본다.

긴 시간에 걸쳐 발전한 미술사조 속 수많은 작가들은 각자의 미적 가치를 작품에 담고자 했다.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 창작한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황금비례와 조형미를 가진 작품이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고, 과거의 양식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거나 작가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행동이 예술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선 더 이상 전시장에 걸린 작가의 작품만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관람자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이라 일컬어지는 작품까지 생겨났다. 그렇다면, 이토록 다양한 작품들이 어떻게 공통적으로 사람들에게 ‘예술’로 여겨질 수 있던 것일까?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의 미인식 – 아름다운 산악풍경과 존 케이지의 <4‘33“>

첫 번째 케이스에 등장한 산악 왕국의 주민들은 수세기 동안 자신들이 처한 지형적 조건을 비관한다. 이는 단순히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실제적인 불편함과 낙후된 상황이었다. 주민들의 통념을 변화시킨 것은 낭만파 시인들의 자연 장관에 대한 호평이었고, 이 평가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며 실제로 아름다운 공간으로 여기게 된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는 언제, 어떻게, 무엇에 의해 아름다움을 지각할 수 있으며, 무엇이 그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플럭서스와 해프닝의 영향을 받아 전개된 신체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음악가인 존 케이지의 <4’33”>는 이 산악풍경 일화와 무척 닮아있어 흥미롭다. 많은 관중들이 모인 무대에 턱시도를 차려입고 나타난 존 케이지는 진지하게 안경을 쓰고 악보를 넘기고선 별안간 피아노 뚜껑을 덮어버린다. 무려 4분 33초라는 자신의 공연 시간동안 건반 한번 누르지 않은 것이다.

실제 4분 33초의 악보에는 3악장 동안 단 하나의 음표도 악보에 그려져 있지 않다. 피아니스트가 연주해야할 음계가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그의 음악을 듣고자 한껏 귀 기울이고 있던 관중들은 낯선 소리들이 만들어낸 연주를 듣게 된다. 바로 홀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웅성임부터 시작해 사그락거리는 작은 백색소음들이 악기가 된 것이다. 존 케이지의 의도를 파악한 관중들은 공연이 마치자 큰 박수갈채를 보낸다.

험준한 산악 왕국이 분명 여러 지리적 악조건을 가진 곳인 것처럼, 존 케이지의 <4분 33초> 또한 어떤 소리도 연주하지 않은 무음에 불과했다. 그것은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것이었다. 잔뜩 기대한 마음으로 클래식 연주를 들으러 가서 피아노 뚜껑을 덮어버리는 피아니스트를 만나고 싶던 관객은 누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낭만파 시인들이 산악 왕국의 주민들의 미인식을 바꾼 것처럼 존 케이지는 관중들이 백색소음의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주민들과 관중들은 공통적으로 일상에서 늘 함께하고 있던 것에 대한 고정된 통념이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지형이 그러했고, 관중들에게는 백색소음이 그러했다. 각각 ‘낭만파 시인들’과 ‘존 케이지’라는 계기를 만나 아름답다는 감상의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이 일화를 통해 미는 대상 자체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감에 의해 지각하고 감상하는 사람들에 의해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미적 가치판단은 가변적이기에, 시기나 조건에 따라 변하기도 하며 일화와 같이 계기에 따라 변화할 수도 있다. 시인들과 존 케이지는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가치 없다고 느낀 것들을 눈여겨보게 하고, 귀 기울여 감상하게 함으로서 판단 기준을 재정립하게 유도 한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대상에 따라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특성을 가진다. 또한 인간의 지각과 경험, 감상에 의해 판단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미의 표준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 미인대회의 낙선과 <목이 긴 성모>

두 번째 케이스는 미인 대회에서 낙선한 여성이 주최 측을 상대로 항의를 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대회에서 낙선한 여성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물증들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로, 과거에 미의 표준이었던 것. 지난 당선자들과 대중이 이미 미인이라 공인한 사람들의 외양이 속한다. 둘째로, 미에 대해 판별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것. 전문가의 증언과 컴퓨터 분석으로 꼽힌다. 대회에서 심사의 지침으로 제시한 슬로건은 ‘미 자체에 주목해 심사를 할 것’이었기에 낙선한 여성은 자신이 가장 적합한 당선자였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과거의 표준이 언제나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획일화 된 규범처럼 여겨질 수 있는 것인지와, 전문성을 가지는 것은 과연 절대적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16세기 초 이탈리아에는 3대 거장이라 불리는 빼어난 작가들이 있었다.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 이 세 사람은 이전 미술사조에서 그토록 연구하던 해부와 화면구성, 조형, 원근법 등에 있어 통달한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회화와 조각 이외에 의학 등에도 두각을 나타낼 만큼 걸출한 사람들이었다. 미술사조에서 가장 압도적인 천재라 불리는 이들의 전문성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완벽에 가까운 조형미를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면, 응당히 뒤이어 그들의 작품을 모방하고 연구하며 미를 추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르네상스 시기가 지난 이탈리아에는 이전에 거장들이 이룩한 완벽한 조형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마니에리스모(manierismo,매너리즘)이 나타난다. 매너리즘 시기의 화가들은 3대 거장들이 이루고 간 업적이 미술사의 큰 업적임을 인정하면서도, 더 이상 후대의 예술가들이 답습하는 것은 무의미한 어려운 구시대의 완결된 유산으로 여겼다. 이러한 이질감 사이에서 큰 불안을 느낀 화가들은 과거에 이상적인 표본으로 여겨진 미적 가치를 파괴하며 불균형과 불완전이라는 새로운 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인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를 살펴보면 그 특징을 더욱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다. 기이해보일 정도로 뒤틀리고 길어진 성모의 목은 자칫 잘못 보면 인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표현 기술이 부족한 것처럼 느낄 수 있겠지만, 성모 뒤에 놓인 프린트로 뽑아낸 듯 반듯한 원주에서 인체 왜곡이 작가의 의도임을 암시한다. 매너리즘 미술은 고전적 조형 양식을 긍정하면서도, 과거의 미의 기준이 언제까지나 영구한 표준이 될 수 없으며 전문가로 여겨진 거장들의 미가 어떤 기준에 있어서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양식을 통해 와해시킴으로서 논한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르네상스 미술 시대의 기준에서는 <목이 긴 성모>의 목은 분명 기이하고 조형적이지 못한 비례로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매너리즘 시대에서는 새로운 미를 긍정하려는 시대상이 반영되어 의도적 왜곡에 따른 아름다움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처럼 미의 기준은 추구되는 가치에 따라 변화하기에, 과거에 완벽한 표준으로 여겨졌거나 전문성을 띈 것이라 해도 그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상대적이며 가변적인 성향을 갖기에 절대적이고 영구한 기준으로 삼아질 수 없다.

고소를 진행한 여성이 승소하기 위해서는 대회 심사 지침에 미를 판단하는 표준을 대중들에게 공인된 대표적 미인과 과거 미인대회 우승자들로 한정하며, 그 판단의 척도는 특정 기준치를 통달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 혹은 프로그램으로 한다는 사항이 명시되어야만 한다. 아마도 이러한 미인대회가 열린다면, 매년 비슷한 외양을 가진 사람들만이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비미적인 취미판단과의 관계 – 잉카 궁전의 유적과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

세 번째 케이스는 페루의 잉카 유적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적을 본 여행객들은 이 유적을 보며 무엇을 기준 삼고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토의한다. 한 사람은 유적 그 자체의 존재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상자 개인의 가치 기준을 강조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유적이 만들어진 비윤리적인 과정을 지적하며 시각적으로 아름다워 보이더라도 진정 아름다운 가치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술이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아름다움을 지각하고 감상하게 해줌으로서 그 목적을 다 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는 미의 판단 기준에 조형이나 예술의 요소가 아닌 다른 차원의 논의점이 제시된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공공미술의 장소 특수성 논란이 있다. 공공 미술은 장소라는 공적인 공간과 미술이라는 사적인 경험과 취향이 모두 반영된 것으로, 공적 유용성과 대중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해야한다는 특징이 있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리처드 세라는 미국 공적 기관의 의뢰를 받아 1981년 뉴욕 맨해튼의 페더럴 프라자에 <기울어진 호>라는 거대한 조각을 설치한다.

길이가 37m에 이르는 거대한 조형물은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동선을 가로막았고,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재료로 쓰인 강철이 녹슬기 시작하며 흉물스러워지자 철거 논쟁에 휩싸였고, 공청회와 소송 끝에 결국 1989년 해체되고 말았다. 이 논란을 통해 공공 미술은 기시감이나 공간 장악력이 필요한 성격의 예술이 아니며, 대중이 부여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작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례가 되었다.

만약 세라의 작품에서 심미적 가치만을 찾고자 했다면, 작품 자체가 가지는 힘에 집중해 보행자의 불편 등은 고려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장소특수성이 판단의 가치기준이 될 때, 예술일지라도 공적으로 올바른 순기능을 해야만 한다는 몫이 새롭게 생긴다. 잉카유적과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모두 공간을 장악하는 힘이 있는 유적과 작품이었다. 다만, 잉카유적은 유적을 짓는 과정에서의 문제를 가지고, 세라의 작품은 설치 이후의 문제를 갖게 된 것이다. 이때, 공통적으로 이 가치판단 기준에 있어서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라는 질문이 생기게 된다.

잉카 유적을 짓기 위해 갈려 들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나, 느닷없이 검은 철조에 뚝 끊겨버린 페더럴 프라자 사람들의 불편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미에 대한 판단은 다른 기준들과 유리시켜 미 자체만 놓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잉카 유적과 같이 감상자는 아름답다고 느끼더라도 창작의 과정에서 비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역으로, <기울어진 호>처럼 작가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 여기더라도 감상자들이 비미적이라 느끼는 사례도 있다. 따라서, 미는 다양한 가치판단과 유기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미적 경험은 윤리적 판단을 비롯한 다양한 기준들과 함께하는 부분의 역할이 될 뿐, 그 기준들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 경험이 될 수는 없다.

세 가지 사례와 이어진 각각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다양한 생각의 확장을 하게 되었다. 미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대상의 영향에 따라 유동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또한, 미의 표준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미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무언가가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미는 언제나 독립된 가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사람의 행태와 직결될 경우 미는 다양한 가치판단 기준과 동일한 선상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미술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미에 대해 쉽게 정의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은 험준한 산악 지형에 불평하던 사람들, 미인대회에서 낙선한 것에 분해하던 참가자, 잉카 유적을 앞에 두고 고심하던 여행객들과 닮아 있었다. 사례들을 정리하며 미적 경험과 판단에 대한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게 된 것 같았고, <4‘33“>의 백색소음을 예술로 느낄 수 있던 관객들처럼 폭 넓은 예술을 이해하고 다양한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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