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문예 시 | [2022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2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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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을 분석하고 살펴보는 콘텐츠입니다.
한국경제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를 분석하고
시에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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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아리산방

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1. 동아일보- 여름의 돌/이근석 · 2. 한국경제- 유실수/차원선 · 3. 경향신문- 노이즈 캔슬링/윤혜지 · 4. 조선일보- 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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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iaripark.tistory.com

Date Published: 11/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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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1/중앙지 – 네이버 블로그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1/중앙지. ​. ​. □ 조선일보. 럭키슈퍼/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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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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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2022/시 당선작]경유지에서 – 동아일보

[신춘문예 2022/시 당선작]경유지에서 … 당선 연락을 받았다. “엄마!” 비명을 지르며 따뜻한 품을 끌어안았다. 엉엉 울기에 이상적인 순간이었고 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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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onga.com

Date Published: 4/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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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다음블로그

행운이 문단 밖으로 달아나려 해요. 숨이 차요. 하강하고 있어요. 저 멀리 익숙한 초록색 대문이 보여요. 마당에는 안개꽃이 흐르고요. 열린 창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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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7/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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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시 사랑 시의 백과사전

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팔뚝의 물관이 부풀어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 콘크리트에 박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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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oemlove.co.kr

Date Published: 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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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요를 찾다 / 김종숙

두 번의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결국 열지 못했던 뚜껑, 그건 내가 아직 미끄럽고 땀이 많이 나는 손을 가졌다는 뜻이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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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ltsim.tistory.com

Date Published: 4/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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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석 – 한국시문화회관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석 김민구 올해도 어김없이 각 신문사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되었다. 시를 지망하는 문학도에 있어서 1월 1일은 새해를 여는 하루임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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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oemhouse.kr

Date Published: 8/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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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2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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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신춘 문예 시

  • Author: 조창규 시와노래
  • Views: 조회수 5,0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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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1.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5nAkYnqpdFM

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2021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1. 동아일보- 여름의 돌/이근석

2. 한국경제- 유실수/차원선

3. 경향신문- 노이즈 캔슬링/윤혜지

4. 조선일보- 단순하지 않은 마음/강우근

5. 국제신문-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6. 부산일보- 변성기/김수원

7. 서울신문- 최초의 충돌/김민식

8. 한국일보-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신이인

9. 세계일보- 가작 2편: 언더독 / 변혜지,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2021 동아 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여름의 돌

이근석​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이근석

-1994년 충남 논산 출생

-2012년 고등검정고시 합격

[당선소감]

시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다

각자의 시가 있다는 말이 좋았다. 기미였다 두드러질 때 좋았다. 환경이 변하고 이런저런 사건의 여파가 시를 바꾸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이전의 시와 다음 시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도 좋았다. 그대로 그 시가 있고 어느 날 돌아볼 때 이렇게도 보이고 또 저렇게도 보이는 게 좋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침착하고 치열한 사람들이 좋았다. 나는 그들과 그들의 시에 자주 의지해왔다.

살아가면서 쓰지 않는 삶을 배워야 했다. 읽지 않는 삶도 덤으로. 그런 건 배움과 삶이 한 몸이어서 그저 산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것도 시를 쓰는 과정이라고 혹자는 말하였지만 그건 그냥 시가 없는 세상이던데. 그럴 땐 시 쓰는 당위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이런 생각만 들었다. ‘세상엔 이미 훌륭한 시인들이 많이 있고 나는 좋은 시를 쓸 재능도 자신도 없다.’

나이가 차갔다. 구직하려 하였으나 어느 사업체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한테는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은 구직 요망의 시일는지 모른다. 내가 아니라 내 정황이 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 관한 나의 자질은 참혹했던 현실이지 내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현실을 함께 살아준 나의 사람들이 있었다. 받게 된 것에 따라올 이유와 책임이 있다면 전자는 그들의 까닭으로, 후자는 내가 지었으면 한다. 모두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 잘 지내었으면 한다. 예심 본심에서 심사해주신 분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과장없이 표현해

11명의 작품이 최종 논의 대상이 됐다. 우선 드는 생각은 다양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고르지만 단정한 묘사와 소소한 토로가 주를 이뤘다. 예년보다 표준형에 수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모험과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시단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해 슬쩍 미안해지기도 했다.

‘구조’ 외 5편은 시적 묘사의 특이성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태를 목전에 놓고 주도면밀하게 살피는 힘을 보여준다. 한 대목 한 대목 인상적인 묘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묘사가 구조를 이루지는 못했다. 근사하게 그려 보이는 능력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헤아리는 사유 없이는 왕왕 심부름꾼의 성실함에 그치기 마련이다.

‘수변’ 외 5편은 우선 문장 단위에서 매력을 발한다. 문장의 힘과 이미지의 리듬이 조화를 이뤄 마지막까지 검토 대상이었다. 산문 투의 진술에 대한 아쉬움, 절제가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조금 더 기다려봄 직하다는 의견과 부합해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여름의 돌’ 외 5편이 당선작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리듬감 때문이다. 과장이나 과잉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러운 리듬에 실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범상해 보이나 드문 기량이다. 일종의 빼어난 ‘예사로움’에 달한 기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름의 돌’은 청년의 불안과 기대를 수일한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리듬을 통해 순조롭게 표현해 당선에 값한다. 과감함이 숙제라면 숙제인데 안정 없는 기획보다 신뢰할 만한 시적 진술이 올해의 선택이 된 것은 당선자에게 영광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심사위원 : 문정희 시인 · 조강석 문학평론가​

​​

<2021 한경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실수(有實樹)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붙는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당선소감]

“내가 머물렀던 자리 돌아봐…주변에 귀 기울일 것”

12월의 당선 소식은 그동안 내가 머물렀던 자리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던 날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진심으로 떨리는 일이었다. 그 사람은 담담하게 내가 쓴 시를 읽어주었고 그때의 그 벅찬 순간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줬다. 어디에나 쓸쓸한 소식이 번지던 한 해가 지났다. 이겨내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시간은 흘러 새해가 밝았고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1년을 더 보낸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무언가를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주목하는 시를 써나가고 싶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담아나갈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기회를 준 한국경제신문과 내 시에서 가능성을 봐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같은 자리에서 말없이 나를 헤아려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혼란스러운 날에 그들이 있어 말하고 싶은 것들을 변함없이 써내려 갈 수 있었다.

[심사평]

이미지가 눈에 생생…기교와 비약 참신

본심에서는 네 분의 시를 다뤘다. ‘전래동화’ 외 네 편은 직설적인 언어로 기성세대와 맞서는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깊이 부대껴서 얻은 것은 아니어서 시야가 좁고 다소 막연해 보였다. ‘가장 내밀한 스펙트럼’ 외 네 편은 흡입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흐름을 끊는 직접 발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어둠’ 외 네 편은 과감한 생략과 거침없는 반복 등 난숙한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다만 논리가 시를 압도하는 지점이 가끔 눈에 띄었고, 최근 시의 스타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윤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유실수’ 외 네 편은 각각의 시마다 이미지를 극적으로 쌓아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본 적 없는 기교와 비약이지만 우리는 이 상실에 맞닥뜨린 자의 눈에 비친 낯설고 속절없이 슬픈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유실수’ 외 네 편을 응모한 차원선 씨를 당선자로 정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우리는 차씨가 익숙한 새로움을 되풀이하기보다 낯선 전환점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인숙 시인

손택수 시인·노작 홍사용 문학관 관장

장이지 시인·제주대 국문과 교수.

​​

<2021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노이즈 캔슬링

윤혜지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 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가팔라지는 날개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

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이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계단처럼

​​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단순하지 않은 마음

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는 차장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2021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진다​

[당선소감]

아버지가 남기신 격려 글쓰기 원천​

퇴직은 나를 회복하는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시가 나를 잣고 있습니다. 꿈에서 시실을 뽑아 명주달빛에 묶어두었습니다. 오른손으로 직관을 거머쥐고 미로를 돌면 더 깊은 미궁 속이었습니다. 그러면 왼손으로 잡은 펜이 향이 동하는 분칠을 요구합니다. 이나마 놓치면 영영 포기할 것 같아 조급해지기 일쑤였습니다. 꽃들이 화사를 빼고 가벼워지는 가을부터 어깨를 겯던 도반이 하나 둘 불려나갈 때, 비어가는 정원은 제게 욕심이었을까요. 사모하는 마음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 갈망은 월반 중입니다. 먼저 동행한다고 고집한 시는 지난해야 지속 가능한 애인입니다. 짙은 은유와 주렁주렁 매달린 형용사가 나의 허식(虛飾) 이란 걸, 기척도 없는 파지가 증명합니다. 여전히 미궁은 나를 가둡니다. 그 안에서 시가, 나를 복구하는 원본이 되게 합니다. 망연한 제게 동아줄을 내려주신 강은교, 안상학, 김참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실낱으로 수직 상승하는 사다리가 아닌 멍석 귀 삼겠습니다. 병상에서 목소리 뽑는 아버지가 또박또박, 힘주시던 여한 없이 쏟으라던 마지막 숙제, 제출합니다. 누런 삼베 거친 적삼이지만 너무 춥진 않으시죠. 시를 앓게 해주신 유종인, 정병근, 김이듬 시인님, 김포문예대학의 나란한 걸음이 있어 든든합니다. 함께 공부해주신 윤성택 시인님 감사합니다. 힘들 때 마다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가 되어준 시품 그리고 김부회 시인님과 달詩 동인들, 나보다 나를 더 잘 지탱해 준 내편 쭌, 그리고 첫 독자가 되어준 도담, 모두의 응원 덕분입니다. 화장을 지우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민낯의 나를 받아들이는 그 여백이 시가 되는 풍경(風磬)을 잣겠습니다.

​​

박소미

-1966년 전남 목포출생. 김포문예대학 수료. 시품, 달詩 동인.

[심사평]

언어 다루는 솜씨·주제 전달 방식 참신

올해 응모작들의 수준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있었지만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보여주는 시들, 사회문제를 다룬 시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았다. 참신하지만 너무 긴 시들,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이야기를 엮는 솜씨는 좋은데 너무 긴 시들은 읽기가 다소 어려웠다. 시가 반드시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시를 사람의 몸매에 비유하자면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줄여서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것이 시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중 십여 편의 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뒤, 윤상호 씨의 ‘변기는 가능합니다’, 박신우 씨의 ‘이인용 밥솥’,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 세 편의 시를 놓고 마지막 논의에 들어갔다. ‘변기는 가능합니다’는 사회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뛰어났으나 같이 보내온 다른 응모작의 살을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인용 밥솥’은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시였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기성 시인의 특정 작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소미 씨의 당선작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돋보였다. 함께 보내온 ‘달리는 숲’ 역시 당선작 못지않은 사유와 작품성을 담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런 점을 높이 사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의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강은교 · 안상학 · 김참 시인​

<2021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변성기

김수원​

접시는 바꿔요

어제 같은 식탁은 맞지 않아요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죠

숨기고 싶은 오늘의 숲이 자라요 깊어지는 동굴이 있죠

전신거울 앞에서 말을 터요

알몸과 알몸이 서로에게

내 몸에서 나를 꺼내면

서로 모르는 사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

엄마는 앞치마를 풀지 않죠

지난 앨범 속에서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셔터만 누

르고 있죠

식탁을 벗어나요

눈 덮인 국경을 넘어

광장에서의 악수와 뒤집힌 스노우볼의 노래, 흔들리

는 횡단열차와 끝없이 이어지는 눈사람 이야기, 말을

건너오는 눈빛들과 기울어지는 종탑과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까지 밝아지는

모르는 색으로 달을 채워요

접시에 한가득

마트료시카는 처음 맛본 나의 목소리

달 아래, 내가 나를 낳고 나는 다시 나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도 모르게​

당선소감

​나는 너무 반듯하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그런 나를 버리기 위해 지금껏 시를 썼다. 구겨버린 가족사진처럼, 기형적으로 구겨진 사진 속 미소처럼 나는 나로부터 낯설어지고 싶었다. 오빠가 죽었을 때, 내 시는 울음 속에서 질척거렸고 아버지가 오빠를 뒤쫓아 갔을 때는 딸꾹질만 해댔다. 죽음은 쉬운 거네, 몇 해 휘갈기는 동안 딸꾹질도 그치고 울음도 그치고, 시가 ‘곁’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그로부터 나는 나를 죽이는 일에 몰두한다. 내가 곁이 될 때까지. 시의 곁에 작은 자리를 마련해 준 부산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8년, 서두르는 마음을 눌러 준 정봉석 교수님을 비롯한 동아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시를 놓지 않도록 독려해 준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유병근 선생님이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기원드린다. 함께 문학을 찢어발겨 준 벗들과 동아대 글패고갱이들, 그리고 시 앞에서 독해지자던 진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가족은 나의 무한 동지다. 지금껏 시는 내 편이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내 편이 아니길 바란다.

약력: 1971년 경남 고성 출생, 본명 김경숙, 동아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수료, 동아대 강사.​

[심사평]

호흡·이미지, 얽매임 없고 자유로워

올해 응모작들은 폭넓은 시적 탐색을 담고 있었다. 생활의 감정을 담은 시편들은 진정성은 있으되 대체로 상식적이거나 평이했고, 현란한 언어와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편들은 수사(修辭)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들은 삶의 내면과 그 너머를 응시하는 눈길이 매혹적이었으나 미학적 형상화가 부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은 작품들은 ‘위시본’ ‘흑백극장’ ‘물사람’ ‘그후’ ‘변성기’였다. 심사자들의 기대가 높았던 탓이었을까? 꽤 오랜 시간 숙의를 해야 했다. ‘위시본’은 흥미로운 제재를 입체적으로 펼쳐 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지만 다소 현학적이고 사변적이었다. ‘흑백극장’은 간명한 언어와 이미지의 전개가 장점이었는데, 입체적 확산의 힘이 모자랐다. ‘물사람’은 차분하되 정서적 흡인력이 강했다. 잘 익은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었으나 소품으로 그친 게 아쉬웠다. ‘그후‘는 남다른 시적 깊이와 인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지막 2행- 결말이 아쉬웠다. ‘변성기’는 일견 조금 서툴고 추상적인 시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가 있다. 호흡과 이미지도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고, 상상력의 폭이 크다. 심사자들은 기존의 문법에 익숙한 잘 다듬어진 시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를 선정하기로 했다. 시는 카오스의 세계에서 코스모스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한다. 보다 힘찬 모험을 통해 유니크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박태일 전동균​

<202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최초의 충돌

김민식​

나는 화면 너머의 테니스 경기를 본다

테니스 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무수한 공중이 한꺼번에 태어난다

고래의 힘줄

산양의 창자

얇게 저며진 살점으로 직공은

라켓을 짠다

종선과 횡선이 지나간 사이에

태어나는 눈

공중에 이름을 붙이는 최초의 노동이었다

천사를 체로 걸러낼 수 있다고 믿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축과 축의 직교 속에서 성령은 좌표를 얻었다

의심 속에서

의심도 없이

체의 촘촘한 눈을 세는 귀신의 눈은 비어 있다

눈알만 파먹힌 생선들이

부둣가에 쌓여 있다

백경白鯨의 투명한 수정체

멸종된 거대 수각류의 담석

전체를 상상하면 그것들은 차라리 허공이었다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 모양 구멍이 반드시 하나씩 있으며

돌탑 위에 둥근 돌을 하나 올려도

산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수한 왕의 안구가 뽑혀나가도

지구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믿음 속에서

믿음도 없이

삶의 질량을 변화시킬 혁명이 필요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없었고

하늘에 빛나는 돌이 불과 물과 함께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생겼다

외계에서 날아온 돌은 지구를 확실히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종종 과학의 영역이었다

“마음 속에 천 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서 천 개의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나는 어떤 계열의 천사인 것만 같습니다”*

처음으로 운석을 발견한 아이가 남긴 말이었다

그가 발견한 검은 돌은

검은 신전의 기둥이 되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엔, 빛과 유리와 불과 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다만 우주의 조각을 만져보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계획 속에서

계획도 없이

푸른 언덕에 모여 유성우를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들이 깊게 파인 구멍 같다

나뭇가지에 걸린 셔틀콕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만 같다

너, 라고 부르면 뒤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아무도 귀엽거나 밉지 않았고

아나운서의 어깨 너머로

카메라가 풍경을 화소로 만들기 직전

나는 주머니에서 빛나는 하얀 공을 꺼냈다

아직 세상에 없는 구기종목의 공인구였다

김민식

1994년 인천 출생, 수원 거주.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전공 석사 과정 휴학 중​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신이인

​​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만 여자고 반은 남자래

강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쫓겨난 누군가

서울의 모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기슭에 떠내려오는 나방 유충을 주워 먹는 게 꽤 맛있다는 거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내 무릎에 올려두었던 수많은 오리너구리

오리가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나

진짜도 될 수 없었던 봉제 인형들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끊어낼 수 없는

주렁주렁

전구 없는 필라멘트들

불을 켜세요

외쳐보는 겁니다

아, 이상해.

신이인

1994년 서울에서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개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개성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성을 얼마간은 지니고 있으며 생활과 사유 곳곳에서 그 고유함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숨기려 해도 얼핏 내비치는 사투리처럼, 감추려 해도 별안간 나타나는 표정처럼. 시는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개성을 서랍장 곳곳에 잘 수납하고 연과 행에 맞춰 잘 구획하는 관리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고유성을 극대화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난동꾼일 수도 있다.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함께 마지막까지 이야기한 작품은 ‘새, 하고 열린 옷장’, ‘언젠가 부하들은 반란의 내색을 비춘 적 있다’, ‘한국어 감정’ 등이다. ‘새, 하고 열린 옷장’은 사소한 장면을 일시정지 상태로 만들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언젠가 부하들은…’은 유머러스하고 의의성 있는 진행이 돋보였다. ‘한국어 감정’은 언어와 언어가 부딪쳐 생기는 감각과 진폭을 그리는 주제 의식이 담백했다. 모두 당선되지 않을 이유보다 당선될 이유가 더 많았으나, 약간의 행운이 부족했던 것으로 오늘의 아쉬움을 갈음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건넨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세계 어딘가에서 역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들을 껴안으며 써나가 주실 것이라 믿는다. 관리자가 될 것인가, 난동꾼이 될 것인가?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시는 당신을 끌고 어딘가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서효인 시인

심사위원 서효인 장석주 김소연​

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작 2편

언더독 / 변혜지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언더독

변혜지​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로소 이 꿈의 구성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당선소감

“기나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응원·채찍·사랑”

빗장뼈 안쪽에 양을 기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이야기가 아름다워서 나는 언덕을 갖고 싶었다. 언덕 위에 양을 풀어 놓으면 양은 언덕 너머로 넘어가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시를 써서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너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해주었다. 누군가 그 사람들을 몰고 언덕 너머로 떠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미워할 사람들이 없어서 나의 미운 구석들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주인공인 시들을 자꾸자꾸 보여주었다. 아무도 나를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 종종 언덕 너머에서 메에-메에-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너희들을 사랑해.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이 서툰 발걸음을 응원해주신 세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정말 긴 시간 동안, 마음 놓고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신 박형준 선생님, 오랜 시간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주신 김춘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고집 센 학생을 놓지 않고, 응원과 채찍을 아끼지 않으시던 이원 선생님, 박판식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십 대를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주신 어딘, 정우영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내 대신 잠을 설친 엄마에게 사랑을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열거할 수가 없다. 같이 쓰고 같이 떠들고 같이 고함치던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변혜지

-1991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수료

돌고래 기르기

한준석​

미소는 돌고래로 기르기 좋습니다

돌고래의 주파수를 라디오로 들어요

나는 무심하게 시작되어집니다

축축하게 연필심이 밤새 헐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에 좋습니다

나는 웅크리기 좋은 무게로 태어났어요

돌고래의 고도는 새떼의 무게 같아요

새들이 흩어지는 사이로 연필 소리가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가는 새를

잃어버렸다 말할 수 있을까요

나무에 없는 새들을 세어보는 일은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고

두 팔로는 충분한 일입니다

돌고래를 기르기에는 남해에 사는 당신이 좋습니다

눈 내리는 남해로 가는 버스 창밖

길러 본 적도 없는데

둥글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의 웃음을 빌려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일기예보에 오늘 아침은 잔기침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안정은 멀리 있습니까

나는 이런 예감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눈 감으면 버스의 흔들림만 남겨집니다

나는 돌고래가 아닙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줄 압니다

잘 가, 돌고래는 휘어지는 몸짓으로 수평선을 밀어내고 있어

끝에서 끝이 부드럽게 멀어져야 좋은 미소

나는 돌고래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를 기르기에 좋습니다 슬픔을 조심합니다

세계는 서로를 미끄럽게 기를 줄 알고

나는 입김에서 햇빛으로 조용하게 옮겨집니다

나는 한 종류의 돌고래가 됩니다

당선소감

“바르셀로나에서 마음먹은 꿈 이뤄… 앞으로 더 정진할 것”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한국의 가을쯤 되는 때에 사람들이 반팔을 입고 돌아다닙니다. 시차를 생각하지도 않고 한국으로 연락을 걸었던 사람은 지금까지도 소설가의 마음을 지닌 채 의자에 기대 있습니다. 귀국 후 시를 쓰겠다고 홀연히 들어간 양평의 산골 집 옆에는, 기면증 걸린 수학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끔씩 제 시를 보고서는 재미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해 허우적대던 나의 손가락에, 시차가 달랐던 그 형이 같은 학교를 다니며 연필을 쥐여줬습니다. 그렇게 올해까지 시를 썼습니다. 소감을 쓰고 있는 지금 제 옆에는 이름만 종이에 썼다 지워도 오랫동안 머무를 사람이 있습니다. 은별아, 너무 고맙다. 모두 감사합니다.

나의 애칭 꾸르끼, 바르셀로나의 지영 누나와 토미 형! 보고 싶어요. 제 은사님이신 권혁목 선생님, 중요한 순간마다 해주셨던 말씀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아, 너희 덕분에 내 많은 순간들이 아름다웠어!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도록 도움 주신 선생님들, 앞으로도 헤매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나, 매형 항상 응원해 줘서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저의 가능성을 너그럽게 높이 사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시가 너무 좋습니다.

-한준석

-1990년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작품마다 상처 치유코자 대변… 과장되지 않은 비유·상징어 눈길” ​

저마다 고립된 외딴섬처럼 단절과 멈춤이 뼈저렸고, 과연 우리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음만으로도 버겁고 지난했던 시기. 예심을 거친 스물다섯 분의 시편들이 공통적으로 시절의 무력감에 대응하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코자 대변하고 있었으니, 왜 문학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기며 시대의 가늠자 역할을 자임하는지 여실히 실감케 했다.

최종 논의로 하연, 김성백, 홍진영, 변혜지, 한준석 씨의 작품을 주목했다.

하연의 작품은 익숙한 표현과 소재들이란 점이 아쉬웠다. 김성백의 경우 팬데믹 시대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지만 감정과 표현이 곰삭을 시간이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홍진영에게서는 시어와 이미지를 다룰 줄 아는 기본적인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몇 개의 서툰 문장들이 심사자의 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장래를 위해서 올해의 보류가 본인들에게 더 큰 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긴 시간 변혜지의 ‘언더독’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아쉽지만 당선에 준하는 가작 2편을 뽑기로 합의했다.

변혜지의 ‘언더독’은 남다른 사유의 깊이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장되지 않은 비유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았고, 절제된 수사의 미덕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 모자람을 찾기 어려웠다. 막힌 혈로를 뚫듯 날카롭고 예민하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아우르는 너끈한 묘사력을 겸비했으니, 이만한 사유의 세계라면 우리 시단을 풍요롭게 메우고도 남으리란 믿음에 선작(選作)으로 민다. 언제까지 무거운 짐을 걸치고 거침없이 나아갈지 모두가 기대를 걸고서 지켜보리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는 ‘돌고래’라는 상징어를 넣어 이미지가 보일 듯 말 듯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미소는 돌고래를 기르기에 좋습니다”의 표현이 말하듯 시가 기본적으로 비유의 장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돌고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시 내용으로 보아 사랑, 꿈, 슬픔, 기쁨까지 다 아우르게 한다. 돌고래 자리에 이 단어들을 집어넣고 읽어보면 금세 느껴질 것이다.

두 분을 축하하며 최종심에 오른 분들도 조만간 지면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위로의 말씀을 얹는다.

심사위원

본심:김영남 이학성, 예심:천수호 김종태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1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1/중앙지 신인 https://blog.naver.com/kiroro1956/222611472202 

▣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1/중앙지 ​ ​ ■ 조선일보

럭키슈퍼/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 고선경 ​ -1997년 안양 출생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심사평

퉁치면서 눙치고, 貫하면서 通하는 시적 패기 높이 평가 시의 봄은 세상의 봄보다 빨리 온다. 시의 나라에서는 새해 첫날이 새봄의 첫날이다. ‘신년문예’가 아니고 ‘신춘문예’인 까닭이다. 엄동설한에 봄을 열어젖히는 신춘 시처럼, 시의 시제(時制)는 언제나 미래다. 천 년 전을 노래하는 시라고 해도 그 시가 좋은 시라면 시의 마지막 행은 미래로 열리기 마련이다. 이번 새해 첫날에도 시의 나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입국 비자’를 발급한다. 시인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 시의 영토가 다시 넓어지는 순간이다. 입국 심사대에 올라온 본심 대상작 열 분 중 네 분이 남았다. ‘폭우’(외)는 일상의 균열을 포착하는 감각적 묘사와 시적 통찰이 빛났으나 예견 가능한 시적 구도가 아쉬웠다. ‘팝콘꽃’(외)은 가족이라는 근원적인 상처 혹은 폭력을 겨냥한 팝콘처럼 튀는 비유적 상상이 매력적이었다. 튀려는 시적 욕망을 조금만 더 제어했으면 싶었다. ‘덫’(외)은 언어를 어떻게 마르고 잇고 매듭짓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언어의 압침들이 꽂힐 언어 이전이나 언어 너머의 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졸업반’(외)을 내려놓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했다. 그의 시편들은 시가 노래와 만나는 지점을 잘 알고 있었다. 리듬감이 좋았고 시의 완성도도 높았다. 시편들에서 엿보이는 시에 대한 열정과 내공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는 기시감이었다. ‘럭키슈퍼’(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최근 시의 파장 안에 있으면서도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었다. 버려진 과일(홍시), 낙과(사과), 씨는 물론 껍질째 먹는 과일(자두), 그리고 부풀었다 터지는 단물 빠진 풍선껌, 헐렁한 양말, 납작한 동전을 먹는 자판기 등이 있는 ‘럭키슈퍼’가 화자의 현주소다. 젊은이의 미래와는 먼 오브제들이다. 화자는 ‘농담 맛’이 가득한 ‘럭키슈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화자의 동창이자 ‘럭키슈퍼’ 사장 딸은 감미료로 비유되는 ‘대기업의 맛’을 맛보고 있다는 대비도 능청스럽다. 퉁치면서 눙치고, 관(貫)하면서 통(通)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신춘 같은 미래를 향해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딜런 토마스), 그런 시의 힘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문재, 정끝별) —————————————–

■ 동아일보

채윤희

-1995년 부산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시간-공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 매력적으로 다가와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달리 말하면 위험도 모험도 드물었다는 말이다. 안정적 기량이 우선인 것은 틀림없지만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균일함은 우리가 보낸 한 해의 격동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시가 삶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동떨어진 기예를 겨루는 경연도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본심 심사위원들이 만나서 가장 먼저 나눈 얘기는 바로 이 의아함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 논의한 세 작품은 ‘남겨진 여름’, ‘씨앗의 감정’, ‘경유지에서’였다. ‘남겨진 여름’은 문장의 신선함이 눈에 띄었고 근경과 원경을 오가며 사유를 전개하는 리듬도 흥미로웠다. 다만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시의 마지막 연에서 상투형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쉬웠다. 압축과 절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씨앗의 감정’은 이질적인 이미지를 하나의 시상을 중심으로 그러모으는 솜씨를 보여줬다. 씨앗을 소재로 한 사유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변주되는 양상은 신선했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대사를 그르쳤다. 모든 시가 기승전결과 대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경유지에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나아가 찰나적 순간을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로 길어오는 기량도 믿음직스럽다. 함께 투고된 작품들이 고른 기량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 작품을 고르라면 이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 기대와 더불어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정호승, 조강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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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시드볼트/ 오산하 눈을 감았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국가를 떠올리면서 습한 냄새를 맡으면서 안개 속으로 뛰어들면서 길거리의 새를 하나둘 세면서 걸어 눈이 마주쳐도 날아가지 않는 새 발로 바닥을 밟아도 도망가지 않는 새 까만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넘어졌어 까맣게 피멍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서 생일 축하해 문자를 받고 시차가 생겼어 하루 늦게 생일을 맞이하면서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과 선물 받은 오르골을 돌리면 모르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는 언젠가 끝나겠지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대 거기에 자신을 묻을 거라고 했어 나는 Green Day의 Holiday를 들으면서 반역자! 반역자! 죽어버린 사람들의 피가 흘렀어 아 곧 종말이구나 그래서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구나 두 개의 음 두 개의 박자 머리 위로 떨어지는 15층의 사람과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차 사람의 바싹 마른 피부와 솟구칠 힘도 없는 피 물 물 물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에 다 녹아버린 얼음의 흔적과 끈적한 더위가 있어 라는 붙잡아도 부서진다 길을 걷다가 쪼그려 앉아서 새를 가만히 쳐다봤어 새가 내 눈알을 파먹으려고 해도 가만히 있었어 계속 굴러가다가 영원히 남도록 그곳은 마치 도서관 같다 추워 라는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이건 한 세기 전 살아있던 사람의 눈알이구나 계속 걸었어 뚝 뚝 흘리면서 걸었어 끊어진 다리 뒤집어진 배 치지 않는 파도 하늘에서 떨어진 새 검은 새 검은 눈동자 뽑힌 눈알 굴러가는 심장 굴러 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 ———————————-

오산하 ​ -1998년 경기도 성남 출생.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예정.

♣ 심사평

“시류에 민감하면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을 보여주는 시” 본 심사평은 시의 어디어디가 부족하다는 식의 충고를 담고 있지 않다. 자기 작품에 관한 엄혹한 평가를 원하는 분도 있겠고, 적절한 지적은 실제로 창작과 퇴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투고자에게 필요한 건 비판보다 응원이라고 믿는다. 계속 시를 써도 좋다, 이런 말을 누가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시가 나를 부른 적도 없고, 그래서 나 없이도 시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아 싫고 무서웠다. 이번 심사평을 통해 당신들 없이는 우리 시가 별로 안녕하지 못하리라는 예견과 확신을 전하고 싶다. ‘랠리’의 건조한 문체는 대상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한때 마음을 쏟았던 대상이 ‘나’로부터 문득 동떨어져 존재하게 되었기에, 그렇게 어쩔 수 없거나 어쩌지 못하는 거리감이 건조한 문장 사이사이로 유출된다. ‘날개 뒤에는 근육이 있습니다’ 외 4편은 한마디로 거침없다. 하지만 거침없는 중에도 시의 언어는 산만하지 않다. 넘칠 듯 넘치지 않게 제어되는 정념이 놀라웠다. ‘베네수엘라’는 강렬한 도입부와 여운 깊은 결구로 독자를 매혹한다. 이 작가는 자기 세계를 어느 정도 구축한 듯하다. 작품이 조금만 더 쌓이면 그가 좋은 시를 쓴다는 사실에 누가 토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치카의 숲’은 앞으로도 손해를 볼지 모른다. 신인상 심사는 단정한 정념보다는 떠들썩한 감수성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등단이라는 문턱을 넘고 나면 이처럼 넉넉한 분량에 담긴 유려한 문장이 외면당하는 일은 없다.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스로디카즈’ 외 4편은 수많은 소년소녀가 등장하고, 위악적인 정황과 대화가 난무하며, 엄청나게 수다스럽다. 당연하게도 몇몇 기성 시인이 떠올랐으나 그럼에도 투고자의 연작은 여전히 새로웠다. 이 새롭고 좋은 작품을 다른 지면에서 곧 만나리라 본다. ‘시드볼트’ 외 4편은 비참한 죽음과 살아남음에 관한 이야기를 일관되게 풀어낸다. 아포칼립스를 예감하고 노르웨이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 ‘라’와 종말에 남겨진(혹은 종말을 목도 중인) ‘나’는, 어느 쪽이 살아남았는지와 상관없이 비슷하게 비참할 뿐이다. 삶과 죽음을 공평하게 끔찍한 것으로 만드는 저 압도적 절망감은 때로 ‘산불’로, 때로는 ‘깨진 도자기’나 ‘폭풍우’로 형상화된다. 시인은 “간신히 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폭풍우’)로서 분명히 어떤 현실의 환유일 비극적 사태를 생생히 기록한다. 비슷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투고작이 많았음에도 오산하 씨의 활달한 리듬은 단연 돋보였다. 시류에 민감하면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더 믿음이 갔다. 심사위원단을 대신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송재학, 김소연 김상혁) ——————————————————- ■ 경향신문 하이퍼큐브 *에 관한 기록/백가경 1920년 변호사 세바스챤 힐튼은 어린이들에게 3차원 공간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돕고자 정글짐을 발명했다 * x가 머리 위에 달린 축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 높이를 미처 재지 못한 x의 발이 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 누군가 실컷 타다 뛰어내린 그네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x의 팔과 다리가 점점 빠르게 버둥거린다 x는 하나의 커다랗고 검은 점이 되는가 싶더니 그 어떤 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x값이 무한 증폭된다 y님 행복을 주는 치과 생일 축하드립니다. 임플란트 10% 할인 1

어떻게, 잘 지내? 1

은평구도서관 ‘세상의 끝’ 연체 49일 빠른 반납 요망 1

소액 대출 최저 이율로 신용등급 모두 가능 y는 몸을 정육면체 안으로 구겨 넣는다 점점 y값을 잴 수 없고 그럴수록 y는 생각한다

이 모든 되풀이는 나의 결과 값 “(경제적) 자유”를 위한 것 z의 미래 값: 직사각형 화장실 천장에 도시가스 공급관이 노출돼 있음 장판과 텐트 사이 혈액이 말라붙어 표백제와 기타 용액을 계산한 것보다 한 통 더 사용함 청구 예정

z의 현재 값: 중위소득 85% 이하 가정에서 자란 3학년 C반 * 발가락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지탱한 x는 같은 위치 옥상에 사는 주민이자 애인 z를 찾아 창백한 타일로부터 그를 무한 증식시킨다 열화 과정에서 z는 기체로 변할 수 있게 되고 y가 연체한 ‘세상의 끝’을 대신 반납한 후 49일을 1초 만에 앞당겨 ‘세상의 끝 역자 후기’를 대출한다 y가 연탄과 소주를 담아 온 마트 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을 때 자연스럽게 제목을 볼 수 있도록 책을 비스듬히 세워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 범우주아카이빙센터 12호 연구소장은 x, y, z 세 어린이를 한 차원에 모아 두고 질문을 시작한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여러분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이런 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세 어린이 동시에 말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연구소장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린이들 모르게 언어 변환 버튼을 누른 후 짧게 욕을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능력은 어떤 문헌에서 찾은 것인가요? 어린이 일동, 문헌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 Hypercube 4차원에서 모든 변의 길이가 같은 도형, 10개 이상의 처리기를 병렬로 동작시키는 컴퓨터의 논리 구조 ​————————————

백가경

​-1991년생.

♣ 심사평 – ​ ​미학적자유로움은 정확함 위에서 탄생한다는 것 보여줘 우리 삶의 시간은 ‘살아내는’ 능동과 ‘살아지는’ 수동이 얼마간 뒤섞이기 마련이다. 반면 우리가 시를 쓰는 시간은 온전한 능동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투고된 작품들은 언어와 삶의 주체를 회복하려는 저마다의 고투다. 이 흔적을 따라 읽는 것은 경외가 가득한 것이었고 이들 가운데에서 한 편만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것은 고민을 더하는 일이었다. 5명의 작품을 정해 더 깊은 논의를 이어나갔다. 이미 모두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고유함들. 김소영은 구어와 문어의 적절한 활용을 통한 활달한 에너지로 일순간 세계의 이면을 서늘하게 드러낼 줄 안다. 박규현은 개성 있는 호흡과 리듬이 돋보였다. 행의 배열이나 문장이 끝나는 지점을 어슷하게 두어 여운을 발생시키는 감각도 좋았다. 원예린은 무심한 듯 부리는 언어들로 미감을 이끌어내는 능이 상당했고 시적인 것을 발견해내는 밝은 눈도 인상 깊었다. 박다래의 원고는 끝까지 놓지 못했다. 평이한 진술 가운데 묘한 긴장감을 불러내는 능력. 숨어 있는 서정을 잡아채는 감각. 다만 문장의 반복이나 중복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대해 스스로 한번쯤 의심해주었으면 하는 고언을 드리고 싶다. 백가경의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외 4편을 당선작으로 정한다. 백가경의 시는 명징한 언어로 작품을 구축한다. 어떤 모호성에 기대어 상상을 비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유와 진술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은 자칫 단순해지고 평이해질 위험이 따르는 것이지만 시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공고하게 세계를 확장시킨다. 미학적 자유로움은 정확함 위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름답고도 투명하게 상기시켜주는 시인이다. 앞으로도 내내 지난할 시간 속에서 시인만의 가장 고른 것들을 우리에게 꺼내주시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박준, 김행숙, 김현) ————————————– ​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박규현 친애하는 메리에게

나는 아직입니다 여기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눈이 흩날립니다 눈송이는 무를 수도 없이 여기저기 가 닿고요 파쇄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 발치에 쌓이던 희디 흰 가루들 털어도 털어도

손가락은 여전합니다

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가장 보편적인 성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녹지 않으니까

착하다고 말해도 되나요

의심이 없을 때

평범한 사람을 위해

젖은 속눈썹 끝이 조금씩 얼어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극야로부터 멀어지고 싶고 장갑을 끼지 않아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나에게도 손이 있다니 나무들을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메리에게 답장을 씁니다

천사 혹은 기원이 있을 곳으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눈밭에 글씨를 써도 잊혀지는 곳으로 우리가 전부여서 서로에게 끌려다니는 곳으로

눅눅한 종이뭉치를 한 움큼 쥐고 있었는데

눈을 뭉쳐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가 소원하고 희망해 온 사람 무겁고 불편한 폭설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어 그들의 눈을 빌립니다 그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이가 될 것이에요 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메리 , 나는 겨우 있어요

내일과 같이 여전히 ————————- 박규현 ​ -1996년 서울 출생 -서울 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재학 ♣ 심사평 ​ 랭보의 시’ 떠올리게 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 2022 년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다양한 세대의 목소리와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응모작이 많았다 .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동시대인들의 절박한 생활 , 희망을 찾고자 하는 고투 등이 반영돼 있었다 .

본심에서는 네 분의 작품을 놓고 토론과 숙고를 거쳤다 . 박서령의 ‘재수강 ’은 서사를 이어가며 감정을 표출하는 데 능숙했다 . 그러나 편지 형식의 산문성으로부터 도약하는 힘이 부족했다 . 박언주의 ‘도둑 잡기 ’에서는 생존과 죽음 , 세계를 향한 질문들이 돋보였다 . 그러나 시적 이미지나 음악성을 가려버리는 설명적 진술들은 아쉬움을 키웠다 . 임원묵의 ‘새와 램프 ’는 끊어질 듯 이어가며 이동하고 합류하는 언어 실험이 새로웠다 . 그러나 언어는 평이해 가능성을 측량하기 어려웠다 . 만장일치로 박규현의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 읽는 줄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흡입력에 놀랐다 . 이어질 수 없는 문장과 문장들의 연접을 통한 긴장감 , 착란적 비약 , 예상을 건너뛰는 불연속성에도 다 읽고 나면 이미지가 선연히 발생하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 그는 사소한 일상의 가치를 애써 찾아가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 ‘나는 겨우 있어요 /내일과 같이 여전히 ’라고 기록하는 시 . 간신히 발설하는 이 미세한 약음이야말로 거대 담론이나 외치는 소리보다 시적 울림이 크다는 것을 , 시는 ‘침묵하기 ’와 ‘겨우 말하기 ’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인에게 축하를 드린다 . 심사위원 (황지우, 손택수, 김이듬) ———————————————- ■ 서울신문 반려울음/이선락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으다라 써졌다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나? 배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고프다, 쓰자 배가 없어졌다. 등이 구부러지는, 굴절된 뼈 같은 오후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거품을 집어삼킵니다 씹어도 건더기라곤 없는 튀밥 혓바닥이 마르고, 버썩거립니다 그래요, 뭐든 버썩거릴 때가 있어요 잠깐 눈 돌리면 쏟아지기도 하고… 난 수년 전 아이 몇몇 쏟아버린 적도 있어요 그땐 내 몸도 깡그리 쏟아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손톱을 파낼 땐 눈에도 금이 가고 있었죠 ‘얘야, 눈빛이 많이 말랐구나 눈을 새뜨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내가, ‘손가락을 흘리고 다니지 말랬잖아요 근데 왜 까마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지…’ 보송보송 털이 난 꿈속에서 * 배가 고프단 얘긴 줄 알았는데, 그림자 얘기였어 부품해진 그림자론 날아오를 수 없다, 어떤 돌은 그림자도 생겨나지 않는다, 죽은 후론 배꼽도 떠오르지 않는다, 쏟아졌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수면에 떠올라 ‘배꼽은 어디 있을까?’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깨지지 않는 것도 깨진 것이 돼 버린 오후 이렇게 비좁고, 나는 깎아지른 맘뿐이었나 몇 줄 적지 못한 종이 한 장 찢어, 공중에 날리는 이선락

-1957년 경북 경주 출생 -건국대 수의과대학 졸업 -동리목월문예창작대 재학 ♣ 심사평 고픔과 아픔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 올해도 많은 분들이 새봄을 향해 시를 보내 주셨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읽었다. 예년보다 더 오래 숙고했는데, 손에서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짜인 세계를 횡단하며, 심사자들의 눈과 손이 시종 천천히 움직였다. ‘오픈’이 보여 준 감춤과 들킴의 미덕, ‘물과 풀과 건축의 시’에서 감지한 조용한 폭발, ‘비닐하우스’가 만들어 낸 미묘한 긴장, ‘온몸일으키기’가 일으킨 위트와 블랙 유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같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는 시편이었다.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한 ‘저기 저 작은 나라’ 외 네 편은 독특한 시적 세계관으로 심사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자기만의 세계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돼 있어 앞으로 그 세계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 나갈지 궁금했다. 토씨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문장들은 묘한 리듬감을 자아내 읽을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띤 토론 끝에 ‘반려울음’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젊음은 젊은 상태, 혹은 젊은 기력을 가리킨다. 젊은 시가 있다면 그 상태를 잊거나 잃지 않고자 기력을 쏟아붓는 시일 것이다. ‘고픔’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일 것이다. 일상의 한 장면에서 지나간 시간을 길어 올리고 작금의 감정을 그 위에 내려놓는 시일 것이다. ‘반려울음’은 쓰면서 고파지는 시, 배가 뱃가죽과 배꼽을 소환하는 시, 마침내 쏟아버리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시였다. “버썩거리는” 일상을 비집고 다른 존재를 향한 유일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빛나는 시였다. 울음을 껴안으면서 울음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였다. 시 쓰는 데 있어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시간은 모두 제시간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심사위원 (신해욱 오은 박연준) ——————————————————————————————– ■ 세계일보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이신율리 ​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 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렸다 첫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꽃병에 심야버스를 꽂았다 팔다리가 습관적으로 생겨나는 월요일, 아플 때마다 키가 자라는 일은 선물이었다 불꽃이 튀어도 겁나지 않은 나이는 이벤트였지 단풍 들지 않는 우리를 단양이 부른다 스페인은 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접힌 색종이처럼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다 이신율리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 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악과 졸업 – 제8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 ♣ 심사평 ​ “인생론적 깊이 함축… 언어적 안정감 탁월”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숫자는 조금 줄었지만 그 수준과 내실은 더욱 탄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역량 있는 신인들이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투고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다수 작품이 빼어난 언어와 안목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시단의 주류 시풍이나 관습적 언어를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언어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 작품들이 많았다. 침체기에 있는 한국 시는 이들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개진을 해갈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가운데 김하미, 이신율리, 조민주씨의 작품을 오래도록 주목하였는데, 숙의 끝에 상대적으로 균질성과 언어적 안정감을 가진 이신율리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신율리씨의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은,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구성해가는 사람살이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이 인생론적 깊이를 함축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 안에는 음식들에 관한 숱한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스페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멀리 떠나 있어도 좋을 사랑과 불꽃과 시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수없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의 파노라마가 환상성과 역동성을 함께 거느리면서 그림처럼 사진처럼 다가온 선물이자 이벤트였다.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 바란다. 당선작이 되지 못했으나 구체성과 심미성을 두루 갖춘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을 부기한다.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도 많았다. 다음 기회에 더 풍성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마음 깊이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안도현·유성호) ——————————————————- ■ 문화일보 상자 놀이/김보나 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 여러 개 있다 심심해지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 오래 기다린 상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 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착각이야 세계는 누군가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빛으로 눈꺼풀을 틀어막지 나는 상자가 간직한 것을 꺼내며 즐거워한다 울 니트의 시절은 지났고 이 세제는 필요하다 새로 산 화분을 꺼내 덩굴을 옮겨 심으면 내 손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돼 뮤렌베키아 줄기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가도 돼 친구는 이것을 선물하면서 식물은 쏟아지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란다고 말했지 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상자가 수북하다 이삿짐이거나 유품 같다 빈 상자가 늘고 열 만한 것이 사라져 가면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해 본다 ………………………………………………………………………………………………………………………………………………………………………………………………………………… 김보나 – 1991년 서울 출생. – 성신여대 교육학과 졸업

.♣ 심사평 평범한 소재서 리듬감 이끌어낸 상상력… 서정시 품격 한층 높여 심사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진행됐고, 논의를 거쳐 10여 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이 중에서 ‘가뭄’ ‘포도’ ‘청년 희망 회복’ ‘상자 놀이’가 경합한 끝에 ‘상자 놀이’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마지막에 아쉽게 수상의 영예에서 밀려난 다른 작품들 역시 서정적 울림과 개성을 지닌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가뭄’은 자연어의 결합을 통해 영혼의 갈증과 슬픔을 형상화해내는 언어 감각이 눈에 띄었다. ‘포도’는 도입부의 돌발적인 이미지가 끝까지 유지되는 흡인력과 의미의 여운을 증폭시키는 간결한 시상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청년 희망 회복’은 변두리 재개발지와 도시계획 차원에서의 개발행위의 상관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해내는 시선의 힘이 돋보였다. ‘상자 놀이’는 평범한 일상의 소재에서 운문적 리듬감을 이끌어내는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이 감탄을 자아냈다. 이 작품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일차 의견 교환이 있고 난 다음 ‘가뭄’은 언어 감각의 화려함에 비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투명하다는 점, ‘포도’는 돌올한 언어 배치가 인상적이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행간의 깊이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이 각각 지적돼 제외됐다. 최종적으로 ‘청년 희망 회복’과 ‘상자 놀이’가 남았다. ‘청년 희망 회복’은 재개발지에 꽂힌 ‘깃발’을 통해 세계가 재편되고 그 안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는 사회적 비판의식과 구체적 사실감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다소 시가 직설적이고 산문적이라는 점이 고심케 해 당선작이 되지 못했지만 이 응모자의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결국 끝까지 남은 ‘상자 놀이’가 별다른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우선 ‘상자 놀이’는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여백의 미가 서정시로서 갖춰야 할 품격을 한층 높인다. 시상을 전개하는 맑고 순수한 시행의 흐름이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서 막힘없이 운용돼 운문적 리듬감으로 충일하다. 또 시행과 시행을 건너뛰는 간결함과 담백함으로 우리 마음의 여백에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풍부한 상상력이 여운을 자아낸다. 이 시는 “뜯지 않은 택배”라는 평범한 일상의 소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을 구태의연하게 쓰지 않고 현실에 발을 댄 독특한 시선으로 변주하는 공간 변용 능력과 감정의 안배가 뛰어나다. 상자의 닫혀 있음과 열림, 그를 통해 드러나는 어둠과 빛이 팬데믹 시대의 도시적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내를 주거 공간에 집약해낸다. 무엇보다 당선작과 함께 보내온 응모작들의 수준이 고른 점도 안심케 하는 대목이다. 산문화와 장식적인 수사가 대세를 이루는 오늘날의 시적 풍경 속에서 이 신예시인이 현실 세계와 상상 세계를 덧대어 어떤 삶의 박동과 리듬을 우리에게 선물해줄지 큰 기대를 가지며,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나희덕 · 박형준 ·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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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2022/시 당선작]경유지에서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email protected]

● 당선소감 시

괜히 글 쓰고, 괜히 혼자 여행하고…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이 시가 됐다

채윤희 씨

● 심사평 시

시간-공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 매력적으로 다가와

정호승 씨(왼쪽)와 조강석 씨.

당선 연락을 받았다. “엄마!” 비명을 지르며 따뜻한 품을 끌어안았다. 엉엉 울기에 이상적인 순간이었고 거의 그럴 뻔했다. 그러나 끓는 물에 들어간 지 10분을 훌쩍 넘긴 파스타를 걱정하는 마음이 울컥 치미는 마음을 기어코 짓눌렀다. 퉁퉁 불어버린 파스타를 소스가 담긴 팬으로 옮겨 담았다. “어휴, 비명이 들리기에 사실 벌레가 나온 줄 알았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우가 그릇마다 세 마리씩 배분되었는지 살폈다. 지금 새우가 문제인가. 그러나 새우가 문제이기는 했다. 내가 네 마리를 먹으면 누군가는 두 마리를 먹게 될 테니까. 회심의 파스타였는데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새우가 세 마리이기는 했다, 다행히도.당선작의 제목을 알려드렸다. “아, 너 비행기 놓친 곳!” 아니라고 답하면서도 그편이 재미있었을 텐데 괜히 정정했나 싶었다.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은 늘 일어났다. 괜히 글을 쓴다 그랬다, 괜히 다른 공부를 한다 그랬다, 괜히 혼자 여행한다 그랬다. 그렇게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이 시가 되었다. 조촐한 당선소감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당신만의 괜한 순간을 긍정하게 된다면 좋겠다.감사할 사람들이 많다. 우선 언제나 응원해준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에게 사랑을 보낸다. 예술을 한답시고 빌빌거리는 친구 셋의 술값을 턱턱 내준 이 선생. 이제 갚을게. 나의 6기. 응어리진 애정을 풀기엔 나의 언어가 모자라다. 마지막으로, 항상 무언가를 그르치고 있다는 감각으로 살아가면서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은 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열심히 쓰겠다.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달리 말하면 위험도 모험도 드물었다는 말이다. 안정적 기량이 우선인 것은 틀림없지만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균일함은 우리가 보낸 한 해의 격동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시가 삶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동떨어진 기예를 겨루는 경연도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본심 심사위원들이 만나서 가장 먼저 나눈 얘기는 바로 이 의아함에 대한 것이었다.오래 논의한 세 작품은 ‘남겨진 여름’, ‘씨앗의 감정’, ‘경유지에서’였다. ‘남겨진 여름’은 문장의 신선함이 눈에 띄었고 근경과 원경을 오가며 사유를 전개하는 리듬도 흥미로웠다. 다만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시의 마지막 연에서 상투형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쉬웠다. 압축과 절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씨앗의 감정’은 이질적인 이미지를 하나의 시상을 중심으로 그러모으는 솜씨를 보여줬다. 씨앗을 소재로 한 사유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변주되는 양상은 신선했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대사를 그르쳤다. 모든 시가 기승전결과 대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경유지에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나아가 찰나적 순간을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로 길어오는 기량도 믿음직스럽다. 함께 투고된 작품들이 고른 기량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 작품을 고르라면 이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 기대와 더불어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정호승 시인·조강석 문학평론가(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22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및 당선소감, 심사평 총정리!

사진= 한송희

출판 문학계가 변하고 있다. 출판사에는 작가들을 관리해주는 소속사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며, 출판사를 거치지 않는 독립적 발행 혹은 작은 출판사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문단 데뷔 방식 역시 다변화가 이루어졌다. 웹, 메일링, 구독서비스, 독립출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며 작가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도 신춘문예는 아직 전통적 방식의 데뷔처로 그 역활을 하고 있다. 새로운 작가들의 데뷔를 축하하며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했다. 또한 뉴스페이퍼는 나이와 성별 학교 등 관련 정보가 편견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연구 및 공적 지점에 도움이 된다 생각하여 공개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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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2021,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블루 / 변영현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당신은 호수인 줄 알고 뛰어들어요

팔랑팔랑 헤엄쳐요

바다처럼 넓고 깊어요 파란 동그라미

속의 당신이 파랗게 물들고

나를 찾아봐, 하는 목소리에

물이 뚝뚝 떨어져요

안 보여요 안 보인다니까요

여기 있어, 하는 목소리에

숨이 헉헉 차오르네요

파란 동그라미 위에 파란색을 더해요

내게는 다른 색이 없거든요

조금 다른 파란색이면 당신을 찾을지도 몰라요

몰랐어요 더 깊어질 뿐이라는 걸

바닥을 찾지 못할 거예요

하늘을 찾지 못할 거예요

파란 지구별에서 나갈 수 없듯

당신은 거기서 허우적거리겠죠

파란 동그라미 파란 동그라미

블루칩 같기도 하고 버튼 같기도 해요

속는 셈 치고 한번 눌러 볼까요?

잭팟이 터질까요, 당신이 튀어 오를까요?

하나, 둘, 셋!

아, 물감이 덜 말랐네요

파랗게 질린 손바닥 좀 보세요

당신이 묻어 있는 건 아니겠지요

파란 동그라미를 그려요

파랑이 파르르 떨고 있어요

202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냄비의 귀/장이소

뜨거운 냄비의 귀를 잡다가 내 귀를 잡았다

순간이 순간에 닿는다

귀 하나 떨어진 양은냄비를 안고 골목을 지난다 삼삼오오, 얼룩이를 가리킨다 얼룩이는 번쩍번쩍 얼룩덜룩하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르고 왼쪽으로 들었을까, 어떻게 오른쪽을 들었을까

당신은 떨어진 귀를 버리지 못한 사람 뚜껑을 마저 잃고 배가 된 사람

이마는 당신이 키우던 물고기 떨어진 귀는 물고기의 어디쯤일까

귀를 기울인다 귀는 기울기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자른다 어디나 그런 귀 하나쯤 있다 절반이 절반에 매달려 가운데를 안고 돌면 떨어진 한쪽을 위해 두 배속 태엽을 감는다 꼬리에 풀리는 물무늬 아가미로 쏟아지는 물살 삼킨 것들이 중심을 세운다

멱을 잡고 중심을 도는 것은 붙잡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것

밖이 안을 떠받는다

쓸모를 잡는 동안 바닥에는 차고 오르는 온도가 있었다

끓어 넘치던 냄비 뒤집어 보여주지 못한 뚜껑을

버리면 더 가까워서 가볍다

기억을 잃고 바닥을 태우던 사람이 있었다

붕대를 푼다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에 은빛 물고기를 그린다

지느러미가 키를 잡는다

풍등이다

붙잡지 못한 것들이 손잡이를 흔든다 떨어진 귀가 어떻게 자신을 부르는지를

[2021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심사평-성선경, 김경복]

현대인의 소외와 고립감 잘 표현

올해 시 부문 투고된 1300여 편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임승환의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김석범의 ‘허공의 크레바스’, 홍담휘의 ‘향기의 증거’, 김난의 ‘발화의 경계’, 장이소의 ‘냄비의 귀’ 등이다. 매우 작품성이 높고 사회의식도 있어 그 어느 것이라도 당선작이 될 만했다.

우선 ‘계절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어요’는 삶의 무상함에 대해 매우 탐미적으로 잘 묘파해내고 있지만 그 삶의 무상함이 자칫 지나친 감상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허공의 크레바스’는 당대 사회현실의 문제의식을 매우 감각적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으나 일부 구절들에서 너무 교훈적이고 관념적인 내용이 직설적으로 드러나는 점이 한계로 언급되었다.

‘향기의 증거’는 ‘커피향’을 두고 매우 참신한 발상과 표현을 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으나 그 주제가 커피를 둘러싼 노동력 착취라는 경직된 내용으로 수렴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발화의 경계’는 일상 속의 자아가 갖는 허위의식에 대한 반성을 참신하게 잘 표현하고 있으나 너무 기교적이라는 점, 그리고 시제가 달라지는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냄비의 귀’는 현대인의 소외의식과 고립감을 ‘귀’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심미적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고, 무엇보다 그것이 갖는 문제의식을 당대의 사회성과 결부지어 의미화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 이에 심사위원들은 장이소의 ‘냄비의 귀’를 당선작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당선자는 더욱 정진해 한국 시단의 큰 별이 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성선경·김경복

[2021 경남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소감] – 장이소

– 참된 마음으로 오래 쓰겠다

그 냄비는 귀가 떨어지고도 오래도록 손잡이였다. 낡은 양은 냄비에 밥과 김치보시기를 담아 나르던 날들이 있었다. 돌아보니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는데, 내 발등을 다 가릴 정도로 크고 못생긴 냄비보다 더 버거웠던 건 골목을 지날 때마다 나를 원숭이처럼 구경하던 아이들이었다. 그게 너무 싫어서 하루 종일 엄마를 굶긴 적도 있었다. 사 먹는 밥은 늘 허기진다던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엔 그때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이제 당신은 세상에 없고 그런 당신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내게 남은 숙제 같았다. 세상의 모든 당신을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어린애처럼 살고 있다. 매일의 숙제를 챙기듯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행운이 내게도 왔다. 세상의 알곡 같은 시들과 시를 나누던 모든 분들을 떠올려 본다. 나를 둘러싼 매순간이 스승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시는 잘 모른다면서도 늘 이해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자신에게 덜 부끄럽도록 진정성을 가지고 오래 쓰는 시인이 되겠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듯 감사한 분이 너무 많다.

단단한 첫걸음을 떼게 해주신 전다형 선생님, 길동무처럼 늘 응원해주시던 많은 분들, 문정완 선생님, 그리고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시고 마지막까지 용기를 북돋워 주신 신정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과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장이소 △1968년 부산 출생

2021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책등의 내재율/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엄세원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文淵) 학술.문학 통합 대상

강원문학 시 부문 신인상

한국소비자연합 문화예술부 시문회 사임당문학상

홍성군 문화관광 디카시 대상

[심사평]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 작품들 중에는 우수 작품이 많았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문재(文才)들의 재주가 예리하게 빛났다. 특히 「물다리기」「손말」「고수동굴에서」「멀티플렉스 상영관」「풍욕」「대장간 온도계」「코스모스」「마트료시카」등이 시의 품격을 높였다.

여러 편 중에서 「책등의 내재율」을 최종심에서 제일 좋은 작품으로 뽑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가 참신했다. 그리고 구사하는 시어들이 신선했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적절한 알레고리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책등’은 책의 제목이 새겨진 책의 모서리 표상인데, 이를 ‘내재율’이란 어휘로 묶어 놓아 어휘 상호간 절묘한 아이러니를 품는다.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의 외연과 책의 안 섶에 꽂힌 섬세한 율성(律性)을 결부시키는 조합은 시의 상징화에 기여한다. 책들은 상호 연대하여 어둠을 빚고 다시 어둔 벽과 암유된 정서를 공유한다. 미명(未明)의 책 갈피갈피는 시적 자아의 생(生)으로 융합을 꾀한다. 감춰진 책 속의 비의는 자아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된다. 자아의 감성과 지성의 영혼은 책 속에 압화(押花)로 묻혀 있다가 서서히 빛에게로 나아간다. 출출한 비결(秘訣)이다.

심사위원 – 소재호(시인, 문학평론가)

2021,강원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설 원 (雪 原)/김 겸

끝없이 펼쳐진 눈밭이다

바람이 마른 모래처럼 일어난 눈가루를 휘몰아간다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斷指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무제無題라고 할

너의 순일한 마음에 대해 쓸까

영어囹圄에 갇힌 너의 죄 없는 욕망에 대해 쓸까

새하얀 너를 앞에 두고 토해냈던

내 먹물 같은 설움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그 설원의 원고지에 깨어나지 못한 너의

침묵에 대해 쓸까

이 쇠잔한 생에 표착한 너의 불운에 대해 쓸까

외로워, 외로워 말하는 가오나시顔無し 같이 끼니마다

밥을 보채는 너의 허기진 영혼에 대해 쓸까

정해진 과오를 범하고 정해진 책망을 듣는 너의 차갑 게 굳어진 습習에 대해 쓸까

저 막막한 눈밭에 단지한 손가락으로

정방형의 칸을 내어 너를 쓰고 싶다

하지만 내 가난한 가슴과 옹색한 문장으로는

너를 쓸 수 없다

너라는 이름의 눈밭은 오늘도 그만큼의

햇빛, 그만큼의 별빛을 받아 홀로 아득하다

너의 눈밭에 그물 같은 붉은 칸을 내려 한

미욱한 나를 연해 뉘우친다

아무도 미워해 본 적 없는

아무도 시기해 본 적 없는

너라는 이름의 눈밭

저 깊고 아득한 너의 설원

[2021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 “근래에 보기 드문 유장미와 순정미 갖춰 눈길”

어렵고 힘든 시기에 더욱 풍성해진 응모작들을 보면서 ‘과연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삼 던지게 됐다. 실존에 대한 깊은 질문에서부터 우리 시대의 각박한 현실에 대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질문과 해답의 진폭은 크고 넓었다.

최종적으로 조미희의 ‘귀뚜라미에 대하여’ 외 4편, 서이나의 ‘CU편의점’ 외 4편, 김겸의 ‘설원’외 4편 등을 놓고 숙고를 거듭했다. 조미희의 작품들은 시를 직조해 나가는 힘이 뛰어났으나 응모작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서이나의 작품들은 젊고 신선한 감각이 돋보이나 마무리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겸의 작품들은 산문적이고 현학적으로 빠지는 위험이 노출되기도 했으나 이를 뛰어넘는 유장미와 순정미를 획득하고 있었다. 이는 최근 우리 시단에 부족한 부분이라 더욱 눈길을 끌었다.

‘설원’은 응모작들 중 이러한 장점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당선작으로 올리게 되었다. 아쉽게 탈락한 두분에게는 다음 기회를, 당선자에게는 신인다운 정진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 이영춘 · 이홍섭 시인 >

[2021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소감] – 김 겸

–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생 지탱하는 구심적 시선”

열심히 헤엄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생에서 단지 떠 있다는 사실에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시가 그 부력의 총량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어 아무도 모르게 절실했다. 하지만 나의 시 쓰기는 부끄러운 것이 되기도, 괜한 욕심으로 비치기도 했다.

이미 평론으로 소설로 나름 글을 써 왔기에, 하나의 장르에 대한 순정의식이 강한 우리 현실에서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적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것은 그동안 시 비평을 해 오면서 대했던 귀한 시편들이 내 마음에 옮아온 것이기도 하고, 세사에 현목하던 시선이 낮게 가라앉으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구심적으로 변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겸’이란 시인으로서의 필명은 내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에 나오는 아들의 이름이다. 곤한 마음, 잡아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의 은(恩)에 깊이 고개 숙인다.

△ 김 겸 : 51세 / 본명 김정남 / 강릉(서울生) / 소설가

2021,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핑고 / 황정현 시인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 거친 발굽으로 수만 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동토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비틀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 뿔을 세워 침입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 지고 돌아왔다 무덤은 살고 당신은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 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 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길이 보인다. <당선소감> “이 자리에 제가 앉아도 괜찮은가요?”/미안해요 여기/당신이 앉았던 자리인가요//접혀 있는 페이지는/당신이 읽던 페이지였고//아무렴 어떤 가요 슬픈 페이지를 넘기면/또 다른 슬픔이 펼쳐지는 걸요//유리창은 햇빛을 쏟아내더니/이내 비구름을 몰고 오네요//책 귀퉁이가 닳도록/당신이 읽던 페이지를 읽고 또 읽습니다//바라보는 일 밖에 할 줄 몰라서/다가가는 일도 제겐 큰 용기가 필요했지요//당신은 잠시 자리를 비운 걸요/이 자리엔 누구나 앉아도 괜찮습니다 작은방 낡은 의자에 오래도록 앉아있었습니다. 삐걱삐걱 의자가 소리를 내면 제 뼈들도 뚜둑뚜둑 화답을 합니다. 그렇게 저도, 의자도 함께 낡아가겠지요.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출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겠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이신 김윤배, 김명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함께 해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제게 피와 살을 주신 황의열·강신해님, 정숙광·선정선, 늘 저와 함께하는 김영형·김수민, 문전성시 최지온·서미숙·금희숙·김혜숙·염형기·박양미님, 문장강화 김산 선생님, 조재일님, 중앙대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이승하 교수님과 문우님들, 파피루스 김혜정·김율관·이해민님, 시와 찻잔 김희광 선생님과 문우님들, 용산도서관 이승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 확장된 미학 눈길” 이번 응모작들은 일상성에 노출된 실업, 가족, 반려, 생태 등을 소재로 한 사회적 문제에서부터 코로나19를 반영하듯 감염과 질병 등에 주목하며 삶의 보편적 중력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가운데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도모하는 다채로운 경향의 시편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층위를 건드리는 시편들을 통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의 자리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모던한 시적 상상력으로 고유한 사물을 새롭게 견인하면서 긴장감 있게 구현하고 있는, 10편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했다. 또한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은유의 한계를 유연하고 감각적인 발상으로 작동시키면서 시어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의 특질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평균화된 시작에의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심 작품들 중에서 구체화되지 못한 묘사들과 관념어들이 오히려 번뜩이는 상상력에 균열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황정현씨의 ‘핑고’와 강현주씨의 ‘고양이’ 등 두 편의 작품을 본심에 올려놓았다. 이 두 작품 모두 탁월한 상상력을 통해 존재의 모순을 해체하여 시적 언어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행간까지 존재적 사유와 확장된 미학을 끝까지 선보인 ‘핑고’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정연하지 않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핑고’는 담담한 어조로 ‘빙산’의 푸른 내부를 응시하면서 ‘무덤 속 얼음’이 ‘흙을 밀어 올리는’ 생명의 신생과 사멸에의 ‘언어적 밀행’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신예로서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끝까지 입을 모았던 후보작 역시 공교롭게도 ‘빙하’의 ‘너울거리는’ 생명에의 내부조직을 ‘강렬한 축문’으로 읽어내는 냉담한 시선과 사물을 여과하는 치열한 시적 안목을 높이 평가했지만 아쉽게도 최종심에서 거쳤다. 심사위원: 문태준 시인,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1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야간산행/여한솔

공룡처럼 죽고 싶어

뼈가 남고 자세가 남고

내가 연구되고 싶어

몸 안의 물이 마르고

풀도 세포도 가뭄인 형태로

내가 잠을 자거나 울고 있던 모습을

누군가 오래 바라볼 연구실

사람도 유령도 먼 미래도 아니고

실패한 유전처럼

석유의 원료가 된대

흩어진 눈빛만 가졌대

구멍 난 얼굴뼈에서

슬픔의 가설을 세워 준 사람

가장 유력한 슬픔은

불 꺼진 연구실에서 흘러나왔지

엎드린 마음이란

혼자를 깊이 묻는 일

오래 봐줄 것이 필요해

외계인이거나

우리거나

눈을 맞추지

뼈의 일들

원과 직선의 미로 속으로

연구원이 잠에 빠진다

이게 우리의 이야기

강이 비추는 어둠 속에서

신발 끈을 묶고

발밑을 살펴 걷는 동안의

심사평

신선한 목소리와 상상력 돋보여

총 2천332편의 응모작 중 예심을 거친 10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코로나19로 인한 환경 탓인지 예년보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정서를 반영하는 시가 많았고, 무엇보다 ‘가족’을 다루는 시가 많았다. 산문시의 경향과 개별적 감수성에 편중된 시들이 많았던 예년에 비해 공동체적 감수성 속에서 개인의 영역을 시로 이끌어 내는 가편들을 보면서 다양한 결들의 시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심사위원들은 ‘백자무늬 꽃무늬병’, ‘야간산행’, ‘제자’ 등의 작품에 주목했다.

‘백자무늬 꽃무늬병’은 농익은 솜씨에 전체적으로 시가 자연스럽고 안정되어 있었다. 당장 당선작으로 선택을 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매끈하고 반듯한 매력이 장점이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 아쉬웠다.

‘야간산행’은 신선한 상상력이 눈에 들어왔다. 언어를 익숙하게 다듬고 길들이는 과정보다 상투를 벗어난 새로운 발상과 시적 호기심을 끌고나가는 감각이 신선했다. 다만 응모해온 시들이 다소 직선적인 전개로 이루어진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제자’는 담백한 화법과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발상도 위트가 있고 매력이 가득한 시였다. 무엇보다 시들을 이끌어 가는 호흡이 독특해서 심사위원의 눈길을 오래 끌었다. 다만 동봉한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당선작에 가까운 시와 다른 시들의 편차를 극복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의 끝에 당선작으로 ‘야간산행’을 결정했다. 거칠고 투박한 면들이 곳곳에 있지만 이미지가 활달하고 선명했다. 신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한 목소리와 상상력이 다른 시들을 제외시킨 결정적인 이유였다. 삶의 상투성으로부터 끝없이 새로운 시를 개척해가는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보며 새로운 시인에게 축하를 전한다.

-심사위원: 장옥관(계명대 교수·시인)·김경주(시인)

〈예심: 김욱진(시인)·박미영(시인)〉

2021,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남수우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 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곳이 아니길

이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의 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삼킨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 안을 맴돌고 있을 거라고

뒷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

당선소감

아주 오래전 누군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었다. 그 불가능을 속삭였던 입술은 이제 영원한 뒷모습으로 내게 남아 있다. 내게 주어진 이야기. 이 믿음으로 사람 하나 불러 세우지 못하지만, 한편으론 이 믿음으로 가능한 생활이 있다면,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여전히 그 뒷모습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퇴근길 전철에서 졸고 있는 흐린 눈이었다가, 국밥집에서 보았던 알찬 팔뚝이었다가, 같은 우산 아래 설핏 닿은 손등이었다가, 빈 유모차를 밀고 가는 둥근 이마였다. 어쩌면 내가 아닌 모든 것일지도. 나의 생활이 되도록 그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기를 바랐지만, 부끄럽게도 충분한 적이 하루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도 기다렸다. 기다림 없이 기다렸다. 언젠가 내가 당신을 위한 품 하나를 온전히 그려볼 수 있기를. 매일 저녁 꼬박꼬박 수원지의 둘레를 달리듯, 불안한 내가 완전한 원을 결코 그릴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문학에 구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삶에 대한 어떤 자세를 나는 문학에서 길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가 있었다. 돌 하나를 쥐고 네가 오고 있다고 들었다. 미리 마중 나와 기다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한 시절을 묶어 두고 사람들을 떠나 있었다. 그동안 외면했던 문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용서와 화해로 생활을 돌보던 나날을 지나, 지금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가장 먼저 건강과 안부를 묻고 싶다. 문학을 통해 만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함께 무수히 산에 올랐던 꽃가루 산악회 친구들에게. 전당포 필름의 태민이 형과 캔버스 앞의 빈이 형에게. 늘 멀리 떠나 있던 나를 향해 손 흔들어 준 동생 수안이와 부모님께, 여러 계절을 지나 곁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껴 발음하는 단 하나의 소리에게, 감사와 애정을 접어 부친다. 문득 너무 먼 곳에 있는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다고 적어 보았다.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동물생명학을,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시 심사평-틈’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 좋은 시인으로 살 것이란 믿음 들어

올해부터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하게 돼 심사하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전체적인 수준이나 경향을 파악하면서 좋은 작품을 선별해갈 수 있었다. 725명의 투고작 3625편을 읽는다는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운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내면을 읽어내는 일이기도 해서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예년보다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강해졌고 상상력도 다소 위축된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립, 관계의 단절 등을 뚫고 희미한 빛을 찾아 나가려는 고투가 시편마다 절실하게 담겨 있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에 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품고 수많은 기록과 증언, 고백과 발언, 노래와 기원들을 공감하며 읽었다. 심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은 ‘가드닝’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 ‘인공호수’ ‘에그조프쉬시즘’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등이었다. 이 여섯 분의 작품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남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무엇을 당선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가드닝’은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언어로 의미의 여운을 증폭시키는 시적 재능과 섬세하고 투명한 감각이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 식물적 언어의 세계는 다소 수동적이고 부서지기 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흰 토르소와 천사들의 나날’은 현실의 남루함을 환상으로 감싸며 따뜻하고 환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인상적인 문장이 많지만 세부에 들이는 공력에 비해 전체적 구조나 결말이 약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인공호수’는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의미를 구축해나가는 솜씨가 노련하고 관찰력과 집중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듯이 묘사 위주로 전개하다 보니 다소 평면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에그조프쉬시즘’은 원룸에서 일어난 고독사와 애완견을 중심으로 사회적 비극이 어떻게 봉합되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도시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고 있는데, 작품 간의 편차가 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른셋, 생일이 아직 또렷한’은 운문성과 산문성을 적절히 조율하며 긴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묘사와 진술의 연결이 좀 더 자연스럽고 뒷심이 있으면 좋겠다.

당선작으로 뽑은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는 뒷모습과 거울을 둘러싼 사유의 변주가 거울의 안과 밖, 문의 안과 밖, 지구와 태양 등으로 확장되며 몇 겹의 비유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산문적 언어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이 모호함은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미세한 균열의 기억과 무수한 틈을 내장하고 있다. 이 ‘틈’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사유가 그를 좋은 시인으로 살게 하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자신의 뒷모습” “그 먼 곳을 안으러” 매 순간 떠나는 시인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나희덕·박형준·문태준

2021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저녁의 집/유수진 아침이라면 모를까

저녁들에겐 다 집이 있다

주황빛 어둠이 모여드는 창문들

수줍음이 많거나 아직 야생인 어둠들은

별이나 달에게로 간다

불빛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건

다 저녁의 집들이다

한 켤레의 염치가 짝짝이로 돌아왔다

수저 소리도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돌아왔다

국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설거지를 끝낸 손가락들이

소파 한 끝에 앉아

어린 송아지의 배꼽, 그 언저리를 생각한다

먼지처럼 버석거리는 빛의 내부

어둠과 빛이 한 켤레로 분주하다

저녁의 집에는 온갖 귀가들이 있고

그 끝을 잡고 다시 풀어내는 신발들이 있다

적어도 창문은 하루에 두 번 깜박이니까 예비별의 자격이 있다

깜박이는 것들에겐 누군가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다

매번 돌아오는 관계가 실행하는 수상한 반경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있고

스위치를 딸깍, 올리면 집이 된다 별은 광년을 달리고 매일 셀 수 없는 점멸을 반복한다

그러고 나서도

어수룩한 빛들은

얕은 수면 위로 귀가한다 유수진: 대전 출생으로 이화여대 독어독문과, 동 대학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심사평]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여 예심을 거쳐 본심에 열한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응모자의 인적 사항이 없이 응모 번호만 응모작 맨 앞에 적혀서 보내왔다). 심사위원들은 코로나19로 만나지는 못하고 각자 좋은 작품을 뽑기 위해 숙독을 하고 다시 각각 세 분의 작품으로 압축했다. 본심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 「흙냄새 향수」 외 4편, 「저녁의 집」 외 3편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세 분의 작품들은 모두 소위 신춘문예 풍조에 물들지 않고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시의 위의와 진정성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먼저 「없는 것은 없다」 외 2편의 작품은 대담한 언어 구사와 상상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언어를 부리는 기교가 겉으로 너무 드러나면 소통과 감동에서 약간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비록 오타였다 하더라도 “맡겨”를 “맞겨”로 쓴 실수는 마지막 퇴고나 맞춤법에 신경을 쓰지 않았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흙냄새 향수」 외 4편에서는 시적 진술과 이미지를 이끌어가는 힘이 좋았다. 그러나 일상을 읽는 독법이 평이함으로써 참신한 감각, 즉 신선미가 떨어진 듯하여 아쉬웠다. 「저녁의 집」 외 3편은 요즘처럼 세상이 코로나19로 어수선할 때 너무나 소중해진 당연한 일상을 따뜻하게 보듬고 위로가 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차분하면서도 치열한 시적 사유와 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돋보인다. 동시에 다른 응모작들도 고른 수준을 견지함으로써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리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러기에 심사위원들은 「저녁의 집」을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서로 일치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허형만 시인, 김영 시인

2021 전남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개미들의 천국/현이령 아버지가 아침 일찍 공원 숲으로 간다. 노란 조끼를 입고서, 숲이 아닌 것들은 모두 줍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 아버지와 아버지 사이 쓰레기를 줍다가 잘못 건드린 개미집에서 후드득 쏟아져 나오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를 물고 개미는 개미를 물고 이끼처럼 들러붙어 저녁을 먹는 우리 집. 아버지의 집에는 아버지도 모르는 집들이 많아. 나는 개미처럼 더듬이가 자라고 발로 툭 치면 무너져 내리는 불안들. 바닥을 잘 더듬는 내력이 우리의 유전자에 있지만 나는 한낮에도 까만 개미가 무섭다. 땅바닥을 쳐다보다 땅이 되는 게 꿈인 아버지가 떵떵거리지 못하는 건 기우뚱한 어깨 때문. 개미는 개미에게 의지하고 의지는 의지에 기대고 아버지의 몸을 기어 다니는 수많은 개미 떼. 아버지는 밤마다 방을 쓸어내지만 개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었다 허물었다 오롯이 사라지는 비밀의 집. 새집을 달아 주러 온 나는 새 운동화로 개미를 밟는다. 거대한 발자국 아래 무너진 한 뼘 그늘. 머루 열매 같은 눈알을 꼭꼭 숨긴 아버지. 나는 울먹이며 신발을 턴다. 자꾸만 들러붙는 개미들의 그림자. 숲이 사라져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현이령: 1980년 충북 보은 출생, 서일대 영어과 졸업,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옷문학회 동인. <심사평>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한 공감 시인의 중요 덕목” 700여 편의 응모작들을 읽었다. 코로나 시대의 어둡고 우울한 사회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향이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생활 시편들이나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들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너무 직설적이거나 감상적인 경우가 많았고, 타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언어적 모색이 아쉬웠다. 그런 중에 발견한 <커튼콜>, <긴장의 재구성>, <개미들의 천국> 등은 참신한 발상과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수작이었다. <커튼콜> 외 4편은 경쾌하고 발랄한 언어 감각을 지니고 있고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통해 다채로운 시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적 인식이 충분한 깊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재치에 머무르거나 낭만적 우화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긴장의 재구성> 외 4편은 사유의 폭이 넓으면서도 집중도가 있고 시적 대상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돋보였다. 현실의 문제를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사유는 독창적이지만,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거칠고 어색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개미들의 천국> 외 4편은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간결하고 섬세한 언어로 삶의 비애와 불안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는 어떤 간절함을 지니고 있으나 감정을 함부로 발산하거나 낭비하지 않는다. 당선작인 <개미들의 천국>에서 공원 청소부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슬픔은 절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먹먹하게 읽힌다. 힘이 없고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시인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에서 당선자의 시선과 마음에 신뢰가 갔다. 그 마음의 힘으로 앞으로도 아름다운 시의 길을 열어가시길 기원한다. 심사위원: 나희덕 시인

2021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길찾기/김진환 차창 너머 낯선 가게들 잠시 눈 감은 사이에 내릴 정류장을 지나쳤나 인터넷 지도로 확인한다 버스의 노선과 파란 점의 위치를 나는 길 잃지 않았다 인터넷 지도에 따르면 이 길은 내가 아는 길 매일같이 지나는 왕복4차로 거기서 나는 흰색과 붉은색 보도블록의 배열을 배웠고 넘어져 뒹굴며 무릎으로 손바닥으로 아스팔트를 읽었는데 보도블록의 배열이 다르다 아스팔트의 굴곡이 다르다 인터넷 지도를 확인한다 버스가 정거장 몇 개를 지나는 사이 파란 점은 아직도 아까 그 길에 있다 멀리 손 뻗어 손바닥의 살점 패인 자리를 보면 핏기와 죽은 피부의 흰빛이 구분되지 않는데 하차 벨 소리가 울린다 흰 버튼 위로 붉은 등이 들어와 있다 뒷좌석 사람이 내 뻗은 팔을 보고 대신 눌러 주었다며 손짓한다 버스에서 내려 아스팔트를 만져본다 인터넷 지도를 확인하지 않아도 이 길은 내가 아는 길이거나 거기로 이어지는 길 걷다 보면 낯익은 가게들도 보일 것이다 김진환: 1996년용인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공 재학 <심사평> “문화사적 맥락 속 독창적인 목소리 확보” 양보할 수 없는 시의 미학적 규범의 하나가 상투성과의 싸움이다. 어디서 한번은 본 듯한 기계적인 언어의 조합이나 문장, 누구나 알 수 있는 흔해빠진 생각과 당연시해온 사회적 통념과의 치열한 대결이 개성적인 작품 탄생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지 않는 작품들은 이미 누군가 힘들여 개척해 놓은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가는, 그러나 결국엔 모방의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 아류작亞流作에 불과하다. 무한히 사본을 뽑아낼 수 있는 사진의 음화陰畵를 의미하는 ‘클리세’ 내지 복사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코로나 정국으로 인한 우울하고 답답한 시대상황 탓일까? 막연한 불안과 절망 의식, 실업과 빈곤 등의 주제나 소재가 다수를 차지하는 응모작들을 보면서 소감 중의 하나가 그렇다. 각자 절실하고 소중한 주제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다루는 방식이 이미 공유된 명백한 사실들이나 타성화된 담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특히 그 표현방식이 이미 한국시의 스테레오 타입화된 기성 시인들의 어법을 닮아있다는 것은 유감이다.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서 경향 각지의 응모자가 보내온 1129편의 시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심사자는 김재언의 ‘물 저울’ 외 4편, 정두섭의 ‘가족의 탄생’ 외 5편, 황명희의 ‘황금냄비’ 외 4편, 장윤덕 ‘그늘의 역사’ 외 4편, 김진환의 ‘길찾기’ 외 5편 등을 최종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이 응모작들 모두 다행히 그런 상투성의 혐의(?)를 슬기롭게 피해가고 있다. 특히 이들 작품들은 언어를 필요 이상으로 학대하거나 당대 사회의 관습이나 윤리도덕을 의심 없이 추종하는 데서 오는 감상적인 휴머니즘 차원을 벗어나 있다. 하지만 심사자가 최종 심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장윤덕과 김진환의 시들이었다. 그리고 장윤덕의 경우, 유장한 리듬과 활달한 문장 전개 속에서 펼쳐 보이는 시대정신과 민중의식이 여느 기성 시인 못지않은 시력(詩歷)의 소유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심 끝에 심사자는 결국 섬세한 관찰력과 그에 바탕한 정치(精緻)한 시적 패턴 읽기에 기반하고 있는 김진환의 시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일견 소박하게 보이나 막강한 힘으로 군림하는 시적 영향이나 생각의 통속성을 벗어나는데 그치지 않고, 바로 자신만의 세상읽기와 사유를 정직하게 펼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구체적으로 당선작으로 뽑은 김진환의 ‘길찾기’는 길 찾기 맵과 실재, 인터넷 지도와 실제 삶 사이의 괴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알레고리화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동시에 필요 이상 시적 장식이나 세련된 수사의 남용보다 자신의 체험과 그 영향에 대한 성실한 반성 및 성찰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삶의 감각과 실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비둘기 낙서’와 더불어 당선작은 이미 진부해진 기존의 생각이나 문체들을 자기 것 인양 포장하기보다 그것들을 시대적이고 문화사적인 맥락 속에서 저만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확보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최종심에 오른 5명의 응모작들은 여느 문학매체들에 응모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수작들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아쉽게 당선의 문턱을 넘지 못한 예비시인들에게도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특별히 당선자에겐 늘 정진하는 시인의 한 명으로 오래 한국시단에 기억되길 바라면서 축하의 꽃다발을 건넨다. 심사위원: 임동확(시인)

2021,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 / 조효복

그늘진 탁자에는 표류 중이던 목조선 냄새가 비릿하게 스친다

구운 생선을 쌓아두고 살을 발라낸다

분리된 가시가 외로움을 부추긴 친구들 같아 목안이 따끔거린다

흰 밥 위에 간장을 붓고 또 붓는다

짜디짠 바람이 입 안에 흥건하다

훔쳐 먹다 만 문어다리가 납작 엎드린 오후

건너편 집 아이가 회초리를 견딘다

튀어나온 등뼈가 쓰리지만 엄마는 버려지지 않는다

매일 다른 가족이 일기 속에 산다

레이스치마를 입은 아이가 돈다

까만 유치幼齒를 드러낸 아이가 수틀을 벗어난 실처럼 돌고 있다

귀퉁이를 벗어난 아이들이 둘레를 갖고 색색으로 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뱃구레 속에 고래가 산다

골목은 높낮이가 다른 파동들이 그려놓은 바다 놀이터

제자리가 두려워 아래로만 내달리는 모난 고래들

풍덩 골목 아래로 제 몸을 던진다

가라앉은 먼지위로 고래가 헤엄친다

팥물 묻은 고래 비탈을 구른다

천막 아래 등이 굽은 엄마가 붕어빵을 굽는다

조효복

▲순천 출생▲동덕여자대학교 회화과 졸업

▲2020년 계간 ‘시로여는세상’ 신인상

[심사평]

상처와 희망 공존 진실 통찰의 힘 돋보여

전국에서 응모한 1천100여편이 넘는 시를 읽으면서 삶과 진솔하게 맞서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의 회고에 치우치거나 르포처럼 서술된 작품이 많았다. 지금 여기의 삶과 마주하는 긴장이 아쉬웠다. 또 다른 경향은 상상력을 발휘했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시어가 모호한 경우다. 바꾸어 말하면 시어가 모호한 것은 창작자의 생각과 감정이 정확하지 않거나 지나치게 수사를 따라갈 때 발생한다. 시의 언어는 모호한 것이 아니라 적확하다는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작품이 기대보다 적었다. 이 가운데서 시어가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여백 속에서 정서와 의미를 생성하는 시의 본디를 갖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고민한 끝에 조효복의 ‘붕어빵 안에는 배고픈 고래가 산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이 작품은 삶의 굴곡을 상상력을 통해 묘사하면서도 상처와 희망이 공존하는 진실을 통찰하는 힘이 있다. 궁핍이 가져온 상처를 그리면서도 상처를 넘어서는 순수한 삶의 활달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실을 참신한 감각으로 묘사하면서 입체적으로 조형하는 능력을 갖추어 앞으로 창작될 시를 기다리게 한다.

아쉽게 당선작이 되지 못한 이미영의 ‘디스코 팡팡’도 활달한 언어로 사실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힘이 있었다. 다만 시 세계가 사실을 넘어서는 삶으로 확장하는 진폭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 다른 작품으로 노수옥의 ‘감당’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삶의 진실을 포착하고 있었으나 마무리가 아쉬움을 주었고, 김태훈의 ‘애인의 애인’은 감각적 묘사력이 돋보였으나 언어를 꽉 채우다보니 주제가 뚜렷하게 전경화 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김영의 ‘뼈를 추리는 바람’은 사물에 인간의 심성을 부여하는 감수성을 갖추었으나 군데군데 수사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당선작을 포함한 위 작품들은 감수성과 언어를 다루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어 시인으로서 태도를 갖추었다. 모두가 꾸준하게 창작할 때 신진 시인으로서 빛을 발휘하리라는 믿는다. 하나 덧붙이자면 답답하고 때로는 울분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시대에 당대의 시인으로 독자들에게 예리한 충고와 따뜻한 위로를 주는 위의를 세워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노철

▲전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저서 ‘시교육의 방법’ ‘시 연구방법과 시교육론’ ‘한국현대시 창작방법 연구

2021 뉴스N 제주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발포진 랩소디*/서동석 하늘에도 물길이 있어요 비와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이죠 낙엽도 허공에서 노를 저어요 겨울나무들은 흔들리지 않기 위해 허공 깊이 닻을 내리는 법을 알죠 좌현 쪽으로 기울던 오동나무 잎이 다급히 우현으로 몸을 틀어요 놀라지 마요 이곳에선 파도치고 배가 드나들 듯 흔한 일이죠 운이 좋으면 좌초된 해초 한 줄기에 당신의 오후가 생포될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를 알아볼 순간이 필요해요 어쩌면 어선 위에서 젊은 어부가 되어 양식한 물김을 뜯고 있거나 또 모르지요 누각에서 홀로 일기를 쓰고 있을지도 해풍이 부는 밤바다에서 어떤 그림자를 보거든 신호를 보내듯 말을 걸어야 해요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때요? 혹시 12라는 숫자를 좋아하세요? 아니면 푸른 버드나무 냄새가 훅, 스치거나 정강이 어디쯤을 조금씩 절고 있는지 재빨리 살펴요 그가 조금만 망설여도 당신은 바로 돌아서는 것을 잊지 말아요 고독한 수염 과묵한 입술과 눈빛 밤이라면 횃불 하나는 오른 손에 꼭 챙겨요 가끔은 내 안에서도 횃불이 번지긴 해요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몰라요 우리는 서로를 모르기에 낯익은 사람들 물가에 가면 *두정갑옷을 입은 듯 몸이 무거워요 온 몸이 비늘이에요 두드러기처럼 매일 철갑이 돋아나요 발포진에서는 환한 귀가 필요해요 깊은 밤 물가에 서서 눈 감고 하나, 둘, 셋, 세어 봐요 바람 속에서 갑옷의 기척이 먼저 말할 거예요 손 내밀 거예요 발포만호의 손에서 물비린내 날 거예요 손바닥에 짠 내 밴 굳은살이 쓸쓸할 거예요 밤이면, 그날의 수군(水軍)들이 지금도 송판으로 판옥선을 만들고 돛을 달아요 거북선 위에서 망치질 소리 들려와요 잠깐, 포구 저쪽이 술렁여요 순시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한쪽 손에 등채*를 들고 나를 향해 걸어와요 그의 한쪽 가슴에 활 맞은 자국이 보여요 설마 그의 눈에 내가 보이는 건 아니겠죠? 아직 나를 들켜선 안 돼요 붉은 두정갑옷이 내 앞에 당도 했어요 해풍의 냄새를 맡은 장군 어깨의 견룡이 구름을 박차고 날아올라요 내 말을 아무도 믿지 않겠죠? 심장이 터질 듯한 밤이에요 *발포진-전남 고흥에 있는 바닷가 지명으로 이순신 장군이 수군으로 첫 부임했던 곳 *랩소디-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색체를 띠고 있다 *등채-조선시대의 무관이 구군복 차림 때 손에 든 지휘봉 *두정갑옷-이순신 장군님의 갑옷이름 서동석: 전남 해남 출생, 1961년생, 방송통신대학교 영문과 3년 중퇴,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시 창작과정 수료 <심사평> “전인적 인식과 반응을 포괄한 창조적 작품” 예심을 통과한 작품 139편을 넘겨받은 강희근 시인과 나는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심사방법으로 각자 자기 집에서 최종적으로 두세 편씩 골라 온라인으로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꼼꼼하게 작품을 살펴볼 여유가 있어서 심사하는데 오히려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가 김순애씨의 「백사장 리사이틀」(접수번호 412번)과 서동석씨의 「발포진 랩소디」(접수번호 4번)를 고르는 겁니다. 음악을 제재로 삼은. 하지만 염두에 둔 당선작은 각기 달랐습니다. 저는 파도에 대한 감각을 형상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이미지들을 이용하여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려는 김순애씨 작품을 내심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나 강 선생님은 예심의 기준에 ‘현실감과 역사성’을 추가하자면서 서동석씨의 작품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호의 ‘발포진’이 ‘포진(疱疹)’을 연상시켜 접어뒀던. 그런데, 선생님으로부터 ‘발포진(鉢浦鎭)’은 전라남도 고흥군 포구 가운데 하나로 선조 14년 5월에 이순신 장군께서 수군만호(水軍萬戶)로 처음 부임한 곳이라고 귀띔을 받는 순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도 물길이 있어요 비와 바람이 드나드는 길목이죠’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자연과 인사’를 융합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문장율’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현대화라는 명분으로 ‘우리’를 외면하는 시단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발포진 랩소디」를 당선작으로 올리기로 합의했습니다. 당선을 축하합니다. 시는 ‘전인적(全人的) 인식과 반응을 다 담아 또 다른 존재를 창조하는 장르’니 이 점을 평생 기억하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쓰시고 부디 대성하시길 빕니다. 본심위원: 강희근 시인, 윤석산 시인(글) 예심위원: 윤석산 시인, 현달환 시인, 강정림 시인

2021,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도서관/신윤주

커다란 눈이 하늘을 올려다봐요. 수백의 실핏줄들이 네모난 바스켓을 움켜쥐어요. 하늘로 날아올라요. 바다의 표지는 잔잔해지고, 파도가 물러간 페이지마다 떠밀려온 해인초들이 엉겨 붙어요. 해인초가 손끝에서 잘게 부서져요. 낮과 밤을 알 수 없는 시간이 이어져요. 키잡이는 가시 박힌 손으로 안개를 더듬으며 항로를 찾고 있어요. 날씨만 도와준다면 오늘 안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곳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거든요. 시커먼 해초들이 대서양을 밀고 들어와 바다의 귓속에 이야기를 풀어 넣어요. 귀를 막아도 노랫소리가 들려요. 저기 범고래 떼가 몰려와요. 표류하는 낱말 조각들을 등에 실어 해안선으로 날라요. 실핏줄이 터지고, 열기구가 휘청거려요. 행운이 문단 밖으로 달아나려 해요. 숨이 차요. 하강하고 있어요. 저 멀리 익숙한 초록색 대문이 보여요. 마당에는 안개꽃이 흐르고요. 열린 창문으로 파도가 들이쳐요. 파란 잉크가 옷에 튀어요. 발목이 잠겨 첨벙거려요. 이만 돌아가야 해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손끝으로 모래의 지문들을 털어내요. 숨을 크게 들이쉬어요. 한없이 부풀어 올라요.

1986년 제주 출생 ▷제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심사평]

한라일보 신춘문예 본심에 오른 시 작품들을 차근차근 읽었다. 서정적인 작품들이 다수 있었고, 고유한 제주 체험에 기초해 창작한 작품들도 여러 편 있었다.

한 편의, 새로운 시의 탄생은 하나의, 초유의 관점의 탄생일 것이므로, 한 편 한 편에 과연 시적인, 유의미한, 최초의 발견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생각의 단순한 열거에서 벗어나 그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상관하고 있는지도 꼼꼼하게 살폈다.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살구나무’, ‘감자꽃’, ‘그리고 ‘도서관’이었다. ‘살구나무’는 무위(無爲)를 노래한 작품이었다. 살구나무의 순연한 생명 운동을 번거로운 잡사(雜事)에 시달리는 사람의 형편에 대조해서 바라본 작품이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이 이 작품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감자꽃’은 제주 4·3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감자가 자라는 땅속 어둠의 공간을 피신한 공간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공간이 “검은 봉지”의 공간으로 갑자기 전환되는 대목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고심 끝에 시 ‘도서관’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시는 해역(海域)을 책 혹은 도서관의 공간에 견준 작품이었다. 바다의 파도와 해초, 해안선 등을 한 권의 책의 표지와 책 속에 담긴 서사로 치환했다. 상승과 하강, 평면적인 것과 입체적인 것의 경계를 내내 활발하게 허무는 점이 신선했다. 첫머리에서 끝자락에 이르도록 산문시 시행을 끌고 가는 상상력의 탄탄한 근력뿐만 아니라 풍경을 드러내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화자의 목소리가 돋보였다. 그리고 함께 응모한 작품들 전편에서 유니크한 시적 화자를 만날 수 있었던 점도 새로운 신인의 출현을 한껏 기대하게 했다. 앞으로 서두르지 않고, 심지 굳게 자신만의 시세계를 열어 나가길 바란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허영선 시인, 문태준 시인

2021 머니투데이 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천(母川)/김철

청계천 골목 어디쯤

모천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양양의 남대천이 아닌

뜨끈한 국수를 파는 국수 집 근처 어디라고

국수 발 같은 약도 적힌 메모를 들고 찾아간

미물도 명물로 만든다는 그 만물상

주물 틀에서 갓 나온 물고기 몇 마리 사왔지

수백 마리 수천 마리 붕어빵 구워낼 빵틀

파릇한 불꽃 위를 뒤집다 보면

세상의 모천을 찾아오는 물고기들

다 중불로 찍어낸 붕어빵 같지

한겨울 골목 경제지표가 되기도 하는

천원에 세 마리, 구수한 해류를 타고

이 골목 입구까지 헤엄쳐 왔을

따뜻한 물고기들

길목 어딘가에 차려놓으면

오고 가는 발길 멈칫거리는 여울이 되는 것이지

파닥파닥 바삭바삭

물고기 뛰는 모천의 목전쯤 되는

영하의 파라솔 아래

엄마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

<심사평>

“상상력과 상징, 현장성 돋보이는 수준작들”

경제신춘문예 응모작들의 소재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일반문예 수준으로 올라온 듯하다. 수필이나 수기보다 소설 쪽 수준이 높았다.

‘페니 스탁 스캠’은 제목 그대로 1페니의 주식을 작전으로 부풀려 고가에 파는 사기방식과 거기에 얽혀 있는 이상한 명상수련 단체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하는데 우선 소설의 문장이 거칠고, 사건의 전개 방식도 치밀하지 않다.

‘발효 초콜릿’은 장학재단 설립과 이 재단에 대한 국제송금이 주 이야기를 이루는 작품으로 일단 긴장감 있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후속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나, 기대하며 끝까지 읽히게는 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다 읽고 났을 때 작품의 완결도가 떨어진다.

산문 부분 대상작으로 뽑은 ‘초파리들’은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반도체의 특성, 세계 반도체 시장 움직임의 특성, 그리고 이 외국계 회사의 본사와 지사의 움직임, 그에 따른 내부 인력들의 경쟁과 협력, 협잡 등을 아주 리얼하고 현장성 있게 다루었다. 한 편의 기업소설이자 경제소설로 제목 초파리의 상징성까지 두루 잘 구성하고 또 형상화해냈다. 앞으로 작가로서 좋은 활동을 바란다.

시 부문에서는 예년에 비해 응모작이 적었다. 본심에는 김철씨의 ‘모천’, 송종관씨의 ‘트럭에게 빗길이란’, 정소망씨의 ‘폐차장 풍경’, 권수진씨의 ‘흔들의자’, 최명진씨의 ‘나룻배’가 올라왔다. 이 가운데 최종 경합은 동반작품들도 우수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모천’과 ‘폐차장 풍경’, ‘나룻배’가 벌였다.

‘나룻배’는 함께 출품한 ‘홍시’와 함께 시적 수련이 잘된 분의 작품 같았다. 그렇지만 시적 정조가 아련하긴 한데 신인에게 기대하게 되는 참신성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폐차장에서 자동차가 해체되는 과정을 다소 과격하게 그려낸 ‘폐차장 풍경’은 “삶은 때론 멈춘 곳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라는 마무리가 시적 긴장감을 배가 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출품작들 곳곳에서 가끔 튀어나오는 “의문의 도로”, “노동자의 손” 같은 어색한 관형격 조사 ‘의’ 표현들이 마음에 걸렸다.

응모작 대부분에서 발견되는, ‘~의’와 관련한 오용이나 남용은 글을 어색하고 딱딱하게 만든다는 점을, 특히 시 쓰는 분들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은 김철씨의 ‘모천’을 당선작으로 선정키로 했다. 경제신춘문예라는 주제에도 걸맞고 엄마가 파라솔 아래 붕어(빵)와 하루 종일 서 있던 그곳이 곧 모천이라는 시적 상상력 또한 돋보였다. 춥고 삭막한 겨울, 아름답고 따뜻한 작품이었다. 앞으로 시를 향한 정진을 기대할 만하다. 응모하신 모든 분들께 분투를

기원 드린다.

심사위원: 이순원(소설가), 이희주(시인)

2021,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국수/박은숙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한국문인협회화성지부 부지부장 ▲좋은친구들화성지부 지부장 ▲한국크리스토퍼남양반도센터 소장 ▲저서 수필집 <반지>

[심사평]

국수 소재로 화려한 수사 없이 삶을 담백하게 빚어내

천연두 치환한 ‘빗방울 화석’ 참신

‘흙벽’ 신선한 묘사력 빼어나 눈길

<농민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스무명의 시가 공히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속도의 저편으로 밀려난 삶의 그늘과 소외의 풍경을 그려내고, 타자들에 대한 저버릴 수 없는 관심을 어떻게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시선이 모아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밀행> 외 4편, <고라니> 외 4편, <노루발> 외 4편, <국수> 외 4편의 응모자들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집중적인 토의를 했다.

소재에 밀착하면서도 시적 인식의 확대를 도모한 <노루발>과 <국수>를 주목했다.

<노루발>은 경쾌한 어조와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동봉한 작품들의 에코페미니즘적 모성 서사가 익숙한 회로를 맴돌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국수>는 설명적 진술과 어색한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동봉한 작품들의 안정감이 깊은 신뢰를 줬다.

특히 천연두를 <빗방울 화석>으로 치환한 비유의 참신함, 삶의 악천후를 품은 균열을 신체화한 <흙벽>의 신선한 묘사력, 문명의 맥을 짚은 <멸종의 거리> 같은 작품들은 당선작 못지않게 빼어난 시편들이다.

어쩌면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를 선택해 삶을 빚어내는 솜씨를 보며 우리는 시의 독창성이 어떤 유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감의 문제이기도 함을 알게 된다.

과잉된 감각들과 화려한 수사의 먼지를 벗겨낸 자리에서 ‘맑은 물에 헹군 국수발 같은 주름’처럼 담백하게 씻긴 말들이, 겨우 존재하거나 잔상으로만 남은 부재의 측근들과 늘 함께 있기를 바란다.

새로움을 애써 여의면서 발효돼 나오는 시는 그때 굳이 새로움의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심사위원 – 나희덕, 손택수 시인

2021,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독사가 고독에게/박소미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

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

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

점 어두워진다

김순옥

1966년 전남 목포출생. 김포문예대학 수료. 시품, 달詩 동인.

[심사평]

언어 다루는 솜씨·주제 전달 방식 참신

올해 응모작들의 수준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있었지만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보여주는 시들, 사회문제를 다룬 시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았다. 참신하지만 너무 긴 시들,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이야기를 엮는 솜씨는 좋은데 너무 긴 시들은 읽기가 다소 어려웠다. 시가 반드시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시를 사람의 몸매에 비유하자면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줄여서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것이 시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중 십여 편의 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뒤, 윤상호 씨의 ‘변기는 가능합니다’, 박신우 씨의 ‘이인용 밥솥’,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 세 편의 시를 놓고 마지막 논의에 들어갔다. ‘변기는 가능합니다’는 사회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뛰어났으나 같이 보내온 다른 응모작의 살을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인용 밥솥’은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시였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기성 시인의 특정 작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소미 씨의 당선작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돋보였다. 함께 보내온 ‘달리는 숲’ 역시 당선작 못지않은 사유와 작품성을 담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런 점을 높이 사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의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강은교 · 안상학 · 김참 시인

2021,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해감 / 설현민

새벽 물때다 사촌들과 바지락을 캐러간다 이모를 도와야 했다 엄마, 엄마, 나는 한 번도 이모를 본 적 없는데요 가족이잖니 단숨에 알아차릴 거다

모래사장은 구덩이로 가득하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게 보이니 저기 너희 이모가 있잖아 움직이는 게 너무 많은걸요 네 이모처럼 움직이는 것은 하나뿐이란다

등을 돌려 앉은 엄마는 쇠갈쾡이로 발 밑을 푹푹 퍼올린다

나는 양동이를 끌어안고 움푹한 바닥을 들여다본다

모래 속에는 모래가 들어 있다

어린 사촌들은 껍데기를 손에 쥐고 땅을 헤집는다 또 다른 껍데기를 주워 자랑한다

바지락을 얼마나 더 캐야 하나요 노인들의 배를 채우기에는 아직 모자라구나

이모는 왜 그렇게 깊이 파들어 가죠 깊은 곳엔 먹을 게 없잖아요

네가 그렇게 태어났지 모래를 툭툭 털고 너를 꺼냈단다

바지락이 쌓여간다

나는 그것을 씻어 다른 양동이에 옮겨 담는다 빈 껍질을 골라낸다

아이들은 조개껍데기를 묻어 성호를 긋고

너는 어쩌면 이렇게도 다 커버렸구나 이젠 무엇도 몰라보겠구나

검은 천으로 양동이를 덮는다

내 입안에 서걱거리는 것이 들어있다

나는 이모가 엄마를 닮았다고 말했다 이모는 엄마보다 많이 늙어 있었다고

저기 모래를 뱉고 있는 것이 있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심사평>

“자신의 존재성 확인, 고백의 언어로 풀어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열세 분의 응모작 중 실험적인 작품이나 형식의 파격을 보이는 작품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대상을 관조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특성을 보여서 서정의 밀도와 품격을 유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별 작품에서 맞춤법에 어긋난 어구의 사용이 꽤 많이 눈에 띄었는데, 시도 한글 문장의 규범 안에서 창작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세 분의 작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고래가 그래’는 응모 작품 중 드물게 생태학적 사유를 동원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의 진지함이 주목을 받았다. 고래 내장에 축적된 폐기물로 생태계의 위기를 표현한 착상은 새로웠지만 그 주제가 시적인 언어로 유연하게 형상화되지는 못하였다. ‘우리 집은 기상청 지부’는 아버지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면서 그사이에 연민의 정서를 적절히 병치하는 솜씨를 보였고, 감정을 절제하고 대상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삶의 내력을 표현한 점도 뛰어났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후’의 의미가 모호해서 공감의 폭을 확장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리빙 포인트’ 외 2편을 투고한 분의 작품 중에서는 ‘리빙 포인트’보다 ‘해감’에 더 눈길이 갔다. ‘리빙 포인트’가 일상적 삶의 무료함을 다양한 형상의 교차를 통해 새롭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 다양함이 시상의 집중을 방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 ‘해감’은 어릴 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평범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고백의 언어로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어서 그의 시적 재능이 앞으로 더 발전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 이에 ‘해감’을 당선작으로 밀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심사위원: 강은교 시인, 이숭원 문학평론가

2021,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변성기 / 김수원

접시는 바꿔요

어제 같은 식탁은 맞지 않아요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죠

숨기고 싶은 오늘의 숲이 자라요 깊어지는 동굴이 있죠

전신거울 앞에서 말을 터요

알몸과 알몸이 서로에게

내 몸에서 나를 꺼내면

서로 모르는 사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

엄마는 앞치마를 풀지 않죠

지난 앨범 속에서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셔터만 누르고 있죠

식탁을 벗어나요

눈 덮인 국경을 넘어

광장에서의 악수와 뒤집힌 스노우볼의 노래, 흔들리는 횡단열차와 끝없이 이어지는 눈사람 이야기, 말을 건너오는 눈빛들과 기울어지는 종탑과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까지 밝아지는

모르는 색으로 달을 채워요

접시에 한가득

마트료시카는 처음 맛본 나의 목소리

달 아래, 내가 나를 낳고 나는 다시 나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도 모르게

김수원

– 1971년 경남 고성 출생.

– 본명 김경숙.

– 동아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수료.

– 동아대 강사.

심사평 / 박태일, 전동균

호흡·이미지, 얽매임 없고 자유로워

올해 응모작들은 폭넓은 시적 탐색을 담고 있었다. 생활의 감정을 담은 시편들은 진정성은 있으되 대체로 상식적이거나 평이했고, 현란한 언어와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편들은 수사(修辭)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들은 삶의 내면과 그 너머를 응시하는 눈길이 매혹적이었으나 미학적 형상화가 부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은 작품들은 ‘위시본’ ‘흑백극장’ ‘물사람’ ‘그후’ ‘변성기’였다. 심사자들의 기대가 높았던 탓이었을까? 꽤 오랜 시간 숙의를 해야 했다. ‘위시본’은 흥미로운 제재를 입체적으로 펼쳐 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지만 다소 현학적이고 사변적이었다. ‘흑백극장’은 간명한 언어와 이미지의 전개가 장점이었는데, 입체적 확산의 힘이 모자랐다. ‘물사람’은 차분하되 정서적 흡인력이 강했다. 잘 익은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었으나 소품으로 그친 게 아쉬웠다. ‘그후‘는 남다른 시적 깊이와 인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지막 2행- 결말이 아쉬웠다.

‘변성기’는 일견 조금 서툴고 추상적인 시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가 있다. 호흡과 이미지도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고, 상상력의 폭이 크다. 심사자들은 기존의 문법에 익숙한 잘 다듬어진 시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를 선정하기로 했다. 시는 카오스의 세계에서 코스모스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한다. 보다 힘찬 모험을 통해 유니크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2021,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 백향옥

부풀어 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앉아 날뛰는 맥을 지그시 눌러 식혀주던 손길 같은

차가운 돌을 쥐고 있으면 들뜬 열이 내려가고

멋대로 넘어가는 페이지를 눌러두기에 좋았는데

어느 날 도서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렸다

몸 깊은 곳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놓친 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두 동강 난 돌을 잇대보았지만

깨진 돌은 하나가 될 수 없고

가슴에서 시작된 실금이 무섭게 자라났다

식었다 뜨거워지는 온도 차이가

돌 안쪽에 금을 내고 있었던 걸 몰랐다

이제 그만 됐다고 따뜻해진 돌이 속삭였다

그날, 달빛 밝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깨진 돌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달에게 돌려주었다

심사평 / 문태준

“불교시의 미래 열어가길 기대”

올해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대한 사부대중의 관심이 뜨거웠다. 반조(反照)의 시편들이 다수였고, 인과와 무상, 적멸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그만큼 불자들의 응모가 많았다는 점은 뚜렷했다. 신행의 두터운 지층으로부터 돌올하게 솟은, 푸르고 서늘하고 생동하는 깨달음의 노래가 곧 불교시(詩)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마지막까지 살펴본 작품들은 ‘만다라화 어머니’, ‘파종’,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 ‘가로수 아래서’,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였다. 구태여 각각의 구실을 찾고자 할 뿐이지 이 작품들은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만다라화 어머니’는 처염상정의 꽃인 연꽃을 어머니의 생애에 견준 시조 작품이었다. ‘예토’, ‘화엄’과 같은 시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종’은 아름다운 서정을 담은 산문시였다. 한 알의 씨를 뿌릴 구덩이 그것이 곧 우주 생명 세계라는 인식에는 공감을 했지만, 파종의 풍경이 가족사와 연결되는 대목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천 권의 책을 귀에 걸고’는 아버지의 돋보기 그것을 연륜과 지혜의 안목 자체라고 바라본 작품이었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앞에서 뒤에 이르는 동안 시행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가로수 아래서’는 인연이 된다면 후속작들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고심 끝에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삶의 열기를 식혀주는 찬 돌에 대한 생각을 섬세하게 담되, 옛일을 함께 회상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앞치마’에 묻어 있는 것이 불과 바람의 냄새뿐만 아니라 ‘놀란 목소리’라고 쓴 대목은 감각 내용의 확장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러한 경계가 없는 감관의 활용은 대체로 신예가 갖기 어려운 덕목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게 했다. “깨진 돌”을 달의 빛 속으로 방생하는 대목도 지극히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불교시의 미래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2021,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가작2편)-변혜지,한준석

언더독 / 변혜지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로소 이 꿈의 구성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미소는 돌고래로 기르기 좋습니다

돌고래의 주파수를 라디오로 들어요

나는 무심하게 시작되어집니다

축축하게 연필심이 밤새 헐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에 좋습니다

나는 웅크리기 좋은 무게로 태어났어요

돌고래의 고도는 새떼의 무게 같아요

새들이 흩어지는 사이로 연필 소리가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가는 새를

잃어버렸다 말할 수 있을까요

나무에 없는 새들을 세어보는 일은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고

두 팔로는 충분한 일입니다

돌고래를 기르기에는 남해에 사는 당신이 좋습니다

눈 내리는 남해로 가는 버스 창밖

길러 본 적도 없는데

둥글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의 웃음을 빌려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일기예보에 오늘 아침은 잔기침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안정은 멀리 있습니까

나는 이런 예감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눈 감으면 버스의 흔들림만 남겨집니다

나는 돌고래가 아닙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줄 압니다

잘 가, 돌고래는 휘어지는 몸짓으로 수평선을 밀어내고 있어

끝에서 끝이 부드럽게 멀어져야 좋은 미소

나는 돌고래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를 기르기에 좋습니다 슬픔을 조심합니다

세계는 서로를 미끄럽게 기를 줄 알고

나는 입김에서 햇빛으로 조용하게 옮겨집니다

나는 한 종류의 돌고래가 됩니다

심사평-김영남·이학성

작품마다 상처 치유코자 대변… 과장되지 않은 비유·상징어 눈길

저마다 고립된 외딴섬처럼 단절과 멈춤이 뼈저렸고, 과연 우리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음만으로도 버겁고 지난했던 시기. 예심을 거친 스물다섯 분의 시편들이 공통적으로 시절의 무력감에 대응하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코자 대변하고 있었으니, 왜 문학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기며 시대의 가늠자 역할을 자임하는지 여실히 실감케 했다.

최종 논의로 하연, 김성백, 홍진영, 변혜지, 한준석 씨의 작품을 주목했다.

하연의 작품은 익숙한 표현과 소재들이란 점이 아쉬웠다. 김성백의 경우 팬데믹 시대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지만 감정과 표현이 곰삭을 시간이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홍진영에게서는 시어와 이미지를 다룰 줄 아는 기본적인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몇 개의 서툰 문장들이 심사자의 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장래를 위해서 올해의 보류가 본인들에게 더 큰 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긴 시간 변혜지의 ‘언더독’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아쉽지만 당선에 준하는 가작 2편을 뽑기로 합의했다.

변혜지의 ‘언더독’은 남다른 사유의 깊이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장되지 않은 비유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았고, 절제된 수사의 미덕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 모자람을 찾기 어려웠다. 막힌 혈로를 뚫듯 날카롭고 예민하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아우르는 너끈한 묘사력을 겸비했으니, 이만한 사유의 세계라면 우리 시단을 풍요롭게 메우고도 남으리란 믿음에 선작(選作)으로 민다. 언제까지 무거운 짐을 걸치고 거침없이 나아갈지 모두가 기대를 걸고서 지켜보리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는 ‘돌고래’라는 상징어를 넣어 이미지가 보일 듯 말 듯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미소는 돌고래를 기르기에 좋습니다”의 표현이 말하듯 시가 기본적으로 비유의 장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돌고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시 내용으로 보아 사랑, 꿈, 슬픔, 기쁨까지 다 아우르게 한다. 돌고래 자리에 이 단어들을 집어넣고 읽어보면 금세 느껴질 것이다.

202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최초의 충돌/김민식

나는 화면 너머의 테니스 경기를 본다

테니스 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무수한 공중이 한꺼번에 태어난다

고래의 힘줄

산양의 창자

얇게 저며진 살점으로 직공은

라켓을 짠다

종선과 횡선이 지나간 사이에

태어나는 눈

공중에 이름을 붙이는 최초의 노동이었다

천사를 체로 걸러낼 수 있다고 믿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축과 축의 직교 속에서 성령은 좌표를 얻었다

의심 속에서

의심도 없이

체의 촘촘한 눈을 세는 귀신의 눈은 비어 있다

눈알만 파먹힌 생선들이

부둣가에 쌓여 있다

백경白鯨의 투명한 수정체

멸종된 거대 수각류의 담석

전체를 상상하면 그것들은 차라리 허공이었다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 모양 구멍이 반드시 하나씩 있으며

돌탑 위에 둥근 돌을 하나 올려도

산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수한 왕의 안구가 뽑혀나가도

지구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믿음 속에서

믿음도 없이

삶의 질량을 변화시킬 혁명이 필요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없었고

하늘에 빛나는 돌이 불과 물과 함께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생겼다

외계에서 날아온 돌은 지구를 확실히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종종 과학의 영역이었다

“마음 속에 천 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서 천 개의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나는 어떤 계열의 천사인 것만 같습니다”*

처음으로 운석을 발견한 아이가 남긴 말이었다

그가 발견한 검은 돌은

검은 신전의 기둥이 되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엔, 빛과 유리와 불과 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다만 우주의 조각을 만져보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계획 속에서

계획도 없이

푸른 언덕에 모여 유성우를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들이 깊게 파인 구멍 같다

나뭇가지에 걸린 셔틀콕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만 같다

너, 라고 부르면 뒤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아무도 귀엽거나 밉지 않았고

아나운서의 어깨 너머로

카메라가 풍경을 화소로 만들기 직전

나는 주머니에서 빛나는 하얀 공을 꺼냈다

아직 세상에 없는 구기 종목의 공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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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식 / 1994년 인천 출생, 수원 거주.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전공 석사 과정 휴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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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해욱, 오은, 박연준

예언 떠오르게 하는 언술 고요한 카리스마 느껴져

687명의 응모자 중 마지막까지 논의한 건 세 사람의 작품이었다. 작품의 수준이 고루 높고 각기 개성과 장점을 갖추고 있어 오래 고심했다.

‘부암’(付岩) 외 세 편은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매끄럽고 언어의 리듬감이 살아 있어, 읽는 맛이 좋았다.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자유로운 언술, 상상이 끌고 가는 리드미컬한 문장이 시에 신선한 음악을 부여했다. 시를 많이 써본 자의 탄탄한 기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을 벌인 ‘Grooming’ 외 두 편은 평범한 언어로 비범한 사유를 끌어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먼 곳에서 시작해 이야기의 중심으로 침착하게 진입하는 방식, 그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특별한 사유가 작품에 긴장감을 조성했다.

언어의 호흡, 행과 연 사이를 팽팽하게 조율하는 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조망하는 능력, 시로서만 가능한 이야기 방식을 취하는 점도 좋았다. 좀 더 함축성을 갖췄다면 시에 밀도가 생겼으리란 아쉬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작품이었다.

‘최초의 충돌’ 외 두 편은 상상력의 스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크고 빛나는 장면을 문장으로 포착해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과거와 미래, 현실과 초현실, 미시적인 시각과 거시적인 시각을 넘나드는 화자의 폭넓은 관점, 예언을 떠오르게 하는 언술 방식에서 고요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관찰이 곧 발명이 되는 시의 세계에서, 예리한 시선과 명징한 목소리로 고유의 세계를 그려내는 실력에 믿음이 갔다. 긴 논의 끝에 ‘최초의 충돌’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겐 축하를, 당선하지 못한 두 사람에겐 실망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계속 나아가길 당부하고 싶다.

2021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실수(有實樹) /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붙는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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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선 / 본명 고보경(28). 예술가교사. 대학 졸업 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문화매개 분야 공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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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황인숙, 손택수, 장이지

이미지가 눈에 생생… 기교와 비약 참신

본심에서는 네 분의 시를 다뤘다. ‘전래동화’ 외 네 편은 직설적인 언어로 기성세대와 맞서는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깊이 부대껴서 얻은 것은 아니어서 시야가 좁고 다소 막연해 보였다. ‘가장 내밀한 스펙트럼’ 외 네 편은 흡입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흐름을 끊는 직접 발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어둠’ 외 네 편은 과감한 생략과 거침없는 반복 등 난숙한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다만 논리가 시를 압도하는 지점이 가끔 눈에 띄었고, 최근 시의 스타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윤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유실수’ 외 네 편은 각각의 시마다 이미지를 극적으로 쌓아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본 적 없는 기교와 비약이지만 우리는 이 상실에 맞닥뜨린 자의 눈에 비친 낯설고 속절없이 슬픈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유실수’ 외 네 편을 응모한 차원선 씨를 당선자로 정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우리는 차씨가 익숙한 새로움을 되풀이하기보다 낯선 전환점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 신이인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만 여자고 반은 남자래

강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쫓겨난 누군가

서울의 모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기슭에 떠내려오는 나방 유충을 주워 먹는 게 꽤 맛있다는 거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내 무릎에 올려두었던 수많은 오리너구리

오리가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나

진짜도 될 수 없었던 봉제 인형들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끊어낼 수 없는

주렁주렁

전구 없는 필라멘트들

불을 켜세요

외쳐보는 겁니다

아,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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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인 / 1994년 서울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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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장석주, 김소연, 서효인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그 모두를 해내는 시”

개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개성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성을 얼마간은 지니고 있으며 생활과 사유 곳곳에서 그 고유함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숨기려 해도 얼핏 내비치는 사투리처럼, 감추려 해도 별안간 나타나는 표정처럼. 시는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개성을 서랍장 곳곳에 잘 수납하고 연과 행에 맞춰 잘 구획하는 관리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고유성을 극대화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난동꾼일 수도 있다.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함께 마지막까지 이야기한 작품은 ‘새, 하고 열린 옷장’, ‘언젠가 부하들은 반란의 내색을 비춘 적 있다’, ‘한국어 감정’ 등이다. ‘새, 하고 열린 옷장’은 사소한 장면을 일시정지 상태로 만들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언젠가 부하들은…’은 유머러스하고 의의성 있는 진행이 돋보였다. ‘한국어 감정’은 언어와 언어가 부딪쳐 생기는 감각과 진폭을 그리는 주제 의식이 담백했다. 모두 당선되지 않을 이유보다 당선될 이유가 더 많았으나, 약간의 행운이 부족했던 것으로 오늘의 아쉬움을 갈음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건넨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세계 어딘가에서 역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들을 껴안으며 써나가 주실 것이라 믿는다. 관리자가 될 것인가, 난동꾼이 될 것인가?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시는 당신을 끌고 어딘가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서효인 시인)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단순하지 않은 마음 / 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는 차창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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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1995년 강릉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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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정끝별 시인, 문태준 시인

마스크, 소독된 병실… 코로나 시대 투영한 詩語 돋보여

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영토를 가려 한다. 한 편의 시는 매번 새로운 길을 가려 한다. 그 길에 앞장 설 신예에게 기대하는 것은 모험의 불꽃일 것이다. 본심 대상작인 열두 분의 작품들은 고르게, 시적 모험의 흔적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전 지구적 재앙의 영향인지 고립된 현실에 대한 암중모색 속에서도 희망 혹은 미래에 대한 사유가 눈에 띄었다. ‘자두’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놓고 오랜 숙고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자두’는 젊은이들의 일상과 세태를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디테일한 감각에서 삶에 대한 애착과 부정이 동시에 느껴지며, 절제된 감정에서는 숨겨진 절망과 분노가 감지된다. 무엇보다 ‘자두’라는 물성에 대한 천착과 그 상징성은 이 시의 비유적 깊이를 더해준다. 그러나 이 디테일한 묘사가 때로 산문과의 경계를 묻게 했다. ‘소문은 눈을 즐겁게 해요’는 검은 봉지 속 고구마에서 싹튼 순을, 실체 없는 소문에서 돋은 뿔로 비유하고 있다. “아낌없이 썩은 고구마가 딸려 나왔”다는 통찰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소통 방식을 풍자한다. 모범 답안과도 같은 시적 완성이 오히려 낯익음으로 다가왔음을 밝혀둔다.

최종적으로 ‘단순하지 않은 마음’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일일(日日)의 단일하지 않은, 갈래와 가닥이 많은 사건들이 어떻게 내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주목한 작품이다. 돌발적이고, 바뀌고 달라지며, 충돌하고 흩어지는 일상, 그것이 곧 우리 존재의 본모습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말한다. “마스크”, “소독된 병실”과 같은 시어를 통해서는 코로나 대유행의 사회적 상황을 투영하고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과 같은 관념어를 제목으로 내세우면서도 정공법으로 개진해가는 뚝심에서 앞으로 펼칠 시작(詩作)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갖게 했다. 한국 시단의 일신에 기여하기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한다.

2021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여름의 돌 / 이근석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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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석 / 1994년 충남 논산 출생. 2012년 고등검정고시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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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문정희 시인, 조강석 문학평론가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과장 없이 표현해

11명의 작품이 최종 논의 대상이 됐다. 우선 드는 생각은 다양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고르지만 단정한 묘사와 소소한 토로가 주를 이뤘다. 예년보다 표준형에 수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모험과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시단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해 슬쩍 미안해지기도 했다.

‘구조’ 외 5편은 시적 묘사의 특이성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태를 목전에 놓고 주도면밀하게 살피는 힘을 보여준다. 한 대목 한 대목 인상적인 묘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묘사가 구조를 이루지는 못했다. 근사하게 그려 보이는 능력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헤아리는 사유 없이는 왕왕 심부름꾼의 성실함에 그치기 마련이다.

‘수변’ 외 5편은 우선 문장 단위에서 매력을 발한다. 문장의 힘과 이미지의 리듬이 조화를 이뤄 마지막까지 검토 대상이었다. 산문 투의 진술에 대한 아쉬움, 절제가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조금 더 기다려봄 직하다는 의견과 부합해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여름의 돌’ 외 5편이 당선작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리듬감 때문이다. 과장이나 과잉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러운 리듬에 실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범상해 보이나 드문 기량이다. 일종의 빼어난 ‘예사로움’에 달한 기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름의 돌’은 청년의 불안과 기대를 수일한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리듬을 통해 순조롭게 표현해 당선에 값한다. 과감함이 숙제라면 숙제인데 안정 없는 기획보다 신뢰할 만한 시적 진술이 올해의 선택이 된 것은 당선자에게 영광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2021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노이즈 캔슬링 / 윤혜지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 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가팔라지는 날개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이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저마다의 계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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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혜지 /1984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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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김행숙, 신용목, 김현

가능하면 오래, 더 가까이서 듣고 싶은 목소리

시가 고백의 장르라면 당연히 그 내용보다 방법이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전언이 분명하고 어조가 강렬해도, 나와 당신 사이 징검돌을 하나하나 밟아오지 않는다면 금방 무용해지는 게 고백이니까. 이제 바위처럼 던져져 이 세계의 진의를 되묻는 식의 ‘낯익은 새로움’보다도, 무심하게 놓인 돌의 모양과 간격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존재를 확인한다. 물론 징검다리 이편과 저편에 있는 ‘나와 당신’을 ‘세계와 언어’ 또는 ‘삶과 시’로 바꾸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최종까지 함께 읽은 시는 그렇게 서로를 건네주는 것들이었다. 여한솔의 시가 시간을 견디는 슬픔을 연구실 불빛으로 켜놓는 저력을 보여줄 때도, 박다래의 시가 낯익은 순간의 낯섦을 비닐하우스의 물방울로 달아놓을 때도 그랬다. 전윤호가 사물과 세계를 빈틈없이 연결하고 정보영이 존재의 물질성을 생의 실감으로 드러낼 때, 우리는 이 시대의 고립을 단순히 고독의 심연을 헤매는 일로 소진하지 않고 세계의 이면을 파헤치는 힘으로 돌려놓는 데 놀라워했다.

윤혜지의 ‘노이즈 캔슬링’에는 기차 소리로 달려가는 지상의 시간이 있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공중의 시간이 있다. 날아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들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는 부유와 진공이 꼭 공중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결처럼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관계가 대낮의 파도처럼 무너질 때, 일상의 비애를 지워내는 것 또한 일상이고 그것이 진짜 비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흔한 구식(舊式)의 삶을 일깨우는 것이 유일한 미덕이었다면 이 시를 내려놓고 각자의 비애 속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붙든 것은 그 말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실어나르는 목소리였다. 숨기지도, 대놓고 드러내지도 않으며 이어짐과 멈춤의 무심한 굴절을 만들어내는 매혹 앞에서 우리는 가까스로 구식(舊式) 동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면 어떨까. 가능하면 오래, 그리고 더 가까이서 이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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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자 놀이

김보나

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

여러 개 있다

심심해지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

오래 기다린 상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

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착각이야

세계는

누군가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빛으로 눈꺼풀을 틀어막지

나는 상자가 간직한 것을 꺼내며 즐거워한다

울 니트의 시절은 지났고

이 세제는 필요하다

새로 산 화분을 꺼내

덩굴을 옮겨 심으면

내 손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돼

뮤렌베키아 줄기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가도 돼

친구는 이것을 선물하면서

식물은

쏟아지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란다고 말했지

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상자가 수북하다

이삿짐이거나

유품 같다

빈 상자가 늘고

열 만한 것이 가라져 가면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해 본다

출처 :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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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빈집

박수봉

빗속에 집이 잠겨있다

태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지만 빈집은

날개를 접고 흔들리지 않았다

식구들은 모두 전주로 떠나버리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빈집

퇴행성관절염에 어깨 한쪽이 내려앉은 채

기울어 가는 생을 붙들고 있다

빈집의 담장을 지나다보면 허옇게 바랜 집이

손을 저으며 말을 걸어온다

평생 걸어온 길의 기울기와 그 길로 져 날랐던

가난과 고단함에 대해서 빈집은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빈 방에다 새긴다

행간마다 피어나는 유폐의 점자들

마당 우물터로 목마른 잡초들이 조촘조촘 들어서고

버리고 간 장독대엔 혼잣말이 웅얼웅얼 발효 중이다

죽은 참가죽나무에 앉아 종일 귓바퀴를 쪼아대던

새소리도 날아가고 귀가를 서두르는 골목

일몰의 욕조에 몸을 담근 빈집이

미지근한 어둠으로 눈을 닦는다

종일 입술을 다문 대문을 빈집은

몇 번이고 눈에 힘을 주어 밀어 보지만

끝내 대문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당 깊은 곳까지 어둠이 차오르면 빈집은

눈을 들어 별자리를 더듬는다

식구들이 몰려 간 서남쪽 하늘

별이 기울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들쥐가

들어앉아 새끼를 낳았다

이따금 달빛이 새끼들의 털을 핥아주고 갔다

들쥐는 빈집의 뒷다리를 갉아먹으며 자라고

집은 제자리에서 우물처럼 늙어간다

빈집의 늑막 아래로 어둠이 점점 차오른다

출처 :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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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퇴

강희정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출처 :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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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 오는 날의 스페인

이신율리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렸다 첫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꽃병에 심야버스를 꽂았다 팔다리가 습관적으로 생겨나는

월요일, 아플 때마다 키가 자라는 일은 선물이었다

불꽃이 튀어도 겁나지 않은 나이는 이벤트였지

단풍 들지 않는 우리를 단양이 부른다 스페인은 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접힌 색종이처럼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다

출처 : 《2022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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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다보

송하담

아버지는 목수였다

팔뚝의 물관이 부풀어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나무와 나는

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

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

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

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 아버지 못은 나무못.

나무의 빈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게 시시해 보였다.

뭉툭한 모서리가 버려진 나무들을 데려와 숲이 되었다.

당신은 나무의 깊은 풍경으로 걸어갔다.

내 콧수염이 무성해질 때까지 숲도 그렇게 무성해졌다.

누군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박히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빈곳은 신의 거처였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신을 옮기는 사람

나무는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신에겐 노동은 어려운 말.

그의 일은 산책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였다.

숲과 숲 사이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걷고 걸었다.

신은 죽어 나무에 깃들고

아버지는 죽어 신이 되었다

나무가 햇살을 키우고

나는 매일 신의 술어를 읽는다

목어처럼 해저를 걷는다

출처 : 《2022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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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양이 무늬로 웃는 연습하기

손연후

노란색 상자 안에

털실 뭉치 좋아하는 고양이를 기르는 일

누구나 동그란 노란색으로 웅크려본 날들 있었지

쉼표 모양 씨앗처럼 고요히 꿈꾸는 연습

감자야, 하고 부르면 눈이 동그래져서 딸꾹 하고

딸기향 나는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당신 넥타이에도 딸꾹거리는 딸기가 묻었어,

우리는 서로의 코를 쿡 찌르며 웃어버렸지

커튼을 열면 우리도 고양이 꼬리처럼 기다랗게 기대어 보고

노란 고양이 무늬 닮은 햇빛이 머리 위로 얼룩덜룩 흘러내렸지

반짝이는 유리잔마다 함께 이름을 붙이던 날

사람은 이름대로 사는 거래, 여기저기 우리 이름을 붙이자

우리는 감자 눈동자 속에 살고 유리잔과 식탁보 넥타이 구두에도 살고

사람들 와르르 모였다 흩어지는 보도블록 횡단보도에도 길쭉하게 누워 있는 거야

수많은 버스 차창 손잡이에도 상냥한 고양이 키스처럼 토닥토닥 흔들리고 있는 거지

하늘이 자몽즙 같은 노을빛으로 젖어들면

기다란 빨대 꺼내 눅눅해진 하루를 보글보글 휘저어볼래

볼을 삐죽 부풀린 거품들 퐁퐁 터지고

푹 익은 노을 냄새 싫어하는 감자는 자꾸만 빨대를 타고 기어오르고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 위로 쑥쑥 자라나는 노란색 빨대를 올려다봤지

높이 더 높이, 어느새 굵어진 줄기에서는 샛노란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어

출처 : 《2022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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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왜소행성 134340

유진희

우주는 조금씩 부풀고 있고

우리는 같은 간격으로 서로 멀어지고 있어요

사방이 우주만큼 트여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좌표만 같은 비율로 커지는 세계에서

시간만이 변수라고 한다면

아득한 게 쓸쓸한 일이 되고 맙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게 멀어지다가

어느 계절엔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별을

찌그러진 궤도를 가진 별을

사람들은 무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이로써 우리 행성계는

완벽하게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공전 주기를 늦추고 싶은

사람들은 서둘러 여행을 떠났지만

매진 행렬이 더 빠르게 이어지고

출발을 위한 서류는 늘어납니다

서류가 늘어날수록 안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거기 여기의 세계에서

서류는 잠식하는 불안처럼 불어납니다

모든 항의에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관료의 심장을 뚫어버릴 별빛은

어느 블랙홀에 갇혀버렸을까요

다른 시간 속에서 유영하던 우주비행사는

돌아오자마자 순식간에 늙어버립니다

*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이 받은 새 이름

출처 : 《202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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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경유지에서

채윤희

중국 부채를 유럽 박물관에서 본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나는

딱정벌레 날개 위에 누워 있다

한때 공작부인의 소유였다는 황금색 부채

예수는 얼핏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약속의 땅은 그림 한 뼘

물가로 사람을 인도한다는 뿔 달린 짐승은 없다

한 끝이 접혔다가 다시 펼쳐진다

떨어진 금박은 지난 세기 속에 고여 있고

사탕껍질이 바스락거린다

잇새로 빠져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받아 적을 수 없는 소리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물총새 깃털을 덮고 잠든다

멸종에 임박한 이유는 오직 아름답기 때문

핀셋이 나를 들어올리고

길이 든 가위가 살을 북, 찢으며 들어간다

기원에 대한 해설은

유추 가능한 외국어로 쓰여 있다

따옴표 속 고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오랜 세월 파랑은 고결함이었고

다른 대륙에 이르러 불온함이 되었다

존재하지 않던 한 끈 열릴 때

나, 아름다운 부채가 되기

열망은 그곳에서 끝난다

출처 : 《2022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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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강영선

시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에서

안부 전화가 왔다

노인정에 가기는 어정쩡한 젊은 노인에게 방을

내주어도 되냐고 동네 이장이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마당의 빈터는 앞집에서 농기구를 갖다 놓아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샘가 감나무에 감이 무겁게 열리자 옆집에서

곶감을 좀 보내 줄 테니 감을 따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빈 닭장에 닭을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전기도 수도도 끊어 놓은 그 집에 물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 된 빈집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 온다

떼 내지 않은 나무 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 있어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출처 : 《202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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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백가경

1920년 변호사 세바스챤 힐튼은 어린이들에게 3차원 공간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돕고자 정글짐을 발명했다

x가 머리 위에 달린 축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 높이를 미처 재지

못한 x의 발이 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 누군가 실컷 타다 뛰어내린

그네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x의 팔과 다리가 점점 빠르게 버둥거린다 x는 하나의 커다랗고

검은 점이 되는가 싶더니 그 어떤 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x값이

무한 증폭된다

y님 행복을 주는 치과 생일 축하드립니다. 임플란트 10% 할인 1

어떻게, 잘 지내? 1

은평구도서관 ‘세상의 끝’ 연체 49일 빠른 반납 요망 1

소액 대출 최저 이율로 신용등급 모두 가능

y는 몸을 정육면체 안으로 구겨 넣는다 점점 y값을 잴 수 없고

그럴수록 y는 생각한다

이 모든 되풀이는 나의 결과 값 “(경제적) 자유”를 위한 것

z의 미래 값 : 직사각형 화장실 천장에 도시가스 공급관이 노출돼

있음 장판과 텐트 사이 혈액이 말라붙어 표백제와 기타 용액을 계산

한 것보다 한 통 더 사용함 청구 예정

z의 현재 값 : 중위소득 85% 이하 가정에서 자란 3학년 C반

발가락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지탱한 x는 같은 위치 옥상에 사는 주민

이자 애인 z를 찾아 창백한 타일로부터 그를 무한 증식시킨다

열화 과정에서 z는 기체로 변할 수 있게 되고 y가 연체한 ‘세상의 끝’을

대신 반납한 후 49일을 1초 만에 앞당겨 ‘세상의 끝 역자 후기’를 대출

한다 y가 연탄과 소주를 담아 온 마트 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을 때 자연

스럽게 제목을 볼 수 있도록 책을 비스듬히 세워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범우주아카이빙센터 12호 연구소장은 x, y, z 세 어린이를 한 차원에

모아 두고 질문을 시작한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여러분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이런 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세 어린이 동시에 말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연구소장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린이들 모르게 언어 변환 버튼을

누른 후 짧게 욕을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능력은 어떤 문헌에서 찾은 것인가요?

어린이 일동, 문헌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Hypercube 4차원에서 모든 변의 길이가 같은 도형, 10개 이상의 처리기를

병렬로 동작시키는 컴퓨터의 논리 구조

출처 :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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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반려울음

이선락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으다라 써졌다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나? 배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고프다, 쓰자 배가 없어졌다. 등이 구부러지는, 굴절된 뼈 같은 오후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거품을 집어삼킵니다 씹어도 건더기라곤 없는 튀밥

혓바닥이 마르고, 버썩거립니다

그래요, 뭐든 버썩거릴 때가 있어요 잠깐 눈 돌리면

쏟아지기도 하고…

난 수년 전 아이 몇몇 쏟아버린 적도 있어요

그땐 내 몸도 깡그리 쏟아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손톱을 파낼 땐

눈에도 금이 가고 있었죠

‘얘야, 눈빛이 많이 말랐구나 눈을 새뜨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내가,

손가락을 흘리고 다니지 말랬 잖아요

근데 왜 까마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지…’

보송보송 털이 난 꿈속에서

배가 고프단 얘긴 줄 알았는데, 그림자 얘기였어

부품해진 그림자론 날아오를 수 없다.

어떤 돌은 그림자도 생겨나지 않는다.

죽은 후론 배꼽도 떠오르지 않는다.

쏟아졌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수면에 떠올라

‘배꼽은 어디 있을까?’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깨지지 않는 것도 깨진 것이 돼 버린 오후

이렇게 비좁고, 나는 깎아지른 맘뿐이었나

몇 줄 적지 못한 종이 한 장 찢어, 공중에 날리는

출처 : 《2022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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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박규현

친애하는 메리에게

나는 아직입니다 여기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눈이 흩날립니다 눈송이는 무를 수도 없이 여기저기

가 닿고요 파쇄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 발치에 쌓이던

희디흰 가루들 털어도 털어도

손가락은 여전합니다

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가장 보편적인

성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녹지 않으니까

착하다고 말해도 되나요

의심이 없을 때

평범한 사람을 위해

젖은 속눈썹 끝이 조금씩 얼어 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극야로 부터 멀어지고 싶고

장갑을 끼지 않아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나에게도

손이 있다니 나무들을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메리에게 답장을 씁니다

천사 혹은 기원이 있을 곳으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눈밭에

글씨를 써도 잊혀지는 곳으로 우리가 전부여서 서로에게

끌려 다니는 곳으로

눅눅한 종이뭉치를 한 움큼 쥐고 있었는데

눈을 뭉쳐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가 소원하고

희망해 온 사람

무겁고 불편한 폭설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어

그들의 눈을 빌립니다 그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이가 될

것이에요 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메리, 나는 겨우 있어요

내일과 같이 여전히

출처 : 《2022년 한경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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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박재숙

침대에게 몸으로 물을 주는 건, 그에게서 달콤한 봄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 내 주변엔 봄이 너무 많아 침대도 나에겐 봄이야,

그건 아마도 침대를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애일지도 모르겠어

침대는 해마다 겨울이 알려주는 장례관습 따위엔 관심 없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철없이 스프링을 쿨렁거려도 푸른 봄은

여전히 아지랑이처럼 오고 있을테니까

침대 위에서 휴대폰 속 이미지나 사건들을 클릭하고 닫는

동작은 무의미해 그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내일이 침대

커버처럼 단순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침대의 생각은 참으로 명료해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쓰다듬으며,

지난밤 겹의 무게 뒤에 펼쳐진 피로를 걷어내고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얻지, 그건 내일이 던져줄 공복을 향한 강한 의지인 거야

공복은 채움의 예비의식이기도 해 그러므로 내 침대는 늘 비어서 오늘

아침이 봄, 때때로 난 널 사랑해 내 생각대로 꽃피게 하고 싶어 레시피는

간단해 갖가지 감정의 재료들을 봄흙으로 만든 황토침대에 쏟아부으면 끝,

그럼 우린 하루 한 끼 제대로 된 꽃밭의 식사를 할 수 있어

사계절은 한결같아 언제나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불쑥 깨진 거울을

들이미는 봄의 손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의 내가 보여 나인 듯 내가 아닌 듯,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거울의 트릭이 보여

그래도 방언 같은 아지랑이의 말을 기억하는 내 침대는 여전히 오늘 아침이 봄

출처 : 《202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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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엄마 달과 물고기

김미경

물고기는 내 오빠다

오빠가 물고기인줄 알면서도 내 엄마 달은 물살에 휩쓸려

떠밀려가는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는 달이다

눈물이 없는 달

우리가 잠든 밤마다 환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면서 놀라고

걱정스럽게 만드는 달 말이다

이런 달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만 많다

물거품이 이는 곳에 가면 은빛 곡선을 가진 오빠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발을 핥고 있어서 젖 물릴 때가 됐다고 한다

물고기의 얼굴은 내 얼굴

우리는 형제다

물 속에 잠긴 달이 운구릉을 헤적 거리다 곱은 다리에서

암흑 속으로 내려간다

이번에는 검은 그림자에 싸여 비틀거리는 아빠도 함께다

그러나 엄마는 달이다

힘이 세다.

출처 : 《2022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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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일 잘하는 요즘 애들

전예지

프린터기가 또 말썽이다

이 애물단지를 버리든가 고치든가 이게 대기업의 수준인가요?

하루에 기본 다섯 번을 1층에서 2층으로

걸어야 하는 에스컬레이터 아니면 계단으로

왼쪽 끝 후문 쪽에서 오른쪽 끝 정문 쪽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프린터기를 하나 놔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겨우 몇 십 만원이 아까워서 사람을 갈아 버린다

두 여자는 욕이란 욕을 다 입에 담지만

차마 입을 벌리진 못한다 멋쩍게 서로 한숨만 쉴 뿐

낡고 늙은 마트에 새로 생긴 텅 빈 매장의 취급은 이 정도

[자리 비움]

자기는 왜 자꾸 마음대로 자리를 비워?

일하기 싫어?

하필 매니저가 없는 날

혼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본부장이 찾아온다

억울한 아르바이트생은 그나마 매니저보다 깡다구가 있다

프린터기가 2층에 있어서 왔다 갔다 하려면 어쩔 수,

말대꾸도 하고 참 요즘 애들 무섭다

눈이 순간 흰자로 뒤덮여진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머리 빠진 본부장은 혀를 찬다

죄송합니다

속으로 본부장이 매장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으론 여전히

출처 :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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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역국

강일규

산부인과 병원 근처엔 혼자 우는 울음이 많다

팔을 벌리고 부를 이름이 없어

한낮에도 울음이 바람을 끌어안고 멸망을 낳는다

저만치 뒤따라오던 아내가

전봇대를 붙잡고 이름 없는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다

미안

미안

건너편 정류장에서도

한 여인이 어리어리한 앳된 딸아이를 끌어안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와 한 남자가 보호자란 인연으로

눈빛이 스칠 때마다 놓친 연과 놓은 연을 위로했다

아내의 울음이

자궁 밖으로 다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 반 근을 샀다

출처 : 《전남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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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고요를 찾다

김종숙

요동치던 밥솥에 뜸이 들고

솥뚜껑을 열면 거기

너무도 고요해진, 반듯한 밥알들

끓어 넘치고 치솟던 설익은 시간이 지나고

잦아든 잘 지어진 밥

까칠한 쌀알들이

반지르르한 한솥밥이 되기까지

가령, 몇 억 년 동안 쌓인 사막의 무늬들이나

물에 씻긴 돌의 생김새 같은

저의 격렬을 저도 종잡지 못한 일을

따라 했을 뿐이다

또는, 반듯한 간격을 맞추어

파랗게 자란 벼포기들이

탈곡이 되고 같은 자루에 동량으로 담기는 동안

바르르 떨다 잠잠해진 저울의 바늘이 함께 들어 있어

더도 덜도 없는 정량,

들쭉날쭉 흐트러진 적이 없다

흔들릴 만큼 흔들린 벼 포기들

털릴 만큼 털려 본 낟알들

갈 만큼 다 걸어가 보고야

능숙하게 제 길을 가거나 돌아오는 답습처럼

그 뒤끝은 저렇게

결 고른 한솥밥이 되는 것이다

이쪽도 넘보고 저쪽도 넘보던

휘청이며 허기진 몸이 그 고요해진 밥을 먹고

제힘을 힘껏 잡는 것이다

출처 : 《2022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시부문 대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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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럭키슈퍼

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출처 :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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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만유인력

양승수

한 알의 사과가 저문다

잘 여문 것 좇아 줄기와 가지 따라

억지로 삼키던 몇 모금의 물 따라

바쁘게 걸어온 길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느껴지지 않던 중력이 어느 순간 무거워져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것이다

떨어질 때가 된 사과는 서서히 붉어지는 것이고

떨어지고 난 사과가 여전히 싱싱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관성, 따르다 남은 습관 탓이다

사과의 단맛은 그런 식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을까

하루에도 몇 개의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저로부터 최대한 멀리 뻗어

그러나 고작 몇 발자국 사과를 배웅 나갔다가

휘어졌던 가지가 그 탄력으로

복원되는 궤적을 그리며 돌아온다

돌아오는 가지 하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 재촉하는 신호등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돌려 옆을 보았다면

중력이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도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중력으로 달려온 것들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는 것을 아는 자동차는 없다

아무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

떨어진 낙과의 단맛 같은 엔진 소리

정지선에 닿기 전 이곳은 공중이다

바람이 지나온 커브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뻗어나간 잎맥의 갈림길 따라

빨아들인 햇빛 같은 후회

꽃 피었다가 졌던 시간 흘러가지 않고 멈춰

오래 서성이던 발자국이었다가

흘러갈 곳 없는 소리들 엉켜있던 것이라 한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

출처 : 《2022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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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드볼트

오산하

눈을 감았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국가를 떠올리면서 습한 냄새를 맡으면서

안개 속으로 뛰어들면서 길거리의 새를 하나둘 세면서 걸어

눈이 마주쳐도 날아가지 않는 새 발로 바닥을 밟아도 도망가지 않는 새 까만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넘어졌어 까맣게 피멍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서 생일 축하해 문자를 받고 시차가 생겼어 하루 늦게 생일을 맞

이하면서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과 선물 받은 오르골을 돌리면 모르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는 언젠가 끝나겠지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대 거기에 자신을 묻을 거라고 했어

나는 Green Day 의 Holiday를 들으면서 반역자! 반역자!

죽어버린 사람들의 피가 흘렀어 아 곧

종말이구나 그래서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구나

두 개의 음 두 개의 박자 머리 위로 떨어지는 15층의 사람과

다리 밑으로 떨어 지는 차 사람의 바싹 마른 피부와 솟구칠 힘도 없는

피 물 물 물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에 다 녹아버린 얼음의 흔적과

끈적한 더위가 있어

라는 붙잡아도 부서진다

길을 걷다가 쪼그려 앉아서 새를 가만히 쳐다봤어 새가

내 눈알을 파먹으려고 해도 가만히 있었어 계속 굴러가다가

영원히 남도록 그곳은 마치 도서관 같다

추워 라는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이건

한 세기 전 살아있던 사람의 눈알이구나

계속 걸었어 뚝 뚝 흘리면서 걸었어 끊어진 다리 뒤집어진

배치지 않는 파도 하늘에서 떨어진 새 검은 새 검은 눈동자 뽑힌 눈알

굴러가는 심장 굴러 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

출처 : 《202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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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삶을 품다. :: [2022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요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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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고요를 찾다 / 김종숙

요동치던 밥솥에 뜸이 들고

솥뚜껑을 열면 거기

너무도 고요해진, 반듯한 밥알들

끓어 넘치고 치솟던 설익은 시간이 지나고

잦아든 잘 지어진 밥

까칠한 쌀알들이

반지르르한 한솥밥이 되기까지

가령, 몇억 년 동안 쌓인 사막의 무늬들이나

자세히 보기

물에 씻긴 돌의 생김새 같은

저의 격렬을 저도 종잡지 못한 일을

따라 했을 뿐이다

또는, 반듯한 간격을 맞추어

파랗게 자란 벼포기들이

탈곡이 되고 같은 자루에 동량으로 담기는 동안

바르르 떨다 잠잠해진 저울의 바늘이 함께 들어 있어

더도 덜도 없는 정량,

들쭉날쭉 흐트러진 적이 없다

흔들릴 만큼 흔들린 벼 포기들

털릴 만큼 털려 본 낟알들

갈 만큼 다 걸어가 보고야

능숙하게 제 길을 가거나 돌아오는 답습처럼

그 뒤끝은 저렇게

결 고른 한솥밥이 되는 것이다

이쪽도 넘보고 저쪽도 넘보던

휘청이며 허기진 몸이 그 고요해진 밥을 먹고

제힘을 힘껏 잡는 것이다

<당선소감>

“마흔 중턱 늦깎이 해거리 詩공부, 뚜껑 열린듯 결실”

뚜껑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의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결국 열지 못했던 뚜껑, 그건 내가 아직 미끄럽고 땀이 많이 나는 손을 가졌다는 뜻이었겠습니다. 어쩌다 뚜껑이 열리는 패는 늘 허수였지만, 꽉 잠긴 한계에서 한 호흡을 더 힘준 덕분일까요, 열린 뚜껑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는 지경입니다.

한때 삶을 견딜 수 없어 신을 찾았고, 신은 내게 자유와 시를 주셨습니다. 몸부림을 칠 때마다 애착이 떨어져 나갔고 또 공허했지만, 마흔 중턱에서야 늦깎이로 시에 입문했습니다. 바쁜 직장 일들로 해거리 시 공부를 했습니다. 절실한 시간을 할애한 만큼 모든 결실들이 생긴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예부터 시인은 신과 인간의 메신저로서 삶 자체가 구도의 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시를 쓸수록 와 닿는 말입니다. 때로 ‘신은 시인에게 인간의 오관으로 느낄 수 없는 초감각 계들을 몽환처럼 열어 보이기도 한다’ 고 생각합니다.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런 감각조차도 벼려 이 시대에 일익을 해 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앞서 걸으며 방향이 되어 준 분들이 계십니다. 졸고를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맹문재 선생님과 문우님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명서 선배 시인님, 그리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신춘문예 공고에서부터 당선자 고지까지 한 번도 나이를 묻지 않아 주신 머니투데이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두보, 소동파, 이백, 김삿갓의 한시(漢詩)를 들려주시던 아버지와 솜씨를 물려주신 어머니도 하늘나라에서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곁에서 알게 모르게 외조를 아끼지 않은 남편과 응원해 준 세 아이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 –

<심사평>

올해엔 시 부문 응모작품 수가 적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 많았다.

<도배사>는 여자 도배사의 아슬아슬한 삶과 닮은 작업 과정을 통해 “벽이 꽃그림자 속으로 환하게 스며드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종결어미가 모두 “~다”로 계속 이어지면서 시가 둔탁하고 리듬감이 부족했다.

<어머니 몸 속에는…> 작품은 뼈마디마다 삶의 무게로 점철된 통증들이 신음소리인 비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애정이 잘 담겨져 있다. 다만 응모작 대부분이 시의 주제나 의도와 달리 너무 길어 산만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목수의 딸>은 목수였던 아버지의 삶을 아련하게 반추하고 있다. 목장갑을 빨면서 아버지의 한 생애를 뒤돌아보는 시인의 눈이 따뜻하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선정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고요를 찾다>였다. 벼 낟알이 쌀이 되고 밥이 되기까지, 하여 고요해지기까지 과정을 그야말로 ‘반듯하게’ 그리고 있다. 잘 익은 따뜻한 밥을 앞에 대하듯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작품 중에 “가령”, “또는” 같은 추임새도 시적 긴장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를 느끼게 하고 있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심사위원 : 이순원, 이희주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석 – 한국시문화회관 – 문예도서관 – 문예도서관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석

김민구

올해도 어김없이 각 신문사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되었다. 시를 지망하는 문학도에 있어서 1월 1일은 새해를 여는 하루임과 동시에 그간 공들여온 자신의 작품이 어떤 결과를 맺었는지를 바라보며 다시 습작에 몰두케 하는 날이다. 많은 신문사 가운데 나는 조선, 동아, 한국, 서울, 경향일보의 당선작을 분석하여 그들이 어떤 이미지와 상징으로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는지, 나의 글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려 한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의 당선작은 집이나 오래된 공간에 붙어 소란을 피우는 영혼인 폴터가이스트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써내는 산문시에 대해 그다지 좋지 못한 선입관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이 시는 곧잘 와 닿지 않았다. 시적 화자에게 거칠 것 없이 접근하여 전체적으로 불안한 상황과 심리를 빚어내고는 있지만, 시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를 드러내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형체 없는 두려움의 표상인 폴터가이스트는 시적 화자가 영위하고 있는 생활을 무수히 제약하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홀가분하게’ 떠나간다. 성은주 씨의 작품이 불안한 속을 드러내기 때문인지도 모르나, 전체적인 구조가 그저 유령이 왔다가 떠나는 것이 전부이기에 나는 시를 읽는 내내 뚜렷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당선작은 조선일보의 것과 다르게 한눈에 들어왔다. ‘뚜껑을 따듯/오리의 목을 자르자’라는 첫 구절에서, 삶을 단칼에 절단 내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고 단번에 멎지 않는 생명의 힘으로 발버둥치는 오리의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시적 화자는 목이 잘린 채 발버둥치며 죽어가는 오리를 보면서, 곧 힘이 다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생을 놓지 않으려는 집착을 힘 있게 형상화했다. 게다가 머리 부분의 단면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지금껏 날아오르거나 물갈퀴를 젓던 오리의 유장한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피가 쏟아져 대야에 고이는 게 아니라 그동안 오리를 살아있도록 만든 힘이 ‘비명’처럼 엎질러지고 이러한 상황을 ‘붉은 호수에 떠 있는 흰 병’으로 비유한 유병록 씨의 작품이 매우 인상깊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인 ‘검은 구두’는 제목임과 동시에 제재이기도 하다. 친구의 문상을 갔던 날, 죽은 이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신발을 보고 시의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신발에게는 우리 같은 인간들처럼 계급이 있지 않다는 말로 처음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신발은 동굴, 수행자, 교차로, 코끼리 등의 알기 쉬운 비유로 시를 한 행씩 걸어 나간다.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을 얼핏 떠올리게도 하지만 유홍준 시인이 喪家의 신발장에 모여든 신발들과 그에 얽힌 이미지들을 절제의 미를 살려 간결하지만 더욱 분명하게 이루어냈다면, <검은 구두>를 쓴 김성태 씨는 전체적인 시행들이 유려하게 흘러가는 데에 중점을 둔 나머지 말이 너무 많아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은 구두>는 시인이 자신의 시로 하고자 했던 말이 아주 쉽게 드러나 있으므로 지금까지 읽어온 당선시들 중 가장 명확하게 읽히는 장점이 있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당선시는 내가 써오던 작품처럼 분량이 몹시 긴 편이었다. 각각의 행이 가진 글자 수도 많아서 시를 쓰다가 떠오른 말을 분별없이 마구 끄집어낸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하여 안전하게 시를 끌어나가기보다, 이길상 씨의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는 시적 화자이면서 동시에 저자이기도 한 자신의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로 고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시적 화자는 지금껏 기댈 곳도 없는, 어떤 분명한 삶의 보장 없이 사막처럼 황폐하고도 아득한 시간을 지내왔다.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그때마다 세상의 외곽으로, 한 편의 고독처럼 밀쳐지기도 했다. 이길상 씨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을 아주 절실하고 핍진하게 시로 옮겼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결과 없이 지금껏 살아왔지만, 화자에게 아직 포기할 마음은 없는 듯 근 30행에 달하는 시는 나에게 그 끝에 더 할 말이 남은 넋두리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무언가에 대한 신선한 인식이라든가 수려한 문체로 인한 가벼움이 아닌, 지나온 고독한 인생을 절실하게 이어 붙여 한 편의 시로 내놓은 패기에 심사위원들이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생각된다.

경향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의 제목은 <직선의 방식>이다. 시의 제목에서 최근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김언 시인의 <기하학적인 삶>이 떠올랐다. 마치 잠언의 구절 같은 묵직하고도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여, 부드럽고 감성적인 시의 언어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었던 인생이라는 화두를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이만섭 씨의 <직선의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직선의 곧은 형상을 보고 정직하다고 말하는 첫 5행은 마치 독자에게 강력히 설파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산문화된 행이라 독자의 시선을 다소 강제적으로 끌어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직선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형상에서도 드러나지만 지평선 끝에서 떠오르는 달의 모습이나 별빛이 사람들의 눈에 맺히는 순간까지도 모두 직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분명 휘거나 왜곡되지 않고 올곧게 날아오는 광선(光線)임과 동시에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일상의 모든 것들은 수직과 수평으로 존재한다는 다소 철학적인 결론까지도 갖고 있다.

다섯 개 신문사의 당선작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각각 절실함이나 힘 있는 인식 등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시인 자신들의 생애와 여정을 시로써 구현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인생에 대한 성찰은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의 의미 확장에서 기인했다. 나는 다섯 편의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보다 더욱 선명하게 형상화시켜서 보여주는 존재라는 말을 실감했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한이나 상처들은 때론 가까운 신발장에 ‘조문하러 온 신발들’처럼 모여 있기도 하고, 영원히 하늘을 바라보며 팔을 벌린 채 서 있을 가로수들처럼 ‘직선의 힘’으로 꼿꼿이 우리 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시적으로 구현해 낼 훌륭한 상처들이 없다. 내가 살아오면서 무심코 지나쳐버린 아픔들은 없었는가. 똑바로 걸어갈 것을 거부하며 우회로를 택해 기억에서 지워지고 만 가시밭길은 정말 없었는가. 지금껏 너무 시를 작위적으로 써 왔다.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상황이 아닌 시를 위해 억지로 직조한 듯한 풍경으로 써냈다. 앞으로 내가 갖추어야 할 것은 상처와 아픔을 인정하는 법일 것이다. 그간 지나치게 묵직하고 진중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시를 쓰겠다고 다짐하면서 정작 첫 번째 행의 이미지에 계속 멎어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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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2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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