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명 의 구조 요약 |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 한방에 요약 정리하기 ┃ What’S 패러다임 38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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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는 말 그대로 과학에 대한 혁명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역사학자인 랑케가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그대로이나 과학은 발전한다”라는 점에서 과학은 항상 발전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열등에서 우월로 향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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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쿤) 요약 및 서평 – 시작

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쿤) 요약 및 서평. 해토머리 2010. 4. 29. 16:39. Ⅰ. 저자소개. 1922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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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amcsh.tistory.com

Date Published: 3/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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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혁명의 구조 – 책 요약

이하는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이다. 사례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예시로 소개된 사례들을 가급적 빼놓지 않고 정리했다. … 패러다임을 기준으로 본 학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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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onglive.tistory.com

Date Published: 5/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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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 오거서 – 성균관대학교

요약 정리는 책의 순서대로 글을 쓰되,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절과 부분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쿤이 어떻게 이런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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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ook.skku.edu

Date Published: 8/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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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by 토머스 새뮤얼 쿤 – hoyony

오히려 정상과학 연구는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그러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요약> 패러다임은 분명 유례없는 성공 덕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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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oyony.tistory.com

Date Published: 9/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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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더 스트럭처 오브 사이언티픽 레볼루션스)는 철학자 토머스 S. 쿤이 저술한 과학사에 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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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8/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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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 – 나를 지키는 공간

2011.7.14. 머릿말.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1962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이 책에서 논의한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이제 왠만하면 안들어 본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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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republic.tistory.com

Date Published: 4/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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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쿤 – 네이버 블로그

책을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책의 골자는 아래 발췌해 놓은 요약글, 특히 역자후기를 읽으면 잘 정리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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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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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과학혁명의 구조감상서평레포트

[서 평] 과학혁명의 구조. 목 차. Ⅰ.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 1. 책 소개 2. 서론 3. 토마스 쿤에 대하여 4. 주요 핵심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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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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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과학 혁명 의 구조 요약

  • Author: 언어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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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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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토마스 쿤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작년에 한번 봤던 작품이기는 하지만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을 따라 기회가 될 때 한번 더 읽게 되었다. 확실히 책이라는 게 처음 볼 때랑 다시 한번 볼 때랑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낀다.

예전에 존재와 시간을 볼 때도 일 년 텀을 두고 본 적이 있었는데, 과학혁명의 구조도 마찬가지로 일 년 뒤에 읽으니 훨씬 더 풍부하고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듯하다.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 출판사

과학혁명의 구조는 말 그대로 과학에 대한 혁명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 역사학자인 랑케가 언급했던 것처럼 “인간의 정신은 그대로이나 과학은 발전한다”라는 점에서 과학은 항상 발전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한다는 것은 점진적으로 열등에서 우월로 향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토마스 쿤에게 있어서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은 어떤 주어진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테크닉 등을 망라하는 총체적인 집합을 말한다.

–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 p.74

패러다임은 결국 정상 과학자들이 “아 이것은 우리가 신뢰해도 될 만한 과학이론이다.”라고 믿는 하나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발전 (기술의 발전은 분명 맞다) 이기보다는 하나의 체계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 이것은 그 당시 과학의 개념에 큰 틀을 흔들어 놓는 획기적인 말이다.

그 당시 과학은 논리실증주의에 따른 경험 근거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신념이 지배적이었다. 논리적 원자론에 의한 원자적 명제의 형태는 그것들이 나타내고 있는 대상을 인식해야만 이해가 가능하다고 언술 한다.

토마스 쿤의 사진 (위키백과 출처)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원자적 사실에 대응하는 원자 명제들로 구성된 분자 명제로 세계에 대해 진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는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한다.

이것은 경험론을 근거로 두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제 토마스 쿤은 그것을 “경험론의 독단”이라는 비판을 한 콰인의 입장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형성되면 정상과학은 퍼즐 풀이에 힘쓰게 된다. 퍼즐 풀이는 패러다임에 해당하는 과학이 풀어야 할 ‘숙제’와 비슷한 것이다.

과학자 공동체가 패러다임과 함께 획득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패러다임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동안 풀이를 가진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문제들을 선정하는 기준이다.

–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 p.109

퍼즐 풀이하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긴다. 토마스 쿤은 그것을 ‘변칙 현상’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변칙 현상이 많을수록 패러다임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가 풀이할 수 없는 퍼즐을 풀이하게 되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고 그것이 인정받게 된다면 과학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키게 된다.

뉴턴에 의하면 중력은 ‘서로의 물체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에게 와서 중력은 ‘공간의 왜곡’ 이 된다. 이것을 통해서 같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다른 이론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뉴턴 이론이 그럴듯한 근사적 해를 제공하려면, 고려되는 물체들의 상대 속도는 빛의 속도에 비해서 훨씬 더 작아야만 한다.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의 특수한 경우가 된다는 것이다.

–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 p.193

특히나 빛의 에테르 이론은 그 당시에만 해도 분명한 ‘상식’이었다. 그것은 빛이 파동의 성질을 띄고 있으니 파동을 전달할 매개체가 필요했고 과학자들은 그 파동을 전달해 줄 에테르라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물질을 검증하는 실험은 빈번히 실패하면서 그 물질을 입증할 것은 풀리지 않는 퍼즐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빛이 입자라는 전혀 생소한 개념이 발견되는 것이다. 과학의 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은 기존에 있던 과학과는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된다.

쿤은 이전의 과학과 전환된 과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공약 불가능성’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 예를 들어 칸트의 선험적 종합판단이라 불리던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다”는 뉴턴의 물리학에만 해당한다는 것 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이지만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위도와 경도는 서로 수직이지만 한 점에서 만난다. 즉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 이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지구가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점에서, 즉 공간 왜곡이 일어난 상태에서 말이다.

이 말을 두고 본다면 과학 역시 그 당시 철학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현대의 과학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왔지만 언제 부서지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 허무주의적인 생각으로 과학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현재 상식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과학적인 방법들이 모든 담론에서 인정된다는 말을 의심해야 한다 . 물론 과학이 여전히 설득력이 있고 현상을 잘 설명한다는 과학적 방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모든 과학적인 말들이 진리는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평점 : ★★★★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인생 책)

과학혁명의 구조(토머스 쿤) 요약 및 서평

Ⅰ. 저자소개

1922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과학연구 및 개발 연구소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모교 대학원으로 돌아가 1949년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하버드대학교 총장인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의 권유로 학부생들에게 자연과학개론을 강의하면서 과학의 역사적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관심이 과학사상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면서 철학·사회학·언어학·심리학을 두루 섭렵한 새로운 과학혁명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아 1956년 버클리대학교로 옮겨 과학사 과정을 강의했으며, 1958년 스탠퍼드대학교의 행동과학 고등연구센터(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에서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냈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법칙·지식 및 사회적 믿음이나 관습 등을 통틀어 일컫는 개념으로서, 그는 이 패러다임이 한 시대의 세계관과 과학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개별적 발견이나 발명의 축적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교체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는 이러한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과학관은 1962년에 발간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로 발표되어 과학철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를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프린스턴대학교(1964~1979)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1979~1991) 등에서 과학사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던 중 1996년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사학자 겸 과학철학자로 평가되며 저서에 화제작 《과학혁명의 구조》를 비롯해 과학혁명의 예를 다룬 《코페르니쿠스 혁명 The Copernican Revolution》(1957), 과학 철학적 주제를 모은 논문집 《주요한 긴장 The Essential Tension》(1977), 《흑체 이론과 양자불연속성》(1978)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Ⅱ. 옮긴이 : 김명자

1944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화학과(1962―1966)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대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971). 일본 동경이과대학 객원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 이과대학 교수(이과대학장 역임)를 지냈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경실련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사,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99. 6. 25 환경부 장관 취임하여 2003년까지 장관생활을 했다.

현재 열린 우리당 비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과학 전통과 환경운동」(두산동아, 1991),「엔트로피」(두산동아, 1992), 「과학기술의 세계」(웅진 밀레니엄 북, 웅진, 1998),「현대 사회와 과학」(두산동아,1992)가 있다.

Ⅲ. 시대배경

16세기와 17세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킨 기계론적 세계관을 이 책의 배경으로 들 수 있다. 유기적이고 생명체 적이며 정신적인 우주의 기본 개념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대치되었으며, 이 기계론적 세계관이 현대의 지배적 사상이 되었다.

중세에는 십자군 전쟁과 백년전쟁, 장미전쟁을 겪으며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준비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교황의 권위가 최고라는 생각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영주들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국왕들은 중세도시의 시민들과 손을 잡으며 민족국가를 구성하게 된다.

이 때, 이탈리아에서 인간중심의 고대 그리스 문화와 실용주의의 로마문화가 전파되면서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다. 사상적으로 신중심의 세계관에서 과학과 실험을 통한 법칙의 발견을 통해, 법칙이 우리의 세계를 지배한다고 본 것이다. 합리주의가 등장이 시작된 것이다.

이 영향으로, 철학에서도 인간의 사유를 중시하면서 인간의 위대한 이성이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합리적인 생산방식을 통한 대량생산체제는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오게 된다.

이제는 신의 섭리가 아닌 기계적이고 규칙적인 법칙이 지배한다고 보았고, 이성적으로만 이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로써 사상, 과학, 경제 등의 전 분야에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퍼지게 되었다.

Ⅳ. 『과학 혁명의 구조』에 대하여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사, 과학철학 분야를 넘어서 과학일반, 철학, 역사, 인류학, 사회과학, 페미니즘, 국가정책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시카고대학 출판부가 발간한 학술서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었고,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모두 100 만 부 이상이 팔렸다.

*정상과학→위기→ 혁명 →새 정상과학 4단계 발전

1962년에 출판된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발전의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쿤에 의하면 과학발전의 구조는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곧 과학자 사회가 자신들의 이론, 연구를 가능케 하는 도구와 문제의 총체인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 이 과학 분야는 1)정상과학(노멀 사이언스) 단계에 들어간다. ‘퍼즐 풀이’로 특징 지워지는 정상과학이 발전하다가 그 패러다임 안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인 변칙이 등장하면, 이러한 변칙은 2)위기의 단계를 낳는다. 위기가 지속되면 기존의 패러다임과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갑자기 등장하고, 두개 혹은 그 이상의 패러다임이 경쟁하는 3)과학혁명의 단계에 접어든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거의 패러다임을 제치고 과학자 사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면 4)새로운 정상과학의 단계가 시작된다. 곧 과학의 발전은 정상과학 → 위기 → 혁명 →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이어지며, 여기서 보는 과학혁명은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세워지는 것 같은 사회적 혁명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라는 천동설로는 설명하기 힘든 관찰 결과나 천체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기존의 천동설로는 그러한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이에 따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혹성에 불과하다는 지동설이 대두된다. 이러한 지동설을 따르는 과학자들이 늘어나면서 천동설은 쇠퇴하고 결국 지동설이 정상과학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전환이 종교적 개종이나 마찬가지로 단절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벽돌 하나를 쌓아 지금까지 쌓아왔던 벽을 높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은 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벽을 쌓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쿤은 패러다임의 불가공약성(서로 경쟁하는 둘 이상의 패러다임은 서로 양립할 수 없으며 공통점도 있을 수 없다)을 강조한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는 천동설이라는 벽 위에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벽돌을 쌓아 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천동설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지동설이라는 새로운 벽을 쌓는 과정이다.

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쿤의 주장대로 경쟁하는 둘 이상의 패러다임이 양립

불가능하고 공통점도 전혀 없다면, 어떤 패러다임이 보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인지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패러다임 선택의 합리적인 기준이 없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과학 자체가 비합리적인 활동이라는 주장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쿤의 이 책은 과학사 분야를 넘어서, 인문학, 사회과학 전반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Ⅴ. 줄거리

1. 서론 : 역사의 역할

만약 역사가 일화 또는 연대기 이상의 것들로 채워진 보고라고 간주된다면, 역사는 우리에게 지금 주어져 있는 과학의 이미지에 대한 결정적인 변형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미지는 심지어 과학자들 자신에 의해서도 예전에는 고전에 기록된 대로,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과학의 새로운 시대마다 그 훈련을 쌓도록 익히는 교과서들에 기록된 대로, 주로 완결된 과학적 업적들의 연구로부터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저작들의 목적은 필연적으로 설득조인 데다 교육용이다. 그런 것들로부터 얻어진 과학의 개념이란 마치 어느 국가의 문화의 이미지를 관광 안내책자나 어학교본에서 끌어낸 격이나 다를 바 없이 실제 활동과는 잘 맞지 않는다. 이 에세이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그런 책에 의해서 오도되어 왔다는 것을 밝히려고 한다. 이 글이 겨냥하는 것은 연구 활동 자체의 사적(史的)인 기록으로부터 드러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과학의 개념을 그리는 것이다.

만일 과학이 요즈음의 교재에 실린 사실, 이론, 그리고 방법의 집합이라면, 과학자는 성공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 특정한 집합에 한두 가지 요소를 보태기 위해서 온갖 애를 쓰는 사람이 된다. 과학의 발전은, 과학 기술과 지식을 이루면서 날로 쌓여 가는 자료 더미에, 하나씩 또는 여럿이 이들 항목이 덧붙여지면서 뿔뿔이 진행되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과학사는 이들 전승되는 증대와 그것들의 축적을 훼방해 온 장애의 연대사를 기록하는 분야가 된다. 그렇게 되면,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과학사가(科學史家)는 두 가지 주요한 임무를 띠게 된다. 그는, 한편으로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당대의 과학적 사실, 법칙, 그리고 이론이 발견되었거나 창안되었는가를 일일이 결정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의 과학 교과서 구성 내용의 보다 빠른 축적을 방해해 온 오류, 신화, 그리고 미신의 퇴적 더미를 찾아내고 설명해야 한다.

정상과학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필연적으로 그들의 시간을 거의 모두 바치는 활동인데, 이것은 세계가 무엇인가를 과학자 사회가 알고 있다는 가정에 입각한 것이다. 과학 활동에 있어서 성공의 대부분은, 필요하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 사회가 그 가정을 기꺼이 옹호하려는 의지로부터 나온다. 예컨대 정상과학은 근본적인 새로움(novelty)을 흔히 억제하게 되는데, 그 까닭은 그러한 새로움이 정상과학의 기본 공약들을 전복시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상적 문제, 즉 기존의 규칙과 과정에 의해 풀려야 하는 문제가 그것을 거뜬히 풀 수 있는 가장 유능한 학자들의 되풀이되는 공격에도 풀리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에서는 정상 연구의 목적으로 고안되고 구성된 어느 도구가 예상한 방식대로 들어 주질 않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전문적 예측과는 들어맞지 않는 이상을 나타내게 된다. 이렇듯이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방식으로 정상과학은 거듭 되풀이해서 길을 잃게 된다. 또한, 전문 분야가 과학 활동의 기존 전통을 파괴하는 이상 현상들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을 때, 드디어 과학의 수행을 위한 새로운 기초인 새로운 공약으로 이끄는 비상적 탐구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문 분야의 공약의 변동이 일어나는 비상한 에피소드들이 바로 이 에세이에서 과학혁명이라 부르는 사건들이다.

새로운 이론은 정상과학의 기존 활동을 다스리던 규칙에서 변화가 일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그것은 이미 성공적으로 완결되었던 과학 업적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이 새로운 이론은 그 적용 범위가 얼마나 전문적이든 간에 이미 알려진 것에의 단순한 축적이나 보완인 경우가 드물거나 또는 전혀 그렇지 않은 이유이다. 새로운 이론의 동화는 기존 이론의 재구축과 기존 사실의 재평가를 요구하는데, 이는 한 사람에 의해서 또는 하룻밤 사이에 완결되는 일이 거의 없는 본연적으로 혁명적인 과정이다.

2. 정상과학에의 길

오늘날의 물리학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빛은 광자 즉, 파동과 입자의 특성을 아울러 나타내는 양자 역학적 실체라고 가르친다. 연구는 그에 따라 진행되거나, 아니면 더 정교하고 수학적인 특성화에 따라서 진행된다. 그러나 빛의 특성을 규정한 지는 반세기 정도밖에 안 된다. 20세기 초 플랭크, 아인슈타인,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학자들이 진전시키기 전까지는, 물리학 교재에서 빛은 횡파(진행 방향에 수직되게 진동하는 파동) 운동이라고 가르쳤는데, 이 관념은 19세기 초 영과 프레넬의 광학에 대한 저술들로부터 유도되었던 패러다임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파동 이론은 광학의 거의 모든 과학자들에 의해 수용되는 첫 번째 학설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18세기 동안 이 분야의 패러다임은 뉴턴의 「광학(Opticks)」에 의해 제공되었는데 그것은 빛을 물질의 입자들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렇듯 물리광학에서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학혁명이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혁명을 거친 다른 것으로의 연속적 이행은 성숙된 과학에서의 통상적 발달 양상이다. 그러나 뉴턴의 연구 이전 시대의 특징적인 양상은 그렇지 않으며, 여기서 우리가 관심 두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득한 고대로부터 17세기 말까지 이르는 시기에 빛의 본질에 관한 널리 수용된 단일한 견해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그 대신 다수의 경쟁하는 학파들과 다시 그 분파가 산재하였고, 대부분 에피쿠로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 또는 플라톤 주의 이론에서 빛을 이러저러한 입자들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또 어느 그룹에게는 빛을 물체로부터 발산되는 입자들이라고 보았다. 이 밖에도 갖가지 조합과 수정의 이론이 존재했다. 해당 학파들은 각각 어느 특정 형이상학에 관련시켜 세력을 키웠으며, 이 각기 다른 관찰로서 그 고유 이론이 가장 잘 설명해 낼 수 있는 광학 현상의 특수한 부분을 강조하였다.

자연과학의 발달에서는 어느 개인이나 또는 그룹이 다음 세대의 대다수 전문가들을 유인하기에 충분한 종합을 처음으로 이룩하게 되는 때, 그보다 낡은 학파들은 점진적으로 사라져 간다. 그들의 퇴조는 더러 그들 학파의 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향해 가는 것에도 연유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이든 간에 보다 뒤떨어진 이론에 고착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이후 그들의 연구를 무시해 버리는 그 전문 분야로부터 소외될 따름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 분야의 새롭고 보다 확고한 정의를 내포한다. 자기들의 연구를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시키는 것을 원치 않거나 또는 적응시킬 수 없는 사람들은 고립된 채로 계속해야 하든가 아니면 스스로를 어느 다른 그룹에 소속시켜야 한다.

3. 정상과학의 성격

하나의 패러다임의 성공―운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 행성의 위치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산, 라부아지에의 천평 이용, 또는 전자기장에 대한 맥스웰의 수학화―은 당초에는 주로 아직 불완전한 예제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성공의 확률일 따름이다. 정상과학은 그런 확률의 실재화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이 특히 시사적이라고 제시하는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고 그런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에 일치 정도를 증진시키면서, 그리고 더욱 명료화시킴으로써 달성된다.

하늘에 대해서 말하자면 뉴턴은 행성의 운행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유도했으며, 달이 케플러의 법칙들을 만족시키지 않았던 결과들의 일부에 대해서도 설명해 냈다.

지구에 대해서는 뉴턴은 진자와 조수의 간만에 대해 몇몇 단편적인 관찰 결과들을 수학적으로 유도해 내었다. 추가적이지만 무작위 적인 가정을 도입함으로써, 그는 보일의 법칙과 공기 중에서의 소리의 속도에 대한 중요한 관계식도 유도해 낼 수 있었다. 그 당시 과학의 상황으로서는 그런 증명들의 성공은 지극히 인상적인 것이었다.

이제 잠시 정확성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우리는 이미 그 경험적 측면에 대해서는 다룬 바 있다. 뉴턴 패러다임의 구체적 응용이 요구했던 특수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특이한 장치가 필요했다. 이론 쪽에서도 일치를 얻는 데에는 그와 비슷한 여러 가지 난관이 따랐다. 뉴턴은 그의 법칙들을 진자에 적응시킴에 있어, 진자의 길이에 특정한 값을 매기기 위해 추를 질량점(질량만 갖고 크기를 갖지 않는)으로 취급해야 했다. 그의 정리(theorems)의 대부분은 가설적이고 예비적인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또한 공기 저항의 영향을 무시하였다. 이런 것들은 건실한 물리적 근사(approximations)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사로서 그것들은 뉴턴의 예측과 실제 실험 사이에서 기대되는 일치성을 제한하였다. 뉴턴의 이론을 하늘에 적용하는 데서는 바로 이 난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한 법칙들을 유도하기 위해서 뉴턴은 각각의 행성과 태양 사이를 제외하고는 인력에 의한 작용을 모두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행성들은 상호간에도 끌어당기고 있으므로, 적용된 이론과 망원경의 관찰 결과 사이에는 고작해야 근사적인 일치만이 예상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치성에서의 이러한 한계는 뉴턴의 후계자들에게 매력적인 이론적 문제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이를테면 동시에 서로 끌어당기는 둘 이상의 물체의 운동을 다루기 위해서 그리고 교란된 궤도에서의 안정성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기교들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의 가장 우수한 수학자들인 오일러, 라그랑주, 라플라스, 가우스는 모두들 뉴턴의 패러다임과 하늘 세계의 관찰 결과 사이의 일치를 증진시키기 위한 문제들에 대해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이들 인물들의 대부분은 동시에 뉴턴이나 또는 역학의 당대 어느 대륙 학파도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응용에 요구되는 수학을 전개시키는 일도 했다. 응용의 이들 문제들은 18세기의 가장 빛나고도 심혈을 기울인 과학적 연구가 과연 무엇인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패러다임 이후의 시대를 검토해 보면 다른 실례들이 발견되는데, 그런 것으로는 열역학, 빛의 파동 이론, 전자기 이론, 또는 그 기본 법칙들이 완전히 정량적인 과학의 여타 분야의 발전을 들 수 있다. 적어도 보다 수리적인 과학에서는 이론적 연구는 거의 모두 이런 유형의 작업이 된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재 공식화하는 이와 같은 작업은 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으나, 대부분은 훨씬 더 뚜렷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 왔다. 그러한 변화들은 앞에서 패러다임 명료화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된 경험적 연구의 결과로부터 나타난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연구를 경험적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임의적인 것이었다. 정상과학에서의 다른 어느 유형보다도 패러다임 정련의 문제는 이론적이면서도 동시에 실험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실과 이론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고, 연구 결과는 단순히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보다 정확한 패러다임을 산출했으며 연구를 시작했던 원래의 형태가 지닌 모호함을 제거함으로써 얻어지게 되었다.

문제들에 관한 이들 세 가지 유형―의미 있는 사실의 결정, 사실의 이론에의 일치 그리고 이론의 명료화―은 실험적 및 이론적 과학의 양쪽에서 정상과학 문헌을 거의 전부 차지한다.

4. 수수께끼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만일 ‘규칙(rule)’이란 용어를 상당히 폭넓게 사용한다면 주어진 연구 전통 내에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들은 이와 같은 부류의 수수께끼 특성과 매우 유사하다. 빛의 파장을 측정하는 기계를 고안하는 사람은 어느 장치가 단지 특정한 스펙트럼 선에 특정한 값을 매겨 준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단순히 측정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해야 할 일은 광학 이론의 정립된 개념에 의하여 그의 장치를 분석함으로써 그의 기기가 알려 준 숫자가 바로 이론에서의 파장과 같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론에서 미결된 허점이 있다거나 또는 그의 장치에서의 분석되지 않은 요소로 인해 그 증명을 완결시키지 못하는 경우, 그의 분야의 동료들은 그가 아무것도 측정하지 않았다고 결론짓기가 알맞다.

그런 결과들이 어느 것의 척도가 되기까지에는, 그것들은 우선 운동하고 있는 물질이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예측했던 이론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연관성이 지적된 이후에도 실험 결과가 이론과 양론의 여지없이 분명한 상관관계로 연관될 수 있도록 장치를 다시 꾸며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되기 전까지는 어떤 문제도 해결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학의 전문 분야의 수행자들은 모두 어느 주어진 시대에서 일반화 될 수 있는 규칙들을 지닌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규칙들이 그 자체만으로 그 분야 전문가들의 활동에서 공유되는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결정적인 성격의 활동이지만, 그러나 전적으로 규칙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 규칙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그러나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도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다.

5. 패러다임의 우선성

많은 과학자들은 당시의 구체적 연구 주제에 내재하는 특정한 개별적 가설에 대해서는 쉽게 그리고 잘 논의하지만, 그들 분야에서 확립된 기반이나 타당성 있는 문제들과 방법들을 특성화함에 있어서는 비전문가에 비해 별로 나을 게 없다. 과학자들이 그런 추상적 개념화를 터득하는 경우, 그들은 주로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은 게임의 가설적인 규칙들에 의지하지 않고도 이해될 수 있다.

과학 교육의 이러한 결과들은 패러다임이 개념화된 규칙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 모형이 됨으로써 연구의 지표가 된다고 보는 논의를 성립시킨다. 관련되는 과학자 사회가 성취된 특정 문제-풀이를 의문 없이 수용하는 한에서만 정상과학은 규칙 없이도 진행될 수 있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나 모형이 위태롭게 느껴지는 경우에는 규칙들은 중요해지게 될 것이며, 규칙들에 대한 무관심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특히 패러다임-이전(pre-paradigm) 시대는 으레 합법적인 방법, 문제 및 문제-풀이의 표준에 대한 빈번하고 심각한 논쟁으로 특정 지워진다. 더구나 그와 같은 논쟁들은 어느 패러다임이 출현한다고 존재하지는 않지만 과학혁명, 즉 패러다임이 공격을 받게 되고 다음 단계에서 바뀌게 되는 시기의 바로 직전과 그 과정에서는 논쟁이 규칙적으로 되풀이되곤 한다. 뉴턴 역학으로부터 양자역학으로의 이행은, 더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물리학의 성격과 규범에 관해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그들 분야의 기본적 문제들이 해결되었는지의 여부에 대해 합의되지 않을 때에는, 규칙을 찾아낸다는 일이 평상시에는 지니지 않던 기능을 맡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합리화 같은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채 패러다임은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

모든 분야를 총체적으로 개관하면, 오히려 과학은 그 다양한 부분 가운데서 거의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상당히 줏대 없는 구조를 가진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흔히 보이는 관찰과 모순 될 것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규칙 대신에 패러다임을 대치하는 것은 과학의 분야와 세부전공의 다양성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명시적인 규칙들은, 그것들이 존재할 때에는, 매우 광범위한 과학자 집단에 공통적인 것이 상례이지만 패러다임은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예컨대 천문학과 식물 분류학처럼 크게 동떨어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책들에서 설명된 다른 업적에 접하며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똑같거나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에서 동일한 책들과 업적들을 많이 공부하는 것으로 출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전공의 세분화 과정에서 상당히 차이나는 패러다임을 얻을 수 있다.

모든 물리학자들로 구성된 방대하고 다양한 과학자 사회를 생각해 보자. 요즈음은 그런 그룹의 구성원은 누구나, 예컨대 양자 역학의 법칙들을 배우며, 그들 대부분은 연구라든지 강의의 어느 시기에 이르러 이들 규칙을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이들 법칙들의 동일한 적용을 배우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들이 양자 역학의 실제 변화에 의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세분화에 이르는 길에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양자 역학의 기본 원리들에만 접하게 된다. 다른 학자들은 이들 원리들의 화학 분야에의 패러다임 적용에 대해 상세히 연구하게 되며, 또 다른 학자들은 고체 물리학에의 적용에 관해 연구하는 등등 다양해진다. 양자 역학이 과학자들의 각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의 문제는 그가 무슨 과목을 택했는가, 무슨 책들을 읽었는가, 어떤 문헌을 공부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6. 이상 현상과 과학적 발견의 출현

정상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겨냥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새로움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그리고 뜻밖의 현상들이 과학 연구에 의해 끊임없이 베일이 벗겨졌다.

기체 과학의 경우에서, 정상과학의 진보는 매우 철저하게 비약적 발전의 돌파구를 열어 주었다. 비교적 순수하게 산소 기체의 시료를 처음으로 얻었다는 사람은 스웨덴의 약제사인 셀레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업적을 무시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다른 데서 산소의 발견이 거듭 선언되기까지 그것은 공표 되지 않았던 까닭에 결국 여기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두는 역사적 양상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기로 보아 산소 발견을 주장한 두 번째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이며 신학자인 프리스틀리로서, 그는 여러 가지 고체 물질로부터 방출되는 ‘공기’에 대해 정규적인 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하던 중, 수은의 붉은 산화물을 가열할 때 방출되는 기체를 모으게 되었다. 1774년에 그는 이렇게 생성된 기체를 아산화질소라고 확인하였다가, 좀더 시험한 결과 1775년에는 플로지스톤이 그 통상적인 양보다 좀 덜 들어 있는 보통 공기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라부아지에는 1774년의 프리스틀리의 실험 후산소까지 이끌어 간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1775년 초, 라부아지에는 수은의 붉은 산화물을 가열해서 얻은 기체는 ’바뀐 것이 없는 공기 그 자체로서 보다 순수하며 호흡하기에 더욱 좋은‘ 것이라 하였다. 또한, 라부아지에는 그 기체는 별개의 화학 종으로서 대기의 두 가지 주성분 가운데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으며, 이는 프리스틀리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었던 견해였다.

발견의 이러한 양상은 과학자들의 인식 영역에 들어왔던 새로운 현상에 대하여 한결같이 묻게 되는 질문을 제기한다. 산소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만약 둘 중 하나라면 프리스틀리인가 라부지에인가? 어느 경우이거나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는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이런 형태의 질문은 마찬가지로 제기될 것이다. 우선권(priority)과 발견 시기에 대한 판정으로서, 어떤 대답이 나오더라도 우리에게 별 문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해답을 얻어내려는 시도는, 찾고 있는 대답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발견의 본질을 밝혀줄 것이다. 발견이란 거기에 대해 적절하게 질문이 제기되는 그런 유형의 과정이 아니다. 그런 물음을 묻게 된다는 사실은 발견에 매우 근본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과학의 이미지에서 좀 빗나간 증상이 된다.

산소의 실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후에 특이한 종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기체를 먼저 분리해 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프리스틀리가 얻은 시료는 순수하지가 못했다. 만일 불순한 산소를 얻은 것이 그것을 발견해 낸 것이라면, 대기 중의 공기를 병에 담았던 사람은 모두 산소를 발견했다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프리스틀리가 발견자라면 그 발견은 언제 이루어진 것인가? 1774년에 그는 자기가 얻은 기체를 그가 이미 알고 있었던 종인 아산화질소라고 생각했다. 1775년에는 그 기체를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직 산소는 아니었고 플로지스톤 화학자에게는 심지어 전혀 예기치 못한 종류의 기체였다. 라부아지에의 주장은 보다 강점을 지니기는 하지만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우리가 프리스틀리의 공로를 거부한다면, 마찬가지로 라부아지에가 그 기체를 ‘온전한 공기 자체(air itself entire)’라고 보았던 1775년의 연구를 들어 그에게 영예를 돌릴 수도 없다. 아마도 우리는 라부아지에가 단순히 그 기체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 1776년과 1777년의 연구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판정조차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데, 왜냐하면 1777년 그리고 그의 생애의 마지막까지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원자력 ’산성의 원리(principle of acidity)’라고 주장했고 산소 기체는 그 ‘원리’가 칼로릭(caloric), 즉 열의 물질과 결합할 때에만 생성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777년에도 산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성의 원리라는 개념은 화학에서 1810년이 지나도록 소멸되지 않았으며, 칼로릭 개념은 186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산소는 이들 연대들의 어느 시기보다 일찍이 표준적 화학 물질로 자리잡았다.

산소의 발견과 같은 사건들을 분석하는 데에는 분명히 새로운 용어와 개념이 요구된다. 의심할 여지없이 옳기는 하지만, ‘산소가 발견되었다’라는 글귀는, 본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그리고 또한 미심쩍은) 관념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도 일회적인 단순행위라고 암시함으로써 오해를 유발시킨다. 이것이 바로, 보거나 만지는 것처럼 발견하는 것도 똑 떨어지게 한 사람 손으로 어느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쉽사리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발견을 한순간의 일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 사람에 의한 것으로 발견을 돌리는 것도 흔히 마찬가지이다. 셀레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1774년 이전에는 산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해도 무방하며, 아마도 1777년쯤 또는 그 바로 직후에 산소가 발견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한계 또는 그 비슷한 여러 한계 내에서의 발견의 시기를 잡으려는 시도는 어쩔 수 없이 임의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까닭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복합적 사건으로서 무엇인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둘 다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일 산소가 우리에게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였다면, 언제 발견했는지는 모르는 채로라도 주저 없이 프리스틀리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

러나 관찰과 개념화, 사실과 이론에의 동화, 이 두 가지가 발견 과정에 밀접하게 얽혀 있다면 발견은 하나의 진행 과정이며 시간이 소요되어야만 한다. 관련되는 개념적 범주가 모두 미리 갖추어진 경우, 즉 현상이 새로운 유형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그것을 발견하는 일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이 함께 즉각적으로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열역학은 19세기의 두 기존 물리과학 이론의 충돌로부터 탄생하게 되었고, 양자 역학은 흑체 복사, 비열 그리고 광전 효과를 둘러싼 갖가지 난제들로부터 탄생되었다. 더욱이 뉴턴 이론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서 이상 현상에 대한 인식이 매우 오래 지속되었고 아주 깊숙이 침투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분야들은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태라 묘사하는 것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대규모의 패러다임 파괴와 정상과학의 문제 및 기술에서의 주요 변동을 요구하는 까닭에, 새로운 이론들의 출현은 대체로 전문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치게 된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듯이, 그런 불안정함은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좀처럼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데서 발생된다. 그리고 기존 규칙의 실패는 새로운 규칙에의 탐사를 향한 전조가 된다.

천문학적 전통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으며, 인쇄술이 없는 상황에서 천문학자들 사이의 견해 교류가 한정되었었기 때문에 이들 어려움은 매우 느리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드디어는 깨닫게 되었다.

16세기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공동 연구자인 노바라는 프톨레마이오스 이론이 전개되었던 바와 같은 엉성하고 부정확한 체계가 자연에 대한 진리가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코페르키쿠스 자신은 「천구(天球)들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의 서문에서 그가 계승한 천문학 전통은 결국 괴물을 창조했을 따름이라고 적었다. 16세기 초엽에는 유럽의 최고 천문학자들 중 차츰 더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의 패러다임을 그 고유의 전통적 문제에 적용함에 있어 제구실을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의식은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 식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기 시작하는 데 요구되었던 선행 조건이었다. 그의 유명한 서문은 아직까지도 위기 상황에 관한 고전적 서술의 하나가 되고 있다.

위기들의 의미는 도구를 바꾸어야 할 계제에 도달했음을 가리키는 지표가 된다.

8. 위기에 대한 반응

하나의 이상 현상이 정상과학의 또 다른 수수께끼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되는 때, 위기로 그리고 비상과학으로의 전이는 시작된 것이다. 이상 현상은 그 자체로서 이제 전문분야에 의해 점점 일반적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그 분야의 가장 탁월한 많은 학자들이 그것에 차츰 더 많은 주의를 쏟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만일 그것이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경우, 학자들 다수가 그 풀이를 그들 연구 분야의 제1 주제로 삼게 된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그 분야는 더 이상 이전의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다른 양상으로 보이는 것은 더러는 과학적 탐색에서의 새로운 정착 점으로부터 초래되는 결과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변천의 원천은 그 문제에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가능케 되었던 다수의 부분적 풀이가 지닌 다양한 성격이다. 끈질기게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초기의 공격은 매우 긴밀하게 패러다임 규칙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여전히 잘 풀리지 않음에 따라, 그것에 대한 공격은 점차로 사소한 또는 그리 사소하지 않은 패러다임의 명료화를 포함하게 될 거이며, 그런 것들은 제각기 서로 달라서, 어떤 것은 일부 성공적일 것이나, 그 그룹에 의해서 패러다임으로 수용될 만큼 만족스런 것은 없을 것이다.

정상과학의 규칙들은 점증적으로 모호해진다. 패러다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실제로 연구에 종사하는 이들 가운데 그것에 관하여 전적으로 합의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미 풀린 문제들의 표준 풀이조차도 의문의 대상이 되고 만다.

심각한 경우, 그런 상황은 관련되는 과학자들에 의해서 인식되는 때도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 시대의 천문학자들이 “천문학상의 연구에서 일관성이 도무지 없어서 공전 주기의 일정한 길이를 설명조차 할 수 없거나 또는 관찰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들은 마치 한 화가가 다양한 모델로부터 멋대로 손, 발, 머리 등의 부위를 합쳐서 회상을 구성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각 부분으로서는 뛰어나게 잘 그렸으나 단일한 신체로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 부위가 서로 조화를 전혀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결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물에 가깝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기에 처한 패러다임으로부터 정상과학의 새로운 전통이 태동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천이는 옛 패러다임의 명료화나 확장에 의해서 성취되는 과정, 즉 축적의 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한 천이는 오히려 새로운 기반으로부터 그 분야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서, 그 분야 패러다임의 많은 방법과 응용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일반화조차도 변화시키게 되는 재건 사업이다. 그 이행 시기에는 옛 패러다임과 새 패러다임에 의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이 크게 중복될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결코 완전히 중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의 양식에서도 역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런 천이가 완결되는 때, 그 전문 분야는 그 영역에 대한 견해, 방법, 목적을 바꾸게 될 것이다. 통찰력 깊은 어느 과학사학자는 최근 패러다임 변화에 의한 과학의 재편성에서의 고전적 사례를 고찰하면서, 그런 천이는 “지팡이의 다른 쪽 끝을 집어 올리는 것”으로서, 그것은 “똑같은 자료 더미를 이전처럼 다루되 그것들에게 종전과는 다른 테두리를 부여함으로써 서로 서로 새로운 관련 체계 속에 놓이도록 함”이 포함되는 과정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과학혁명이란, 보다 옛 패러다임이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서로 양립되지 않는 새 것에 의해 대치되는 비축적적인 발전에서의 에피소드들로 간주되었다.

원칙적으로 새로운 이론이 전개되는 데 있어서는 오로지 세 가지 종류의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첫 번째 것은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서 이미 잘 설명된 현상들로 이루어지며, 이것들이 이론 구축에 대한 동기라든가 새 출발의 시점을 제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두 번째 부류의 현상은 기존 패러다임에 의해 그 본질은 지시되지만 상세한 내용은 이론의 보다 진전된 명료화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과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연구에 집중하는 현상들이지만, 그런 연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창안을 겨냥하기보다는 기존 패러다임의 명료화에 목표를 둔다. 명료화를 위한 이들 시도가 실패하는 경우에 한해서 과학자들은 세 번째 형태의 현상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것들은 인식된 이상 현상들로서 그 특성적 성격은 기존 패러다임에 동화되기를 강경히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 세 번째 형태의 현상만이 새로운 이론들의 작인이 된다.

과학 이론에 대한 이런 제한된 관념을 보여 주는 경우로서 가장 잘 알려지고 분명한 것은 현대의 아인슈타인 역학과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로부터 파생된 보다 오랜 역학의 관계식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이 에세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 두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체계에 대한 관계에서 설명된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 서로 모순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만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 이것은 소수의 견해로 머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반대 의견에 대해 검토해야만 한다.

이들 이견(異見)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수 있다. 상대론 적 역학은 뉴턴 역학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해 낼 수 없다. 뉴턴의 역학은 아직도 대부분의 공학자들에 의해서 매우 성공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다수의 물리학자들에 의해서도 선별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보다 옛 이론의 이러한 이용의 타당성은 여타의 응용에서 옛 이론을 대치한 바로 그 이론으로부터 증명될 수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소수의 제한 조건이 충족된 모든 적용에서 뉴턴 방정식의 예측들은 우리의 측정 기기만큼 훌륭한 구실을 할 것임을 증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예컨대 만약 뉴턴 이론이 그럴 듯한 근사적 해를 제공하게 되려면, 고려되는 물체들의 상대 속도는 빛의 속도에 비해 작아야만 한다. 이 조건과 그 밖의 몇 가지 조건이 만족된다면,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따라서 뉴턴 이론은 아인슈타인 이론의 특수 경우가 된다.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사람이 무엇을 보게 되는가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에도 달려 있지만, 이전의 시각-개념상의 경험이 그에게 무엇을 보도록 가르쳤는가 에도 달려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릴레오가 흔들리는 돌을 보았을 때, 거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속박 상태의 낙하 현상을 보았고 갈릴레오는 진자를 보았다고 말함으로써 야기되는 곤란한 점들에 대해서 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절의 서두에서는 바로 그런 어려움이 보다 더 근본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다. 세계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변화하지는 않지만, 그 이후의 과학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에서 연구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우리는 적어도 이것들과 유사한 진술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하리라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과학혁명 동안에 일어나는 일은, 개별적인 안정된 데이터의 재해석으로 완전히 환원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데이터들이 양론의 여지없이 안정되지는 못한 상태다. 진자는 떨어지는 돌이 아니며 산소는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제 곧 보게 되겠지만, 과학자들이 이들 다양한 대상으로부터 수집한 데이터는 그 자체가 서로 다른 것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느 과학자 개인 또는 과학자 사회가, 속박된 낙하 운동으로부터 진자로, 또는 플로지스톤이 빠진 공기로부터 산소로의 이행을 성취한 과정은 해석과 흡사한 과정이 아니다. 해석할 수 있는 고정된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과학자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한 과학자는 해석자이기 보다는 차라리 거꾸로 보이는 렌즈를 낀 사람과 비슷하다. 이전과 똑같은 무수한 대상들을 마주 대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변함 없는 대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학자는 대상들의 세부적인 것의 여기저기에서 속속들이 그 대상들이 변형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패러다임들은 도대체 정상과학에 의해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정상과학은 궁극적으로 이상 현상들의 인지 그리고 위기로 인도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심사숙고와 해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게슈탈트 전환과 같은 비교적 돌발적이고 비 구조적인 사건에 의해 끝을 맺게 된다. 그러면 과학자들은 “눈에서 비늘이 걷혔다(잘못을 깨달았다)”고 말하거나, 또는 전에는 모호하던 수수께끼에 ‘넘쳐드는’ 그런 ’번득이는 섬광’에 관해 자주 말하게 되며, 그리하여 수수께끼의 구성 요소들을 최초로 해결 가능한 새로운 방식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든다.

11. 혁명의 비가시성

교과서는 정상과학의 영속을 위한 교육적 수단으로서 언어, 문제 구조, 또는 정상과학의 기준 등이 바뀔 때마다 그에 따라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다시 쓰여져야 한다. 요컨대 교과서들은 매 과학혁명을 거칠 때마다 바뀌는 것이며, 이렇게 새롭게 쓰여진 교과서들은 필연적으로 그것들을 생산했던 혁명의 역할뿐만 아니라 혁명의 존재 자체까지도 가려 버리고 만다. 그 자신의 생애에서 직접 과학혁명을 겪었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나 교과서 문헌을 읽는 일반인 어느 쪽이든 간에 그 역사적 감각은 그 분야의 가장 최근에 있었던 혁명의 결과까지만 한정된다.

과학 교과서들은, 명백하게 동시에 고도로 기능적이라는 이유로 해서, 교과서의 패러다임 문제들의 서술과 해결에 기여했다고 쉽사리 평가될 수 있는 과거 과학자들의 연구 중 그런 부분만을 인용한다. 더러는 선택에 의해, 더러는 왜곡에 의해 이전시대의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과 방법의 가장 최근의 혁명에 의해 과학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었던 바로 그 일련의 고정된 규범들에 부합되도록, 고정된 문제들의 한 벌에 대해 연구를 수행해 왔던 것으로 암묵적으로 표현된다. 교과서와 그것이 함축하는 역사적 전통은 매 과학혁명 이후에 다시 쓰여져야 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시 쓰여짐에 따라, 과학이 다시금 대체로 매우 축적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도 이상할 바가 없다.

과학 교재에 실린 아직 눈에 보이는 자료의 배열은 혁명의 기능을 부정하게 될 과정을 묵시적으로 시사한다. 왜냐하면 교과서란 학생들로 하여금 당대의 과학자 사회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빨리 익히는 것을 겨냥하므로, 교과서는 현행 정상과학의 다양한 실험, 개념, 법칙, 이론들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한 지속적으로 다루게 된다.

12. 혁명의 해결

과학자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인 까닭에, 여러 가지 논거를 거쳐가면서 결국 많은 과학자를 설득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설득할 수 있거나 설득시켜야 하는 단일한 논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일어나는 일은 단일 그룹의 개종이라기보다는 전문 분야의 신념의 분포에서 점차로 전이가 증대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새로운 후보는 당초에는 지지자도 거의 없고 지지자의 동기도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이 유능한 경우에는 패러다임을 개량하고,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것에 의해 인도되는 과학자 사회가 어떤 것이 되는가를 보여 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행됨에 따라, 만일 패러다임이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운명이라면, 설득력 있는 논증들의 수효와 강도가 증강될 것이다. 그에 따라 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개종하게 될 것이고, 새 패러다임의 탐사 작업이 계속될 것이다. 그 패러다임에 기초한 실험, 기기, 논문 그리고 서적 등의 수효가 점차 불어날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이 효과적임에 납득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과학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서, 결국 소수의 나이 많은 저항자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조차도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사학자는 역사에서 항상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틴 비합리적이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의 저항을 가리켜 비논리적 또는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껏해야 과학사학자는 전문 분야가 온통 개종된 후에도 계속 버티는 사람은 사실상 과학자이기를 거부한 것이라 말하고 싶을 것이다.

13. 혁명을 통한 진보

다윈이 1859년에 자연 선택에 의한 그의 진화 이론을 처음 출판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종 변화의 개념도 아니었고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으리라는 가능성도 아니었다. 인간의 진화를 비롯한 진화를 가리키는 증거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되어 왔으며, 진화의 개념은 이전에도 제안되었고 널리 퍼져 있었다. 진화의 개념 자체는 특히 종교 집단들로부터의 저항에 부닥쳤지만, 그것은 다윈주의자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난관은 결코 아니었다. 그 어려움은 다윈 자신의 발상과 매우 가까운 견해로부터 비롯하는 것이었다. 다윈 이전 시대의 유명한 진화 이론들은 모두 진화를 목표-지향적 과정(goal-directed process)으로 간주하였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당시의 식물, 동물에 대한 ‘개념’은 최초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어쩌면 신의 정신 속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러한 개념이나 계획은 전체적 진화 과정에 방향을 설정했고 길잡이가 되었다. 진화적 발전에서의 각각의 새로운 단계는 출발에서부터 존재했던 계획의 보다 완전한 실제화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그런 목적론적 성격의 진화론의 붕괴는 다윈의 제안에서 가장 의미 깊고 가장 수용하기 곤란한 문제였다. 「종(種)의 기원」은 신이나 자연 그 어느 것에 의해 설정된 목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주어진 환경에서 그리고 자료가 주어진 실제 유기체들에서 작용하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이 보다 정교하고 복잡하며 훨씬 더 분화된 유기체들의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출현의 원인으로 설정되었다.

생존을 위한 유기체들 간의 단순한 경쟁의 결과인 자연선택이 고등 동식물과 더불어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믿음을 다윈 이론에서 가장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측면이었다. 특정한 목표가 없는 터에 ‘진화(evolution)’, ‘발전(development)’, ‘진보(progress)’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용어들은 갑자기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증거에 의한 과학의 성장과 양립할 수 있는 자연에 관한 그 어떤 개념도 여기서 전개되었던 과학의 진화적 관점과 양립될 수 있다. 이 견해는 또한 과학 활동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도 양립 가능한 것인 만큼 아직도 미결인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것을 적용할 만한 강력한 논거가 존재한다.

자료정리:김보현 [email protected]

출처: SPR 경영연구소

성균관대학교 오거서

본인은 건축학과 학생으로, 대학교에 오고 나서 과학공부를 깊이 할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다른 사람들과 비견될 만한 과학적 소양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을 들어본 바로, 지난 1년간의 공백과, 다른 학생들의 과학적 수준은, 내가 만만하게 생각했던 ‘어느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혁명의 구조’는 각각의 용어나 문체, 내용 등에서 그간 읽어왔던 책들과는 달리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책이었다. 이 글은 전체적으로 ‘과학혁명의 구조’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느낀 점, 개인적인 생각과 사례 등을 덧붙여가며 써보고자 한다. 요약 정리는 책의 순서대로 글을 쓰되,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절과 부분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쿤이 어떻게 이런 책을 쓰게 되었는지 글의 배경과 그의 생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에 재학했으나, 당시 세계2차 대전으로 인해 학업의 진행이 순탄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시간이 지난 후 고체의 성질에 대한 연구로 이론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 당시에 물리학의 구체적인 이론보다는 ‘왜 물리학 이론이 세계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는지’와 같은 과학의 궁극적인 질문들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특히 그 당시 ‘수용된 견해’라 불리던 주도적 과학관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나 과학이 역사적으로 전개해 오는 과학연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엄밀한 연구 결과와 매우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박사학위 취득 후 쿤은 하버드 대학교의 교양교육 및 과학사를 위한 조교수로 임용되었고, 이 시기에 자신의 생각을 코페르니쿠스 연구를 통해서 더욱 정교하게 하였다. 후에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인 모습과 보수적인 모습에 대한 분석을 담은 그의 저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발표하며 과학사학자로 내닫게 되고, 를 출간하면서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게 되었다고 한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이라는 용어를 우선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설명된다. 그리고 그가 설명하는 과학적 발전은, 이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의 ‘대체’로 이루어진다. 쿤이 설명하는 패러다임이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이다. 그는 과학의 발전을 다음과 같이 보았다. 우선 하나의 패러다임이 생기게 되면 이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갖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계속 연구, 탐구 활동을 하는데, 이를 정상과학이라고 한다. 이어 정상과학을 통해 일정한 성과가 누적되다 보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차츰 부정되고, 경쟁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난다. 그러다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한 시대를 지배하던 패러다임은 완전히 사라지고, 경쟁관계에 있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즉, 이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고, 항상 ‘생성-발전-쇠퇴-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패러다임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정확히 한 문장으로 정의되지 않아 주위에서 많은 비판을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1판 출간 당시 철학자 마가렛 마스터맨은 이 책에서 ‘패러다임’이 최소한 21개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어있다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래서 쿤은 ‘후서’에서 ‘패러다임’이 넓은 의미에선 기호적 일반화(예를 들어, F=ma), 모형(원자 모형 등), 가치, 범례로 구성된 전문분야 행렬을 뜻하며, 좁은 의미에선 오직 범례만을 뜻한다고 말하였다. 다시 내용으로 돌아가서, 결국 패러다임이 출현하게 되고, 패러다임이 확립되면서 전반적인 이론이 받아들여지는 정상과학이 되고,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 현상이 많이 발견되면서 위기가 조성된 후,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이제 책의 내용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정상과학의 위기가 오기 전, 위기 상황, 위기 이후로 나눠 서술하겠다. 글의 1장인 ‘정상과학에로의 길’에서는 정상과학과 패러다임의 정의와 패러다임 수용에 따른 변화 등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다시 한번 책의 내용(1장 속)을 빌려 정상과학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자면, 정상과학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단단하게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한다. 그리고 패러다임이 없는 연구에서 패러다임에 근거한 연구로 변모하면서, 그 연구 그룹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째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 분야의 새롭고 보다 확고한 정의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둘째 변화는,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보고서가 보다 간단하고 전문적인 형태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변화는, 패러다임이 있는 분야는 그 연구 결과가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장벽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정상과학의 성격’에서는 정상과학을 사실적 탐구와 이론적 탐구를 나누어서 세 가지 문제 유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우선 사실적 탐구의 세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첫째는 패러다임에 의해 사물의 본성을 드러내는 데 특히 중요한 것으로 제시된 사실들의 부류가 된다. 두 번째 부류는 통상적이지만 첫 번째 것보다 작은 규모로서, 흔히 자체로서의 흥미는 대단치 않지만 패러다임 이론으로부터의 예측들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그런 사실들을 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패러다임 이론을 명료화하기 위해서 수행된 경험적인 연구로 이루어 진다고 하였다. 비슷하게, 이론적 탐구의 세 가지 유형은, 단순히 기존 이론을 이용해 고유의 가치를 지닌 사실적 정보를 예측하는 경우, 이론과 사실의 일치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이론을 발전시키는 일, 패러다임 명료화를 위한 이론적 작업이라 설명한다. 이 분류에 대해선 이 책을 읽기 전에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나, 매우 동의하는 바이다. 특히 사실적 탐구와 이론적 탐구를 따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방법은 나에게 있어 어떤 논제나 문제를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정리할 때, 중요한 방법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패러다임의 우선성’에서는 위기가 오려고 할 때 패러다임이 우선한다는 내용이다. 쿤은 패러다임이 이상 현상 등에서 보여지는 문제점을 통해 바로 다른 패러다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기존의 패러다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을 근거를 들어 설명하였다. 그 첫 번째 근거는, 특정한 정상과학 전통을 주도해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극히 힘들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과학 교육에서 그 문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으로 그 자체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당시 기준이 되는 패러다임에 알맞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배우기 때문에 패러다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문제를 잘 풀어내는 방법에 특화된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패러다임이 우선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이론은 자연 현상의 구체적 영역에 대한 적용과 함께 발표되고, 그 이론이 수용되고 나면, 교과서에 이론과 함께 이론이 적용되는 사례가 함께 실린다. 또한, 과정이 이론 자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연습문제를 풀거나 실험 문제를 직접 푸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칠 수 있다. 세 번째 근거는 실제로 정상과학이 진행되는 동안 과학자들은 규칙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며, 마지막 근거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 큰 범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범위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기존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쿤이 설명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아닌 지식의 축적으로 과학이 발전한다는 이론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위기에서 기존의 과학이 주를 이룬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우고,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현상을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연히 기존에 알던 지식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그 지식에 이상현상을 맞추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것이다. 굳이 과학이나 역사 분야가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우리가 더 잘 알고 잘 믿는 사람을 믿지 새로운 사람을 보고 바로 기존에 우리가 잘 아는 사람보다 믿기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3장에서는 위기와 과학이론이 바뀌어지는 과정에 대한 서술이 되어 있다.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패러다임 파괴와 정상과학의 문제 및 해법에 대한 중요한 변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이론의 출현은 대체로 그 전문 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치게 된다. 정상과학의 의문점들이 확실하게 풀려지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패러다임이 불안정하게 되는 것이다. 위기를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하나의 변칙현상이 정상과학의 또 다른 퍼즐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될 때에, 위기로 그리고 비정상과학으로의 이행이 시작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과학자들은 신념을 잃기도 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며 이상현상들을 설명하려고 애쓰기도 한다(예-파울리가 하이젠베르크의 논문이 양자론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기 전 친구에게 쓴 편지). 결국 위기는 기존의 정상과학에 의해 해결되거나 혹은 해결되지 못한 상태로 남게 되거나,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되는 것으로 위기는 종결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이후의 명료화를 허용하는 충분한 암시는, 때로는 한밤중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위기에 깊숙이 잠겨버린 사람의 마음속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쿤이 각각의 상황에서 많은 예들을 열거해 놓았는데, 너무 예가 많아 책을 참조하는 것으로 하고 생략하도록 하겠다). 발표할 때에도 말했지만, 나는 과학이 정말 끝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어릴 적부터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 강의를 듣는 자리에서 카이스트 총장님께서 수학은 앞으로 무한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명백한 근거를 들지 못하셨기 때문에 그에 동의 하지 않는다. 수학이든 과학이든 언젠가는 유한한 학문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오래된 견해이다. 쿤의 생각이 가장 맞아떨어질 수 있는 과목은 경제학이라고 생각된다. 본인이 거시경제학을 수강하고, 수업을 들을수록 그의 생각이 맞다는 확신이 들고 있다. 거시경제학은 전세계적 경제를 미시의 관점이 아닌 전체적인 관점으로 보는 학문인데, 비교적 나이가 매우 어린 학문이며, 경제 불황 등에 대한 표본이 아직 크지도 않다. 현재까지의 발전 경로를 보면, 우선 한 모델이 존재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경제불황이 닥쳐서 후에 그 모델을 없애고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제시하게 된다. 이렇게 바뀌어진 모델이 경제불황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거나 경제의 흐름이 그와 같이 맞아떨어진다면 좀 더 신빙성을 얻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모델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경제학은 그가 말하는 과학의 발전처럼 진행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확신이 들고 있다.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은 앞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쿤이 하고 싶은 말을 집중적으로 적어놓은 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에서는 ‘과학혁명’을 다시 정의해 놓았다. 과학혁명이란 보다 옛 패러다임이 양립되지 않는 새 것에 의해서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누적적이지 않은 발전의 에피소드이다. 여기서 이 과학혁명과 정치혁명에 대한 비교를 통해 보다 알기 쉽게 하였다. 정치혁명은 기존 제도가 주변환경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더 이상 적절히 해결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며 시작되고, 과학혁명은 과학적 탐구를 주도했던 기존 패러다임이 자연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탐사에서 이제 더 이상은 적절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의식이 증대되면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두 혁명의 유사성 세 가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우선 두 혁명 모두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기능적 결함을 깨닫는 것이 혁명의 선행조건이며, 따라서 혁명은 위기에 의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또, 혁명은 기존 제도가 금지하는 방식으로 개혁을 추구하며, 패러다임이 패러다임 선택에 관한 논쟁에 끼어들게 되면, 패러다임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순환성을 띠게 된다. 즉 순환논증을 사용한다는 것으로, (수업시간에 대답해주신 분이 잘 설명해 주셨듯이)국어에서 ‘순환논리의 오류’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새로운 이론은 그것에 선행했던 다른 이론들과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데, 이러한 경우는 예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현상을 다루거나, 에너지 보존법칙처럼 낮은 차원의 이론들의 전체 집합을 별다른 변형 없이 한데 연결시킴으로써 이전에 알려졌던 것들보다 단순히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이론일 수 있다. 이 장에서의 핵심은 ‘과학혁명으로부터 출현하는 정상과학의 전통은 앞서 간 것과는 양립 불가능할(incompatible) 뿐만 아니라, 종종 실제로 공약 불가능한(incommensurable) 것이다’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공약 불가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패러다임끼리는 공통된 토대가 없으므로 과학적 실험, 관측, 논리를 통해 이론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서로 다른 두 패러다임이 공존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고, 기존 패러다임의 대체로 새로운 유일한 패러다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인은 이것이 이 장뿐만 아니라 이 책 전체의 핵심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의 주된 내용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과학자들의 ‘세계관’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마치 ‘시각적 게슈탈트’에서의 전환과 같은 현상을 느끼게 한다는 것인데, 즉, 이것은 연구 활동의 ‘세계’를 아예 다른 차원에서 보도록 만들어 버리고, 그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세계와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쿤은 ‘게슈탈트 시각적 전환’과 ‘과학적 관찰’을 대응시켜 설명했지만, 게슈탈트 시각의 전환의 경우는 ‘외적인 기준’이 존재했다면, 과학적 관찰의 경우는 어떠한 외부의 평가 기준이 없으며, 오직 과학자 자신의 눈과 기기를 통해 본 것에만 의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간에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패러다임의 변화로써, 과학자들의 세계관에 대한 변화의 깨달음은 해석이 아닌 직관으로, 게슈탈트 전환과 같은 비교적 돌발적이고 비구조적인 사건에 의한다는 것이다. 이후로 직관은 여러 경험 부분들을 모아서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새로운 경험의 묶음으로 변형시켜 버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기존의 패러다임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에 차츰차츰 연결되고 누적되어 간다. 상을 거꾸로 만드는 렌즈를 넣은 안경을 쓴 피실험자의 사례, 변칙적 카드 실험, 윌리엄 허셜의 천왕성 발견, 전기학과 화학, 역학에서의 사례 등을 통해 주장의 신빙성을 높였다. 이제 ‘혁명의 비가시성’을 보자. 지금까지 혁명을 드러내는 실례를 많이 제시했지만, 이러한 예들은 혁명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과학적 지식을 더해주는 부가물로써 간주되어왔다. 그래서 혁명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과학자나 일반인은 통상 권위 있는 원천으로부터 과학 활동의 이미지를 얻기 때문이다. 권위의 원천은 교과서와 대중 과학 서적, 철학적 저작 이렇게 3가지로 나뉜다. 이 3가지 모두 각각 그 시대에 주류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하여 논의가 진행된다. 즉, 당대의 일반적 주류인 정상과학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그 정상과학이 탄생하기까지의 전후관계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교과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교과서는 정상과학의 영속적인 교육적 수단이기 때문에 언어나 문제의 구조 또는 기준 등이 바뀌면 전체적 혹은 부분적으로 다시 쓰여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새롭게 쓰여진 교과서는 필연적으로 과학 혁명의 존재 자체를 담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과서는 자신의 분야의 역사에 대한 과학자의 감각을 절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음 단계로 그것들이 제거해버렸던 것을 대체하기 위해 전진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가져와 역사를 다시 쓰려는 경향이 강한데, 과학 연구의 결과가 과거의 역사에 대한 의존성이 낮기 때문이다. 즉, 내가 새로 개발하면 그 영광과 명예를 오로지 나에게 돌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교과서가 자주 바뀌게 된 이유로 작용했다. 과학혁명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실제 과학혁명으로 불릴만한 이론을 개발한 후배 과학자는 이 공로를 선배 과학자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도 그렇지만, 자신이 한 연구에 대한 결과를 좀 더 보장해 줄 수 있는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견해로,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에서의 왓슨보다 프랭클린이 DNA의 구조가 밝혀짐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연구의 방식이나 결과에 대한 저작권의 보호가 더 보장되는 것이 윤리적이고 정당한 일이기 때문이다(물론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아 정확한 배후는 모르지만 고등학교 선생님들이나 여느 자료들에 따라 왓슨과 크릭이 프랭클린이 발견한 것을 이용하여 논문을 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책의 중요내용을 짚어보았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20세기 중반 과학적 방법론 논쟁의 역사 속에서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진 칼 포퍼의 반증주의에 관한 막대한 위협을 가한 것으로 평가되며 현재까지도 과학적 실재론을 반대하는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문헌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이러한 과학혁명의 구조의 입장은 곧 논리 경험주의 등 논리학적인 형식에 방점을 둔 전통적인 과학철학적 입장 혹은 과학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많은 반발을 낳았다. 예컨대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과학혁명의 구조 서평에서 그 내용에 관해 부분적인 공감을 표하면서도 쿤의 핵심적 주장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 본인이 비록 과학자도 아니고 과학사 연구자도 아니지만 감히 이 책에 대해 논하자면, 굳이 ‘과학 역사의 발전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으로 언쟁을 펼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생각이 있을 수도 있고 이러한 과정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한다고 해도, 과학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그에 따라 세상은 놀라고, 변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진영은 ‘과학이 사회적인 요소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활동이다’라는 주장을 반대하는 진영이었으며, 이는 곧 과학에 대한 사회 구성주의, 그리고 과학기술사회학에서는 스트롱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과학지식사회학SKK를 낳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선 급기야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하여 종국엔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과 과학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아울러 과학혁명의 구조는 진영을 막론하고 과학철학에 있어 과학사 연구의 비중이 확대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쿤과 같은 이공계열 전공자들이 과학철학 및 과학사 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이 책이 직접 나오는 시기의 상황을 몰라 이 책이 당시의 관점에 반대되는 혁명적인지에 대해서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책의 이름인 에 대한 또 다른 ‘혁명’을 제시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볼 때 조금 더 비판적이고 다양한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권유하는 것이라는 어떠한 ‘강한 느낌’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고, 실제로 쿤도 그런 시각에서 과학구조를 바라보고 쓴 글일 것이다. 쿤의 주장이 맞든 그렇지 않든, 결국 중요한 것은 과학은 항상 비판적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혁명의 구조 by 토머스 새뮤얼 쿤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002. 11. 30

까치글방

http://zolaist.org/wiki 참조하였음

1. 서론 : 역사의 역할

과학의 역사를 세밀히 들여다본 최근의 과학사학자들은 과학이 단순한 “축적에 의한 발전”으로 묘사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첫째로, 새로운 발견의 시점을 명확히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소는 언제 발견되었는지, 에너지 보존을 처음 알아낸 사람은 누구인지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그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질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쿤은 “아마도 과학은 개별적인 발견과 발명의 축적에 의해서 발달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을 제기한다. 둘째로, 과거의 관찰과 믿음에서 “과학적인” 요소를 선대 과학자들이 “오류”와 “미신”이라 단언했던 것들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 플로지스톤 화학, 칼로릭 열역학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러한 견해가 오늘날 수용된 견해보다 덜 과학적인 것도 아니고, 오늘날보다 더 유별난 것도 아니다. 그러한 과거의 견해를 신화나 미신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에도 우리의 과학자들은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른다면, 과학에는 현재 우리가 과학으로 믿고 있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것들까지 포함될 것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무엇을 선택할까?

쿤을 포함한 과학사학자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시대에 뒤진 이론들이 폐기되어버렸다는 이유로 해서 원칙적으로 비과학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과학의 발전을 증대의 축적적 과정이라고 보기가 어렵게 만든다.”

전문 분야의 공약에 변동이 생기는 비정상적인 에피소드들이 바로 과학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들이다. 과학혁명은 전통준수적인 정상과학 활동을 보완하는 전통파괴적인 활동이다.

응용 범위가 얼마나 전문적이든 간에, 새로운 이론이 이미 알려진 것을 단순히 누적적으로 보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거나 혹은 전혀 없다. 새로운 이론이 동화되기 위해서는 기존 이론의 재구축과 기존 사실의 재평가가 필요한데, 이는 본연적으로 혁명적인 과정이며, 한 사람에 의해서나 하룻밤 사이에 완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과학사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이들에게 이 과정을 한순간의 독립된 사건으로 다루도록 종용하지만, 실제로 과학사학자들이 이 광범위한 과정의 정확한 시점을 확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2. 정상과학에로의 길

이 책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 ─어떤 한 과학자 사회가 일정 기간 자신의 진전된 활동(further practice)에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인정한 과학적 성취 ─ 에 단단하게 기반을 둔 연구 활동 을 뜻한다. 오늘날 그러한 성취는 대부분 교과서 형태로 학습되지만, 이러한 교과서가 널리 퍼지기 전에는 과학 분야의 유명한 고전들이 교재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러한 “저작들은 일정 기간 한 연구 분야의 적법한 문제와 방법을 다음 세대 학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정의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의 성취는 경쟁적인 과학 활동 방식으로부터 그룹을 떼어내 영속적인 옹호자 그룹으로 끌어당길 정도로 전례 없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성취는 재정의된 연구자 그룹이 풀어야 할 온갖 문제들을 남겨둘 만큼 개방적이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지닌 성취를 이제부터 ‘패러다임(paradigm)’이라 부를 텐데, 이 용어는 ‘정상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3. 정상과학의 성격

패러다임은 문제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적법한 문제와 문제 풀이를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패러다임은 우선 “전문가들 그룹이 시급하다고 느끼게 된 몇 가지의 문제를 푸는 데에 그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로 그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훨씬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일한 문제에 대해서 완벽하게 성공적이라든가 또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성공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패러다임의 성공은 당초에는 주로 선별적이고 아직은 불완전한 예제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성공의 약속일뿐이었다. 정상과학은 그런 약속의 실현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실현은 패러다임이 특히 흥미롭다고 제시하는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고, 그런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에 일치 정도를 증진시키며,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시킴으로써 달성된다.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짜여지고 상당히 고정된 상자 속으로 자연을 밀어넣는 시도인 것처럼 보인다. 현상의 새로운 종류를 들춰내는 것은 결코 정상과학의 목적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 상자에 들어맞지 않는 현상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으며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 창안된 것들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정상과학 연구는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그러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요약> 패러다임은 분명 유례없는 성공 덕분에 패러다임이 되었지만, 그 성공은 적용 범위와 정확성 모두에서 한계를 지닌다. 사실 패러다임의 성공은 완전한 성공이라기보다 앞으로의 성공에 대한 약속에 가까우며, 정상과학이란 그런 약속을 현실화하는 ‘마무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짜여진 상당히 고정된 상자 속으로 자연을 밀어넣는 시도”로서, 새로운 것을 들춰내고자 하지 않으며,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결함은 과학의 발전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상당히 난해한 문제의 작은 영역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상조차 못했을 자연의 어느 부분을 상세히 깊이 있게 탐구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정상과학은 (i) 패러다임이 중요하게 다룬 사실들에 대한 정보를 확장하고, (ii) 그런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의 일치의 정확성을 증진시키며, (iii)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함으로써 달성된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정상과학의 사실적 탐구와 이론적 탐구에서 다루는 세 가지 문제 유형이 된다.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쿨롱이 자신이 설계한 장치를 통해 전기력에 대한 역제곱 법칙을 발견했을 때, 그는 어떻게 그런 장치를 고안할 수 있었으며, 어째서 그 결과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는가? 또 쿨롱을 비롯한 동시대의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그 법칙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동일한 패러다임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즉 패러다임 하에서의 연구는 “예기치 못한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정규의 연구 문제를 결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새로운 방법으로 예측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며, 그것은 갖가지 복합적인, 기기적, 개념적, 수학적 퍼즐 풀이를 요구한다. 이것을 해내는 사람은 퍼즐 풀이 선수로 밝혀지며, 퍼즐의 도전은 과학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하게 하는 무엇인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퍼즐이란 “풀이에서의 탁월성이나 풀이 기술을 시험하는 구실을 할 수 있는 문제들의 특이한 범주를 말한다.

만일 정상과학의 목표가 실질적인 주요 혁신이 아니라면(예측된 결과의 근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과학자로서의 실패라고 한다면), 도대체 왜 이런 문제들이 애초에 다뤄지는 것일까? 과학자에게는 적어도 정상연구에서 얻은 결과는 의미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패러다임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와 정확성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첫째, 퍼즐에는 해답이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존재한다.

둘째, 퍼즐은 게임의 규칙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18세기 내내 학자들은 뉴턴의 법칙으로부터 달의 관측된 궤도를 유도해내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어떤 학자는 뉴턴의 역제곱 법칙이 아닌 다른 법칙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되고, 즉 그는 다른 퍼즐을 푼 것이 되어 버린다. 다른 과학자들은 1750년에 누군가 그것들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기존 규칙을 고수했다. 게임의 규칙 중 단 하나의 변화를 통해 대안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약> 정상과학을 퍼즐 풀이로 보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는가? 첫째는 과학자들이 정상과학적 문제에 전념하는 이유를 (사회학적으로/심리학적으로) 설명해준다. 즉 쿤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풀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그 풀이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에 (풀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여, 그 풀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정상과학의 빠른 발전을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해답이 있는 문제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규칙 의존적인 정상과학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이에 따르면, “[약속들의 공고한 네트워크]는 성숙된 경지의 전문 분야 연구자들에게 세계와 그의 과학이 둘 다 과연 무엇인가를 일러주는 규칙을 제공하는 까닭에, 연구자는 이들 규칙과 더불어 기존의 지식이 정의해주는 난해한 문제들에 확신을 가지고 집중할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퍼즐’과 ‘규칙’에 관한 논의는 정상과학의 중요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는 우리에게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 “과학의 전문 분야의 수행자들은 모두 어느 주어진 시대에서 거기에 집착할 수 있는 규칙들을 지닌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규칙들이 그 자체만으로 그 분야 전문가들의 활동에서 공유되는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결정적인 성격의 활동이지만, 그러나 전적으로 규칙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 이것이 바로 이 에세이의 첫머리에서, 공유된 패러다임을 가리켜서 공유된 규칙, 가정, 견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과학 전통이 지닌 일관성의 원천이라고 소개했던 까닭이 된다. 나는 규칙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그러나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도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한다.”

5. 패러다임의 우선성

패러다임이 규칙 없이도 정상과학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칙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과학 교육의 성격에서 유래한다. 과학자들은 개념을 문제 풀이에 응용하는 것을 관찰하고 참여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이지, 교재에 실린 불완전하지만 때로는 도움이 되는 정의들로부터 터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과정은 훈련 과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생들이 푸는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전례에 의해 완전히 뒷받침되지 않는 것들이 생긴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들이 성공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전에 연습문제를 풀 때와 마찬가지로, 앞선 문제 풀이를 모델링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아무리 문제를 잘 풀고 있는 과학자라도 자신이 어떤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지 잘 말하기 어려워한다. 그의 문제 풀이 능력을 설명하는 데 어떠한 규칙의 집합을 가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패러다임을 통해 직접 좋은 문제를 골라내고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익혔을 뿐이다.

패러다임이 규칙보다 우선한다는 또 다른 근거는, 실제로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자들이 규칙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규칙은 평상시에는 중요치 않다. 다만 그들을 묶어주었던 패러다임이 위협에 빠졌을 때에만 규칙이 패러다임을 대신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안전하게 지탱되는 동안에는 규칙이나 합리적 근거와 같은 것은 생각지 않아도 패러다임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새로운 종류의 사실을 동화시키는 것은 이론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조정 이상을 요구하며, 그 조정이 완료되기까지, 즉 과학자가 자연을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깨우치기까지 새로운 사실은 결코 과학적 사실이 되지 못한다.

발견의 시기를 확정하려는 시도는 어쩔 수 없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데,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복합적인 사건으로서,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무엇인지를 둘 다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관찰과 개념화, 사실과 이론적 동화는 발견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고, 때문에 발견은 하나의 진행 과정이며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관련된 개념적 범주들이 모두 미리 갖추어진 경우, 즉 현상이 새로운 유형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 그에 대한 발견과 그것이 무언인지에 대한 발견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검토를 통해, 정상과학은 새로움을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을 억제하는 경향을 띤 탐구임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패러다임의 수용에 따른 전문화는 한편으로는 과학자의 시야를 크게 제한시키고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서 상당한 저항으로 작용한다. 다른 한편으로 패러다임이 주의를 집중시키는 그런 분야에서 정상과학은 다른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관찰-이론 사이의 엄청나게 정확한 일치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한 (이론적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실험장치의 정확성을 높이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궁극적인 새로움을 이끈 결과들은 발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로움은 무엇을 예측해야 할지를 정확히 알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변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배경 위에서만 나타난다.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의 상황은 코페르니쿠스의 선언 이전에 하나의 스캔들이었다. 운동에 대한 연구에서 갈릴레오의 공헌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대한 스콜라 학파의 비판에서 등장했던 난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뉴턴의 빛과 색깔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기존의 전 패러다임 이론들 중 그 어느 것도 스펙트럼의 길이를 설명하지 못했음을 발겨한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뉴턴 이론을 대치한 파동 이론은 회절과 편광 효과를 뉴턴 이론에 관련지으면서 변칙현상에 대한 과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표되었다. 열역학은 19세기 두 기존 물리과학 이론의 충돌로부터 탄생하게 되었고, 양자역학은 흑체 복사, 비열 그리고 광전 효과를 둘러싼 갖가지 난제들로부터 탄생했다. 더욱이 뉴턴 이론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 변칙현상에 대한 인식이 매우 오래 지속되었고 아주 깊숙이 침투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분야들은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태라고 묘하사흔 것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대규모의 패러다임 파괴와 정상과학의 문제 및 테크닉상의 주요 변동을 요구하는 까닭에, 새로운 이론들의 출현은 대체로 전문 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치게 된다.

첫째, 새로운 이론은 정상적 문제 풀이 활동에서의 현저한 실패를 본 후에야 비로소 출현했다.

둘째, 붕괴가 일어났던 문제들은 모두 오랜 세월에 걸쳐 인식되어 왔던 문제였다. 즉 위기로 이끈 문제는 애초에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나중에야 심각한 실패로 인식되었다.

셋째, 위기의 해법으로 등장하게 될 아이디어의 일부는 이미 존재했었다. 다만 위기를 느끼지 못했던 상황에서 무시되었을 뿐이다.

8. 위기에 대한 반응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단은 언제나 그와 동시에 다른 패러다임을 수용하는 결단이 되며, 그 결정에 이르는 판단은 패러다임과 자연의 비교뿐 아니라 패러다임끼리의 비교라는 두 가지를 포함한다.

대안 없는 패러다임의 포기는 과학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런 과학자는 “자기 연장을 탓하는 목수”로 비춰질 것이다.

과학교육 방식은 반증 이론과는 다른 지적 근원을 가진 확증 이론을 강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과학 교과서를 읽는 사람은 이론의 응용을 그 이론에 대한 증거, 즉 왜 그 이론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로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과학도들은 증거 때문이 아니라 교사와 교재의 권위 때문에 이론들을 수용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응용 사례들은 증거로서 실린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배우는 것이 현재 활동의 기초로서 패러다임을 익히는 것의 일부이기 때문에 실린 것이다.

모든 위기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모호해짐과 더불어 그에 따라 정상과학의 규칙이 헤이해짐에 따라서 시작된다. 이 경우 정상과학적 해결, 미해결,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해결로 종결되는데, 세 번째 경우가 과학혁명으로 일컬어진다.

변칙이나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 과학자들은 현존 패러다임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되며, 그들 연구의 성격도 그에 따라서 바뀌게 된다. 경쟁적인 명료화의 남발,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 명백한 불만의 표현, 철학에의 의존과 기본 요소에 관한 논쟁, 이 모든 것들은 정상 연구로부터 비상 연구로 옮아가는 증세들이다.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정치혁명은 기존 제도가 주변 환경에 의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이제 더 이상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시작되는데, 이와 상당히 비슷한 방식으로 과학혁명이란, 과학의 탐구를 주도했던 기존 패러다임이 자연현상에 대한 다각적인 탐사에서 이제 더 이상 적절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의식이 점차로 증대되면서 시작된다.

과학혁명은 그들이 받아들인 패러다임이 혁명으로 인해서 영향을 받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만 혁명 같아 보이면 된다. 그 밖의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발달 과정에서 정상적인 국면으로 보일 것이다.

패러다임은 방법들의 원천이요, 문제 영역이며, 어느 주어진 시대의 어느 성숙한 과학자 사회에 의해서 수용된 문제 풀이의 표본이다.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승인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과학을 재정의 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패러다임을 익히면서 과학자는 이론, 방법, 기준을 보통 한데 뒤엉킨 혼합체로 모두 획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게 되면, 통상적으로 문제와 제안된 풀이 등 양쪽의 정당성을 결정짓는 기준에서도 상당한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어느 패러다임도 그것이 정의하는 모든 문제를 풀어낸 적이 없었고, 두 패러다임이 풀지 못한 문제들이 모두 같은 것도 아닌 까닭에, 패러다임 사이의 논쟁에는 항상 다음의 질문이 개입된다. 어느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는가? 가치관에 대한 이런 질문은 총괄적으로 정상과학의 외부에 존재하는 기준에 의해서만 답을 할 수 있으며, 외부의 기준에 의존하는 것은 패러다임 사이의 논쟁을 가장 확실하게 혁명적으로 만들어준다.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사람이 무엇을 보는가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에도 달려 있지만, 이전의 시각적-개념적 경험이 그에게 무엇을 보도록 가르쳤는가에도 달려 있다.

과학에서의 지각 변환의 사례들 : 천문학에서 천왕성 발견, 전기학에서 정전기적 반발의 인식, 화학사에서 산소의 발견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한 과학자는 해석자이기보다는 차라리 거꾸로 보이는 렌즈를 낀 사람과 비슷하다. 이전과 똑같은 무수한 대상들을 마주 대하고 그렇게 변함없는 대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학자는 대상들의 세부적인 것의 속속들이 변형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세계관 변화의 의미>

(1) 과학혁명 이후에는 많은 과거의 측정과 기기 조작이 무의미해지고 다른 것들에 의해 대체된다. 그러나 실험적 조작의 많은 부분은 이전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화되는 것일까?

하나의 동일한 조작이 다른 패러다임을 통해서 자연에 연결될 때에는 그것이 자연의 규칙성의 전혀 다른 측면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덧붙여서 우리는 때로는 낡은 조작 방법이 그 새로운 역할에 의해서 상이한 구체적인 결과를 낳음을 알게 될 것이다.

(2)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존 실험 조작으로부터 새로운 규칙을 보게 만들었다.

돌턴의 화학적 원자론의 관점에서 일정 성분비의 법칙은 동어반복적인 것이 되었고, 구성 성분들이 일정한 비율로 결합되지 않는 반응들은 순수히 화학적 과정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단 돌턴의 연구가 받아들여지자, 그의 연구 이전에 실험으로는 확립될 수 없었던 법칙이 어떠한 한 벌의 화학적 측정으로도 뒤엎을 수 없는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동일한 화학적 조작이 화학적 일반화에 대해서 종전의 것과는 전혀 다른 관련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3) 패러다임 변화는 숫자상 데이터 그 자체를 변화시켰다. 원자론에 맞지 않는 실험 결과 당연히 존재. 예컨대 구리의 두 가지 산화물에 대한 측정은 2:1이 아니라, 1.47:1이라는 산소 무게 비를 얻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잘 알려진 화합물의 조성비는 이후 원자론에 맞게 변화되었다. 즉 데이터 자체가 변화한 것이다. 이것이 혁명 이후 과학자들이 상이한 세계에서 일하게 된다고 말하는 마지막 의미이다.

11. 혁명의 비가시성

과학의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교과서와 같은 권위적 출처들이 혁명의 존재와 중요성을 위장

교과서의 특징 : (i) 이미 명료화된 문제, 데이터, 이론, 그리고 현재의 패러다임에 관해서만 논의 (ii) 과거의 과학혁명의 안정화된 결과를 기록하고, 현재의 정상과학 전통의 기반을 제공. (iii) 정상과학의 기반이 전문분야에 의해서 어떻게 인식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음 (iv) 정상과학의 교육적 수단으로, 혁명을 거칠 때마다 새로 쓰여짐으로써 혁명의 역할 뿐만 아니라 존재까지 가려버림 (v) 과거의 성취는 현재의 패러다임에 기여하는 것만이 선택되거나 현재의 패러다임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이도록 변형된 방식으로 제시됨(교육의 목적상 이러한 방식은 잘못이 없지만, 과학이 일련의 발견과 발명에 의해 선형적으로 현재까지 발전한 것 같은 이미지 형성)

교과서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과학 활동의 시초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의 패러다임들 속에 구현된 특정 목표들을 향해서 진력해온 것이 된다. 흔히 건축에서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에 비유되듯이, 과학자들은 당대의 과학 교과서 속에 제공된 정보 더미에 또다른 사실, 개념, 법칙, 또는 이론들을 하나씩 하나씩 추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이 발전되어온 방식이 아니다.

보일의 사례 : 화학 원소의 현대적 정의를 최초로 제시한 사람이 아니다. 보일의 원소에 대한 ‘정의’는 전통적 화학 개념에 대한 재기술(paraphrase)에 불과하다. 시간, 에너지, 힘, 또는 입자와 마찬가지로 원소의 개념은 전혀 창안되거나 발견되지도 않는 그런 종류의 교과서의 구성요소이다. 특히 보일의 정의는 적어도 그 이전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그 이후로는 라부아지에를 거쳐서 현대의 교서에까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태곳적부터 현대적 원소 개념이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12. 혁명의 완결

경쟁적 패러다임의 제안자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그들의 연구를 수행한다. 하나는 서서히 낙하하는 속박된 물체들을 다루고,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운동을 반복하는 진자를 다룬다. 한쪽에서는 용액이 화합물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혼합물이다. 한쪽은 평평한 형태에, 다른 한쪽은 곡면 형태의 공간에 포함된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같은 방향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한 그룹의 과학자들에게는 증명될 수 없는 법칙이 다른 그룹에는 직관적으로 명백해 보이는 경우가 생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에서 충분히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려면, 한 그룹 또는 다른 그룹이 우리가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불러온 개정을 거쳐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패러다임 사이를 이행할 수 있는가?

과학자들은 개종을 많이 하지 않는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플랑크, 과학적 자서전) “패러다임으로부터 패러다임의 이행은 강제될 수 없는 개종 경험이다.” “정상과학의 옛 전통을 신봉하는 이들이 일생에 걸쳐서 벌이는 저항은 과학적 기준의 위반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의 성격 자체에 대한 지표가 된다.”

패러다임 논쟁에서 사용되는 효과적인 논증 : (i) 옛 패러다임을 위기로 이끌고 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증 (ii) 옛 패러다임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의 예측할 수 있다는 논증 (iii) 적절함이나 심미적인 것에 대한 느낌에 호소하는 논증(옛 이론에 비해서 ‘보다 간결하고’, ‘보다 적합하고’, ‘보다 단순하다’)

13. 혁명을 통한 진보

경쟁 학파의 부재로 인해 정상과학의 진보를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든다. 만약 어떤 분야에서의 발전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각 학파가 발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 학파의 존재로, 각각 서로 다른 학파의 기반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발전이 분명하고 확실해 보이는 것은 정상과학 기간에 한정된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는 과학자 사회는 그 연구의 결실을 어떤 방식으로든 볼 수가 없다.

경쟁 학파의 부재로 원리에 대한 끊임없는 재검토 요구로부터 해방되어, 현상의 가장 미묘하고 난해한 부분에 집중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효율성과 능률이 증대된다.

일반 사회와의 단절로, 과학자 사회만의 공유된 기준에 맞추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으며, 정상과학기의 과학자 사회는 그 패러다임이 규정하는 문제나 퍼즐들을 푸는 데에 굉장히 효율적인 도구가 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발전일 수밖에 없다

혁명은 대립되는 두 진영의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종식된다. 승리자의 관점에서, 승리의 결과는 발전일 수밖에 없다. 왜? 진보가 아니라면, 상대편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 또한 승리자들은 자기들 사회의 미래의 구성원들이 과거 역사를 자신들의 관점과 똑같은 방식으로 보도록 만들며, 때로 이는 역사의 왜곡을 초래하기도 함

모든 문명 가운데 그리스로부터 전승된 문명만이 가장 원초적인 과학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과학적 생산 활동이 나타나는 과학자 사회를 뒷받침했기 때문. 과학자 사회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서 해결되는 문제의 수와 정확도를 극대화하는 고도의 효율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 사회는 혁명 과정에서의 일부 손실을 감수하지만, 그 손실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사회의 성격은 과학에 의해서 해결되는 문제들의 목록과 각각의 문제 해결의 정확도가 둘 다 계속해서 증가하리라는 실질적인 보장을 제공한다.

과학자 사회의 어떤 특성이 이를 보장하는가? (i) 자연에 대한 세부적인 문제들에 관심. (ii) 문제의 풀이는 게임의 규칙이 공유된 과학자 사회에서 수용되어야 인정

과학적 성취의 단위는 해결된 문제로 이루어지며, 과학자 그룹은 어느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잘 알고 있음. 전문적 과학자 사회의 집단적인 패러다임 선택은 (a) 새로운 대안 패러다임이 다른 방식으로는 풀지 못한 두드러진 문제를 해결하는 듯이 보여야 하며, (b) 선행 패러다임의 문제 해결 능력의 상당 부분을 보전한다는 조건에서 이루어지게 됨으로써, 그 혁명의 결과는 문제 해결 능력의 증진이라는 의미에서 진보로 간주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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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토머스 쿤과 ‘과학혁명’

홍성욱/서울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email protected]

1922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쿤은 1940년에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는 3년 만인 1943년에 학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레이더 연구에 투입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의 관심은 이미 고대 철학과 칸트 철학으로 기운 상태였다.

쿤은 당시 하버드대학교 총장 코넌트의 추천에 의해서 1948년 봄에 하버드대학교의 주니어 펠로로 임명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국방연구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코넌트는 전후 하버드의 교육개혁을 주도했는데, 그의 개혁의 핵심은 비자연과학 전공 대학생에게 자연과학의 핵심 방법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 수업을 위해 코넌트는 쿤을 조교로 고용했고, 쿤은 교재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과거 자연철학자들의 원전을 접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이론에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윤리학이나 인식론과 같은 철학에서는 지금 보아도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때는 그렇게 ‘멍청해 보이는’ 설명을 고수했는가라는 것이었다. 갈릴레오와 뉴턴에 의해서 완성된 고전물리학을 배운 사람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이론은 정말 한심할 정도였다.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쿤은 1948년의 여름에 ‘계시’와도 같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이 물체의 거리 이동만이 아닌 변화 일반을 포괄하는, 근대적 운동 개념과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운동을 이렇게 파악하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이론이 무척 합리적으로 이해되었고, 더 나아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17세기 갈릴레오의 물리학 사이에는 단순한 계단식 발전이나 오류의 교정이 아닌 혁명과 같은 단절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1962년에 출판된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발전의 ‘구조’를 분석하고 있다. 쿤에 의하면 과학발전의 구조는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4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곧 과학자 사회가 자신들의 이론·연구를 가능케 하는 도구와 문제의 총체인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면 이 과학 분야는 1)정상과학(노멀 사이언스) 단계에 들어간다. ‘퍼즐 풀이’로 특징지워지는 정상과학이 발전하다가 그 패러다임 안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인 변칙이 등장하면, 이러한 변칙은 2)위기의 단계를 낳는다. 위기가 지속되면 기존의 패러다임과 전혀 다른 패러다임이 갑자기 등장하고, 두개 혹은 그 이상의 패러다임이 경쟁하는 3)과학혁명의 단계에 접어든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과거의 패러다임을 제치고 과학자 사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면 4)새로운 정상과학의 단계가 시작된다. 곧 과학의 발전은 정상과학 → 위기 → 혁명 →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이어지며, 여기서 보는 과학혁명은 왕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세워지는 것 같은 사회적 혁명과 유사하다.

패러다임이 수립되면 과학자들에게 풍부한 자원을 제공한다.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에게 다양한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방법을 주며, 어떤 문제가 중요한 문제인지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다. 또 패러다임은 표준적 방법에 의해 중요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확신을 과학자들에게 제공한다. 게다가 패러다임은 실험과 측정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렇게 패러다임을 완벽하게 하고 측정값을 정교하게 하는 행위가 곧 쿤이 정상과학이라 지칭한 활동이다.

칼 포퍼 “쿤의 정상과학은 과학 모독”

그러므로 정상과학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정상과학에는 기존의 이론 체계를 부수고자 하는 도전의 정신이 없다. 이 점 때문에 과학의 발전을 과감한 추측과 논박의 연속으로 파악했던 과학철학자 칼 포퍼는 쿤의 정상과학이 과학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정상과학이 혁명적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맛이 없는 보수적 작업이라면 왜 과학자들은 과학연구에 몰두하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쿤은 정상과학을 퍼즐 맞추기에 비교했다. 퍼즐을 즐기는 사람은 그 문제에 답이 있고 따라서 언젠가는 이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재미를 느끼고 문제 풀이에 몰두하곤 한다. 이것이 정상과학을 수행하는 과학자들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쿤의 생각이었다.

정상과학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변칙적 문제를 만나면 위기의 국면과 과학혁명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변칙의 출현은 혁명의 전조인 것이다. 물론 한 두 개의 변칙이 출현한다고 항상 패러다임이 폐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데, 패러다임은 이론 및 가정 일부를 변경하여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변칙들이 과학의 기본 틀까지 변경하는 것을 요구하면, 그 때 과학은 위기의 국면에 들어간다. 위기가 고조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신구 패러다임이 경쟁하는 혁명단계에 진입한다.

과거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과학자들은 그것이 더 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새 패러다임의 미적 단순함 또는 아름다움과 같은 과학외적 요인에 끌렸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 전환은 점진적이고 논리적인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종교적 ‘개종’과 유사하다. 따라서 과학혁명 시기에는 철학적, 제도적, 사상적 요소들이 이론의 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해석 때문에 쿤은 과학의 합리성을 무시한 상대주의자로 비난받았으며, 과학철학자와 임레 라카토스는 쿤의 패러다임 전환이 과학이론의 선택을 ‘군중심리’(몹 사이콜로지)로 환원했다고 하면서 쿤을 맹렬히 비판했다.

쿤의 저서에서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점은 두 패러다임의 비교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쿤은 아리스토텔레스 패러다임과 뉴턴 패러다임 사이에, 혹은 뉴턴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사이에 ‘공약 불가능성’(인커멘슈러빌리티)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공약 불가능성이란 두 패러다임이 같은 척도로 비교될 수 없다는 뜻인데, 실질적으로는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쿤은 과학의 발전이 완벽한 진리를 향해서 한발자국씩 접근한다는 전통적인 과학의 진보 개념을 부정했다. 또 쿤의 철학에는, 과학이 자연에 존재하는 진리를 발견한다는 소박한 실증주의적 생각을 부정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결정하는 패러다임은 과학자 공동체에서 만들어낸 것이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쿤 이전과 이후는 혁명적 변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이 절대 진리를 향해서 한발씩 접근하는 인간의 활동이라는 믿음에 쐐기를 박고, 정상과학이 과학자 공동체가 공유한 패러다임에 의해서 그 의미가 결정되며, 서로 다른 패러다임 사이에는 과학적 소통이 잘 되지 않고, 과학활동도 예술이나 종교와 같은 인간의 다른 활동과 다르지 않은 점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철학과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과 사회학 정치학 여성학과 같은 사회과학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과학을 보는 관점과 관련해서, 쿤 이전과 쿤 이후는 혁명적이라 할 만큼의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환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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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더 스트럭처 오브 사이언티픽 레볼루션스[*] )는 철학자 토머스 S. 쿤이 저술한 과학사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출판은 과학사, 과학 철학, 과학 지식 사회학에서의 기념비적 사건이며,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평가와 반응을 촉발하였다. 쿤은 정상 과학에서의 진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도전하였다. 일반적인 과학적 진보는 이미 수용된 사실과 이론의 “축적에 의한 발전”으로 인식되었다. 쿤은 정상 과학에서의 이러한 개념적인 연속성의 시기가 혁명적인 과학의 시기에 의해 방해되는 불연속적인 모델을 주장하였다. 혁명의 시기 동안에 발견된 “이상 현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야기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오래된 데이터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이전 패러다임의 “수수께끼 풀기”을 넘어, 게임의 법칙과 새로운 연구의 방향을 지시하는 “지도”를 변경한다.[1]

예를 들어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분석은 처음에는 태양중심설이 천체 현상에 대한 지구중심설보다 더욱 정확한 예측을 제공하지 못하였으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발전할 더 나은, 더 간결한 해결책의 전망을 가진 실행자에게는 매력적인 이론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쿤은 우세한 혁명의 대한 핵심적 개념을 패러다임이라고 불렀으며, 이 단어를 20세기 후반에 광범위한 분석 활동에 활용하게 하였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사회학, 맹신, 과학적 전제의 혼합이며, 논리적으로 명확한 과정이 아니라는 쿤의 주장은 대단한 논쟁을 일으켰다. 쿤은 제2판의 1969년 후기에서 우려를 표한 바가 있다. 일부 평론가는 쿤의 책은 과학의 핵심에 실제적인 인문주의를 도입한 것으로 평가하는 반면, 다른 평론가는 가장 위대한 성취의 중심에 비이성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과학의 고귀함을 파괴했다고 평가한다.

역사 [ 편집 ]

《과학혁명의 구조》은 애초에 《통일 과학 국제 백과전서》(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Unified Science)의 단일 항목으로 집필되었고 뒤에 1962년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에서 책으로 발간하였다. 1969년 쿤은 초판 발간 이후 제기된 중대한 비판에 대한 자신의 후기를 추가하였다. 2012년 4월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는 이안 핵킹의 개설을 담은 50주년 기념판을 발간하였다.

쿤은 이 책의 구상 연도를 자신이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 학부생을 위한 역사적인 사례 연구를 제안받은 1947년으로 밝히고 있다. 쿤은 후일 “나는 과학에서 옛 문헌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아이작 뉴턴의 물질과 운동 개념과 놀랍도록 달랐다. ……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었을 때 그의 저작은 역학에서 그저 무시해도 될 만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나쁜 물리 과학으로 여겨졌다. 특히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내겐 관찰과 논리 양면에서 모두 지독한 결함 투성이의 것이었다.” 라고 술회하였다. 쿤은 과학사의 사례들을 고찰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쁜 뉴턴”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내리게 된다.[2] 이러한 통찰이 《과학혁명의 구조》를 집필하는 밑바탕이 되었다.[3]

쿤이 이 책을 출간하던 시기에 이미 과학적 실험 방법의 발전에 대한 여러 설명이 있었다. 루드비크 플렉은 그의 저서 《과학적 사실의 생성과 발전》에서 과학지식사회학의 체계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플렉은 아이디어의 변화는 소수의 전문가 그룹과 대중들이 분리된 상태에서 수집된 생각이 전파되면서 발생한다고 설명하였다.[4][5] 쿤은 1979년 플렉의 책 해설을 쓰면서 그 책을 1950년에 읽었으며 누군가가 “내가 발견해 낸 것을 과학의 역사에서 보았다”고 서술하였다.[5]

쿤이 직접 인용한 이론 가운데 하나는 칼 포퍼가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는 핵심 기준으로 내세운 반증 가능성이다. 쿤은 또한 1920년대 논리실증주의에서 시작된 철학 사조인 검증주의를 도입하였다. 검증주의는 과학 법칙이 의미있는 서술이려면 반드시 경험적 증거와 논리적 정합성에 의해 지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요 개념 [ 편집 ]

접근 기반 [ 편집 ]

과학사와 과학 철학에 대한 쿤의 접근 정상 과학의 개념과 역사적 사건의 영향, 급박한 과학적 발견, 과학 혁명과 그 과정의 본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6] 과학 혁명의 시기에 지성의 선택지와 전략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이 시기에 도입되고 알려지는 전문 용어와 언어에는 어떠한 종류들이 있는가? 쿤은 과학 이론의 발전은 간단한 사실들의 누적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적 환경과 가능성의 구성 세트 자체가 변화하여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7] 그의 이러한 접근은 일반 역사의 사관 가운데 비선형 역사관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정상 과학과 패러다임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패러다임 입니다.

패러다임은 원래 언어학에서 언어 사용의 “표준례”를 뜻하는 말이었다. 쿤은 과학 교육이 가르치는 것이 과학적 개념의 정의라기 보다는 용어들이 사용된 예제를 푸는 표준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에 주목하였다.[8] 쿤은 특정 시대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으로 패러다임을 정의하였다. 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과학자의 활동은 기존의 잘 밝혀진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며, 과학 실험은 기존의 원리를 옹호하는 근거로서 축적된다. 이렇게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논의를 제공하며 해답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공고화된 기존 과학을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상 과학이 지배적인 시기에 새로운 발견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는 배척된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패러다임 안에서 활동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정상 과학이 정한 틀 내에서만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정상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누적되고 정상 과학은 결국 위기를 맞게 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정상 과학이 이러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발생하게 된다.[9]

코페르니쿠스 혁명, 패러다임의 우선성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코페르니쿠스 혁명 입니다.

2003년에 지구에서 관측된 화성의 겉보기 역행 이동.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과학 혁명의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화성이나 목성, 토성은 주기적으로 진행 방향이 바뀌는 역행 현상을 보인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행성들이 그 주위에서 원운동을 한다고 설명하는 지구중심설은 역행을 설명할 수 없었다. 프톨레마이우스는 지구중심설에 대원과 주전원을 도입하여 이러한 역행을 설명하였다. 대원과 주전원의 크기를 조절하고 행성의 회전 속도를 다르게 하면 복잡한 역행 현상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행성들의 역행 현상은 오히려 프톨레마이우스 우주관의 정교함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10]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계산의 결과 이전에 심미적 이유에 의해 주장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이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추가 조건들로 이루어진 것에 불만을 품었으며 우주는 보다 직관적이고 단순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을 접하고는 그 단순함에 매료되었다.[11] 수학자이기도 했던 인문학자 야코프 브로노프스키는 코페르니쿠스 체제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체제가 지니지 못한 통일성과 단순성이 있었다고 평가한다.[12]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천체 운동의 원인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 찾고, 행성 이외의 별들은 천구에 단단히 박혀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여전히 주전원을 도입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같이 이전의 패러다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13] 게다가 실제 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정확도면에서도 코페르니쿠스 체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쿤은 이런 점을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시기에 천문학이 위기에 봉착한것은 맞으나 그것을 해결하지는 못하였다고 평가한다.[14]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관측과 예측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운동하는 것은 계속하여 운동하려 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끌어들여 원운동의 원인을 설명하려 하였고,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신봉했던 티코 브라헤의 자료를 넘겨받은 요하네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기반으로 자료를 재해석하여 행성들의 운동이 타원임을 밝혔다.[15] 결국 1577년 핼리 혜성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보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별들이 천구에 붙박혀 있다는 설명을 믿지 않게 되었고, 태양과 달, 별들이 텅빈 공간을 떠돈다는 새로운 설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16] 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패러다임 우선성의 사례로 언급하였는데, 정상 과학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먼저 발생하고 이를 정교화하는 것은 추후에 뒤따른다는 것이다.[9]

과학적 진보에 대한 쿤의 의견 [ 편집 ]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 초판 마지막 장의 제목을 “혁명을 통한 진보”로 붙였다. 여기에서 쿤은 과학적 진보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밝혔다. 쿤은 과학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고심하는 동안, 과학 커뮤니티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후보군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선, 새로운 후보는 반드시 어떤 걸출한 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하고, 그것 이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전의 과학자들이 문제 해결과정에서 누적해온 대부분의 활동이 보전된다는 것을 약속해야만 한다.”[17][18]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 정도 밖에 포괄성 확보가 드문 상황인 초기 단계에서, 새 패러다임은 반드시 장래에 획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전의 연구가 보여주는 능력을 전혀 또는 거의 보유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과학 커뮤니티는 그것이 과거의 기록 대다수를 보존할 수 있고 항시 추가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덧붙일 수 있다면 대개는 받아들인다.[19]

쿤은 2차 편집판에서 과학적 진보의 본질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다듬은 후기를 덧붙였다. 쿤은 이론들의 조합을 검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관찰자를 등장시키는 사고 실험을 제시하였다. 이 관찰자는 기존의 연대기적 질서에서 비롯된 분명한 지시어 없이 이 이론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쿤은 이론의 범주와 내용을 기반으로 연대기를 다시 구성할 수 있다고 예측했는데, 왜냐하면 보다 최근의 이론들은 과학자들이 풀고자하는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도구로 보다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쿤은 “이것은 상대주의적 관점이 아니며 내가 과학적 진보를 확고히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적었다.[20][21]

영향 [ 편집 ]

과학혁명의 구조는 쿤이 논의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된다.[22] 이 책이 출판된 이래로, 16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것을 포함하여 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23] 1987년에는 예술과 인문학에서 1976년부터 83년 사이에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 20세기 책으로 보고되었다.[24]

정치, 사회, 경제에서 일어난 변화는 쿤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은 과학자나 과학사학자에게는 부족해 보일 수 있다. 패러다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용어는 내용을 결여한 것으로 보이는 클리셰와 전문가인 척하는 용어가 되었다.[25][26]

철학 [ 편집 ]

과학혁명의 구조에 대한 최초의 광범위한 검토는 파울 파이어아벤트, 노우드 러셀 핸슨 등의 과학 철학자가 주장한 반실증주의적 의견의 연장으로 해석한 철학자 더들리 셰피어(Dudley Shapere)에 의해 이뤄졌다.[27] 셰피어는 이 책을 “과학적인 변화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지식의 선형적 발전이라는 일반적인 이미지에 대한 지속적 공격”으로 부르며, 그 당시의 철학적 상황에 이 책이 준 영향을 강조하였다.[28] 철학자 마이클 루스(Michael Ruse)에 따르면, 쿤은 어니스트 나이절(Ernest Nagel)이 저술한 ⟪과학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ce)의 과학 철학에 대한 반역사적인, 규범적인 접근을 신뢰하지 않았다.[29] 쿤의 책은 비록 쿤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실증주의에 대한 유사주의적 반란을 촉발시켰다.[30] 사실 쿤은 자신의 책을 ⟪통일 과학 국제 백과전서⟫에서 출판하기 위하여 주요한 실증주의자인 루돌프 카르나프를 접촉하였다.[31]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C. 살러먼은 쿤의 관점이 헤겔의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지적하였다.[32] 헤겔주의에서는 테제와 안티 테제가 모순을 일으킬 때 변증법적 변화를 통해 보다 종합적인 테제가 출현한다고 본다.[33]

사회학 [ 편집 ]

쿤의 아이디어에 직격탄을 맞은 학문 분야는 과학지식사회학이었다.[34] 해리 콜린스나 스티븐 샤핀과 같은 사회학자들은 쿤의 아이디어를 들어 논리실증주의를 반박하였다. 이들은 쿤의 아이디어를 확장하여 과학적 지식의 판별과 수용에는 논리실증주의가 주장하는 과학적 발견의 정합성 뿐만아니라 전문가의 관심 분야나 정치적 이데올리기와 같은 사회적 요인도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35]

비판 [ 편집 ]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로 과학 철학과 과학사에 도전하자 비판이 잇달았다. 1965년 국제 과학 철학 학회는 런던의 베드포드 대학교에서 이 책에 대한 특별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의 의장은 칼 포퍼였다. 심포지엄은 발제자와 다른 학자들의 논문을 발간하였는데 그 것들 가운데 대부분은 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쿤은 이들의 비판을 책에 대한 오독으로 여겼고, “마치 쿤이 둘인듯하다. 하나는 책의 저자인 쿤이고, 다른 하나는 심포지움의 포퍼, 파이어아벤트, 러커토시, 툴민, 와킨스 등의 교수들에게 비판을 받은 쿤이다”라고 언급하였다.[36]

심포지움 자료집에 실린 논문들 상당수는 쿤이 제시한 “정상 과학”이란 것이 실존하는 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파이어아벤트는 그의 글에서 쿤의 정상 과학에 대한 개념은 마치 과학계에 조직 범죄가 상존한다고 하는 것이라 썼다.[37] 포퍼는 쿤의 책 전반의 전제 내용에 대해 심한 혐오를 드러내며 “과학의 목표를 고려하는 계몽적 사고 전환과 그것의 가능한 진보(과학의 사회학, 심리학, 역사 등)은 놀랍고도 실망스럽다”고 썼다.[38]

패러다임의 개념 [ 편집 ]

1972년 스티븐 툴민은 그의 책 《인간의 이해》에서 《과학혁명의 구조》가 제시하는 혁명적 과학과 대비 되는 정상 과학 모형은 드물게 일어나는 극적인 과정보다는 흔히 일어나고 있는 과학의 재검토로 대체되는 것이 더욱 사실적인 그림일 것이라고 썼다. 툴민의 관점에서 보면 쿤이 “정상 과학”이라고 부르는 시기에서조차 재검토는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39]

판본 [ 편집 ]

Kuhn, Thomas S. (1962).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판.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72쪽. LCCN 62019621.

Kuhn, Thomas S. (1970).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Enlarged 2판.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10쪽. ISBN 0-226-45803-2 . LCCN 70107472.

Kuhn, Thomas S. (1996).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3판.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SBN 0-226-45807-5 . LCCN 96013195.

Kuhn, Thomas S. (2012).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50th anniversary. Ian Hacking (intro.) 4판.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64쪽. ISBN 978-0-226-45811-3 . LCCN 2011042476.

번역본 [ 편집 ]

토머스 쿤 저, 조형 역, 《과학혁명의 구조》,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년, ISBN 978-89-7300-003-6

토머스 쿤 저, 김명자 역,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2002년, ISBN 978-89-7291-256-9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

2011.7.14

머릿말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1962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이 책에서 논의한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이제 왠만하면 안들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 되었다.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점은 그만큼 세상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지금 다시 읽어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내가 이번에 그렇게 느꼈듯이- 상당히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이 느껴질 것인데 이는 출간당시의 시각으로는 이러한 점들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고 이제 우리는 그러한 시점이 받아들여진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이 씌여졌을때는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른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시대였다고 하면 이 책때문만은 아니라고 해도 오늘날의 우리는 이 책에서 말하는 과학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 신 패러다임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논하는 저자가 패러다임의 변화에 기여했다라는 것은 어찌보면 재미있고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토마스 쿤의 과학논평은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과학사가로서의 시점이고 또 하나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과학 혹은 지식전반에 대해 회의 하는 방식이다. 이 점은 칼 포퍼같은 철학자의 입장과는 다른데 철학자는 무엇이 옳은가라던가 과학이라 불리는 것은 어때야만 하는가라는 규범적 시점에서 이야기한다면 토마스 쿤은 어느정도 역사적 변화를 보면서 좋건 나쁘건 역사는 이렇게 변해 왔다라고 서술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과 올바른 정치란 역사속에서 어떻게 정의되고 추구되어져왔는가 혹은 실존하는 정치란 어떤 것인가의 차이다. 그러나 토마스 쿤은 인식론적인 관점속에서 왜 과학은 이럴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점도 많이 논했기 때문에 후기에 보면 기술적 묘사와 규범적 주장을 섞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판받기도 했다고 한다.

비약을 요구하는 과학발전

그렇다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이 말하고 있는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학적 발전이란 조금씩 개량되어져 일어나기 보다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을 물리치고 세상에 대한 전혀 다른 묘사를 만들어 내는 비약으로 일어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왜 이런가 하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그건 복잡성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기를 둬본 사람이라면 장기에는 이런 저런 전술이라는게 있다는 것을 알것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 전술에 따라 일단 진영을 가다듬는 일을 한다. 그런데 전술을 개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의 전술을 조금씩 조금씩 끝없이 개량해 나가는 과정인가? 그럴 때도 있지만 진정한 전술의 개량은 비약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개의 다른 종류의 전술은 둘 다 상당히 강력한 전술이라고 해도 완전히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즉 하나의 전술에서 또다른 전술로 우리가 방법을 바꾼다고 할 때 그것은 작은 개량이 아니라 완전히 전혀 다른 곳으로 비약하게 된다.

우리는 같은 것을 등산을 하기 위한 등산로를 찾는다던가, 자동차운전을 배운다던가,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찾는등 우리가 아는 수없이 많은 일들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그 핵심은 바로 복잡성에 있다. 여러가지 세부적 구조를 가진 복잡한 시스템은 각각의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의 역할에 의존하게 된다. 자동차에서 타이어의 위치는 자동차 차체의 모양에 따라 결정되는 식이다. 그러므로 전체 시스템의 개량을 노릴 때 우리는 대담한 변화가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해결책으로 이끄는 일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전이를 한다던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에서 코페르니 쿠스의 천문학으로 전이를 하는 것은 큰 비약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애매하게 쓰이고 있고 그 점을 비판받는 일도 있는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내 생각에 저자 자신도 자신은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순환논법적으로 쓰고 있다고 말하므로 패러다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말로 정확히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을 읽거나 패러다임에 대해 논하는 사람의 글을 읽어서 패러다임이란게 뭔지를 배우고 느낄 수가 있는데 이는 패러다임이 책과 글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서 쓰이는가를 봄으로서 이뤄진다.

엄밀한 논리적 전개란 패러다임에 명확한 정의를 주고 그 정의를 기반으로 해석적으로 패러다임의 특징을 논하는 것이며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저자가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은 이 책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고 그것은 분명한 것인데- 하나의 패러다임안에 있는 한 다른 패러다임으로 비약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일관성의 문제를 겪는다거나, 주어진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신뢰를 잃게 되고 그런 상황이 바로 패러다임의 위기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의 과학적 이론이나 패러다임은 칼 포퍼가 말하듯 반증적 실험에 의해 반드시 포기되지는 않는다. 왜냐면 항상 거기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비정상적 관찰이나 실험이란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며 그것은 항상 미래에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도 설명되어지는 것이 가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현재의 패러다임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하는 확실한 증거인지 아니면 단지 과학자들이 수수께끼를 푸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는 언제나 확실하지 않다. 사실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푸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현재의 패러다임이 모든 문제를 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의 위기상황이 벌어지면 기존 패러다임에서 말하는 여러가지 개념이 문란해 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기되고 그것이 과학자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면 옛 패러다임은 폐기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런 좋은 예는 위에서 말한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의 전환 같은 것인데 고전역학은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반면 양자역학은 하나의 존재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해석을 만든다.

저자가 분명한 정의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들의 나열로 패러다임을 암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스스로의 철학과 관점에 따라 그쪽이 보다 위험하지 않은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즉 정확한 정의를 만들고 시작하는 것은 하나의 패러다임에 갇히게 되는 문제를 만들고 더구나 그것은 그때 당시의 대다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에 갇히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이 뭔가를 잘 설명하는 방식은 -그러나 어느정도 오해의 소지를 가지고 있는 방식은- 패러다임을 하나의 언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영어를 쓰는 사람에게 한국어를 쓰는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한다고 하자. 엄밀하게 가르치려고 한다면 우리는 단 하나의 단어도 가르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는 프랜드가 아니고 자유는 프리덤이 아니다. 하나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 단어가 가진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문맥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아내와 와이프는 다른 말이다. 그들은 다른 사회에서 다른 의무와 권리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친구가 뭔지를 영어로 정확히 설명한다는 것은 한국어 전체에 대한 이해 혹은 한국 사회와 역사 전체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따라서 친구란 프랜드다라고 정의식으로 제시하면 착오가 생길뿐 아니라 결국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불분명한 정의를 가지고 단어들을 가르쳐주고 그 단어들이 서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이는가를 경험하면서 친구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느끼도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을 이해할 때 패러다임이 세상을 창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우리가 눈내린 초가집을 보고 있다고 해보자. 우리는 그것이 ‘집’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이 ‘짚’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지붕이 있고 눈이 그 위에 있다는 것을 안다. 이 과정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뭔가를 안다는 과정은 이미 어떤 그 하부적 대상을 안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 두 개의 의자가 있다고 하자. 서로 모양이 다른데 왜 우리는 그것을 모두 ‘의자’라고 할까. 그 이유를 답하는 것이 질문의 핵심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것인데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걸 의자라고 한 집합으로 만든 것이 언어고 인간의 발명이란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를 모두 포기하고 나면 우리는 관찰이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감각적 내용의 양은 거의 무한한 것이다. 하나의 컴퓨터 그림파일을 생각해 보자. 그걸 픽셀단위로 일일이 색과 위치를 말하면 그 그림파일의 내용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눈내린 벌판의 초가집 사진이다라는 한문장으로 말할수도 있다. 이 정보량의 압축에는 언어구조가 작동하는 것이고 언어를 개입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사고자체가 불가능하다. 너무 많은것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가정없는 사고란 불가능하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어떤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는지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고 그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의심없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 그 패러다임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그 패러다임이 보여주는 것만 있다고 생각된다. 그 패러다임을 탈출하는 것은 반증의 증거를 기반으로 하여 설득되는 일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직관과 느낌에 따른 것이거나 외부적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외부적 권위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긍정하는 쪽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일단 패러다임을 탈출하면 세계는 전혀 달라진다. 대학교수와 학부생이 한국어로 이야기하다가 영어로 대화를 한다고 하자. 말을 바꾼 것뿐인데 두 사람간의 관계가 전혀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그 차이는 곧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혁명적 변화와 사회

이러한 혁명적 성격을 분명하게 만드는 것은 과학자 사회로 불리는 집단이 등장하게 되어 더욱 그렇게 된다. 언어도 그렇지만 과학도 혼자 힘으로 혼자만 아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집단에 의해서 연구되어 지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자 집단은 하나의 패러다임을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 패러다임에 대한 믿음은 신진 과학자 집단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화된다. 교과서는 과학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고대로부터 자연법칙은 이렇게 존재했다고 가르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력법칙은 뉴튼이 만든 것이지만 중력은 우주탄생때부터 존재했다고 이해된다. 과거의 유명과학자가 한 말이나 이해를 왜곡해서 그들을 현대적 개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만든다. 그리고 물론 기성과학자 집단은 권위를 발휘하여 자신들의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열등하다거나 의미없는 일에 관심을 두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변화를 이렇게 설명해 보자. 세상이 온통 마차만 쓰이고 있었을때 누군가가 혼자 힘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고 하자. 우리는 이 사람의 생각이 순식간에 퍼지고 세상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초기의 자동차란 마차에 비해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마차가 쓰이는 세상은 마차가 가지는 문제점을 여러가지로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자동차가 등장한다고 해도 적어도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쓸모없는 물건으로 인식하게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도로와 주유소가 지금의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본다. 당연히 사람들은 개솔린을 사기가 쉬우며 차가 고장나면 고치기도 쉽다. 그런게 없는 세상에서 자동차란 기괴한 장난감 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마차시스템에 중독되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자동차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전체 인구의 반은 영어를 쓰고 반은 한국어를 쓰는 상황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므로 급속히 해결해야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변화가 시작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퍼지면 과거의 패러다임은 급속이 잊혀지고 비판받고 어리석은 것으로 인식된다. 이제 자동차의 세상에 사는 사람이 마차따위를 타려는 사람을 우습게 생각하듯이 말이다.

그 변화는 소수의 개인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일군의 사람으로 번지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사람이건 일군의 사람이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이 초기의 집단이 기성집단의 압력을 견뎌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 못하다면 패러다임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새로운 시각은 없어진다. 그렇게 되어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전체 사회로 퍼지고 과거의 패러다임은 사라지게 된다.

개인적인 차원에 대하여

그러나 모두가 과학자인것도 아니고 과학도 아닌 과학의 역사를 읽고 배운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 개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관련된 전공자가 아니라면 심하게 말해서 나는 유명한 고전을 한권읽었다고 자랑하는데나 쓸모가 있을뿐 아무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개인적 차원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없다면 말이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의 연구방식이나 과거와 현재의 과학에 대한 논의는 엄밀히 말해 과학자가 아니라면 피부에 닿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중 과학서는 물론 그나름의 의미도 있으며 재미도 있는 것이지만 대중과학서를 읽는 것과 과학을 직접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아이스크림 그림을 본 사람과 그걸 먹은 사람의 경험의 차이만큼 다르다. 따라서 이 책에서 논하는 여러 과학자의 연구방식은 실제로 과학연구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추측만 가능할 것인데 그것이 어떤 왜곡을 만들어 내어 이 책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주는 면이 분명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생선가게 주인에게 이 책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주된 의미는 바로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것에 있다. 패러다임이란 여러층위에서 정의될 수 있지만 우리가 뭔가를 알거나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기본배경이다. 패러다임을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같은 과학적 이론으로만 이해하면 그런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들은 자신은 어떤 패러다임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패러다임이란 끝없는 차원에서 존재하며 일반인이 피해갈 수 없는 기본적 차원에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토마스 쿤은 시각적 혼란의 예를 과학적 발전과 대비시키면서 진리란 무엇인가를 논한다. 어떤 그림은 보기나름에 따라 오리처럼도 보이고 토끼처럼도 보인다. 과연 이세상을 올바로 보는 방식은 무엇인가. 이 세상안에 존재한다고 생각되어지는 구조는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낸것인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모든 것이 우리마음에 따라 생긴다는 상대주의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계 그자체는 인식될수 없다. 우리의 인식과정 사고 과정 그자체가 사실을 선택하는 과정이기때문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면 세계에 대한 인식 그 자체가 달라진다.

비트겐슈터인의 오리토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아야 한다. 자신의 패러다임이 뭔지를 인식하는 만큼 패러다임은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처럼 하나의 도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때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상은 그 패러다임의 노예로 강력한 제약에 빠져서 살게 된다.

무엇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패러다임의 전환은 엄밀하게 논리적인 것이 될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사람의 사고와 말은 모순적이고 애매모호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데 그 사람이 내 패러다임을 정확히 따르면서 대화해서 내 패러다임의 한계를 나에게 가르쳐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뉴튼역학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공간이 휘었다던가 시간이 늘어난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사람이 자기가 가진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붙들고 놓지 않을려고 할 때는 그렇다.

패러다임은 우리가 가진 무지를 숨긴다. 패러다임은 어느 쪽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은 의미가 없는지를 알게 모르게 정의해 주기 때문이다. 물리학방정식만 푸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당황할 것이다. 물리적 방법이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있어서 무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리적 교육은 거꾸로 그런 주관적이고 사적인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당신의 아내가 어떤 기분인가보다 태양의 무게를 측정하는 일이 훨씬 중요한 일인것처럼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암시되어진것처럼 토마스쿤은 과학을 전공하고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과 접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에 과학혁명의 구조의 내용은 과학이론도 막시즘이나 민족주의처럼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하는 것같아 보인다. 그리고 거꾸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우리가 사회적 변화에 대해 가지는 이해가 어떻게 변화하는 가를 토마스 쿤의 책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는 면도 있다.

당신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믿는다면 그래서 그 이데올로기가 이 세상이 왜 이 모양 이 꼴로 나쁜지에 대해 어떤 설명을 준다면 -그것이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싸움이든, 환경문제든, 자유시장의 문제든, 민족 정체성의 문제든- 그 이데올로기는 당신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주목하게 하거나 무시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이데올로기를 믿는지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고 쉽게 말하지 않는게 좋다. 보이지 않는게 항상 더 중요하다. 우리의 무지가 존재하는 경계선이 어디에 있는지, 왜 나는 지속적으로 그걸 보지 못하는지를 사색하는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물론 과학자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닐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복잡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여러가지 미디어가 주는 내용은 증가하면서도 어떨 때 오히려 그 불확실성은 더욱 커 보인다. 이같은 것은 우리가 모두 어떤 패러다임의 계곡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크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개인적 행복이나 생활의 만족감의 향상에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원에서 패러다임의 문제를 인식하고 끝없이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쿤

목차

이언 해킹의 서론

저자의 서문

1 서론: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에로의 길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13 혁명을 통한 진보

후기─1969

역자 해설

역자 후기

찾아보기

이언 해킹의 서론

‘본질적 긴장 The Essential Tension’은 ‘구조’ 전후로 발표했던 철학적 논문들을 모아놓은 뛰어난 책이다. 7

이 책은 ‘구조’의 출간 50주년을 기념한다. 1962년은 오래 전이다. 우선 과학 그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9

1962년과 2012년 사이에는 다른 근본적인 차이도 있다. 그것은 이 책의 핵심인 기초물리학과 관련된 것이다. 1962년에는 정상상태 우주론과 빅뱅 이론이라는 두 가지 경쟁하는 우주론이 잇었는데, 이들은 우주와 그 기원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상을 제공했다. 1965년 이후, 특히 우주배경복사에 대한 거의 우연한 발견이후, 정상과학으로서 풀어야 할 뚜렷한 문제를 잔뜩 가진 빅뱅이론만 남게 되었다. 10-11

그런데 이 책은 역사인가, 아니면 철학인가? 1968년에 쿤은 한 강연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면서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들 앞에 실제 과학사학자로서 서 있습니다…나는 미국 역사학회의 회원이지만 미국철학회의 회원은 아닙니다.” 11

‘구조’는 과학의 진보가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인 경로가 아니라는 당혹스러운 생각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덜 적절한 관념, 덜 적절한 상호작용으로부터 벗어나는 의미에서의 진보이다(13장). 13

상대성 이론과 양자물리학이 결합해서 오래된 과학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형이상학까지도 폐기해버렸다. 칸트는 절대적인 뉴턴식의 공간과 한결 같은 인과성의 원리가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필요조건들, 즉 선험적인 사고의 원리라고 가르쳤다. 물리학은 그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원인과 결과는 그저 외양에 지나지 않으며 실재의 깊숙한 곳에는 불확정성이 존재했다. 당시 과학에서 혁명은 시대의 질서였다. 쿤 이전에 칼 포퍼(1902-1994)는 가장 영향력있는 과학철학자였다. 16

전문학술지를 살펴보면, 여러분은 다음의 세 가지 유형의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라고 쿤이 적었다. 1. 중요한 사실의 결정 2. 사실과 이론의 일치 3. 이론의 명료화가 그것이다. 19

정상과학을 퍼즐 풀이라고 특징지은 것은 쿤이 정상과학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비쳐질 수 있다. 반대로 그는 과학활동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그 대부분은 정상과학이라고 생각했다. 21

우리가 쓰는 패러다임의 고대어에 대한 영문 번역은 대개 사례example로 번역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보다는 가장 뛰어나고 가장 모범이 되는 사례라는 범례(exemplar)에 좀 더 가까운 뜻으로 이를 사용했다. 그는 두 가지 유형의 논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종류는 근본적으로 연역적인 것인데, 여기에는 설명되지 않은 숱한 전제들이 필요했다. 두 번째는 근본적으로 유비적인 것이었다. 24

변칙현상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anomaly에서 a는 ‘부정’의 의미이다. … 변칙현상은 법과 같은 규칙성에 반하는 것으로, 더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예상한 것에 반하는 것을 말한다. 34

쿤은 제9장에서 과학혁명의 필연성에 대해서 논한다. 그는 이러한 변칙현상, 위기,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패턴이 없다면, 우리는 진흙 속에 빠져버린 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주장하려는 듯하다. 쿤에게 새로움이란 과학의 품질을 증명하는 증명서이며, 혁명이 없다면 과학은 퇴화할 것이다. 35

이론은 예측에서 정확해야 하고, 모순이 없어야 하며, 적용범위가 넓어야 하고, 현상을 질서정연하고 정합적인 방식으로 제시해야 하며, 새로운 현상이나 현상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제시하는 데에 효과적이어야 한다. 쿤은 이 다섯 가지 가치 모두에 찬동했으며, 그는 이런 가치들을 과학자 공동체 전체와 공유했다. 이것이 과학적 합리성의 부분에 다름 아니며, 이런 관점에서 쿤은 ‘합리주의자’이다. 41

새로운 종들의 관계는 서로 교배할 수 없다는 사실로 특징지어지듯이, 새로운 전문분야들도 어느 정도는 서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것이 진짜 내용을 가지는 상호 공약불가능성의 개념이 활용된 경우이다. 43

혁명은 과학의 영역을 바꾸며, 심지어 (쿤에 의하면) 우리가 자연의 일정한 측면에 대해서 말하는 언어 그 자체를 바꾼다. 여하튼 혁명은 새로운 부분의 자연을 연구하도록 우리를 굴절시킨다. 쿤은 혁명이 격변을 일으킬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한 이전 세계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식으로 진보한다는 격언을 만들었다. 이것은 미리 설정된 목표를 향한 진보가 아니다. 이것은 한때 잘 작동했지만, 더 이상 새로운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진보이다. 이 ‘벗어나는’이라는 생각은 과학이 우주의 유일한 진리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지배적인 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모든 것에 대한 유일하게 참되고 완벽한 설명이 오직 하나 존재한다는 생각은 서양의 전통에 깊이 박혀 있다. 이것은 실증주의의 아버지인 콩트가 인간의 탐구의 신학적 단계라고 불렀던 시기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45

요즘의 분석철학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진리에 대해서 수많은 이론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쿤은 소박한 ‘대응이론correspondence theory’을 거부했다. 이는 참된 진술이 세상의 사실에 대응한다는 이론이다. 순환성에 근거할 수만 있다면, 아마 빈틈없는 분석철학자들 대부분은 똑 같은 입장을 취할 것이다. 여기서 순환성이란 진술을 말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임의적인 진술이 대응되는 사실을 명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47

언론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책의 목록을 꼽을 때에도 ‘구조’는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실제로 “우리가 지금 홀려있는 과학의 이미지”를 바꾸었다는 점이다. 영원히. 50

저자의 서문

나는 패러다임이 어느 일정한 시기에 전문가 집단에게 모범이 되는 문제와 풀이를 제공하는, 보편적으로 인식된 과학적 성취라고 간주한다. 55

1. 서론: 역사의 역할

아마도 과학은 개별적인 발견과 발명의 누적에 의해서 발달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그와 동시에 바로 이 학자들은 과거의 관찰과 믿음에서 온 “과학적인” 요소를, 그들의 선대 과학자들이 주저하지 않고 ‘오류’와 ‘미신’이라고 못박았던 것들로부터 구별하는 데에서 점차 곤경에 빠지고 있다. 63

제3-5장에서 정상과학을 검토하고 나면, 결국 우리는 그러한 연구를 가리켜서, 자연을 전문적인 교육에 의해서 제공된 개념의 상자들에 끼워 맞추려는 격렬하고 헌신적인 시도라고 묘사하고 싶어질 것이다. 66

때로는 정상적인 문제, 즉 기존의 규칙과 과정에 의해서 풀려야 하는 문제가 그것을 거뜬히 풀 수 있는 가장 유능한 학자들의 되풀이되는 공격에도 풀리지 않는다. 또 어떤 경우에는 정상연구normal research의 목적으로 고안되고 만들어진 도구가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무리 애를 써도 전문적 예측과는 들어맞지 않는 변칙현상이 나타나게 된다…즉 어떤 전문분야가 과학활동의 전통을 전복하는 변칙현상들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을 때, 드디어 비정상적인extraordinary 탐구가 시작되는데, 이는 그 전문분야를 과학의 실행을 위한 새로운 기초가 되는 일련의 새로운 공약으로 이끈다. 전문분야의 공약에 변동이 생기는 비정상적인 에피소드들이 바로 이 책에서 과학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들이다. 과학혁명은 전통준수적인 정상과학 활동을 보완하는 전통파괴적인 활동이다. 67-68

응용범위가 얼마나 전문적이든 간에, 새로운 이론이 이미 알려진 것을 단순히 누적적으로 보완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거나 혹은 전혀 없다. 새로운 이론이 동화되기 위해서는 기존 이론의 재구축과 기존 사실의 재평가가 필요한데, 이는 본연적으로 혁명적인 과정이며, 한 사람에 의해서나 하룻밤 사이에 완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69

2. 정상과학에로의 길

이 책에서 ‘정상과학 normal science’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활동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성취는 더 나아간 실천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한동안 인정한 것을 말한다. 73

물리광학에서 패러다임의 이러한 전환들은 과학혁명이며, 하나의 패러다임으로부터 혁명을 거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연속적으로 이행하는 것은 성숙한 과학에서의 통상적인 발달양상이다. 그러나 뉴턴의 연구가 출현하기 이전 시대의 특징적인 양상은 그렇지 않으며, 이 차이는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주제이다. 76

“진리는 혼동에서보다는 실수로부터 더 쉽게 나타난다.”-F. Bacon. Novum Organum. 84

3. 정상과학의 성격

패러다임은 전문가들 그룹에 시급하다고 느낀 몇몇 문제를 푸는 데에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라는 이유로 그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보다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일한 문제에 대해서 완벽하게 성공적이라든가,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상당히 성공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91

나는 사실적 과학탐구에는 오직 세 가지 정상적인 초점이 있다고 보는데, 물론 이것들은 항상 구별되거나 또는 영구히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패러다임이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 특히 뚜렷하게 흥미롭다고 밝히는 사실들의 부류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 사실들을 적용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그런 사실들을 정확도를 높이고 더욱 다양한 상황 속에서 확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93

…두 번째 사실의 결정은 패러다임 이론으로부터 유도되는 예측들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사실의 결정이다. 이는 일상적이지만 첫 번째 것보다 작은 규모로 행해지며 그 자체로서의 흥미는 대단하지 않은 것들이다. 94

…나는 실험과 관찰의 세 번째 부류가 정상과학의 여타 사실 수집활동을 모두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패러다임 이론을 명료화하기 위해서 수행되는 경험적인 연구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남아있는 이론적 모호성의 일부를 해결하고 이전에는 단지 관심을 끄는 것에 그쳤던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허용하게 된다. 이 부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그것을 설명하려면 이를 다시 세 가지로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부다 수학적인 과학에서는 명료화를 겨냥한 실험의 일부가 물리적 상수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96

…두 번째는 과학자들이 정량적인 법칙을 얻기 이해서도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체의 압력과 부피의 관계를 나타내는 보일의 법칙, 전기적 인력에 대한 쿨롱의 법칙, 생성된 열량을 전기저항과 전류에 연관 짓는 줄의 관계식 등이 모두 이 범주에 든다. 97

…실상 정성적 패러다임과 정량적 법칙 사이의 관계는 매우 일반적이며 긴밀하기 때문에, 갈릴레오 이래로 실험적 측정에 필요한 장치가 고안되기 한참 이전에도 패러다임의 도움을 받아 그러한 법칙을 추측할 수 있는 경우가 흔했다.

마지막으로 패러다임을 명료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세 번째 유형의 실험이 존재한다. 다른 것들에 비해서 이 실험은 자연에 대한 탐구작업에 가까우며, 자연의 규칙성에서의 정량적 측면보다도 정성적 측면을 더 많이 다루는 시대와 과학들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98

정상과학의 다른 어느 유형도다도 패러다임 명료화의 문제는 이론적이면서도 동시에 실험적이다. 104

나는 이 세가지 유형의 문제들, 즉 의미 있는 사실의 결정, 사실의 이론과의 일치, 그리고 이론의 명료화 등은 실험과학과 이론과학 양쪽에서 정상과학 문헌 모두를 차지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과학문헌의 모두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일반적이 아닌 비정상적인 문제들도 들어 있으며, 이런 비정상적인 문제의 풀이는 과학적 활동 전부를 특별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문제들은 요구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문제들은 정상연구의 진보에 의해서 마련된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출현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문제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압도적 다수는 보통 앞에서 요약한 세 가지 범주 가운데 하나에 속하게 된다. 패러다임 아래에서의 연구는 여타의 방법으로는 수행될 수 없으며, 그 패러다임을 버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 정의하는 과학의 실행을 중단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곧이어 실제로 그러한 패러다임이 폐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폐기가 바로 과학혁명이 돌아가는 축이 된다. 105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정상연구의 문제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도 그 연구가 개념적이거나 현상적으로 중요한 새로운 발견을 얻어내는 것을 거의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106

퍼즐의 결과가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이냐 또는 중요한 것이냐는 퍼즐에서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대조적으로 참으로 급박한 문제들, 이를테면 암치료라든가 평화를 영속시키는 계획 같은 것은 전혀 퍼즐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대체로 이런 문제들에 아무런 해답도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08

나는 규칙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도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는 바이다. 116

5. 패러다임의 우선성

표준 해석이나 규칙으로 어떻게 환원되는가에 대한 합의가 없이도 패러다임은 연구를 이끌 수 있다. 정상과학은 부분적으로 패러다임을 직접 점검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것은 흔히 규칙과 가정의 정식화의 도움을 받지만 그렇다고 이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하나의 패러다임의 존재는 어느 완벽한 규칙의 집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119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정상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겨냥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성공적인 경우에도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거나 뜻밖의 현상들이 과학 연구에 의해서 끊임없이 베일이 벗겨졌고, 과학자들에 의해서 첨단의 새로운 이론들이 또다시 거듭 창안되었다. 129

발견은 변칙현상(anomaly)의 知覺, 즉 자연이 패러다임이 낳은 예상들을 어떤 식으로든 위배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이러한 예상들은 정상과학을 지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변칙현상의 영역에 대한 다소 확장된 탐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그 변칙현상이 예상한 것으로 귀결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 이론을 조정하는 경우에 종결된다. 130

정상과학이 새로움을 지향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것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는 탐구임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그렇게 효과적인지를 보기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과학의 발달에서나 최초로 수용된 패러다임은 보통 그 과학의 종사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관찰과 실험의 대부분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듯이 느껴지게 된다. 그러므로 더욱 발달함에 따라서 정교한 장치의 제작과 심오한 의미의 용어와 숙련의 개발이 이루어지며, 개념이 점점 더 세련되면서 상식적인 원형과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으로 이런 전문화는 과학자의 시야를 크게 제한하며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서 상당히 저항하게 만든다. 과학은 점점 경직되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이 과학자 집단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분야에서는 정상과학이 더 상세한 정보와 다른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정확한 관찰과 이론의 일치로 과학자들을 인도한다. 146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단은 언제나 그와 동시에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결단이 되며, 그 결정으로까지 이끌어가는 판단은 패러다임과 자연의 비교 그리고 패러다임끼리의 비교라는 두 가지를 포함한다. 165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창의적인 과학자들은 뒤죽박죽된 세계에서도 살 수 있어야 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나는 다른 책에서 그 필요성을 가리켜서 과학 연구에 내재된 ‘본질적 긴장 essential tension’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167

문제가 생긴 좁은 영역에 과학적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그리고 과학자들이 실험적 변칙현상을 그 자체로서 인식하도록 대비함으로써, 위기는 흔히 새로운 발견들을 낳게 된다. 180

거의 예외 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러한 근본적 창출을 이룬 사람들은 아주 젊든가 아니면 그들이 변형시키는 패러다임의 분야를 아주 새롭게 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점은 명시적으로 밝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이유는 확실히 이것이 이전 활동 때문에 정상과학의 전통적 규칙에 매이는 일이 거의 없고, 특히 이전의 규칙들이 해볼 만한 게임을 더 이상 정의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목격하고 그것들을 대치할 다른 규칙들을 착상하기가 쉬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82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과학혁명이란 보다 옛 패러다임이 양립되지 않는 새 것에 의해서 전반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누적적이지 않은 발전의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이외에 말해야 할 것이 더 있는데, 그 본질적 요소는 한 가지 물음을 더 제기함으로써 잡힐 수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째서 혁명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정치적 발전과 과학의 발전 사이에는 엄청난 본질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유비관계가 양쪽에서 혁명이라는 은유를 정당화시키는가? 184

일단 진영의 양극화가 발생하면, 정치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은 실패한다. 각각의 진영들은 정치적 혁명이 수행되고 평가되는 제도적 매트릭스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며, 서로 간의 혁명적인 차이를 조정하는 데에 필요한 초제도적인 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의 투쟁에 나선 당파들은 결국 흔히들 무력을 포함한 대중 설득의 기술에 호소하기에 이른다. 혁명은 정치제도의 진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지만, 그런 역할은 혁명이 부분적으로 정치 외적이고 제도 외적인 사건들이라는 사실에 의존한다. 186

예기치 못했던 새로움을 누적적으로 쌓는 일은 과학적 발전의 규칙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예외이다. 역사적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과학이 누적성이라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이상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과학은 이런 이상과는 종류가 다른 활동일 것이다. 190

뉴턴에서 아인슈타인 역학으로의 변환은 사물이나 개념을 추가적으로 도입하지 않았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 변환은 과학자들이 세계를 보는 데에 사용하는 개념적 네트워크가 변화한 것이 과학혁명임을 특히 분명하게 보여준다. 198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사람이 무엇을 보는가는 그가 바라보는 대상에도 달려 있지만, 이전의 시각-개념 경험이 그에게 무엇을 보도록 가르쳤는가에도 달려있다. 그러한 훈련이 없는 상태에서는,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처럼, “꽃이 피고 벌이 윙윙거리는 혼동(유아가 경험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이라는 뜻으로 제임스가 쓴 표현)”만이 존재할 뿐이다. 212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한 과학자는 해석자이기보다는 차라리 거꾸로 보이는 렌즈를 낀 사람과 비슷하다. 이전과 똑 같은 무수한 대상들을 마주 대하고 그렇게 변함없는 대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학자는 대상들의 세부적인 것의 여기저기에서 속속들이 그 대상들이 변형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223

그러나 감각적 경험이 확고하고 중립적인 것일까? 이론이란 주어진 데이터에 대해서 인간이 붙여놓은 해석에 불과한 것일까? 지난 3세기 동안 서양철학을 거의 주도하다시피 한 인식론적인 관점은 즉각적으로 분명히 ‘그렇다’라고 못을 박는다. 나는 진전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러한 관점을 완전히 철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런 관점은 더 이상 효과적으로 기능하지 못하며, 중립적 관찰언어를 도입함으로써 그것을 기능하도록 만들려는 시도들은 현재 전망이 없는 것 같다. 229

오리-토끼 실험은 동일한 망막에 맺힌 영상을 얻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음을 입증한다. 거꾸로 보이는 렌즈는 서로 다른 망막 영상을 받은 두 사람이 똑 같은 것을 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학에는 이와 동일한 효과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대단히 많으며, 그로부터 제기되는 의구심은 실제적인 관찰언어를 제시하려고 했던 역사적 시도에 의해서 더욱 깊어진다. 230

11. 혁명의 비가시성

교과서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과학 활동의 시초로부터 출발하여 오늘날의 패러다임들 속에 구현된 특정 목표들을 향해서 진력해온 것이 된다. 흔히 건축에서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에 비유되듯이, 과학자들은 당대의 과학 교과서 속에 제공된 정보더미에 또다른 사실, 개념, 법칙, 또는 이론들을 하나씩 하나씩 추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이 발전되어온 방식이 아니다. 현대의 정상과학에서의 퍼즐들은 대부분 가장 최근의 과학혁명이 완결되기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중 과학의 역사적 시초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는 문제들은 거의 없다. 보다 앞선 세대들은 그들 나름의 도구와 해결의 규범을 가지고 그들 고유의 문제들을 연구했다. 248

12. 혁명의 완결

패러다임의 검증은 주목할 만한 퍼즐들을 풀기 위해서 끊임없이 거듭된 실패가 위기를 초래한 뒤에야 비로소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조차도 위기의식은 패러다임의 대안적 후보를 출현시킨 다음에야 일어나게 된다. 퍼즐들에서 그러하듯이, 과학에서도 검증상황은 단순히 단일 패러다임과 자연과의 대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검증은 과학자 공동체에 충실하려는 두 개의 경쟁적 패러다임 사이에서의 경합의 일부로서 일어난다. 254

우리는 이미 경쟁하는 패러다임의 추종자들이 어째서 상대방의 관점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그 이유들은 총괄적으로 혁명 이전과 이후의 정상과학 전통에서의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라고 표현되었으며, 우리는 여기서 그것들을 간단히 요약하기만 하면 된다. 258

내가 더 이상 잘 설명하기 힘든 의미에서, 경쟁적 패러다임의 제안자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그들의 연구를 수행한다. 하나는 서서히 낙하하는 속박된 물체들을 다루고,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운동을 반복하는 진자를 다룬다. 한쪽에서는 용액이 화합물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혼합물이다. 한쪽은 평평한 형태에, 다른 한쪽은 곡면 형태의 공간에 포함된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두 그룹의 과학자들은 같은 방향과 같은 관점에서 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어느 것을 본다는 뜻은 아니다. 양쪽이 모두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대상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영역에서는 그들은 서로 다른 것들을 보며, 대상들이 서로 맺는 다른 관계 속에서 그것들을 본다. 261

막스 플랑크는 그의 ‘과학적 자서전 Scientific Autobiography’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서글프게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263

13. 혁명을 통한 진보

예를 들면 경제학자들이 그들 분야가 과학이냐 아니냐에 관해서 사회과학의 다른 여러 분야의 학자들보다 논쟁을 덜 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 그것은 경제학자들이 과학이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들이 합의를 이룬 것이 경제학이기 때문인가?

더 이상 단순히 의미론적인 것은 아니지만, 이 관점은 과학과 진보의 관념 사이의 뒤얽힌 관계를 드러내는 데에 도움이 되는 逆을 가질 수 있다. 276

자연과학자들과는 달리 흔히 사회과학자들은 예컨대 인종차별의 결과라든지 경기 순환의 원인 등의 문제처럼 주로 해결책의 강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견지에서 연구문제를 선택하는 것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어느 쪽 그룹이 더 빠른 속도로 문제들을 해결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 281

정상상태에서 과학자 공동체는 그 패러다임이 규정하는 문제나 퍼즐들을 푸는 데에 굉장히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더욱이 그 문제들을 해결한 결과는 필연적으로 진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문제가 없다. 283

과학에서 힘은 곧 정의라는 명제를 제시하게 되는 셈인데, 사실 이 명제는 패러다임 사이의 선택을 결정하는 과정과 권위의 성격을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전혀 틀린 것은 아닌 명제이다. 권위만이, 특히 비전문적 권위만이 패러다임 사이의 논쟁에서 결정권자의 역할을 한다면, 이 논쟁의 결과는 혁명이기는 하겠지만 과학혁명은 아닐 것이다. 과학의 존재의미는 어느 특별한 유형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패러다임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에 달려 있다. 285

과학에는 자연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진리에 부합되게 하는 하나의 설명이 있으며, 과학적 성취에 대한 합당한 측정이란 우리를 그 궁극적 목표에 얼마나 근접시켰는가를 나타내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가? 만일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향한 진화를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의 진화로 대치할 수 있다면, 다수의 혼동스런 문제들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귀납의 문제가 이 미로의 어딘가에 놓여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289

다윈의 이론에서 생존을 위한 유기체들 간의 단순한 경쟁의 결과인 자연선택이 고등 동식물과 더불어 인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믿음은 가장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측면이었다. 특정한 목표가 없는데, ‘진화’ ‘발전’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용어들은 갑자기 자기 모순적인 것으로 비쳐졌다. 291

후기-1969

패러다임은 어떤 주어진 과학자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테크닉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그 집합의 한 가지 요소인 구체적인 문제 풀이를 가리키는데, 이것이 모형이나 예제로서 사용될 때 명시적인 규칙을 대신해서 정상과학의 남은 퍼즐을 푸는 기초가 된다. 294

전혀 다른 자극들이 동일한 감각을 일으킬 수 있고, 똑 같은 자극이 전혀 다른 감각을 일으킬 수도 있으며, 끝으로 자극에서 감각으로 가는 경로는 부분적으로 교육에 의해서 조건화된다. 서로 다른 공동체에서 길러진 개인들은 때로는 마치 다른 사물을 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자극을 감각과 일대일로 동일시하려고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제로 자극과 감각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318

적절하게 프로그램된 지각의 메커니즘은 생존의 가치가 있다. 서로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이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 서로 다른 지각을 가질 수 잇다고 해서, 그들이 아무 지각이든지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322

정상과학의 실행은 범례들로부터 습득한, 대상들과 상황들을 유사성 집합들로 분류하는 능력에 달려 있는데, 이때 유사성 집합은 ‘어떤 점에서 유사한가?’라는 물음에 답하지 않고서도 분류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원초적이다. 그러면 혁명의 한 가지 핵심적 측면은 유사성 관계들 중 일부가 변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동일한 집합으로 묶였던 대상들이 혁명 후에는 서로 다른 집합들로 분류되며, 그 반대도 일어난다. 328

어느 이론 또는 세계관을 자신의 고유한 언어로 번역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이전에 낯설었던 언어를 단지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토착민처럼 살면서 그 언어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전환은,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좋은 이유가 있더라도, 한 개인이 심사숙고해서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을 배우는 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그는 그런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과, 어떤 선택을 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언어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333

어떤 비판자들은 내가 서술(description)과 처방(prescription)을 혼동해서, ‘사실is’은 ‘당위ought’를 함축하지 않는다는 유서 깊은 철학적 명제를 위배했다고 주장한다. 337

역자해설

이번에 출간한 ‘과학혁명의 구조(이하 ‘구조’는 2012년에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토머스 쿤의 The Structure of Scienctific Revolutions의 제4판을 번역한 것이다. 쿤의 ‘구조’는 1962년에 초판이 나왔고, 1970년에 1년 전인 1969년에 쿤이 쓴 후기를 달아서 재판이 나왔다. 342

‘구조’라는 책의 핵심주장은 잘 알려져 있다.

과학의 한 분야는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불리는 뛰어난 성취를 획득함으로써 정상과학(normal science)에 진입한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확장하고 명료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쿤의 분석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에 안주하여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의 연구활동에 종사하게 된다. 첫째로 패러다임의 틀 속에서 자연 세계 현상들의 본질에 대한 사실 탐구, 둘째로 직접 관찰한 사실과 기본 이론들로부터 예측되는 결과를 비교 설명하는 작업, 셋째로 예측과 사실 사이에 부합되는 정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의 패러다임의 수정, 보완 및 명료화 작업이 그것이다. 342-343

전통적인 과학철학자들은 어떠한 실험이나 관찰이 이론의 예측과 다른 결과를 내면 그 이론은 반증되어 폐기된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쿤에 의하면, 패러다임의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과학자 공동체는 이런 반증 사례를 패러다임으로 흡수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그 사례를 무시하는 식으로 반응을 하지, 한두 가지의 반증 사례 때문에 패러다임을 폐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343

변칙현상(anomaly)이 심각해지면서 위기가 발생을 하고 위기의 국면에는 기존의 패러다임과 경쟁하는 패러다임이 하나 또는 그 이상 등장하게 된다. 이어지는 과학혁명에서 과학자 공동체가 점차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이때 연구방법과 현상을 지각하는 관점에서 대규모 재조정이 수반되며, 개념체계 역시 재구성의 과정을 겪게 된다. 344

쿤의 주장 중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온 것은 과거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의 비교에 관련된 것이다. 쿤은 이것이 합리적인 잣대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344

한쪽에서는 특정한 현상이 설명하기 힘든 변칙현상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법칙과도 같은 당연한 현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이 둘을 어떻게 합리적인 기준만으로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쿤의 질문이다. 쿤은 이 상황을 유명한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하는데, 이 개념은 특히 과학철학 분야에서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344-345

두 패러다임 사이에 공약불가능성이 존재하고, 이것이 정상과학에서 누적적이고 연속적인 발전에 균열을 가져온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채택될 경우에 과학자들은 기존의 현상을 새로운 언어로 기술하고, 새로운 현상에 주목하며, 새로운 데이터를 내어놓는다. 또 과거에 다루어진 모든 문제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이 중에서 잊히는 것이 발생한다. 345

쿤의 ‘구조’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과학적 인식이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이 점이 쿤이 가져온 ‘혁명’이, 19세기 다윈의 혁명만큼이나 큰 반향과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또 수용되는 데에 시간이 걸렸던(그리고 아직도 충분히 수용되지 못한) 이유이다. 346

구글 학술검색에 의하면,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현재까지 5만8천회 이상 인용이 되었다. 이는 20세기에 출판된 모든 책과 논문을 통틀어 가장 많이 인용된 기록이다. 쿤은 1922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나서 1943년 물리학 전공으로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곻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라디오 통신과 관련한 전쟁 연구에 참여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 그는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과정을 밟는다. 348

쿤의 ‘구조’는 과학철학 분야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주류 과학철학은 논리실증주의(혹은 논리경험주의)와 포퍼의 과학철학이었다. 쿤은 이러한 과학철학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역사적이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수행되는가에 대해서 경험적, 사회적 측면에서 설명을 제시한 다음에 이로부터 규범적 결론을 이끌어냈다. 349

[독후감] 과학혁명의 구조감상서평레포트 – 그래요레포트

[독후감] 과학혁명의 구조감상서평레포트

[서 평] 과학혁명의 구조

목 차

Ⅰ.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

1. 책 소개

2. 서론

3. 토마스 쿤에 대하여

4. 주요 핵심의 개념

5. 책의 주요 내용

6. 저자의 과학관

7. 결언(나의 생각)

Ⅰ.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요약

1. 책 소개

서명 : 과학혁명의 구조

원서명: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저자 : Kuhn, Thomas S. 1922

주제분류 : 501

2. 서 론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책이었다. 읽어도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상당히 많이 제시되어 있는 예시들도 너무나 난해했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 책을 평가한 글을 우선 읽고나서 다행히 다시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길 수가 있었다. 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책에 대하여 쓰고 있다. 때문에 이 글을 읽을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책에서의 중심적 개념인 몇몇 단어에 대하여 조심스레 정의를 내려보고 책의 내용, 저자의 과학관을 알아보고 결언을 내릴 것이다. 우선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책의 저자인 토마스 쿤에 대하여 알아보고 본론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3. 토마스 쿤에 대하여

1922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과학연구 및 개발연구소(OSRD)에서 2년 동안 일한 뒤 모교 대학원으로 되돌아가 1949년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하버드대학교 총장인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의 권유로 학부생들에게 자연과학개론을 강의하면서 과학의 역사적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관심이 과학사상의 혁명적 변화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면서 철학?사회학?언어학?심리학을 두루 섭렵한 새로운 과학혁명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게 되었다.

적으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아 1956년 버클리대학교로 옮겨 과학사 과정을 강의했으며, 1958년 스탠퍼드대학교의 행동과학 고등연구센터(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에서 사회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활동을 한 것을 계기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냈다.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법칙?지식 및 사회적 믿음이나 관습 등을 통틀어 일컫는 개념으로서, 그는 이 패러다임이 한 시대의 세계관과 과학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과학의 발전은 개별적 발견이나 발명의 축적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교체에 의해 혁명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는 이러한 변화를 `과학혁명`이라고 불렀다. 이 새로운 과학관은 1962년에 발간한 《과학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로 발표되어 과학철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분야를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발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1)

4. 주요 핵심의 개념

여기서는 책에 나오는 주요 핵심 단어의 개념을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과제 출제 의도가 전문가적 이해가 아니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보았다.

1) 패러다임

패러다임의 정확한 의미는 이 저서에서도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전공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책을 읽어보아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 이해한 대충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어떤 한 학문 내지는 사회 분야에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제시하고 관련 분야의 연구를 통합하게 되는 이론적 틀을 일컫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한 시대의 사람들의 견해와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의 체계를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즉, 한 시대의 기정된 사실로 인정되고 있는 과학적 이론에 관련한 기본 개념, 규칙, 가치관, 태도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2) 정상과학

쿤에 따르면 정상과학이라 함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과학적 업적에 확고한 기반을 둔 연구를 의미한다. 이들 업적은 일정기간 동안 어떤 특정한 과학자집단이 연구사업의 기초로 인정한 그러한 업적들이다. 공통된 패러다임에 기반을 둔 연구자들은 과학 연구에 있어서 통일된 원칙과 기준을 갖는다. 그러한 기준의 채택과 그것이 이끌어주는 외형적인 의견의 일치는 정상과학의 전제조건, 즉 특정 연구전통의 파생과 계승을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책에 나오는 천동설과 지동설을 예를 들자면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통용이 되고 있는 학문적 이론인 천동설과 이 천동설의 오류를 밝히고 천문과학의 새로운 과학관으로 잡히게되는 지동설이 있다. 두 과학관이 대체되는 과정에서 천동설과 지동설 모두 학문적 이론이 통용되는 각각의 당시에는 정상과학이라 할 수 있으며,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의 변하여 정상과학 또한 지동설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3) 과학혁명

내가 과학을 알지는 못하지만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다양한 예를 보며 생각해본 결과 과학이라 함은 일정한 형식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에 의한 시대적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객관성을 지니고 있더라고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것이 과학이다. 예를 들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병의 자연 발생론에서 세균이론으로 옮아가는 것들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쿤이 말하는 과학혁명이라는 것은 바로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해 정상과학이 대체할 때 일어나는 것이 과학혁명인 것이다.

5. 책의 주요 내용

??과학혁명의 구조??의 본문은 총 13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은 서론으로서 과학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과학사를 이야기하는 역사적 의미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2장에서는 패러다임이 출현해 정착되기 이전의 과정인 소위 ??전과학??의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어지는 3-5장에서는 패러다임의 특징과 기능에 대해 과학사적 사례들을 통해 설명하면서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서 기술한다. 6-8장에서는 기존 패러다임과 그것으로 규정되는 정상과학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이상현상(anormaly)의 출현과 이에 수반되는 기존 과학이론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과학이론의 출현 과정에 대한 많은 역사적 사례들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9-13장에서는 혁명으로서의 과학사의 중요 사건들에 대한 예시를 통해서 세계관의 변화를 수반하는 과학혁명이 어떻게 촉발되고 진행되며 정착돼 가는가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

책을 읽어 본 바 이 저서에서 쿤이 강조하는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기존의 과학관은 과학적 법칙을 체계화하여 이론을 수립하고 객관적 지식 체계를 이루어 과학을 이해하였다. 따라서 과학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꾸준히 발전하는 누적과 점진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쿤은 그러한 통념에 반박하였다. 당시대의 정상과학의의 상태가 계속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으며, 그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의 기본 이론과 모순되는 문제들이 계속 생기게 되어 지속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그 과학자 사회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국 종래의 패러다임으로는 현실을 설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안적 이론체계들이 출현하여 과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는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종래의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통한 과학혁명에 의해 과학은 발전한다고 한다. 또한, 쿤은 두 패러다임은 누적과 점진의 과정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기존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통하여 과학혁명을 이루고 이러한 과학혁명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정상과학이 정착되어진다는 주요 내용을 상당히 많은 예시를 통해 쿤은 주장하고 있다.

그의 과학발전의 혁명적 과정은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패러다임에 의거한 정상과학적 탐구 등 패러다임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변칙성의 출현과 위기의 도래, 구 패러다임과는 비통약적 특성을 지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과 이를 수용하는 과학자 집단의 구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용은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하며, 그것은 바로 혁명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그의 과학혁명의 논리는 이처럼 비교적 간단히 서술될 수 있는 반면에, 이를 구성하는 주요개념에 대한 정의는 때로는 복잡하고 유동적이며 모호한 편이다.2)

6. 저자의 과학관

쿤의 과학관의 핵심은 과학 지식의 변천과 발전이 혁명적이라는 데 있다. 즉 과학 지식이 관찰과 실험의 검증을 통해서 누적적이고 점진적으로 진보한다는 종래의 귀납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인 과학관에서 벗어나, 한 시대의 과학은 당대의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인식체계인 패러다임에 의해 규정되며,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때 과학은 그 근본으로부터 완전히 바뀌는 혁명적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누적적 지식의 점진적 발전이라는 당시 생각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아인슈타인 같은 혁명가가 나타나 뉴턴체계의 과학에서 드러난 모순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킨 과정이 그 예다. 따라서 과학은 더 이상 객관적 자연과 이성적인 개별 과학자의 만남이 아니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이며 동시에 수많은 가치선택이 내재하는 과학자 사회의 심리적이고도 사회적인 과정인 것이다.3)

예를 들어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라는 천동설로는 설명하기 힘든 관찰 결과나 천체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기존의 천동설로는 그러한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이에 따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혹성에 불과하다는 지동설이 대두된다. 이러한 지동설을 따르는 과학자들이 늘어나면서 천동설은 쇠퇴하고 결국 지동설이 정상과학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두 이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새로운 벽돌 하나를 쌓아 지금까지 쌓아왔던 벽을 높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은 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벽을 쌓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쿤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혁명은 본질적으로 진보의 과정이 아니다. 이것을 진보라 규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패러다임간의 우열을 비교할 수 없는 합리적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이것은 바로 이들이 통약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통약성이야 말로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본질적 속성이었던 것이다. 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묻는다. “과학자집단이 내린 결정보다 나은 다른 어떤 기준이 진보를 보장해 줄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이것은 결국 과학이 어떤 객관적 진리의 체계가 아니라, 그것에 종사하는 과학자집단의 합의의 산물에 불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4)

즉, 쿤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패러다임의 우월성을 비교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즉 현재의 패러다임의 절대성을 거부하고 있다. 과학은 보편적 또는 우주적 진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상황이나 사회적 여건이 변하면 패러다임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오늘 날의 진리가 내일에는 틀린 이론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7. 결언(나의 생각)

이 책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과학혁명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말해 주는 책이다. 앞부분은 글이 어렵게 쓰여 있어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토머스 쿤의 약력을 보니 하버드 대학 물리학을 수석으로 전공한 사람이다. 그만큼 사람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책을 쓰게 되었고, 책의 글이 어렵게 느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뒷부분은 지은이의 의견 내용마다 예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어려운 내용도 쉽게 이해 시켜주며 재미를 한 층 더하게 해주는 책이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보면 현재 과학에서 패러다임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면서 정상과학이 되고 그것이 위기를 겪다보면 경쟁적인 패러다임이 출현 하게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과학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다시 새 정상과학이 생기며 새로운 위기가 생기게 된다.

쿤은 정상과학을 패러다임에 근거한 연구활동이라고 본다. 정상과학은 앞에서도 많이 연구되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그 분야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 때만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미있는 사실을 결정해야 하고, 사실의 이론에의 일치 그리고 이론의 명료화 해야한다. 명료화는 패러다임을 정렬하고 확대시키는 것이다. 쿤은 이 정상과학을 퍼즐 풀이를 한다고 말한다. 즉 규칙에 의해 진술하고 일반화를 시킨 뒤 예측했던 이론과 연결시킨다. 패러다임은 공통된 이론을 전수하다가 같은 내용을 다르게 볼 때 생긴다고 한다. 즉 잘못 된 것을 깨달은 뒤 이상한 것이 계속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이론 출현은 불안정하게 되고 선행시기를 거치면서 기존 규칙이 실패되고 새로운 규칙을 암시하여 위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러다임은 위기 상황을 맞게 된다. 이 가운데서 소수의 혁신적인 과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게 되고,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기존 패러다임과 대결하게 되는 경쟁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다가 새로운 패러다임 중 하나가 승리하게 되면, 이것에 의한 새로운 정상과학의 사이클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패러다임의 교체과정을 쿤은 과학혁명이라 한다. 과학혁명에서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또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 가치체계 등도 모두 바뀌게 된다.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과정은 설득이나 다수의 지지. 즉, 과학자 집단을 설득하여 다수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쿤은 어떠한 것을 패러다임을 수용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과학자 집단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용된 패러다임은 교과서나, 학술잡지, 그리고 교육 등을 통해 새로운 과학자들에게 주입되며 이러한 전통을 통해 정상과학이 이루어진다.

과학교육도 패러다임에 맞추어 이끌려 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패러다임이 변함에 따라 과학교육 내용도 변화하게 된다. 교육 사회학에서 보면 교육은 그 시대의 사회를 반영한다. 과학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의해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항상 옳은 것만이 아니라고 이 책에서 말한다. 패러다임에 위기가 오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교과서에 많은 내용이 들어가게 된다고 했다. 따라서 과학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때의 지식만을 습득하여 계속 가르치면 안된다. 과학교육에 있어서 학습 내용과 방법을 계속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패러다임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님으로 거기에 완전히 이끌려서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내용을 배제하면서 교육해야한다고 생각한다.

※ 참고문헌

1) 네이버 홈페이지 백과사전 (www.naver.com)

2) 조형, 1980, 「서평 :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저 (著)」 “철학연구회”

3) 송진웅, 2000, 「과학사에 관심을 가진 쿤」”과학동아 2000년 10월호”

4) 이한구, 1991, 「현대의 사상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과학혁명」 “한국논단(월간)”

각주)—————–

네이버 홈페이지 백과사전 (www.naver.com)

조형, 1980, 「서평 :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저 (著)」 “철학연구회”

송진웅, 2000, 「과학사에 관심을 가진 쿤」“과학동아 2000년 10월호”

이한구, 1991, 「현대의 사상 :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과학혁명」 “한국논단(월간)”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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