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비 와 늦은 비 | 성경 속 배경 이해하기: \”늦은비\”가 무엇일까요? 205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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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종종 언급되는 \”늦은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기후/문화를 통해 \”늦은비\”에 대해서 알아보고,
성경에 표현된 \”늦은비\”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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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비와 늦은비 – 이스라엘의 우기 때에 내리는 축복의 비

이스라엘의 농사에서 때에 맞게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는 하나님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비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상징적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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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asteve.com

Date Published: 11/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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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내려주시는 이른 비와 늦은 비 은혜 – 크리스천투데이

겨울 우기 동안 내리는 비는 세 종류로 구분된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내리는 이른 비(10월 경)와 겨울 우기가 끝나는 마지막 기간에 내리는 늦은 비(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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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4/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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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비와 늦은비를 주리라 – 다음블로그

여기서 이른비는 늦가을(9-10월)에 내리는 비를 지칭하는 것이며, 늦은비는 봄에(3-4월) 내리는 비를 지칭합니다. 가나안 땅에는 습기가 부족함으로 가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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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6/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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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비와 늦은 비 – 네이버 블로그

이른비는 씨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늦은 비는 이미 익은 곡식이 완전히 여물어 추수하기 위해 내리는 비이다. 왜 야고보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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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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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비와 늦은비 성령 – 순례자의 여로에서

엘렌 화잇의 종말론에 활력을 불어 넣는 주제는 늦은비 성령의 역사이다. 화잇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늦은비 성령 강림 사건을 예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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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ckam.kr

Date Published: 6/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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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비와 늦은 비 (신 11:10-12) – 기멀전

말씀의 비가 내 심령 속에 이른비와 늦은비처럼 내릴 때 내 영혼은 건강해지고 살찌고 아름답게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삭막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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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4/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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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비와 늦은비

진리의성경(bible.rexpia.com) = 킹제임스 성경 말씀을 통해 바른 교리와 진리를 가르칩니다. 예수그리스도만 나타내는 유기체적인 교회 지체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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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rexpia.com

Date Published: 9/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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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비와 늦은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욜2:23> > 쉴만한 물가

특별히 “비”는 성경에서 축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특히 이스라엘에서의 “비”는 농사와 관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풍요와 성장을 상징하는 의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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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wpc.kr

Date Published: 5/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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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초막절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이른비와 늦은비의 예언)

우기가 시작되는 10~11월 즈음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 하고, 우기가 끝나가는 3~4월경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 부른다. ‘이른 비’는 늦을 경우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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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kongi0203.tistory.com

Date Published: 7/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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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 성령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다만 “이른 비 늦은 비”라는 말 뿐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 기후에 가을에 파종할 때 내리는 가을비를 이른 비라 하고 보리와 밀을 추수할 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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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3amsda.org

Date Published: 10/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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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른비 와 늦은 비

  • Author: NextGen Christian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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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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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비와 늦은비를 주리라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리라

성경본문:요엘2:21-27절

이스라엘 나라의 추수는 우리나라 추수와 비슷하게 일년에 두번 이루어지는데 봄, 가을에 있습니다. 봄에는 보리와 밀을 추수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절기를 오순절 혹은 맥추절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른비는 늦가을(9-10월)에 내리는 비를 지칭하는 것이며, 늦은비는 봄에(3-4월) 내리는 비를 지칭합니다. 가나안 땅에는 습기가 부족함으로 가을에 씨를 뿌릴 때에는 이른비가 와야 하고 봄의 곡식 수확 전에는 반드시 늦은비가 와야 결실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표현 중에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서 이른 비와 늦은 비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농부들이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두 번의 비를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 첫 번째 비는 늦 가을에 내리는 비로 이 비를 “이른 비”라고 부릅니다. 이른 비가 땅을 적시게 되면 농부들은 밀이나 보리를 심게 됩니다. 이렇게 심은 씨앗들은 이른비의 수분을 받아 파릇파릇하게 싹이 돋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 일기가 추워져서 겨울의 추위를 지나는 동안 겨우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가 봄이 오면 훈훈한 동남풍과 함께 하늘에서 만물을 녹여주는 단비가 내리게 됩니다. 이것을 “늦은 비‘라고 부릅니다. 이 늦은비가 내린 후 만물이 흡족히 수분을 공급받고 곡식들이 급속히 자라나서 추수를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른 비와 같은 은혜로 믿음의 싹이 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시련과 연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늦은비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 바로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우리의 신앙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 주신다는 역사적 배경이 무엇입니까? 요엘 선지자가 한 말은 요엘이 살았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도 않고 죄악에 빠져서 악을 행할 때 여러 예언자들을 통하여 책망해 오다가 급기야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재앙들은 대개 세 가지 양상으로 임했습니다. 첫째 심한 한재 즉 가뭄이 계속되어 들에는 푸른 풀이 없었고 모든 식물들 즉 곡식과 과일이 결실하지 못하였고 들에는 푸른 풀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둘째, 메뚜기 팟종이 늣과 황충이 온 세상에 나머지 푸른 풀과 나무 껍대기까지 다 갉아 먹어서 나무 가지가 다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셋째, 들에서는 들불이 나서 마른 풀과 나무까지 다 타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나 짐승이 먹을 음식도 음료도 구할 수가 없고 소떼나 양떼가 풀이 없어서 새끼를 낳아도 내어 버릴 정도가 됩니다. 이러한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뉘우쳐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하게 사모하며 소망하는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비는 폭풍과 비의 신 바알이 전적으로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왔지만 여기서 요엘 선지자는 그러한 관념과 전통을 깨뜨리고 오직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비를 내려주실 수 있음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를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비는 성령님의 은혜, 축복을 상징합니다. 성경의 저자들 중 많은 선지자들이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하여 언급을 하였는데, 그들은 성령이 임하시어 인간들을 위하여 특별한 일을 성취할 시기를 내다보았을 뿐 아니라 그때를 간절히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비”와 “물”과 “불” 그리고 하늘로부터 “부어 주신다.”라는 표현들은 거의 다 성령을 가리키는 그림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나기를 땅 위에 부어 주시는 것처럼 성령을 그분의 백성들 위에 부어 주시기를 약속하셨습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른비와 늦은비로 비유된 성령의 역사가 우리 구원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시작이나 과정, 그 완성도 이른비와 늦은비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게 만들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으면 믿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이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주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 주사 모든 만물을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질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주시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1. 이른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큰 일을 행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함과 착함과 의로움을 보고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들이 비록 타락하고 부패하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를 부어주십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른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것입니까?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그 말씀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른비와 늦은비를 주시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는 것은 과거에 이루어진 사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성취하게 될 구원의 완성된 사건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는 것은 자기 백성에 대한 심판의 칼을 거두시고 그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사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시켜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은 역사적으로 볼때에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백성들에게 고통에 빠지게 하였던 북쪽 군대를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몰아내며, 사해와 지중해로 몰아넣어 멸절시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BC 701년에 앗수르 대군 18만 오천명을 죽으시고, 북쪽 군대를 심판하사 한 순간에 멸망시켰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백성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고, 과거의 죄를 다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친히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하게 내려주사 땅을 회복하게 하시고, 풀이 나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비록 유다 백성들이 기근과 메뚜기 재앙으로 인하여 극심한 고통과 아픔을 당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실 큰 사건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행하실 큰 일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친히 아들을 보내사 우리가 받은 고통과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위에서 못박히고, 허리를 창으로 찌르사 물과 피를 흘러주셨고, 친히 가시면류관을 받으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기쁨과 평강과 즐거움이 넘치도록 약속하신 성령을 친히 부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사용하셨던 구약시대와 달리 은혜의 시대인 지금은 모든 만민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부어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은혜시대에 임하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비에 비유한 것입니다. 비는 모든 사람 ,모든 만물에게 부어지고 쏟아집니다. 비가 생명력을 풍성히 해서 곡식들이 무르익듯이 우리의 신앙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은혜의 단비와 같은 성령의 이른비와 늦은비를 맞아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도 봄비와 같은 영혼의 단비이신 성령님께서 오실 것을 예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슥10:1절에 보면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의 종말이 가까워지면 성령의 은혜를 특별히 주셔서 교회로 인자의 임하심을 준비시키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성령의 강림을 봄비 내리는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남종이나 여종에게 늦은 비와 같은 성령을 물붓듯이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구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니라”(요엘2:28-29절) 성령의 은총을 받은 것은 성도들에게 최고의 복입니다. 세상과 각종 죄악을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하늘로부터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더욱 사모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2. 이른비와 늦은 비를 적당하게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며,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비가 많은 우리나라 같은 곳에 살면 비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아무래도 적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은 사막이 많은 나라의 경우에는 매년 평균 강우량이 약 600∼1000mm 정도이기 때문에 비가 온다는 것은 상당한 기쁨입니다. 더우기 가장 덥고 건조한 4월-7월간에 비가 올 때는 그 기쁨이란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이스라엘은 대개 10-11월에 비가 내리는데 이를 이른비라 합니다. 이때에 농부들은 부지런히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10-11월에 뿌린 씨가 자라서 결실하는 3-4월이 되면 다시 적당하게 비가 내립니다. 이것을 늦은비라 하는데 이 늦은비가 내려야 곡식이 결실하게 됩니다. 파종기에, 결실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소산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 내리는 비라도 필요한 비지만 이른비와 늦은비야말로 적당한 때에 철따라 내리는 축복의 단비인 것입니다. 만일 철따라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람의 힘으로 물을 대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노동력과 경비가 들어가게 됩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오게 되면 범람과 홍수로 농사는 물론 그 피해가 커지게 됩니다. 주권자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 이외에 또 없기 때문입니다. 구름을 향하여 명하여 비 내리도록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지상에 비를 내리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채소 위에 비를 내려주시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토지는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흙더미 속에 씨를 뿌려도 비 오지 않으면 다 허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의 모든 일 다 허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 삶은 다 허사입니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고 했습니다. 물방울이 아니라 비를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때는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생활을 위하여 풍성한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겸손하기 위하여, 성결키 위하여, 열심 갖기 위하여, 또 일생 동안 구원에서 떠나는 일이 없기 위해, 그리고 천국에 이르기 위해 풍성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이 말씀은 때에 맞게 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해 주신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엘2:23절에 보면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른비와 늦은비를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적당하게 주시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른비와 늦은 비는 너무 많이 보면 큰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땅에 적당하게 비를 내려 주셔야만 풍년이 올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른비와 늦은비가 적당하게 임할 때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24절에 보면 “마당에서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하게 내려 주심으로써 나타난 결과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게 된다는 말은 이른비와 늦은비로 인하여 그 해에 풍년이 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작 마당에 밀이 차고 넘치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큰 축복으로 여겨지는 일입니다. 독에는 새포도주와 기름이 넘친다는 것은 이른비와 늦은비로 인하여 회복된 백성들의 삶이 실제적으로 풍성하게 채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일로 인하여 시온의 자녀들이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실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은총의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하게 공급하여 주시지 않으면 그 삶이 황폐하여지고 궁극적으로는 살아갈 수조차 없는 존재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른비와 늦은비를 통하여 삶을 유지할 수 있고, 풍성한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없이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고통의 연속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거두시면 단 한 순가도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와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실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될 것이요”(신11: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부어주시며,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른비와 늦은비를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뜻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신11: 13-14절에 보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그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른비와 늦은비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둘째, 약속하신 이른비와 늦은비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120문도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예루살렘 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밤낮으로 간절하게 부르짖을 때에 약속하신 성령님을 강한 불같이 임하셨고,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임하였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라”(행2:1-3)

셋째, 참고 인내할 때 이른비와 늦은비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약5:7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음에는 단지 기다려야만 하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팔레스타인 땅은 농사 짓기에 그리 좋은 땅이 아니라 조건이 더욱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인내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을 염려하며 근심 걱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오히려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라고 전하셨습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온전히 행하시가에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일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기대하며 참고 기다릴 때에 약속하신 성령님을 물붓듯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3. 큰 일,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분을 경외하며,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늦은비와 이른비를 부어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26절에 보면 “너히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풍족히 먹고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자들은 당위론적인 명령이라기보다는 감격에 겨워 찬송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도 크고 놀라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에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시작된 메뚜기 재앙의 횟수대로 그들에게 갚아주실 것이며, 그들은 먹되 풍족하게 먹을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었던 그들에게 다시 소망의 길을 열어주시며, 황폐한 땅을 회복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놀라운 사랑과 대접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니 그들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백성들에게 행하신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우리를 위하여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정말로 놀라운 일, 실로 분에 넘치는 축복된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었고, 멸망으로 가는 우리들을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대신 죽음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를 저주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주셨고,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과 권세를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이 너무도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 은혜가 너무도 크고 놀랍지 않습니까? 그 크신 사랑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글로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찬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퍼지며, 그를 경외하게 하기 위하여 이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 우리 모두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을 찬양하겠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을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이른비와 늦은비를 풍성히 받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27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어떤 병자를 고치는 일이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호6:3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여호와를 알 것이요 간절히 여호와 알기를 힘쓸찌니 저가 나타나심은 아침같이 일정하여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니 곧 땅을 적시는 늦은 비로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알기를 힘쓸 것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배워야 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신 목적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감동을 주사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른 비와 늦은 비

이른 비와 늦은비는 하나님께서 출애굽하여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약속한 차별화된 복이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애굽땅에서 농사법을 언급하셨다.

애굽땅에서는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다고 했는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땅에서는 고통스럽게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애굽은 거의 비가 오지 않는데 나일강이 범람할 때가 있다.

그 때 나일강주변에 씨를 뿌려서 젖은 흙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수로를 파서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물을 끌어댈때 큰 수차를 만들어 발로 밟아 돌려 물을 끌어올리는데 이 고통스러운 노동을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백성들이 해야 했던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 고향동네에서 수차(물레방아)를 발로 밟아 낮은 수로에서 높은 논으로 물을 대는 모습을 본적이 있고 호기심에 올라가서 수차를 밟아보기도 했는데 잠시만 발로 물대기를 하면 다리가 후들 후들떨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뜨거운 땡볕에서 마실물도 넉넉하지 않은데 비지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수차를 밟는 노예의 삶이란 그야말로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는데 그곳은 힘들게 물을 끌어대기 위해 발로 밟을 필요가 없고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이 주셔서 대지가 촉촉히 적셔저 농사짓기가 아주 쉽다고 하시는 것이다.

애굽에서는 그렇게 뼈빠지게 고생하여 어렵게 농사를 지으면 그 곡식들을 애굽사람들이 다 착취해가고 겨우 하루 하루 배급을 받아 먹고 살았지만 가나안땅에서는 하늘에서 때를 따라 내리는 비로 대지가 푸르고 열매가 풍성할 뿐아니라 그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이 소유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쁘고 환상적인가 생각할 수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환상적인 꿈의 가나안땅을 주시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거셨다.

그것은 신1:13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이다.

청종과 순종을 하나님은 조건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 복된 가나안땅이 그들에게 애굽과 같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곳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에게 무한정한 복과 은혜와 무한 리필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청종과 순종을 통해 달콤한 꿀과 같은 행복과 기쁨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른비는 마르헤스반월(이스라엘8월 현재10월11월)에 내리는 비이며 늦은 비는 니산월(아빕월이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은1월 현재3 월4월에 해당)에 내리는 비이다.

이른비는 씨를 뿌린 후에 바로 내리는 비인데 뿌리가 땅속에 잘 내리도록 수분을 공급하고 늦은 비는 추수하기 바로 전에 내려서 곡식의 알맹이가 익고 부풀어서 통통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여 더 많은 곡식을 거둘수 있도록 한다.

이른비와 늦은비를 통해 사람들이 거둘수 있는 양식은 첫째 빵을 만들 수 있는 곡물들과 음료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포도와 버터대신 사용하여 음식의 맛을 더하는 오일종류이다.

곡물은 인간의 근간인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노동하기에 적당하게 해주고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하며 오일은 사람의 얼굴에 윤택이 나고 살이 쩌서 보기좋게 해준다.

가나안땅에서 거두는 추수는 보리가 먼저이며 그 다음은 밀이고 포도 그리고 올리브이다.

이 풍성한 수확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택으로 되어진다.

과연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을 청종하고 순종하여 가나안의 특별한 복을 받았을까?

물론 처음에는 그랬다.

적어도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에서 여호와를 청종하고 순종하여 젖과 꿑이 흐르는 가나안땅의 픙성한 복을 누렸다.

그런데 잘먹고 잘살고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지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불순종할 뿐 아니라 가나안땅에서 제거한 우상까지 숭배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른비와 늦은 비의 은택이 내내 그치지 않는 가나안땅에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고통과 괴로움과 울부짖음의 도가니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가나안족속들의 기가 살아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침략하고 괴롭히고 양식을 빼앗아가고 심지어는 기근과 흉년이 들어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물론 잠시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우셔서 구해주셨지만 그것도 잠깐 다시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이미 빠져나온 죄악의 진창에 다시 굴러 봉변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선지자들의 한탄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때를 따라 풍성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여호와를 경외하지도 섬기지도 않았다(렘2:24)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그치시고 가뭄과 기근 전쟁과 질병을 주셨지만 선지자들을 통해 회복의 멧세지를 주셨다.

욜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이른비와 늦은 비는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복을 상징하지만 점차적으로 죄악된 세상과 무거운인생의 짐을 지고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비로 비유되어졌다.

시 84: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을 따라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에게 이 마귀의 권세아래 놓인 죄많고 악한 세상은 그야말로 눈물의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닐 수 없다.

시84편은 고라자손의 시이다.

고라자손은 출애굽당시 모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고 땅에 삼키움을 당한 레위지파의 후손인데 후에 그들은 성전문지기와 성전음악을 담당했다.

이 세상에서 아무런 분깃도 받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의 성전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봉사하고 섬기는 그들에게 ​세상은 눈물골짜기 일 것이다.

​눈물(바카 בָּכָא)의 골짜기는 실제로 팔레스틴에 있는 바카골짜기인데 이 골짜기는 mulberry(뽕나무)가 많고 그 열매가 붉은 색이다.

이 바카골짜기에는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지친 목을 축이도록 바위에 수로와 큰 웅덩이을 파서 빗물을 저장했다고 한다.

매마른 광야와 사막의 땡뼡과 고열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내리는 비를 저장하여 공급하는 바카골짜기는 그야말로 생명샘이며 그 곳에 물을 채워주는 이른 비는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일까?

이것이 시편기자는 매마란 광야와 사막같은 세상을 지나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시고 공급하시는 이른비와 샘물로 비유한 것이다.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은혜를 야고보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생명수라고 말한다.

이른비와 늦은 비는 팔레스틴 땅에 일년에 두번 내리는 비이다.

이른비는 씨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 늦은 비는 이미 익은 곡식이 완전히 여물어 추수하기 위해 내리는 비이다.

왜 야고보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라고 하였을까?

모든 역사를 통해 하늘에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은혜는 단 두번이다.

한 번은 이른비인데 그 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세상에 내려오셨다.

​그래서 이 세상에 한 알의 밀알(예수 그리스도)를 심어주셨다.

늦은 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로 심겨진 수많은 열매(그리스도인)들을 추수하시기 위해 두 번째 그리스도의 강림을 준비하시는데 심판과 구원을 위해서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내려오실 초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기록이며 신약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위해 기록되어진 것이다.

구약성도들은 오실 이른 비(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천국을 소망했고 신약성도들은 늦은 비(다시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농부처럼 인내하고 기다리다가 천사들이 마지막 날 추수하러 내려올 때 알곡이 되어 주님과 함께 천국에 올라가야 한다.

이른비와 늦은 비는 좁게 이스라엘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천혜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때를 따라 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은혜이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역사속에서 이른비는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이며 늦은 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우리는 이미 이른 비를 맞았고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늦은 비를 기다리듯 참고 인내하며 소망중에 기도하며 말씀을 붙잡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른비와 늦은비 성령

이른비와 늦은비 성령

엘렌 화잇의 종말론에 활력을 불어 넣는 주제는 늦은비 성령의 역사이다. 화잇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늦은비 성령 강림 사건을 예언하였다. 여기서는 엘렌 화잇이 천연계에서 문자적으로 일어난 현상, 그 메타포적 적용 그리고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를 살펴보기로 한다.

I. 팔레스타인 농경사회 기후

성경에는 이른비와 늦은비를 문자적 및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례들이 나오고 있다. 먼저 문자적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1년에 두 우기, 즉 이른비와 늦은비 우기가 있다.

가을철에 속한 10월은 팔레스타인 농경사회에서 한 해가 시작하는 계절이다. 긴 여름 동안에는 비가 없어 풀이 시들고 대지는 매 말라 있다. 그러다가 이 10월에 가을비가 내린다. 이것이 이른비에 해당한다. 11월에는 강우량이 더 증가한다. 비로 인하여 땅을 촉촉해 져 사람들은 파종을 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보리나 밀 농사를 해 온 농사시기와 유사하다. 작물은 잘 자란다. 겨울철 비가 오다가 멈추었다가 한다. 2월에 더 많은 비가 내린다. 3-4월에는 작물들이 거의 다 자란 상태가 되어 추수 때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아직 낫으로 추수하기는 빠르다.

완전히 성숙하기 위하여서는 추가로 좀 더 밀어 올리는 비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늦은비를 내리시어 곡식을 완전하게 성숙케 하신다. 이는 마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 로켓이 마지막으로 폭발하여 궤도 진입을 하게 하는 원리와 유사하다. 늦은비는 이른비로 발아, 성장한 작물들을 보충, 완전, 성숙케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구도는 한국의 농번기 철과는 차이가 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이 천연계 현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이른비

(1) 종자 발아

(2) 식물의 초기 성장 지원

2. 늦은비

(1) 충만히 여물게 함

(2) 초기 성장 완성(성숙)

II. 성경에 나오는 메타포 표현들

성경 기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른비-늦은비라는 농경사회의 천연계 현상을 구속사의 중요 사건에 적용시키는 메타포로 사용하고 있다.

1. 구약성경

(1) 모세–모세는 성경 역사 상 최초로 이 메타포를 사용하고 있다(c. 1520 BC).

“그들이 나 바라기를 비같이 하였으며 입을 벌리기를 늦은 비 기다리듯 하였으므로”(욥 29:23).

(2) 요엘 (c. 800 BC)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3) 호세아 (c. 780 BC)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

(4) 예레미야 (c. 612 BC)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렘 5:24).

(5) 스가랴 (c. 517-487 BC)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슥 10:1).

2. 신약성경

(1) 야고보 (c. 60 AD)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3. 영적 적용

(1) 하나님의 선물–비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비를 주시는 일은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인간은 비를 생성케 할 수 없다.

(2) 유용한 선물–목적을 위하여 주어진 유용한 선물이다.

(3) 필요한 선물–이 선물 없이는 추수는 불가능하다.

(4) 적시의 선물–꼭 필요한 바로 그 때에 주시는 선물이다.

(5) 보증된 선물–비는 지정된 일, 즉 식물이 마지막 완전한 성숙을 보증하는 선물이다.

(6) 협동적 선물–파종, 성장, 추수 과정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과 협력하여야 한다. 인간은 파종하고, 땅을 기경하며, 잡초 제거를 하며 곤충을 잡고 마침내 추수를 하는 등등의 일을 한다. 인간은 비를 참을성 있게 믿음으로 구하고 그 비가 임할 것을 기대하며 입을 벌리고 받을 준비를 한다.

(7) 순서 있는 선물–이른비가 선행되어야 발아, 성장시키고 식물을 유지케 한다. 그 다음에 오는 늦은비는 완성시킨다.

III. 엘렌 화잇의 메타포 적용

엘렌 화잇은 기본적으로 이른비와 늦은비 순서를 이중 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먼저 이 메타포를 그리스도인 경험에 적용시키고 그 다음에는 교회 역사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A. 개인적 신앙생활에 적용한 메타포

1. 이른비

(1) 천연계

① 종자 발아

② 식물의 초기 성장 지원

(2) 영적 의미

① 그리스도인 생활 시작, 신생, 회심체험, 영적 생활 시작, 새로운 영적인 삶

② 완전에서 완전으로의 영적 성장, 매단계의 완전

2. 늦은비

(1) 천연계

① 충만히 여물게 함

② 초기 성장 완성(성숙)

(2) 영적 의미

① 충만한 영적 완전, 완전한 성숙

② 낫 준비, 심령에 은혜 사역 완성, 인간 마음의 도덕적 형상 완전, 전인적 변화.

③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전 추수를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준비시키는 특별한 능력 부 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완전을 지향하도록 특별한 능력을 부여.

B. 교회 역사적으로 적용한 메타포

엘렌 화잇은 그의 저술 여기저기에서“이른비 성령과 늦은비 성령”을 교회 역사적으로 적용시키고 있다. 참고: TM 506-512; RH 3-2-1897; EW 36-39; 269-273

1. 이른비–오순절 당시 초기교회

2. 늦은비–마지막 때 남은 백성

IV. 오순절 사도들의 이른비 준비

오순절에는 역사적으로 초기교회에 이른비 성령이 강림하였다. 사도행적 35-37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부터 오순절까지 10일 동안의 제자들의 영적 쇄신의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른바 하나님의 10일 계획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성전 중심의 찬양 생활

제자들은 무료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각자가 개인적으로 영적 쇄신을 위하여 결단과 심혈을 쏟는 노력을 하였다.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눅 24:53).

“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아버지의 약속, 즉 성령의 부어 주심을 기다렸다. 그들은 한가롭게 기다리지 않았다. 성경의 기록은 그들이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눅 24:53)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그들의 요구를 예수의 이름으로 하늘 아버지께 아뢰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행적, 35).

2. 회심 체험

(1) 겸비와 회개

자아라는 것은 어느 때나 고개를 들고 나설 수 있다. 이 자아는 낮아져야 한다.

“제자들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그들의 불신을 자복하였다”(행적, 36).

(2) 버리고 얻은 것 (행적 37)

* 버린 것들–그들은“불화와 최상권을 잡으려는 모든 욕망”을 버렸다.

* 얻은 것들

①그들은 그리스도인 교제를 통하여 모두 친밀해졌다.

②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갔다.

③ 이러한 생활을 통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와 밀접한 교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행적, 37).

(3) 마음 성찰

“이 준비의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행적, 37).

① 깨닫지 못한 사실 자각–“이해가 둔하여 그분을 슬프게 한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이 가르치고자 노력하신 그 교훈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행적, 37).

② 영적 필요에 대한 개인적인 절박한 의식

3. 그리스도의 말씀 회상과 그의 생애 명상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하였을 때에 그들은 그 의미를 더욱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 기억에서 사라졌던 진리들이 그들의 마음에 다시 떠올랐으며, 그들은 이것들을 서로에게 되풀이하였다. 그들은 구주를 오해한 자신들을 책하였다.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생애의 장면들이 마치 행렬처럼 그들 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그분의 순결하고 거룩한 생애를 명상할 때에, 만일 그들의 생애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증거할 수만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할 수고나 너무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과거의 삼년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주님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깊이 주를 사랑하는지를 보여 드리고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였을 것인가. 그리고 불신의 말과 행동으로 항상 주님을 슬프시게 한 일에 대하여 얼마나 진실되게 뉘우쳤을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용서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들은 가능한 한, 세상 앞에 담대히 주님을 시인함으로 그들의 불신을 속죄하고자 하였다”(행적, 36).

(1) 그리스도의 말씀을 반복하여 되씹는 일은 잊혀진 진리를 되찾고 그 심오한 의미를 캐내는 길이다.

(2) 지나간 날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한 일을 스스로 책하였다.

(3) 순결하고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생애를 명상하였다.

(4)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증거하는 일을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5) 그리스도로부터 용서 받은 사실에 위로 받았다.

(6) 담대한 증거로 자기들의 지난날의 불신을 속죄 받고 싶었다.

4.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

(1) 자신이 구령 사업에 적합한 존재가 되기 위한 기도

“제자들은 사람들을 만나기에 적합하게 되도록 그리고 매일의 교제에서 죄인들을 그리스도 께 인도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매우 열렬히 기도하였다”(행적, 36-37).

(2) 영혼 구원의 무거운 중압감 의식

“그들은 단순히 자신을 위한 축복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에 눌려 있었다”(행적, 37).

(3) 복음 전도를 위한 능력 간구

“그들은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능력을 간구하였다”(행적, 37).

(4) 그리스도께서 약속한 성령 구함

“이제 구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은 이 선물을 위해 탄원하였고,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간구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에게 부어 줄 성령의 선물을 간구하셨다”(행적, 37).

V. 늦은 비 예언

원시적 경건 부흥 예언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세상에 내리기 전에 주님의 백성 중에는 사도시대 이래 일찍이 목격하지 못한 원시적(primitive)인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과 권능이 그분의 자녀들 위에 부어질 것이다”(GC 464). 여기서 “원시적”이란 표현은 문자적이 아닌 신학적 의미, 즉 사도교회를 시사한다.

사도 시대 거대한 부흥은 오순절 사건이었다. 이 오순절 성령강림은 이른비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 이른비 성령의 강림으로 획기적인 복음전파가 일어났다.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

그러나 마지막 때 경건의 부흥은 이 사도시대 부흥운동보다 더 크고 감동적일 것이다.

2. 늦은비의 결과

이 늦은 비 성령의 강림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대신에 이 세상을 사랑하는 그러한 교회들에서 분리되어 나올 것이다. 목사들과 신자들을 막론한 많은 사람들이 주의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시키고자 이 시대에 전파되고 있는 큰 진리를 즐거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GC 464).

3. 사단의 위조 부흥운동

사단은 이 진정한 경건의 운동을 방해하려고 먼저 “가짜 운동을 꾸며 냄으로써 이를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의 기만의 세력 아래 모이는 교회들 가운데는 마치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내린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앙적 큰 부흥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도록 나타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실상은 전혀 다른 영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놀라운 정도로 역사하고 계신다고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은 종교의 가면을 쓰고 자기의 세력을 모든 그리스도교계에 확장하기에 진력할 것이다”(GC 464).

“과거 반세기 동안에 일어난 신앙 부흥의 대부분에는 다소간 그와 같은 영향이 활동해 왔던바 장래에는 더욱 광범위한 운동들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진리와 허위가 혼합된 감정적 흥분이 있으며 그것은 오도되기 쉽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속임을 받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보면 그런 운동의 내용을 분별하기가 결코 어렵지 않다. 무릇 사람이 성경의 증거를 등한히 하고, 극기하고 세속을 버리도록 요구하는 분명하고 심령을 살피게 하는 진리에서 돌아설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GC 464-465).

VI. 그리스도인 완전과 재림신앙

1. 상반된 견해

재림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인 완전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교리 이해에 있어서 상반된 견해가 대립되어 왔다. 한 그룹에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뜻에 철저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완전하게 살아야 한다”(UL 36). 그러나 반대파에서는 그것을 율법주의라고 쏘아 붙이고 있다.

다른 그룹에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고 인간은 단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면 된다는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도인은 그분 안에서 또한 그 분을 통하여 완전한 일이 이루어져 왔다는… 증거를 제시하여야 한다”(UL 31). 이에 대하여 첫 그룹은 “싸구려 은혜”라고 몰아붙인다.

2. 바람직한 이해 방향

양편 모두 화잇의 메시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진리는 두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들어갈 사람들에게 높은 표준을 요구하신다.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6:). “인간을 위한 하나님

의 이상은 사람의 생각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보다도 더 높다. 경건 곧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가지는 것이 도달해야 할 목표이다”(교육, 18).

(2)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 요구를 이룰 수 있는 권능을 주신다(UL 159).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성령은 신자들 안에서 그리고 신자들을 위하여 일하신다. 그리하여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행할 수 있게 한다.

VII. 오늘날 늦은비 준비를 위한 자세

1. 기도

(1)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

(2) 고백과 회개의 기도

(3) 겸비와 신뢰의 기도

(4) 초기교회의 경건을 추구하는 기도

2. 오염된 영혼성전의 정결 작업

(1) 마음속에 품고 있는 죄를 추방

(2) 세상과 세속에서 자신을 분리

(3)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연합을 위한 세 가지 “아니하면”신앙 자세

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5)

②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요 6:53)

③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요 15:4)

3. 영적 성장과 발전 추구

(1) 교회의 정례 안식일학교 및 대예배 집회 참여

(2) 화요일 저녁 기도회 참여

(3) 야영회 집회 참여

(4) 부흥집회 참석

(5) 수련 및 휴양 집회 참석

4. 연합 추구

(1) 불화와 분쟁 추방

(2) 분파 활동 제어

(3) 하극상 질서교란 없는 행정 체제

5. 언어, 생각, 행위에 있어서 매일의 승리생활 체험

(1) 교만으로부터 승리

(2) 이기심으로부터 승리

(3) 세상 사랑으로부터 승리

(4) 끊임없이 괴롭히는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약점으로부터 승리

(5) 잘못된 언어 및 행위로부터의 승리

6. 매일 성경연구

(1) 규칙적인 성경 연구

(2) 특히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종말론적 사건들 연구

7. 봉사와 증거 활동

(1) 죄로 멸망하여 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선교사업에 참여

(2) 봉사활동 참여

VIII. 맺는 말

이른비-늦은비 메타포에는 복음적 협동론이 잘 나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전통적으로 협동론(synergism, synergos, “working together”)을 회심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협동으로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이 협동론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도덕적, 영적 책임 사이의 충돌되어 보이는 역설적 진리를 조화시키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주권론에 역점을 두었으며 칼뱅이나 루터가 이를 수용하여 신 단독론(divine monergism)을 펼쳤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론을 강조하였다. 두 진영 사이의 신학적 갈등을 아르미니우스(James Arminius)-요한 웨슬리는 인간편의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에라스무스나 멜란히톤은 협동론자들이었다. 종교개혁자들 훨씬 이전에 개최된 오랜지회의(529)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죄로 인하여 아주 약화되어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을 믿을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되었다(요 15:5). 그러면서 半 펠라기우스주의나 半 아우구스투스주의를 반대하였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죄로 멍들어 있기 때문에 비록 인간의 자유의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에 역사하는 복음적 협동론으로 귀착하여 갔다. 이런 복음적 협동론은 엘렌 화잇의 진술에 잘 나타난다.

“인간이 하나님께 의지를 바친 후 하나님으로부터 의지를 다시 받아야 한다”(MB 62).

“사람의 품성에 있어서 그처럼 요긴한 요소를 이루는 이 의지는 타락으로 사단의 지배하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하여 사단은 언제나 그 자신이 기뻐하는 뜻을 따라 역사함으로 사람의 완전한 멸망과 불행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한 희생은,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을 주셔서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그분의 정부의 원칙을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그분으로 하여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게 한다. “그대 자신을 나에게 바쳐라. 그 의지를 내게 달라. 나는 그것을 사단의 지배에서 빼앗아 내가 소유하겠다. 그렇게 될 때 나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따라 그대 안에서 역사할 수 있다.” 그분께서 그대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실 때, 그대의 뜻은 그분의 뜻과 같아지고, 그대의 품성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이 변화된다”(5T 515).

엘렌 화잇의 회심과 성장의 이른비 체험과 완전을 도달케 하는 늦은비 성령의 메타포 진술들은 이 복음적 협동 사상이 배어 있다고 볼 수 있다.

1. 엘렌 화잇의 “거룩함” 정의

“특별한 환경하에서 영적인 황홀을 나타낸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다. 성결이란 황홀경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복종이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요,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요, 빛 가운데처럼 시련과 어두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요, 보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행적, 51).

(1) 거룩함의 부정적인 면–거룩함은 영적인 황홀경이 아니다.

(2) 거룩함의 긍정적인 면

① 하나님의 뜻에 완전한 굴복(surrender)하는 일이다.

② 하나님 말씀과 뜻을 행하는 순종(obedience)하는 것이다.

③ 시련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trusting in God), 믿음으로 행하는 것(walking by faith)이며, 그 분의 사랑을 신뢰하는 것(resting in His love)이다.

2. 성령을 받는 조건과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생애 동안 날마다 필요되는 은혜를 새롭게 공급받기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 간구하셨다는 사실과 또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하여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굳세게 하고 축복하시고자 나가셨음을 아는 것은 헌신한 교역자에게 귀중한 위안이 된다. 하늘 아버지께 엎드려 기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기도로써 당신의 믿음을 굳게 하셨으며, 또한 하늘과 교통하심으로 악을 저항하시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능력을 친히 얻으셨다”(행적, 55-56).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모든 교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추수를 무르익게 하기 위해 그분의 교회에게 약속하신 능력을 받아 사용할 준비가 갖추어질 것이다. 매일 아침 복음의 사신들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 대한 헌신의 서약을 새롭게 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소생케 하고 거룩하게 하는 능력과 함께 당신의 성령의 임재를 허락하실 것이다. 그들은 매일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나아갈 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역사가 그들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행적, 56).

(1) 인간 편

① 날마다 필요한 능력을 공급 받아야 한다.

②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간구하여야 한다.

③ 헌신의 성별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2) 하나님 편

① 소성시키고 성결케 하시는 성령을 주신다.

② 임무 수행을 성공적으로 수행케 하신다.

3. 승리의 약속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버리며, 믿음으로 그분의 허락을 굳게 붙잡는다면 악인들이나 마귀들도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하거나 그분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일을 막을 수 없다. 공공연한 것이든지 은밀한 것이든지 모든 유혹과 모든 반대 세력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슥 4:6) 성공적인 저항이 가능하다”(쟁투, 528-529).

(1) 필요조건

① 마음을 낮추고 통회하는 일

② 죄를 고백하고 자기의 불완전 인정

③ 죄를 버리고 믿음으로 허락을 붙잡음

(2) 약속된 승리

② 성령의 권능으로 드러나거나 숨겨진 시험을 저항하는 일

③ 드러나거나 숨겨진 모든 반대 세력에 성령으로 저항하는 일

4. 재림교회의 최대의 날은 과거의 역사에 있지 않고 앞으로 전개될 역사에 있다.

5.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역사를 재현하시되 더 크고 더 활기차게 하실 것이다.

6. 하나님께서는 재림신도 각자가 마지막 운동에서 담당하여야 할 역할을 주셨다.

7. 성령침례(행 1:5)와 성령충만(행 2:4)–성령으로 회심하고 성령의 계속적 지배를 받음

8. 지금이야말로 늦은비 성령 받을 준비를 할 때이다.

우리가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면 성령의 비는 우리 주위에 내린다.

9. 늦은비 성령 강림은 원인이 되고 크게 외치는 일은 그 결과가 된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신 11:10-12)

비가 많은 우리나라 같은 곳에 살면 비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아무래도 적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은 사막이 많은 나라의 경우에는 매년 평균 우량이 약 600∼1000mm 정도이기 때문에 비가 온다는 것은 상당한 기쁨입니다. 더우기 가장 덥고 건조한 4월-7월간에 비가 올 때는 그 기쁨이란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큽니다. 이스라엘은 대개 10-11월에 비가 내리는데 이를 이른비라 합니다. 이 때 부지런히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10-11월에 뿌린 씨가 자라서 결실하는 3-4월이 되면 다시 적당하게 비가 내립니다. 이것을 늦은비라 하는데 이 늦은비가 내려야 곡식이 결실하게 됩니다. 파종기에, 결실기에 비가 오지 않으면 소산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 내리는 비라도 필요한 비지만 이른비와 늦은비야말로 적당한 때 철따라 내리는 축복의 비인 것입니다. 만일 철따라 비가 내리지 자으면 사람의 힘으로 물을 대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노동력과 경비가 들어가게 됩니다. 또 비가 너무 많이 오게 되면 범람과 홍수로 농사는 물론 그 피해가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중요한 비를 성경에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1. 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사 55:10-11에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연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 하리라”했습니다. 비는 풍족하게 필요할 때 내릴 때 풍작을 이루고 농부에게 기쁨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곳마다 풍성한 역사와 결실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짓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되는 매체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임합니다. 비가 내리면 매말랐던 땅이 촉촉한 옥토가 되고 거기서 싹이 돋아나게 됩니다. 적당한 때 적당량의 비가 내리면 곡식이 알차게 결실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먹고 마시게 되며, 그 영혼이 알찬 곡식처럼 풍요로운 결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 119:70에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을 즐기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으면 육신이 살찌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먹으면 그 영혼이 살쪄 그 말씀을 더 먹고 싶어하고 즐거워 한다는 뜻입니다. 시 119:103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비가 내 심령 속에 이른비와 늦은비처럼 내릴 때 내 영혼은 건강해지고 살찌고 아름답게 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삭막하고 공허한 사람들, 영적으로 갈증나고 괴로운 사람들은 비처럼 내려서 내 영혼을 새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즉 말씀 듣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가져야 합니다.

2. 은혜의 단비 겔 34:26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권자의 은혜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즉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 이외에 또 없기 때문입니다. 구름을 향하여 명하여 비 내리도록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지상에 비를 내리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채소 위에 비를 내려주시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토지는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흙더미 속에 씨를 뿌려도 비 오지 않으면 다 허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의 모든 일 다 허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 삶은 다 허사입니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고 했습니다. 물방울이 아니라 비를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실 때는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생활을 위하여 풍성한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겸손하기 위하여, 성결키 위하여, 열심 갖기 위하여, 또 일생 동안 구원에서 떠나는 일이 없기 위해, 그리고 천국에 이르기 위해 풍성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이 말씀은 때에 맞게 주시는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은혜도 주시지만 동시에 위로의 은혜도 주십니다. 매마른 초목인 우리가 위를 쳐다보고 잎과 뿌리에 하늘의 단비를 받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3. 비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마 7:27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비가 심판의 도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비는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고 말씀을 순종하고 사는 사람들은 때를 따라 내리는 비가 축복과 은혜의 비가 되지만 예수를 멀리하고 사는 자에게는 비는 심판의 도구가 된다는 말입니다. 창 7:11-12에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인류가 극도로 타락하였을 때 노아의 대홍수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아담 이래 천년 문화의 발달은 종국에 달하고 극도로 타락하여 구원의 희망이 보이지 아니할 때 홍수는 임하였습니다. 창 6:5-7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타락과 범죄를 보면서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사람의 무정을 슬퍼하시고 그 무모한 짓을 탄식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는 홍수심판을 불가피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믿습니다. 살전 4:16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라고 했고, 계 20:12에는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선과 악, 의와 불의, 신앙과 불신앙을 심판하시는 종말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 날에 우리의 공력이 드러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날을 바라보며 믿음의 바톤을 떨어뜨리거나 놓쳐서는 안됩니다. 1936년 베르린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독일팀이 400미터 릴레이 경기에서 선두를 유지하다가 세번째 선수가 바톤을 넘겨주다가 그만 떨어뜨리는 바람에 경기는 지고 말았습니다. 불란서 신문은 스포츠 뉴스면에 불란서가 이기기는 했으나 그 이유는 독일 선수가 “증거물을 떨어뜨렸기”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나무들을 키워주시고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 이른비와 늦은비를 때를 따라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시기 위해 믿음의 바톤을 남겨주고 계십니다. 매말라 가는 내 심령 위에 은혜의 단비를 주시습소서 라고 기도합시다. 은혜와 축복의 단비 맞고 소생합시다. 내가 은혜의 단비를 맞아야 새로운 싹처럼 돋아나는 기쁨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합시다. 주여 단비를 내리시옵소서.

이른비와 늦은비

RexLuna

(호 6:3)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하면 그때에 우리가 알리라. 그분의 나아오심은 아침같이 예비되어 있으며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종교력으로 7월에 수확을 마치고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고 수장절을 지키면 일년 농사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8월에 이른 비가 내리면 건기 동안에 메말라 있던 땅이 부드럽게 되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진 때에 이른 비를 주지 않으시면 파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기가 끝나고 첫째 달에 늦은 비가 내립니다. 첫째 달인 아빕월에 비가 내려야 보리 이삭이 더 알차게 영글게 되며, 밀도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곡식이 익어갈 즈음에 늦은 비가 흡족하게 내려야만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욜 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그때에 즐거워하며 주 너희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분께서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히 주셨으며 또 너희를 위해 비를 내려 주시되 이른 비와 첫째 달의 늦은 비를 내려 주시리니

수자원이 풍부한 이집트에서는 발로 수차를 돌려서 밭에 물을 공급했지만, 팔레스틴 땅에서는 하늘로부터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정해진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 11:14) 내가 너희 땅에 비 곧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제때에 주리니 네가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을 거둘 것이요,

이것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와 이슬과 소나기와 같습니다.

(신 32:2) 내 교리가 비처럼 내리며 내 말이 이슬처럼 맺히되 연한 채소 위에 내리는 가는 비와 풀에 내리는 소나기 같으리니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같은 말씀을 주셔야 메마르고 강퍅한 사람들의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그들의 마음 밭에 떨어진 말씀의 씨앗이 싹트게 됩니다. 또한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늦은 비와 같이 임하실 때, 그들이 더욱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농부들이 열매를 얻기 위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비와 같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위해 인내하느니라.

출처. 부산제일성서침례교회, pastor. Moonsoo Kim ☞ http://www.fbb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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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 성령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Q – 늦은 비 성령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A – “늦은 비 성령”이라는 말은 우리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다.

성경에는 “늦은 비 성령”이나 “이른 비 성령”이라는 표현이 없다. 다만 “이른 비 늦은 비”라는 말 뿐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 기후에 가을에 파종할 때 내리는 가을비를 이른 비라 하고 보리와 밀을 추수할 때가 가까운 봄철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표현한 것을 빌려서 성령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성경에 비를 직접적으로 성령을 표상하는 말로 사용한 곳은 없다. 예수께서는 배에서 솟아나는 강물을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7:38,39)

그러나 비를 성령의 역사의 표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은 있다.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사32:15) 위에서 성신을 부어주시는데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고 삼림이 된다. 광야에 꽃이 피고 삼림이 되도록 위에서 부어지는 것은 비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성신(성령)을 부어줄 때에 그렇게 된다고 하였으니 성령께서 비의 역사를 하시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 확실하다.

이런 성경의 계시에 의하여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비가 내리는 것에 비유하여 이른 비 늦은 비라고 표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른 비 성령, 늦은 비 성령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표현을 하니까 마치 성령이 이른 비 성령이 계시고 또 늦은 비 성령이 계시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성령의 이른 비 역사, 성령의 늦은 비 역사라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때때로 늦은 비 성령이라는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내 대부분 위에 기록한 것과 같이 표현한다.

성령의 이른 비 역사와 늦은 비 역사는 성령의 역사(役事)의 역사적(歷史的) 개념이다.

역사적 개념이라는 말은 항상 역사(役事)하시는 성령의 역사(役事)가 아니라 어는 역사적(歷史的) 시점에 특별히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뜻이다.

성령은 매일 매 순간에 인류를 위하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역사하신다. 그러나 세상 역사의 어는 시점에 특별한 능력으로 역사하실 때가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복음을 온 세상에 증거하도록 분부하신 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행1:8)라고 하셨을 때, 그때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능력으로 증거하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특별한 능력으로 예수의 제자들에게 역사하셨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이다. 이것을 성령의 이른 비 역사라고 말한다.

사도행적에는 이 사실을 명백히 기록하였다.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이 마쳐지는 종말의 때에 성령의 지도하에 헌신한 신자들이 열렬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어 거룩한 은혜의 특별한 증거가 그 노력에 수반될 것이다. 동방나라들에서 파종기와 추수기에 내리는 이른비와 늦은 비의 상징을 통하여 히브리 선지자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교회 위에 부어질 영적인 은혜를 예언하였다. 사도 시대에 성령을 부어 주심은 이른 비, 혹은 먼저의 비의 시작이었고 그 결과는 영광스러웠다. 종말에도 성령의 임재가 참 교회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추수의 끝이 가까울 때에, 인자의 오심을 맞기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고자 하시는 영적인 은혜의 특별한 부어 주심이 약속되어 있다. 이러한 성령의 부어 주심은 늦은 비가 내리는 것으로 비유되었다. 그리고 이 더해진 능력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봄비 때에” 추수하는 주인에게 탄원을 올려야 한다. 그 응답으로 주께서는 “번개를 내”시고,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리실 것이다. “그가 … 비를 내리시되 …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슥 10:1; 욜 2:3).”(사도행적 54)

늦은 비 성령이란 위의 말씀의 설명대로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얼마 전 역사적 시점에 온 세상을 환하게 하는 능력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기 위하여 성령께서 오순절에 역사하셨던 것보다 더 큰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른 비가 씨앗을 움트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늦은 비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추수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다.

그처럼 오순절에 나타난 성령의 능력의 역사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시작하게 하였다. 역사의 종말에 성령께서 또 한 번 능력으로 역사하심으로 영원한 추수를 하도록 성도들을 영글게 하며 세상을 복음의 능력으로 압도하게 하실 것이다.

이 역사는 교회를 통하여 나타난다. 오순절 때 이른 비적 성령의 역사도 제자들이 함께 모여 가도할 때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여 역사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의 이른 비 역사나 늦은 비 역사는 교인 개인에게 임하는 역사이기 전에 교회에 임하는 역사이다.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이 마쳐지는 종말의 때에 성령의 지도하에 헌신한 신자들이 열렬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어 거룩한 은혜의 특별한 증거가 그 노력에 수반될 것이다. 동방나라들에서 파종기와 추수기에 내리는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상징을 통하여 히브리 선지자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교회 위에 부어질 영적인 은혜를 예언하였다. 사도 시대에 성령을 부어 주심은 이른비, 혹은 먼저의 비의 시작이었고 그 결과는 영광스러웠다. 종말에도 성령의 임재가 참 교회와 함께 할 것이다.”(사도행적 54)

이런 사실에 의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로 표상된 성령의 능력의 역사는 역사적인 사건인 동시에 교회적 사건임을 알게 된다. 개인에게는 참 교회에 속한 성도 개인이 그 참 교회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위하여서는 성도 개인이 성령의 늦은 비의 역사에 참여하도록 항상 준비 되어 있어야 한다.

성도 개인의 이런 준비를 주장하시는 분도 성령이시다. “그러나 세상의 추수의 끝이 가까울 때에, 인자의 오심을 맞기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고자 하시는 영적인 은혜의 특별한 부어 주심이 약속되어 있다. 이러한 성령의 부어 주심은 늦은비가 내리는 것으로 비유되었다. 그리고 이 더해진 능력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봄비 때에” 추수하는 주인에게 탄원을 올려야 한다. 그 응답으로 주께서는 “번개를 내”시고,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리실 것이다. “그가 … 비를 내리시되 … 이른비와 늦은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슥 10:1; 욜 2:3).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의 신자들이 모든 영적 성장의 근원되신 분과 살아있는 연결을 맺지 않는다면 그들은 추수 때를 위하여 준비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등을 손질하고 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특별히 필요되는 때에 더해 주시는 은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은혜의 공급을 받는 사람만이 매일의 필요에 알맞는 권능과 그 권능을 사용할 능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영적인 권능의 특별한 부으심을 통하여 영혼 구원 사업에 기적적으로 적합하게 될 어떤 미래를 고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날마다 하나님께 복종시킴으로 그분이 그들을 그분의 사용 목적에 적합한 도구로 만드시게 할 것이다. 날마다 그들은 그들의 활동 범위 안에 있는 봉사의 기회를 활용한다. 날마다 그들은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가정에서 어떤 대수롭지 않은 노동을 하거나, 유용한 공공 분야에서 일하거나 주님을 증거한다.”(사도행적 55)

이렇게 성도 개인이 날마다 늦은 비의 역사를 위하여 준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나는 이슬과 같은 역사라고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호14:5)

성도들은 모름지기 날마다 이슬과 같은 성령의 역사로 생활해야 한다. 그들이 성령의 능력의 역사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이렇게 생활하지 않고 그날 성령의 늦은 비의 역사에 참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바른 생각이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이른 비와 늦은 비뿐만이 아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 사이에 때를 따라 필요한 비를 내려 주신다. 성령의 이른 비와 늦은 비 역사는 역사적 개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오순절과 역사의 종말에 행하실 능력의 역사(役事)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어오는 역사적 기간에도 항상 일하셨다. 그것이 이슬과 같은 역사이며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는 것과 같은 일상적 비의 역사도 하셨다는 말이다.

이른 비적 역사는 오순절 때 역사적 사건으로 지나갔다. 늦은 비의 역사는 아직 역사적 사건으로 이르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매 순간 성령께서는 이슬과 같이 또는 때를 따라 주시는 비와 같이 역사하신다. 이 성령의 역사를 받아 진정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생활하는 자만이 성령의 늦은 비 역사에 참여할 것이다. 그것은 능력의 역사이다.

2010. 10. 15.(금) 9:5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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